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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Man'이 탄생시킨 희극과 비극

김형준 37 1013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Yes'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업무 관계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의 경우에는
잘못된 것도 그저 좋게 말하고 마는 경우가 흔이 있다.
별로 깊은 관계에 있지 않은데 굳이 싫은 말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허나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늘 'Yes Man'이 되면 안된다.
자녀가 잘못된 길을 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잘 했다', '잘 했다'라고만 하면 그 자녀는 좋은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마는 수가 있다.
부모가 그저 '오냐, 오냐!'했다고 그런 자녀가 감사할 까닭이 없다.
잘 못했을 때는 '잘 못했다',
잘 했을 때에는 '잘 했다'하고 말해 주고,
보다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마음과 정성을 보태주고 좋은 모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No!'하기를 두려워 하는 이는
그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상대방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히는 방법을 써서는 안 되겠다.

허나 'Yes!'해야 할 때는 'Yes!'라 하고,
'No!'해야 할 때는 'No!'라고 답해 주는 것이
비록 그 당시에는 쓴 약 처럼 맛이 없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다.

'Yes man'만을 친구로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물론 나의 경우에도 다른 이들이, 특히 내가 깊은 관심을
가진 이들이 'No!'했을 때 큰 상처를 입은 경우도 있었다.
때론 전혀 모르는 사람이거나, 거의 잘 모르는 사람이
스쳐 지나가면서 무심코 한 말에도 상처를 입은 적도 있었다.
허나 그러한 경험들이 나를 보다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고,
나에게 남을 더욱 더 배려하는 훈련을 하게 만들고 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마음에 부담을 주지만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볼 때
그들은 늘 'yes, yes!'하는 이들보다 보다 훌륭한 선생이 되어 주었다.
나를 돌아보고, 남을 살펴보고, 우리 모두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Yes!'라는 긍정적인 답을 들을 때는 기분이 좋은 것이 사실이지만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
자꾸 'Yes!'라는 답만 듣기를 원하다간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관심과 애정을 가진 자만이
사랑의 마음으로 'No!'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상대방의 처지도 모르면서, 전혀 가깝지도 않으면서,
사랑의 마음도 가지지 않았으면서 고의적으로
상처를 입히기 위해서 'No!'하는 자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허나 겉으론 친한 척하고, 사랑하는 척하고,
관심있는 척하면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사람에게
'잘 했어! 잘 했어!'하면서 환심만을 사려고
사탕발림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사람은
더욱 더 큰 벌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자야!
지혜를 얻으라.
지혜에게 상의하면 무엇이 옳은 길인지 알려 줄 것이다.
'Yes man'에게 무엇을 기대하려고 하는가.
37 Comments
김형준 2007.02.07 00:15  
  지혜는 구하는 자에게만 온다.
어느 누구도 완전한 사람은 없으며,
부족하기에 배움을 얻고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다.
지식이 많다고 반드시 지혜가 풍부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주위에서 매우 많이 볼 수 있다.
지식이 많고, 힘이 있고, 재물이 넉넉하다고 덕스러운 것도 아니다.

지혜는 때론 우리에게 쓴 맛을 가져다 준다.
허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준다.
우둔한 자는 왜 지혜가 아부 보다 더 큰 힘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김형준 2007.02.07 00:39  
  제 글을 늘 읽으시는 어느 선생님께,

늘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때론 창작으로, 때론 넋두리로, 때론 사실로
늘 선생님과 만남을 갖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제 글을 빠지지 않고 열심으로 읽으신다고 하셔서
사실은 제가 큰 위로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서 그렇게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만,

우리 둘이 만나서 대화를 한 적이 너무 오래 되어서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지난 번에 다른 분들 두 분과 더불어 여의도 어느 음악회에
갔다가 함께 대화를 나눈 것이 아마 가장 최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거의 매주 한 번씩은 만나는 인연입니다만
이젠 감정적인 면에서 과연 아주 친한 사이인지는 의문입니다.
허나 늘 제 마음 속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노래하시는 모습을 보고,
다른 이들과 정답게 담소 나누시는 모습을 보고,
열심히 노래하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 속으로 나마 기쁜 미소를 짓습니다.

