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연주.감상후기, 등업요청, 질문, 제안, 유머, 창작 노랫말, 공연초대와 일상적 이야기 등 주제와 형식, 성격에 관계없이 쓸 수 있습니다.
단,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는 금지하며 무단 게재할 경우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회원문단은 자유게시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어느 연구 대상

이동균 8 1068
그분은 대구 박범철 가곡교실에서
가곡의 날 행사에 이수인 선생님을 초대했을 때
행사 후 2차 대접을 자청하여 준비하셨다.
번거럽게도 전통 우리 음식들과 청도 시골에서 직접 담은 막걸리를 공수하고
집에서 사모님을 대동 직접 준비한 음식으로 대접해야한다며
고집스레 준비함에 주변을 놀래게하더니
급기야 이수인선생님은 박사부님이 대작곡가로 생각하시는 분으로
자기에게는 증조 사부님정도 된다며 모두들 의자에 앉은 바닥에
완전 부복하여 큰절을 올려 주변을 황당하다못해, 숙연하게까지 한 분을 소개합니다.


어느 해 박사부님께 레슨을 받으러 효목동 연습실로 갔다.
웬 낮선 분이 레슨을 받고 있었다.
아니 근데 뭔 레슨을 애국가를 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기리 보전하세.
아니 근데 애국가에 음정이 맞지 않는다? 근데 박자까지 불안정하다.
이런 분을 레슨을 한단 말인가?
박사부님 뭐 좀 어떻게 되었나?
설마 박사부님께서 돈에 눈이 멀어,
레슨 할 만한 사람 안 해도 된 사람 구분 없이
레슨을 하시는 분은 아닌데 . . . ?
나도 문하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
캠코드 철가방을 들고 짜장면 배달 조바로 오해까지 받으면서
자존심 체면 무시 얼마나 연주회장을 누볐는가?
오직하면 세계적인 소프라노 홍혜경씨 연주회에
박사부님 제자정도로 생각하고 캠코드 들이댔다가
캠코드 압수까지 당했던 수모를 겪고, 겨우 문하에 들어왔는데,
이건 경우가 아니잖아?
그렇다고 노래라고 잘 하면 모르겠는데,
숫제말로 음정 박자 다 무시하고, 소리 하나는 더럽게 크다.
근데 노래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왕 왕 대는 소리로 크다.
그분이 가시고, 박사부님께 물었다. 어떤 분이냐고?
자기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무시할 수 없는 사람 소개라서 레슨을 한번 하긴 했는데,
다음부터 오겠냐며, 그냥 어려운 하루 보냈다는 표정이었다.
다음 주에 레슨을 갔다.
아니 그분이 또 와서 레슨을 하고 있다. 와! 미치겠다.
이번에는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그 선열들께서 독립운동에도 힘이 들었을 텐데,
이분을 통해서 너무 너무 힘드실 것 같아 정말 가슴 아프다.
박사부님 정녕 이분을 계속 레슨을 하실 것입니까?
두 번째 만남에서 정식으로 인사까지 해버렸다.
다음부터 보면 외면할 수도 없고, 이를 워쪄?
역시 내 레슨 시간 중에 살짝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된 것입니까?
박사부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오시는 것을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말씀이다. 근데 정도껏이라야지,
아니 근데 오늘은 내 레슨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왜 그러느냐니깐 박사부 문하생으로 들어왔으니까
저녁으로 신고하겠다고 하신단다. 산 넘어 산이다.
박사부님께서 저분을 레슨을 한다면,
이것은 베토벤이 산골에 아무 것도 모르는
그것도 음악성이 그시기한 아이를 레슨 하는 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가곡교실 회의할 내용이 있어서 간부 몇 명이 함께 자리했는데,
모두들 수근 수근 저 사람이 누구냐
어떻게 박선생인 저런 사람을 레슨을 할 수 있나,
소리는 참 크네, 음치잖아 등등 . . . 그러다가 함께 저녁 자리를 만들었다.
자기는 박선생님을 사부로 모시고 있고,
당신들은 내보다 먼저 배웠으니 사형이 된다.
사형으로서 예의를 깍듯이 차리겠다.
이야기 중 알게 된 사실이 더 흥미롭다.
대구에서는 경제계에서 알만 한 사람들은 모두 안다는
중견 기업가로 얼마 전 모범 납세자 상을 수상한 견실한 기업가이었다.
