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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片片短想] ㅡ 미술가의 전설

鄭宇東 2 1476
신라의 화가 솔거는 황룡사 벽에 소나무를 그렸는데
너무나 천연스럽게 잘 그려서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으려다가 미끄러졌습니다.
이와 비슷한 전설은 중국은 물론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서양에도 흔히 있습니다.
그런 것중의 또 하나는 인간의 짧은 생애의 시간을 아낄려고 평범인이 두손으로
그리거나 쓰면 대칭이 되는 경향을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하고 두손으로 그리고
쓰서 명화와 명작을 남긴 천재 레오날드 다빈치의 전설은 너무 유명합니다.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는 포도그림을 잘 그렸는데 참새가 그려진 그 포도를 쪼아
먹으려고 날아들어서는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 당시에 유명한 화가 파라시오스가
누가 더 잘 그리는지 내기를 걸었습니다. 포장을 풀고 그림을 본 파라시아스는 새를
끌어들인 제욱시스의 재주를 높이 칭찬하고 자기의 그림을 보라니까 제욱시스는
그림의 커튼을 치워달라합니다. 화가가 속은 커튼 자체가 그림인것을 안 제욱시스는
화가인 자신의 눈을 속인 파라시오스의 재주가 더 뛰어나다고 서로 칭찬합니다.
제욱시스는 인간보다 짐승의 눈이 더 확실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파라시오스는 새를 속인 화가의 눈을 속인 제욱시스의 그림이 낫다고 칭찬합니다.
경쟁과 시합에서 서로를 칭찬하는 모습은 참으로 희귀하여 보기에도 참 좋습니다.

미술이나 음악등 예술의 초기형태는 우연적인 계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술의 초상화만 하더라도 연인들이 (당분간이라도) 이별하려는 늦은 밤에 등불로
벽에 비치는 상대방의 그림자를 그려 소중히 서로 나누어 가진데서 유래되며
일반적인 회화도 소질있는 목동이 양을 치다가 심심파적으로 그림자를 따라 그리는
것을 유력한 미술가가 발굴하여 지도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근대미술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양치기전설의 시조격인 제자 조토와
스승 치마부에의 전설은 거슬러 올라가면 알렉산더왕의 초상화가 뤼시포스와
그의 스승 에오폼포스에 맥을 대고 있으며 이후에도 카라바조와 라파엘로의 버전으로
거듭 거듭 등장하고 있습니다.

 현대 루마니아 태생의 볼륨을 뺀 다이어트 조각가 브랑쿠지도 미술사의 단골메뉴인
양치기전설의 한 예를 반복하면서 <공간의 새>란 날씬하고 세련된 조각작품을 빚었
습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의 주인공 조토는자신이 설계한 피렌체 성당의 종탑 캄파닐
레에서 부실하게 시공된 부분을 발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완벽주의의 책임과
지고진미의 사명을 다하는 예술가 정신의 극치를 보여 주었습니다.
 
고대에는 자연을 모방하는 것을 예술가의 일차적인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예술을 위한 자연주의이고 자연우월주의화풍이 주종을 이루었다고 하겠
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토에도 불구하고 사실주의의 원조라 할수있는 제욱시스는
최고의 미녀도를 그리기 위하여 그리스의 크리톤섬에서 아름다운 미녀 다섯 사람을
모델로 하여 그녀들의 아름다운 부분만으로 선택하여 미녀 헬레나를 완성하였으니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종전의 입각점을 지양한 예술가의 미학적 신념과 심미안을
극명하게 표현한 미인도를 그렸다고 하겠습니다. 이 시점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말하자면 예술을 위한 예술 즉 예술우월주의의 지경에 다달았다고 하겠습니다.

신은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 두고 보고 이용하기를 바랐습니다.
신에 반항하고 대항하여 인간이 바벨탑을 쌓던 것이 실패한 것은 예정된 사건이
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손으로 지어지는 모든 건축이 신에 대한 도전과 모독
으로 생각되었던 해묵은 사상에 젖은 예술가들 특히 건축가들은 걸작품의 완성후
허무감이나 신성모독의 죄책감으로 정신적인 파탄등 위기를 맞았고 그가 완성한
기념비적인 위대한 건축물의 오벨리스크 위에서 몸을 던져 자살로 속죄하는 경우
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인간 예술가의 성공을 시기하여 속이 좁은 주피터신들은
천상의 건축에 어깨를 겨루는 이 지상의 건축물에 분노하여 줄리오 로마노의 생명
을 거두어 가기까지 하였다니 신들의 질투가 너무 심합니다.

미켈란젤로나, 레오날드 다빈치를 쪼끔 알고 또 도미니끄 앵그르를 좋아한다고
해온 나는 우리나라의 고대나 현대 미술가에 대하여 아는 바가 거의 없었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崔北화가의 생애가 비극적이고 너무 특이해서 나의 주의를 끕니다.
스스로 이름 北을 쪼게 칠칠하지 못하다고 七七로 자(字)를 삼고 세상과 타협하지
못해 달랑 붓 한자루로 겨우 먹고사는 사람이란 뜻의 호생관(毫生館)으로 호(號)로
하였습니다. 명도 길지 않아서 그의 자대로 칠칠 사십구 마흔 아홉살을 넘기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속물부자나 벼슬아치에 비위
맟추기를 싫어해서 차라리 자기의 한쪽 눈을 찔러 실명하여 외면하였고 말년에도
오랫만에 그림 한점을 팔아 그 돈으로 술을 사서 마시고 추운 겨울날 홑적삼만 입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집의 담장밑에서 석자가 넘는 눈속에 파묻혀 동사하였다 합니다.
네델란드의 빈센트 반 고호가 세속인들의 비방을 듣기 싫어해서 자신의 한쪽 귀를
잘라버리는 광기를 보인 것도 동서양을물론하고 예술가들의 특이하고 결백한 기질
이 서로 일맥상통하는 기행전설이라고 하겠습니다.


.
2 Comments
고진숙 2009.06.06 16:20  
요즘 회원들이 회원문단을 이용하기가 다소
힘들어 할 듯하다.
鄭宇東님의 [片片短想]  시리즈가 끝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샘물 솟듯 줄줄이 이어지니
읽어도 모를 내용,
읽기에 너무 길어서
무거운 내용이라서
취미에 맞지 않아서 
좋은 글인데 다 읽고 갈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등등
이유로 읽기에 부담을 느끼는 모양.

회원 문단에서
부담이 안 되는 글 ,또는 그런 회원만 읽으면 된다.
나도 [片片短想]이 나오는 족족 다 읽지 못한다.
이유는 위에 열거한 것 중 두어 개쯤의  이유로.

그런데 위에서 열거한 것과 그 밖의 이유로
읽지 않고 넘겨 버리고
가벼운 것,
제 취미에 맞는 것 등을
골라 읽는 것은 회원의 권리이다.
읽다가 漸入佳境이면 읽지 말라 해도 다 읽을 것이고
疊疊山中이면 발길을 돌리는 것은 人之常情이며 또한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이다.

[片片短想] 에 대하여 무거운 마음이 있으면 떨쳐 버리고 읽고 싶은 것만 골라 읽으면 된다.
글의 주인도 그런 마음으로 쓸 것이기 때문이다.
자 연 2009.06.09 22:14  
우동 선생님

기다린거 어찌아시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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