인간의 인연이란 것은
강요한다고 해서,
원하다고 해서,
늘 끈끈한 것은 아니겠지요.
가깝고 싶은 이와는 멀리 있게 되고,
멀어지고 싶은 이와는 자꾸 더 가까이에 있게 되고 하는 것이
신비할 정도로 흥미로운 인간의 인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늘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가곡과 독일 가곡, 이태리 가곡 등
아름다운 음악을 매일 듣고 노래하시는 모습을 연상해 봅니다.
그럴 때면 제 마음엔 기쁨이 반가운 편지처럼 찾아듭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우리는 좋은 인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저의 섬세한 면 때문에
쉬이 상처 입는 모습을 보면서
때론 안타까우셨는지요.
그저 그것이 신께서 제게 주신 운명 내지는 선물이라 여기고
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 제게 예술적 감성이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것은
꼭 말로 'I love you!'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비록 스쳐지나가는 미소를 보내주는 것도,
따스한 악수를 나누는 것도,
옷깃만 스쳐가도 거기에 사랑의 감정이 묻어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삶에 늘 기쁨과 믿음과 사랑이 넘쳐나길 기원드립니다.
효자이시고 늘 친구분들과 잘 지내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또한 때론 장난꾸러기 같은 님의 모습을 보며
늙은 분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늘 동심을 유지하고 사는 아름다운 청년을 느낍니다.

건강하시고 또 우리 만날 땐 인사하고 미소 지으며 반기십시다.
혹시 그 때 이 글을 이미 읽으셨으면 글 이야기도 하면서요.

이 글이 바로 당신에게 드리는 나의 편지인 것을 아시지요? (^_^)
김형준 2007.02.07 01:40  
  내가 아는 이 중에는 처세술에 너무나도 능한 분이 있다.
힘이 있는 곳에 늘 가있는 분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헌데 나는 그분 곁에 가까이 오랫동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처세술에 익숙하지가 않다.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다.
정말 충실한 알곡처럼 숙성이 되어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가슴에 품을 수 있을 때까지

진심이란 무엇인가.
술수란 무엇인가.
속임수란 무엇인가.
아부는 무엇인가.
좋은 게 좋다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인가.

아직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숙제가 내겐 많이 남아 있다.
김형준 2007.02.07 09:39  
  Yes man이 성공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일단 듣기 좋은 말이 입에는 달기 때문이다.
누가 달콤한 말을 하는데 싫어 하겠는가.

'당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여,
예뻐, 잘 생겼어.
당신 능력 있어.
당신이 빠지면 우리 모임은 해체될 거야.
당신은 뭐든지 참 잘 해...'

잘 못한 것이나 부족한 것은 가능하면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yes man들이 자신이 속한 모임이나 단체에서
성공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보면 yes man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yes man과 아부맨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부도 능력일까. 카멜레온의 변색도 큰 무기일까.
아부를 정말 잘 하는 사람을 보면
겉으로 표시나지 않게 듣는 상대방이 역겨움을 느끼지 않게
너무나도 기술적으로 부드럽게 잘 하는 것을 본다.

부드러움과 긍정성,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
이런 것들이 yes man을 칭찬할 때 나열하는 특징들이다.

허나 yes man이 득실거리고 늘 득세를 하는 경우
충신과 같은 존재들은 떠나거나 숨어 버릴 것이다.
아무리 진심으로 섬기고 사랑해서 이야기를 해봤자
'쓴 이야기'는 뒤로 감추어 지고 '단 이야기'만
귀에 쏙쏙 박히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른 말'해야지 하고 계속 충언하였다간
혼쭐이 나거나 미움을 사기가 딱 쉽상이다.

유비라면 또 모를까.

지혜가 사방 코너에서 자녀들을 부르고 있다.

'나의 말을 들어라,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사람은 때론 대단치 않은 존재이면서
원래 자신의 무게와 크기에 비해
자신을 훨씬 부풀려 생각할 때가 있다.
참, 처량한 노릇이다.

풍선 속에 들어 있는 헛 바람들은 이제 빼라.
그리고 직시해 보라.
때론 한 겨울에도 냉수 마찰할 용기를 가지고.
김형준 2007.02.07 10:36  
  원리 원칙만을 따지는 사람도 매우 피곤하다.
허나 자고 깨면 아부만 하는 버터같은 이도 정말 위험 인물이다.

어떤 사람은 그저 누구를 만나든지 제 편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다.
그것도 참 꼴불견이다.
좀 자연스럽게 해도 될 것 같은데.

줏대가 너무 없는 사람도 보기가 딱하다.
무골호인도 좋을 땐 좋지만 결정의 순간이 올 땐 피곤할 수도 있다.