거기다가 서울의 S대 출신에다 어디가도 대접받을 사람이
뭐한다고 음치소리 까정 들어가면서 성악에 문을 두드렸는가 말이다.
그분의 대답이 또 걸작이다. 인생을 살면서 이룰 것은 다 이루어봤다.
그래서 평생의 숙제로 정말 불가능할 것 같은 것에 도전을 하고 싶고,
그래서 성악을 택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오페라하우스에서 독창회를 하고야 말 것이다.
라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이 야심찬 발표에 난 입에 넣었던 국과 밥을 파열음과 함께 쏟을 뻔했다.
오페라하우스 라구라 . . 그런 좀 그렇지 않느냐
오페라하우스의 설립목적과 위상이 있는데
아마추어는 좀처럼 심사에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라고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반론했는데,
그분 왈 ‘아니 내가 하겠다는데,
수준이 떨어지는 만큼 문화발전을 위한 기금을
충분히 내어 놓으면 되지 않는냐’는 것이다.
그거는 걱정 말고, 선생님은 나의 노래 업그래이드를 위해
노력만 해 주시면 된다는 해괴한 이론,
그것도 거침없는 이론으로 더 이상 반론의 여지가 없도록
단호한 결론을 내려버린다.
아하, 이일을 어쩌나?
은근히 박선생님이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레슨은 시작되었고,
세월은 나의 걱정과 박선생님의 한숨과 함께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이 흘러갔다.
한번은 공장의 신제품 개발과 관련하여
유럽 다니러 한 달 정도 해외 출장을 다니러 가신 적이 있었다.
하필 귀국 날이 레슨 날이었다.
오늘 오시면 다음 주부터 레슨을 하시면 되겠거니 하고
나 혼자 레슨을 하고 있는데, 보따리 보따리 챙겨,
연습실을 들어오시는 그분에게 박선생님과 나는 뒤로 넘어질 뻔 했다.
공항에서 집에 안 들어가고 지금 레슨실로 바로 오는 길이라는 것이다.
시차 적응은 그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와, 위대한 그분의 체력, 상상을 초월하는 열정, 아무도 못 말리는 의외성,
그래서 그날도 작년과 같은 ‘’일송정 푸른 솔‘은
불안한 음정, 박자와 함께 또 늙어 늙어 가야만 했다.
서서히 그분에 대한 야릇한 존경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번씩 사회 선배로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시사문제에 대한 빈틈없는 이론과 예리한 판단력
그리고 거침없이 토해내는 독설들, 이는 연예가의 신해철 저리가라이다.
술을 한잔하다가 자녀 교육문제에 대한 그분의 견해를 물은 적이 있다.
나는 하루 종일 고민하고 힘들여 한 이야기
정확히 30초 만에 절단 내어 버린다.
그리고 의의을 달고 되물으니까, 우째 그리 대가리가 나쁘냐는 것이다.
덧붙여 설명은 2분을 안 넘긴다.
좌우튼 시원시원한 것은 좋은데 아까 내보고 대가리가 나쁘다고?
그래도 내가 사형인데, 한번 토를 달았더니
“여기가 레슨실이가, 술집이가?”하는 호통과 함께
다시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래도 ’진짜 대가리가 나쁜 놈한테는 그런 소릴 하지 않지‘ 라는
위안과 함께 그날은 술로 그 다음날 고생 꽤나 했다.
2005년 12월 나의 평생의 소원이자, 모험인 독창회가 계획이 되고,
날짜가 착착 다가오고 있는데,
박선생님 왈 ’아베 마리아 세곡에 하프를 반주로 쓰면 기가 막히는데,
그게 빌리는데 비싸서 아이씨  . . .‘  하면서
은근히 혼자 말처럼 그분께 원조 청하셨는데,
그 걸 모르는 눈치 없는 그분이 아니셨다.
 ’얼마정도 하면 되는데요?‘ 그래서 평생에 그렇게 큰 부조를 처음으로 받았다.
황감하여, 감사 감사 연발했더니,
"감사하지 마시오. 박 선생님 얼굴 보고 했지 당신보고 한 게 아니니까
그리고 그 돈은 문화진흥기금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고마워 할 필요 없다."
는 것이다. 고마워하는 사람에게 그냥 그래 하면 어디 덧나? 꼭 그렇게 초를 쳐.
