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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의 여운 (용화산)

이종균 2 1689
비목의 애달픈 여운
(용  화  산)

  뜻하지 않은 우환으로 5월 한 달을 병상에서 지내다 보니 무엇보다 그리운 게  자연이었다.
  싱그러운 바람과 짙어가는 녹음, 구름 흘러가는 소리 그리고 물 흐르는 소리…
  거기 산 벗들의 쾌유를 비는 간절한 격려와 위로가 핸드폰에 메아리치니 병상에서도 내 마음은 늘 청산을 거닐었으며 서서히 가벼운 운동으로 회복해야 된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비가 온다는 예보 속에서도 선뜻 산행에 따라 나섰다.
 아직 휘청거리는 다리로 조심스럽게 후미를 걸어도 모든 것이 새롭고 재회의 기쁨에서 뭔가 흐뭇한 정감이 내 가슴에 벅차오른다.
 1953년5월29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그동안 오래 지켜오던 무거운 침묵을 깨고 "에베레스트의 최초 등정자는 내가 아니라 정상 입구에서 뒤쳐진 나를 30분이나 기다려준 텐징 노르가이 이었다. 진정한 영웅은 내가 아니라 미천하게 출발하여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선 그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영원한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  "나는 일곱 차례나 에베레스트의 등정을 꾀했지만 적을 물리치는 병사의 기력이 아니라 어머니의 무릎에 오르는 아이의 사랑을 가지고 찾았다"던 그의 한마디가 오늘따라 내 가슴을 파고든다.
 기껏해야 1천m 내외의 산을 오르내리며 자연을 제압이라도 한 듯 정복감에 자만했던 건강, 그 과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일깨우는 순간이기도 하다.
 용화산(龍華山:878m), 북으로 화천군 하남면과 남으로 춘성군 사북면의 경계를 동서로 잇는 길고 긴 능선,
 고성리에서 새남바위 골 옛 작전도로를 따라 짙은 녹음을 헤쳐 오르니 큰 고개  너머로 펼쳐지는 눈부신 암 능이 서울 근교에서 자주 보던 친근한 모습이다.
 화천 군청 홈페이지에 의하면 용화산이란 지네와 뱀이 서로 싸워 이긴 쪽이 하늘로 올라 용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이름 했다는데, 이 산엔 산삼이 많아 처서가 되면 심마니들이 전국에서 몰려든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만장봉, 하늘 벽, 아들 비는 바위 등 기암괴석이 즐비한 능선은 독이 올라 꿈틀거리는 지네의 등위를 걷는 긴장이 감돌아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지네가 용이 되어 용화 산이란 했던들 이 지방에 전해오는 소박한 전설을 내가  부인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용화(龍華)란 불가에서 용화수(龍華樹)를 뜻하는 말로 석존 입멸 (釋尊八滅) 후 56억 7천만년에 미륵보살이 나타나 이 나무 아래서 설법을 하리라는 불교의 심오한 진리와 이 산자락에 남아있는 옛 가람 터와 관계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저 바위너설에 뿌리 내린 노송들의 자태가 백 가지 보물을 토해내는 용의 모습이라는 용화수인가 싶기도 하다.
 육중한 정상비가 서 있는 정수리에서 드디어 사방팔방을 둘러본다.
 80mm 의 폭우가 내리리라 던 예보와는 달리 비가 내릴 것 같지 않는데 하늘에 잿빛 구름이 끼어 노 쪽으로 백암산(1.179m), 새 노 쪽으로 백석산 (1,142m), 하니 노 쪽으로 대성산(1,174m)이 불과하면 30Km 반경 안에 들어 있는데도 보이지 않아 지도상의 위치만 확인할 따름이다.