균형 잡힌 삶과 행동 철학이 늘 요구되지만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 철학이 원칙이 늘 통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딸랑맨'들은 누구의 줄에 서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딸랑 딸랑' 종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고양이 꼬리에 누가 종을 달았을까.
경고를 해주는 그 맑은 소리가 나는....
하모니 2007.02.07 11:06  
  공감하는글 잘 읽었습니다.
관심이 있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날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방법에 있어서 매끄럽지 못한 탓인지 깊이 사유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때론 자책도 해봅니다.
거절당하는것이 때론 친구가 될 수 있고 성장의 촉진제가 되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안고 살아가는것 같아요.
김형준 2007.02.07 21:44  
  하모니님,
저도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Yes', 'No'를 정확하게 말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그 사람 마음도 아프고, 제 마음도 아플 때가
자주 있는 것 같습니다.
허나 상대방을 진정으로 아낀다면
가능하면 부드러운 방법으로라도 올바른 충언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건설적인 비판과 파괴적인 비판에는 분명이 차이가 있습니다.
비판과 충언에도 또한 차이가 있다고 믿습니다.

무엇이 진정 좋은 것일까요?
두고 두고 생각을 해 보아야 할 이슈인 것 같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도움이 될 마음으로 충언을 하는 것은
아마 시간이 지나가면 상대방이 감사할 것이고,
독을 심는 마음으로,
괴롭힐 의도로 비판을 하는 것은
상대방이 싫어하고 미워하게 될 것 같습니다.
김형준 2007.02.08 10:49  
  좋은 리더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말을 해야 할 땐 하고, 하지 않아야 할 땐 자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좋은 리더가 될 것이다.
말을 해야 할 땐 남 눈치 보느라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푼수같이 자꾸 떠들어대는 사람은
절대로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

또한 좋은 리더는 구성원들의 상황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 있는지도 전혀 모르면서
강제적으로 '나를 따르라!'라고 한다고 해서 과연 일이 진행이 되겠는가.

그리고 좋은 리더는 솔선수범형이다.
자신은 안하면서 남에게만 자꾸 하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궃은 일 마다 않고 하는 리더를 보면
말을 안 해도 따라서 하게 된다.

좋은 리더는 편가르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름까지 일일이 거명해서
'너희 몇 명은 참 잘 해!'하는 경우에
그 말 뒤에 '나머지 사람은 별로야!'하는
듣기에, 해석하기에 따라서 매우 불쾌한
복선을 깔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물론 그런 의도를 가지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허나 칭찬을 하거나, 꾸중을 할 때에는
전체를 잘 고려해서 상처를 입는 사람이 가능하면
적을 수 있게 잘 배려하고 처신하는 것이 좋은 리더의 길이다.

자신은 잘 할 줄도 모르면서
누군 잘 하고, 누군 잘 못해 하고
쓸데없는 잔소리만 늘어놓으면
과연 몇 명이나 그런 사람을 따르겠는가.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깊은 수양을 하고 다른 이들을 이끌려고 하는 것이 좋다.

내가 뭘 좀 아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자꾸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절대로 좋은 리더의 행동이 아니다.

전체를 보고, 큰 그림을 생각하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모든 것을 가능하며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진행하는 것이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있어서의 핵심적인 고려 사항이다.
김형준 2007.02.09 01:02  
  내가 아는 'Yes man'은 아직도 활동한다.
매우 정정하게
대단히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Yes man'이라고 다 똑같은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동일하게 늘 'Yes'만을 말하지 않는다.
긍정과 부정을 적절하게 섞는데 동물적인 본능을 가진 자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예측하기가 그다지 쉽지 않다.
늘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행동패턴을 살펴 보아야 한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고,
용서를 하는 자가 덕이 있는 자이지만,
어떻게 늘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그것도 그저 'yes man'이 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이들의 심정이라고 치부하고 말아야 하나.

어려운 일이다.
김형준 2007.02.09 01:06  
  대부분의 인간은 주고 받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관심을 듬뿍 쏟아 부었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과연 얼마나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낼 수 있을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웃어 주면, 다시 웃음이 되돌아 오는 것을 기대한다.
웃어 주니까, 뺨을 때리자고 달려들면
누가 다시 웃어 줄까.

부탁을 들어주었을 때,
잘못된 행동을 눈 감아 주었을 때
보다 나은 자세로 나아올 때에
사람들은 다시 유연한 태도로 상대방을 대해준다.
아무리 잘 대해 주어도
일방적으로 그러한 관계를 계속해서 만들어 주길 원하면
인내심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에는 지치게 마련이다.
김형준 2007.02.09 13:41  
  리더에게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불도우저식의 리더도 있고, 화합형 리더도 있다,
또한 독재자 스타일의 리더도 있다.
윗 사람에겐 '딸랑딸랑' 너무도 방울을 잘 흔들고,
애교를 잘 떨고, 아랫 사람에겐 무례하고, 함부로인
그런 사람들도 있다.