우째든동 우리 같은 소시민이야 그런 거금의 부조는
그것도 독창회를 위해 받고 나니,
갑자기 그분의 그렇게 불안정하던 음정이
내 귀에는 3CCD화면처럼 보정이 되어 정확한 음정으로 변환되어
들리는 것이 아닌가? 나도 인간성에 뭔 문제가 있는가?
그분도 우리 가곡교실에 입학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리면서 그분의 입담과 해박한 지식은
때론 기본이 약한 이론은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나약한 생각들에게는 힘을 실어 주면서,
술 한 잔에 침을 티기는 허점을 보이다가, 적을 만나면 여지없이 빛을 발휘했다,
문화진흥을 위한 그분의 알게 모르게 하는 투자는
술집에서 미희들에게 거드름 피면서 몇 십 만원 팁으로 픽픽 던지는
건방스럽고 무지한 졸부들과는 다른, 묘한 매력 있는 거드름을 보는 듯하여,
참 기분이 좋다. 그 뭐로, . .
그래도 날보고 대가리 나쁘다는 등 상처 주는 소리는 좀 안했으면 좋겠다.
알게 모르게 차츰 차츰 내가 보아도 그 분의 소리는
포지션이 위로 뜨면서 고함 소리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소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절대 술 잔 얻어먹었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발전된 것을 몇 가지 예를 들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이 분 보소!
한번은 범물동 소재 그 분의 아파트에서
발성에다가 노래를 시도 때도 없이 하다가 보니,
아파트 엘리베이터 벽에 [함께 사는 아파트 조용히 삽시다!] 라는
벽보가 붙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 놓는데,
박사부와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지면서,
뒤로 넘어져 졸도할 뻔하였다.
한참 웃다가 아파트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초짜 내 이론으로는
아마 소리가 주로 현관문을 통해서 외부로 전달이 될 터이니
집 구조상 현관에서 제일 안쪽 방에서 문을 닫고 노래하면
웬 만큼의 소리를 질러도 까딱없다는 조언을 했다. 
내 조언도 조언이라고 믿고,
현관에서 제일 먼 방에 방음까지 신경 쓴 방에서
2부 발성과 노래연습에 들어갔는데,
그 다음 주 다시 만나서 하시는 말씀 
‘이 선생, 니말 듣고, 마음 놓고 소리 지르다가 엘리베이터 문에 또 붙었잖아?
이번에서 [몇 층 남자 분, 제발 사람 좀 삽시다!]라고’
하이고, 어쩌나 또 한 번의 졸도 직전의 내장 꼬임. 이제는 방법이 없다.
무르팍 도사에게 가는 수밖에 . . .
"인자, 마 나도 모르니까 알아서 하소."
어째든동 많이 좋아진 소리에 이제는 음정만 좀 정확해 지면 좋겠는데,
그게 어디 금방 개선이 된다냐? 특히 반음은 쥐약이다.
그래도 이제는 하고 싶은 노래 욕심은 끝이 없다.
최근의 팔공산, 불타는 강대나무 등 난이도 A급 이상의 노래도 부딪히면서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그래도 그분은 답답한 게 없다.
빨리 개선이 되어버려 박사부님을 떠나는 것 보다
늙어 죽을 때 까지 함께 하기 위해서는 만만디 만만디가 낫단다.
이 무슨 해괴한 이론인가?
몇 일전 박주단발기인대회가
대구에서 생고기라면 전통 깊은 송악구이 에서 열렸다.
발기인 주동은 김아무개 대단히 성황을 이룰 것 같은 시작과
달리 그분과 김아무개, 나, 달랑 세 명이 방 하나 못 잡고,
시장바닥 같은 홀에서 한쪽 구석에 자리를 하고 술판이 시작되었다.
그분은 임플란트 공사로 술을 입에도 못 대니
신경 쓰지 말고 마시라는 선언과 함께
백세주로 조심 조심 시작은 되었는데, 어디 그게 되나?
시간이 흐르면서 술병은 탁자의 벽을 따라 담장을 치기 시작했고,
사건은 여기서 터지기 시작했다.
박가회 회원들 모이면 잘 나가다가 꼭 삼천포로,
발성과 노래 이야기로 흐른다.
그 시장바닥 같은 홀에서 김아무개 발성이 이렇게 하니까 잘 됩디다.
신동호씨 발성이 어떻고, 노래의 라인이 곱아야 노래가 제 맛이지요.
어떤 노래는 누가 잘 하는데 그 노래는 그 사람 영 아니야. . . 등등
임플란트 공사했다는 그분 좀 있으니까
술로 소독해야 한다면서  . . .  그게 술로 소독이 되는건지 . . .
