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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차성우 2 1409
진주로 이사를 온 지 세 해째 되는 어느 휴일, 책장을 정리하다가 책갈피 속에서 빛바랜 편지 하나를 발견하였다.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기 3년 전에 보내신 편지였다. 내가 거창의 지산리 시골에 살고 있을 때 마산에 계시던 당신은 자식이 걱정스러워 안부와 훈계를 전하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받고 이저리 바쁘다는 핑계로 답장 쓰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었다.
“너이 네웨 잘 있느냐”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편지는 맞춤법이 잘 맞지는 않았으나 구구절절 자식 걱정하시는
안타까운 심정이 배어 있었다.

 내가 살던 지산리는 읍내까지 사십 리쯤 되는데, 읍내로 가는 길은 시멘트로 된 좁은 길이며 해발 5백 미터 정도의 산길을 넘는 곳이었으나 풍광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한해 전 우리집으로 오셔서 계시다가 이 길을 넘어 하늘로 가시고 나는 4년쯤 더 그곳에 살다가 진주로 이사를 왔었다.

 어머니의 편지를 발견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어우러지고, 겨울이면 눈이 무릎까지 쌓이던 그 산길을 넘어 다닌
기억이 새로워지며 지금이라도 어머니가 내 답장을 받으실 수만 있다면 편지를 써야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편지를 몇 번이고 읽었다.

아! 당신이 살아계실 때 답장을 쓰지 못한 이 한스러움,
파도 같이 밀려오는 서러움으로 나는 독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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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지 >

편지를 받고도
답장 쓸 생각을 아니하였습니다.

낙엽이 흩어지던 언덕을 돌아서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늦은 깨달음으로
이제야 편지 위에 젖어드는데
당신은 어느 하늘 언저리
흙으로 남아
가슴 아픈 편지를 받으오리까,

고향길 실개천엔 아직도
미나리가 돋아 오르고
돌아보면 부끄런 날
풀잎마다 맺어
떠나온 언덕에는 슬픔뿐인데
말 못할 가슴으로 편지를 써서도
뉘 있어 받으오리까.

편지를 받고도
이렇게 늦은 깨달음으로
답장을 쓰지 아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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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이에게 >

부칠 곳 없는 편지를 쓴다.
하늘 저편에서도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망설이면서,
풀잎에 맺힌 이슬을 담아 편지를 쓴다.

네가 바람을 잡으러 떠나던 날
따라갈 수도 없는 길 솔숲 사이로
햇살은 빛나고
저 멀리 하늘에 구름만 떠 돌 때
넌지시 일러 주던 말,

그리워 말아요!
세상은 그런 것, 안타까워 말아요!

산자락을 돌아가던 네 치마 깃으로
떨어지던 찔레꽃 꽃잎처럼
하염없이 비가 오는데
수많은 날이 지나는 동안
알알이 맺힌 아늑한 꿈속에서
네 마음속에도 비가 왔었던 것이냐,

향기롭던 눈동자를 그리워하여도
사랑은 내 가슴속에서만 남아
세상 어디에서도
네가 간 곳을 물을 길 없어
너는 저 찔레꽃 핀 언덕
풀잎 사이로 부는 바람이구나!

순아!
네가 있는 세상에서도
우체부가 있을지 망설이다가
보리밭 언덕에서 나 홀로 이렇게
편지를 쓴다.
2 Comments
해야로비 2011.09.10 14:19  
어머니도 순이도...
오늘 보낸 편지가 아닌...
진즉
차성우님의 마음의 편지를 읽고 있었을것입니다.
차성우 2011.09.11 21:17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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