일을 잘 하고 못 하고 보다
인간적인가, 덕스러운 가에 따라
존경을 받기도 하고, 경멸과 욕지꺼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강요하는 스타일의 리더는 빵점이 아니라 마이너스이다.
자신은 똑바로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으면서
다른 이들에게 자꾸 힘든 것을 강요하는 그런 사람이
앞에 나와서 자꾸 입을 벌리면
참기도 힘들고, 수긍하기도 힘들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해서
남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입을 열기만 하면 상스러운 소리를 하고,
남을 상처 입히기만 하는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 사람은 남의 앞에 서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한 자신의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전체 모임이 이상해지면 곤란할 것이 아닌가.
그런 유치한 개그식의 코멘트들은 그저
술좌석에서 아주 가까운 친구 몇 명이랑 있을 때나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형준 2007.02.09 13:46  
  '척하는'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아예 잘 난척 하고, 가진 척하는 그런 사람이 오히려 낳다.
겸손한 척, 사랑하는 척, 친구인 척 하다가
위기의 순간이 닥쳐오면 돌변하고 마는 그런 사람을 조심하라.

본인이 그다지 별 볼일이 없다는 것을
솔직히 각성하는 이는 겸손한 자이고 존경을 받을 자이다.
뭘 조금 안다고, 뭔가 나서서 일을 한답시고
'나 잘 난 것' 좀 봐주고, 인정해 달라는 투로
자꾸 다른 이들에게 쓸데 없는 주문을 하거나,
이리 해라, 저리 해라 하고 거의 명령 수준에 가까운 잔소리를 하는 이는
어느 순간에 가면 쓰고 있던 두터운 가면이 벗겨져
낭패를 당하게 마련이다.

가면을 쓰려면 정교하고 벗겨 지지 않는 것을 쓰라.
쉬이 벗겨져 창피를 당하는 수모를 겪지 말고.

'빈 그릇이 요란하다' 속담의 의미를 깊이 새겨 보라.
남들 앞에서 인도하는 자들은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모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김형준 2007.02.09 13:50  
  어느 사람의 집을 방문하는데 있어서
다른 이를 배려해서 함께 간 일이 있다.
헌데 다음에 그 사람 집을 가는데
배려를 한 이가 무시를 당했다.
자기를 신경 써서 함께 가자고 했던 이는
쏙 빼 버리고, 다른 이와 함께 가버렸다.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그리곤 다음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 달라고 '후안무치'격으로 부탁을 해 온다.
안 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냥 참고 해 주었다.
'아니, 같이 데리고 간 사람에게 부탁하지 그래요?'
하고 외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단다.

그렇게 남에 대해 무신경한 이는
또 그런 사고를 치게 되고
다시 다른 이들의 마음을 마구 상하게 하기 쉽상이다.
물론 그러다간 자신의 마음도 동반하여 다치기 마련이다.
그것이 인생사의 자연스런 흐름이니까.

남이 자신을 신경 써주면
그 사람에게 더욱 더 배려를 하려고 노력하라.
그리하면 진실된 좋은 관계가 잘 지속되리라.
껍데기 뿐이 아닌 알맹이가 있는 의미있는 관계가 말이다.
김형준 2007.02.10 03:54  
  내가 아는 여성 중에 매우 긍정적 성격을 가진 이가 있다.
아무리 옆에서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해도,
가능하면 좋은 면만을 볼려고 한다.
'누구에게나 나쁜 면은 있잖아요'하면서
잘못을 한 이를 감싸안으려 한다.
매우 좋은 성격을 가진 이라고 판단이 된다.
또한 그런 사람이 중재 역할을 해야 어떤 모임이든지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다.
허나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도 필요하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yes (wo)man)'이
되어 다른 이들의 눈치만 보면서 '좋은 게 좋은 거지'하면
과연 그 조직이 또는 모임이 보다 발전적이 될 수 있을까.
약간의 아픔은 오히려 보다 숙성한 조직체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속으로만 곪아 가다가 제 때에 치료를 하지 못하면
아예 완전히 망가져서 더 이상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불행한 상황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 그 모임은 완전히 해체, 재결합, 또는
새로운 모양의 모임으로 거듭 나거나 완전히 뭉개져버릴 수 있다.
김형준 2007.02.10 12:54  
  희극을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은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늘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이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늘 어두움 속에 있는 자는
아무리 좋은 기회가 천사처럼 친근하게 다가와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다 놓치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이 되라, 지혜를 구하여 얻으라.
지혜있는 자는 어려운 상황이 다가 온다 해도
얼굴에 잔뜩 근심의 기운을 모으지 않는다.
하나 하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조용히 사색하며 기도하고 실천할 것이다.
김형준 2007.02.10 13:03  
  보다 근본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르네상스맨이 되도록 세상은 성공하고 싶은 자에게 요구할 것이다.
경제를 알고, 정치를 알고,
문학을 알고, 예술을 알고, 춤을 알고, 노래를 알고.