 소양호, 춘천호, 의암호, 파라호에 둘러싸인 용화 산의 공간은 흡사 하나의 섬이며 나는 지금 산 위에 올라있는 게 아니라 무인도 위에 붕 떠있는 듯 한 황홀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서 북녘으로 불과 7Km, 1938년 일제가 대륙 침략을 구실로 만들었다는 수력 발전소 인공 호수에서 6.25동란 때 중공군 6만 2천여 명을 생포 또는 사살했다 하여 당시 이 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 일렀다는데, 아군 피해도 300여 명이었다고 전사는 기록하고 있다.
  파라 호 북녘으로 솟아오른 일 산(日山:해산:1.199m) 너머 지금 평화의 댐이 건설된 자리,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이끼긴 돌무더기 속에서 당시 초급 장교였던 한 명희님이 녹 슨 철모 속에 끼인 유골을 발견하여 남겼던 시에 장 일남님이 곡을 붙여 민족의 가곡인 “비목”이 탄생했다는데  짙은 구름에 싸인 그곳에서 애달픈 음률이 들려오는듯하여 그들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한다.
 용화산의 능선은 길게 새 마로 내달리며 고탄 령, 사야 령, 배후 령 을 넘으면 오봉산에 이른다.
 오봉산(779m)은 나한, 관음, 문수, 보현, 비로 등 다섯 봉우리가 있어 불리는 이름이라지만 당초 이름은 청평산(淸平山 또는 慶雲山)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춘천부 관아 북쪽에 청평산이 있는데 이 산속에 절이 있고 절 곁에 고려 때 처사 이 자현( 李資玄)이 살던 곡란 암의 옛터가 있다.    이 자현은 왕비의 인척으로 젊은 나이에 혼인도 벼슬도 안 하고 여기 숨어 살며 도를 닦았다.  그가 죽자 스님이 부도를 세워 보관하였는데 지금도 산 남쪽에 남아 있다.”했는데, 그저 연줄만 댈 수 있다면 한 자리 욕심 내 보는 현 세태에 비추어 당시 왕비의 인척인 지체 높은 신분으로 도를 닦다 일생을 마친 그의 죽음 아니 그의 삶을 어찌 무심히 지나치랴.  그래서 고려조 인종도 그의 뛰어난 학문과 인품을 흠모하여 진락(眞樂)이란 시호를 내린바 있다.
 내려오는 길, 안부를 넘을 때 짙은 향이 풍긴다.
 모두들 더덕이다 하며 숲 속을 헤매는데 명색이 반세기 이상을 등산을 하고도 취나물 하나 구분 못하는 나는 어리둥절 하기만하다.
 일행 한 분은 우연히 산에 왔다가 산삼 다섯 뿌리를 발견하여 그 이름이 신문에까지 실렸다는데, 일생 허약하신 어머님 생전에 산 삼 한 뿌리만 공양했으면 하는 바람이 내게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되고 어머님의 허약함을 며느리인 아내가 이어 받은 셈이다.
 나는 더덕이 어떻게 생겼는가 일행에 물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한 뿌리를 캐어 내게 전해줬다. 
 나폴레옹의 생명을 건졌다는 네 잎 크로버보다 더 기름기 도는 짙푸른 네 잎사귀, 그 끝에 달린 야들한 여린 뿌리, 금방이라도 입에 넣고 싶은 충동을 접고 비닐봉지에 조심스럽게 싸 배낭 안에 넣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에게 내밀며 이거 야생 더덕인데 씻어서 당신 한 번 맛보구려!
 아내는 풀뿌리 하나쯤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내가 산삼으로 착각을 한 것일까?
 그러나 시들한 뿌리에서 풍기는 농향(濃香)이 신비스럽게도 내 취각을 자극한다.
2 Comments
바 위 2006.06.17 03:35  
  서린 響 깊은 역사 한참을 울어외도

남 모른 고적이야 자연은 이미 알아

내일도 바람불어 와 구름밀고 길떠나네 

정우동 2006.06.17 18:05  
  이종균 선생님의 산행기에는
지난 날의 역사가 있고, 종교가 있고
어버이께 효도하는 자식의 절절한 효성과
가족을 사랑하는 지아비의 애뜻한 마음과
음악을 사랑하는 예술인의 혼이 문채되어 일렁입니다.
우리가곡 비목을 부를때 선생님처럼 그런 사연을 안다면
이 노래가 주는 감동과 교훈은 참으로 크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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