서서히 취기가 오르는데, 주변 사람들 안중에 전혀 없다.
아 아 아 아 아  목젖을 내리고,
소리를 띄워서, 
옳지 옳지 맞장구치는 김아무개의 부추김에
서서히 주변 술꾼들의 시선집중,
웬 만큼의 술에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나는 안절부절 이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랴, 발성이론에 맞장구도 치랴,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이건 숫제말고 고문이다.
조금 있으니 드디어 옆자리에서 시비가 들어온다.
“아지매 여기 어디 성가대 왔소!”
아지매도 웃다가 주변의 눈치에 안절부절 이다.
할 수 없이 자제시킨다고,
Come down, Come down! 영어를 못 알아듣는지 도통, 자제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니 술집에서 내 돈 내고, 같이 좀 떠드는데 언놈이 뭐라 그래?”
분위기가 묘해지면서 역공으로 나갈 기세다.
그래서 사정사정해서 자리를 옮긴다는 게 심플노래방,
발성과 노래, 목구녕에 맺힌 한을 풀고,
그 날은 그렇게 끝났다.
고문님 술집에서 그렇게 고문시키지 말고
Come down, Come down!
좌우튼 그 분의 발전은 어디까지가 정점인지 연구 대상이다.
8 Comments
산처녀 2008.03.04 19:48  
한마디로 대단한 분이군요
살면서 어느 한가지에 그리 미처보면  그 삶은 정말
살아볼만한 삶이 아닐까 합니다
모쪼록 그분의 발성이 제대로 표현되어 오페라하우스에 설 날을 기다립니다
헌데 그분 연구대상의 그분 존함은 어찌 되시는지요?
디게 궁금 합니다.
별헤아림 2008.03.04 20:08  
이동균 선생님

웃음이 묻어나는
정말 재미있게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정용철 사장님(?). 이동균 선생님. 박범철 사부님.
가곡 속에서 폭넓은 우정 키우며 사시는 모습 부럽기도 하지만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열무꽃 2008.03.05 06:15  
못말리는 대구의 이동균샘 성악후배,
알만 합니다.
아파트에 방음장치하면 될낀데...
하프반주자는 혹시 김00?
언젠가 저도 만나게 되겠지요?
鄭宇東 2008.03.05 09:37  
그날 이 사건의 현장에서 정용철 사장님의 소개받는 자리에서
이름을 듣자 왠지 친근감부터 먼저 들었는데
떠나가는 배의 시인 박용철님의 이름때문이었을 것이 확실하고
그래서 나는 정사장을 박시인의 호 용아(龍兒)로 기억해두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내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님에게 
보이고 싶어 꽃이 되고
가 닿고 싶어 향기가 되고
기대고 싶어 잎이 되고
같이 걷고 싶어 바람이 되고
안기고 싶어 나비가 되고
노래하고파 종달새가 되고
(나의 사랑으로) 적시고 싶어 이슬비가 되는
3월의 노래를 읊은
월간지 좋은 생각의 발행인 정용철시인의 인상까지 겹쳐 있습니다.
고광덕 2008.03.05 17:08  
단편 소설 잘 읽었습니다.
아주 구수합니다. 이동균님의 글재주 또한 뛰어납니다.
어지간한 문장가보다 훨씬 정겨운 얘기입니다. 또한 살 맛나는 흥이기도 합니다.

오늘 마스터링된 시디 들으면서 그 동안 같이 녹음 함께 한 분들의 얘기도 오갔는데...
KTX 주차장 얘기도 나왔습니다.^^
반갑게 글 잘 읽었고 좋은 분들과 함께 지내시니 노래 부르는 게 더욱 더 신나겠습니다.

29일 발표회 때도 많은 분들 대동하시기 바랍니다.
가객미르 2008.03.06 11:45  
노래에 미친사람, 돈사람, 환장한 사람... 또 한분있군요^^
아이반호 2008.03.07 00:27  
참 멋있게 사는 분이네요. 오래 오래 즐기시기 바랍니다.
홍양표 2008.03.11 21:01  
알만한 분 같은데 끝내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연구대상
대단한 열정과 끈기
우리 세상에 이런 분의 이야기가 노래를 폭발시킵니다.
이동균님, 긴긴 이야기로 즐겁게,
이상한 미궁(?)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네요.
"연구대상" 님 놀랍습니다. 그 열정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