과거 어느 때보다도 르네상스맨이 되기 쉬운 시대이다.
허나 마음이 없고, 계획이 없는 이는 절대로 르네상스맨이 될 수 없다.
비록 재능들이 다양하게 숨겨져 있다 할지라도.
시도하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나아지고 보다 더 나아지고....
이러한 순환과 악순환을 계속해서 겪어 나아가다 보면
생각과 삶과 행동이 모두 다 더욱 더 유연하게 되어
나이가 들어도 생각은 늘 자유롭게 되어
보다 멋진 아이디어들이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게 될 것이다.

너무 한 쪽으로만 사고가 치우치다보면
경직하게 되어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완고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유연함을 기르고 싶으면
열린 사고를 하고, 보다 다양한 의견을
책, 사람, 자연.... 이 모든 것들 속에서 구해 보라.
김형준 2007.02.10 13:24  
  어느 모임이나 단체이든지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지혜로운 전략가가 필요하다.
그저 한, 두 사람이면 충분하다.
너무 많은 경우에 배가 산 위로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그러한 전략가가 시간과 마음의 봉사를 해주는
단체는 복이 많은 곳이다.

무엇을 하든지 먼저 비전과 꿈을 제시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물론 그런 리더에게도 자문을
현명하게 해 줄 수 있는 참모들이 필요하다.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 주는 참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은 리더의 필수적인 사항이다.
아무리 좋은 조언을 해도 '마이동풍'이 되고
오히려 화를 입을 것 같으면 누가 조언을 하려고 할 것인가.

비전이 생겼으면 그러한 비전을 이룩하기 위해서
어떤 길을 가야하는 가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통해서
다양한 아이디어 산책에 들어가야 하고,
그중 실천 가능한 좋은 아이디어를 선택하는 것이 요구된다.

전략가가 없는 모임은
몸만 비대하고, 두되는 거의 텅비어 있는 사람과 유사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속은 단단하거나 풍성해지지 않고
겉, 즉 껍데기만 요란하고, 언제든지 부서질 위험이 처해 있다.
김형준 2007.02.10 13:27  
  아, 슬픔의 날이여!
리더도 없고, 정의도 실현되지 않고,
그저 편법만 설쳐대는 사회 속에서 사는 이들이여!
어서 정신을 차리라.
깨달으라. 속이 다 썩어들어가 폭삭 꼬꾸라지기 전에.
속이 건강해야 한다.
맑아야 한다.
아픔이 있더라도 곪은 것은 도려내거나 약을 발라 치유해야 한다.

그저 막연히 무언가가 일어나겠지 하고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간
어느 순간에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오석연 2007.02.10 17:38  
  김박사님 ! 저에 대한 코멘트 잘읽고 감격적이었오!
 더욱이 그앞에 "YES MAN"얘기 전적으로 동감하며
나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항상 주장하는바와 너무나도 일치한 말씀...
가슴에 시원한 바람 휙 지나가는 느낌을 가졌오 ..

 넘넘 순수하여 이 거친 세파에 행여 상처 입지나 않을까
노상 맘 조리게 했던 당신!
그러면서도 불의를 보면  인내심과 씨름하며 고민하던 당신!
 내 막내 동생같은 곰상함과 붙임성으로 나에게 어깨를 들이밀며 앵기던 당신!....

늦게나마 젊은날 즐겨불렀던 가곡에의 향수에젖어 발길을 옮겼던 자리에서
당신과 내 인연은 시작 됐었는데...
근데 어느날 일진광풍이 당신을 내곁에서 밀어내 소원한 길을 좀 걸었지요..

그래도 난 당신의 순수함을 알기에 멀어져가는 당신을
그냥 보낼수 없었다오 잠시만 그 바람 피하면... 조금만 인내심을 가진다면
다시 제 자리에 오시리라 굳게 믿고 당신 옷자락을 잡았읍니다

그간 가까이서 당신을 보며 뱅뱅 주위를 돌다가 서다가.. 또 돌다가..이러기를 몇번이나 거듭했는지....이젠 당신을 .. 참 당신을 알게 되었고 ...
다시 내 막내동생의 언저리에 와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다시 새롭게 도약 하려는 당신의 굳은 의지를 감지하면서
또 환한 미소를 머금고 돌아온 소년같은 당신의 순수함에
힘찬 격려의 박수와 따뜻한 포옹을 보냅니다 .....

어느분 말씀
"물감을 허공에 칠한들 허공이 물들것이며 칼로 물을 끊은들
물이 끊어지랴 ..사람의 마음이 물과 허공 같다면 어떤 물건을 대한들
좋고 싫음이 있겠는가?.."      강건 하십시오....   
김형준 2007.02.10 23:14  
  오선생님,
드디어 읽으셨군요. 이곳에서 오선생님의 글을 읽을 날이
도래하리라곤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허나 쓰신 글을 읽고
매우 기뻤습니다. 오선생님의 열정적이며 진실된 성품이
글 속에 그대로 배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늘 오선생님의 삶에 전능하신 분의 사랑과 축복이 넘쳐나시길
소망합니다.

아픔을 선사하심과 동시에 보다 더 큰 선물을 주시는 것이
제가 믿는 신의 섭리입니다.
비록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분에게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세상에 의존하는 것을 덜 하고,
그분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말씀을 따르는 법을
제게 몸소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만이 있으며
가장 깊은 슬픔 가운데에서도
거듭 거듭 감사하는 마음을 그분의 제단에 바칩니다.

오선생님의 삶에도
그렇게 그분의 뜻과 사랑이 채워지시길 희망합니다.

내일이 되면 또 우리는 한 번의 만남을 갖게 됩니다.
비록 두 시간이라는 짧은 순간이지만
유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오선생님께서 슈만의 '시인의 사랑(Dicterliebe)'의
곡들을 열심히 듣고 배우고 노래하고 계시는 사실을
참 기쁘게 생각합니다.
많은 발전이 있으시길 빕니다.
김형준 2007.02.11 00:10  
  오늘은 참 의미있는 날이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느 분의 댁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해보지 못했던 그런 감정이며 경험이었다.

시각장애인 한 분을 포함한 70대 3분,
60대 1분, 40대 3분 이렇게 일곱명이 모여
많은 것을 했다. 노래도 하고 대화도 하고,
맛 있는 음식도 나누어 먹고.....

이젠 어디가서도 노래를 인도하고 부르는 것이
내게 시간처럼 어김없이 찾아 온다.
감사한 일이다.
이전엔 노래를 하는 것이 늘 고역이었는데 말이다.


Wintersturme wichen dem wonnenmond
꽤 긴 제목의 노래이다.
Wagner의 서사시적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두 번째 작품인 Walkure에 나오는 테너 아리아다.
이것을 이번 주에 어디에 가서 불렀다.
높은 note들은 없는 테너 곡이다.
G가 가장 높으니 어찌 보면 바리톤곡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허나 독일어 발음을 이 곡의 그런대로 꽤 까다로운
리듬에 맞추려하니 짧은 시간을 연습해서
부르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많이 들어보고
발음도 붙여보려고 노력한 뒤에 가서 부른 것이다.
잘 부르지 못했다.
허나 이젠 바그너 오페라라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거대한 성벽이 서서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 가시화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나의 히말라야는 조금씩 정복되어 가고 있다.
김형준 2007.02.12 01:40  
  밝은 빛이 내 몸과 마음 속으로 들어 오고 있다.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지고, 눈이 열리고 있다.
지혜의 샘이 내 영혼 속에서 예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사랑의 힘이 이리도 큰 것일까.
읽고 또 읽고 또 다시 읽어도 그 속에 깊음과 넓음이 있다.
지루하지 아니하고 늘 새로움이 있다.

밝은 빛과 더불어 우울하던 내 맘 속에
다시금 행복감과 기쁨이 솟구치기 시작하고 있다.
아, 그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의 요동침인가.
진정 감사할 일이다.
모든 것이 감사할 것 뿐이다.
김형준 2007.02.12 11:53  
  오늘도 지혜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해 본다.
약간은 거부 반응이 오고 있다.
무엇이든 그렇다.
한꺼번에 새로운 것을 너무 많이 하려다 보면
체증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
어떤 이들은 그 순간에 포기를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좀 쉬다가 계속한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은 그저 참고 그 언덕을 넘어간다.

나는 마지막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미 다른 분야들에서 경험을 해 보았던 느낌들이다.
부담이 될 때 그저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큰 기쁨과 맛을 느낄 때까지
매진 또 매진 해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작은 산 넘는 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되어 큰 산을 넘을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큰 산 넘으려 하다가는 큰 코 깨지고 굴러떨어진다.
김형준 2007.02.12 13:02  
  또 이상한 사람이 리더랍시고 말 같지도 않을 소리를 할 것 같다.
참 웃기는 세상이다.
누가 그런 사람을 리더로 만들어 놨을까.
아무리 헛소리를 한다 한 들 웃기지를 않고
기분만 자꾸 나빠지게 한다.
아무런 매너도, 어떤 기본 교양미도 갖추지를 않은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왜 이 모임이 잘 안 될까"하고
의아해 한다면 그건 참 멍청한 사람들의 우스운 집합체임이 분명하다.

아니, 왜 잘 안 된다니!

그런 멍청한 소리가 어디에 있나.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자꾸 입히는 사람을
앞에 내세워 놓고 자꾸 헛소리를 하게 하니
어찌 그런 모임이 잘 될 수가 있는가 말이다.

오늘도 나는 '피식'하고 헛웃음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다.

'비꼬듯이 웃지 말아요!'

하고 그 광대와 같은 리더는 또 한 마디 할 것이다.
자기가 얼마나 사람들의 기분을 엉망으로 만드는지는
전혀 깨닫지도 못하고 말이다.

참 웃기는 세상이다!
김형준 2007.02.12 15:57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가능하면 그들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일부만 즐거우면 뭘하랴.
많은 이들이 불만을 안고 돌아간다면.
그것이 한 번, 두 번 자꾸 쌓이다 보면
가고 싶지 않게 마련이다.
그곳 말고도 다른 유익한 프로그램들이
세상에는 잔득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짤 때 여러 사람과 상의를 해 보아야 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을 즐겁게 만들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아이디어가 없으면
신선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이들에게 자문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김형준 2007.02.12 16:24  
  때로 사람들이 우리 가곡을 잘 부르고 싶다고 물어 온다.
짧은 시간에 그 대답을 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잘 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렇게 묻는 분들의 대부분은 가능하면 노력을 적게 들이고
결과를 크게 가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즐겁게 자주 부르세요!'

하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만일 그렇게 대답을 했는데도 또 다시 질문을 던져 오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관심이 많은 사람일 수 있다.
그때부터는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왜 노래를 잘 하고 싶은지, 지금까지 노래 연습을 해 왔는지,
과연 잘 하려고 시간과 에너지와 마음을 바칠 각오가 돼 있는지,
이런 여러 가지 사항들을 묻다 보면 어떤 대답을 해 주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된다.

노래는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나이에 상관이 없이,
목소리의 좋고 나쁨을 무시하고
다 늘 수가 있다. 현재 보다는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

마음이 문제이다.
공을 들여야 열매가 크고, 곡식이 익는 법이다.
김형준 2007.02.12 18:48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허나 같은 바위끼리면 때로는 부딪혀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누군가가 실력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늘 약코가 죽어서
살 필요는 없다. 때론 본인 실력이 월등한 것도 모르고
상대의 심리전에 눌려서 자신의 능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를 못 피고 살거나, 자신감을 상실해 버리는 경우를 왕왕 본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금 부족하면 뭐 어떤가.
실력이라는 것은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통상 노력을 더 하는 이는 실력이 늘고,
게을리 하는 자는 실력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자, 오늘도 한 번 강하게 부딪혀 보자.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깨지고 다시 강하게 만들어서 다시 또 부딪혀 보자.
그러면서 더욱 더 강한 힘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김형준 2007.02.14 03:17  
  깨달음은 그다지 쉽게 찾아 오지 않는다.
새벽의 광명은 매일 어김 없이 오지만
안개 속에 깊이 감추어진 진리는 마음에 쉬이 오지 않는다.

무식한 자는 용감하다. 그것은 사실이다.
많고 깊은 지식을 가진 자는 쉬이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보다 더 큰 지식의 내공을 쌓은 자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조금씩 깨달음의 탑을 쌓아가야 겠다.
얼마나 균형잡힌 멋진 탑을 쌓을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깨끗한 마음으로 열정을 쏟아 부어 돌을 하나씩 올려야 겠다.
저녁노을 2007.02.14 07:06  
  'Nein sagen'의 중요함을 깨닫고 갑니다.
김형준 2007.02.14 23:25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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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

지혜가 내게로 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지혜와 동행하고,
지혜와 사랑을 나누고,
지혜와 모든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지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길 원한다.

지혜여, 오시라!
김형준 2007.02.14 23:33  
  마음과 몸과 영혼을 매일 단련하길 바라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보다 나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고 있다.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서 수양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매 순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기적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가 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도 순수해질 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예정된 길이 과연 있었단 말인가.
무엇이 그 끝에 있을까.
부지런히 걸어가자. 전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김형준 2007.02.15 00:05  
  아무 것도 매우 단순한 것은 없다.
또한 어떤 것도 너무나 복잡한 것도 없다.

천천히 살펴 보고 문제의 해결을 하려고 노력해 보라.
의외로 여러 가지 문들이 그대를 위해서 열릴 가능성이 있다.
너무 모든 것을 가벼이 보고 빨리 처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계들을 마음 속에 먼저 그려 보라.
어떤 문제가 생길지에 대해서도 차분히 생각해보라.
그리고 하나씩 신중하게 접근해 가라.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김형준 2007.02.15 01:58  
  얼마 안 있어 어느 분을 위해 노래를 하기로 했다.
그분이 작곡한 노래들을 그분이 정규적으로 참석하는
모임에서 말이다. 그분을 위해서 잘 부르고 싶다.
헌데 문제는 그분의 노래를 정말 잘 표현하면
그 모임에 참석한 다른 분들의 마음에 '질투의 불'을
당기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허나 어쩌랴 이미 약속한 일인 걸.

열심히 가사를 외우고는 있는데
해야 할 일들이 워낙 많아서
집중해서 그 노래들 연습을 할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김형준 2007.02.15 02:08  
  무언가 오래 남을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는
끈질긴 근성이 있어야 한다.
물론 고집도 있어야 한다.
자기 나름대로의 예술 철학도 존재해야 하고,
우주관과 세계관 인생관, 자연관도 뚜렷이 서 있어야 한다.
대충 대충 하는 것은 절대로 깊이가 있을 수가 없다.

음악도, 미술도, 문학도, 건축도 다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자신의 예술적 분신을,
그것도 보다 가치 있는 열매를 창출해 내기 위해
이 늦은 밤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잠 못 이루며 창조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형준 2007.02.15 23:27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했다.
바그너가 지은 오페라 중에서
Die Meisterginger von nurnberg(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
나오는 테너 아리아인
Morgenlich leuchtend im rosigen Schein(아침은 장미빛으로 빛나고)
를 불렀다.
그다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부르지를 못했다.
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어려운 곡, 특히 바그너의 곡에
도전을 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
다시 바그너에 도전을 할 것이다.
다음에는 연습을 좀 더 충분히 해서 제대로 부르고 싶다.

어느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교수님보다도 더 잘 부르는 것 같아요.'하고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 앞에서 나에 대해 코멘트하는 바람에
내가 크게 당황하였다.
아마 교수님도 당황하셨나 보다.
'나보다 더 잘 하면 내가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지요.'라고
한 마디 하셨다.
나도 급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하고 그 이상한 사람에게 침을 놓았다.
매우 어리석은 말을 그 사람은 자신이 한 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다음 부터 더욱 더 조심해야 겠다.
김형준 2007.02.16 01:12  
  좋은 감정을 강하게 가졌던 사람을 이젠 만나도
그저 차분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은 심정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것이 오히려 나의 공부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음 어느 한 구석에서는 아직도 그 사람과
가까이, 아주 가까이 있기를 원하고 있지만
그저 겨울이 가면, 봄 오고, 봄 가면, 여름 오듯
자연스레 관계들이 지나가게 하고 싶다.
어찌 내 마음대로만 될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이도 있고, 나를 좋아하는 이도 있고,
내가 싫어하는 이도 있고, 나를 싫어하는 이도 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인간의 세상이 아니던가.
어떻게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든단 말인가.
그런 것만 생각하다 보면 진짜 중요한 공부들을 할 수가 없다.
인격이 보다 성숙해 지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지나가는 인연이 자신의 차를 타러 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즐겁게, 행복하게 사시 길 맘 속으로 소망하였다.
잠시 였지만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음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김형준 2007.02.16 13:57  
  아픈 상처는 긁으려 들지 말자.
긁어 보았자 본전을 못 찾을 것이 분명하다.
아픈 기억이 되살아 날 때
그저 그 기억을 따스한 기운으로 보듬어 보자.
그럼 그 아픈 기억도 온기를 받아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랑의 체온은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연도 우리와 사랑의 기운을 늘 나누기 원한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없다.
관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자연의 원칙에서 너무 크게 위배되는 행동을 하면
온 우주에 자신의 뜻과 규칙을 설치해 놓으신
전능자에게 벌을 받게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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