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연주.감상후기, 등업요청, 질문, 제안, 유머, 창작 노랫말, 공연초대와 일상적 이야기 등 주제와 형식, 성격에 관계없이 쓸 수 있습니다.
단,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는 금지하며 무단 게재할 경우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회원문단은 자유게시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가을날의 추억

차성우 2 1407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려면 누에뜰 북쪽 끝 조그만 산 중턱에 있었던
우리집 싸리문을 나서서 긴 보리밭을 지나 산 아래로 내려가서
읍내 쪽으로 난 들길을 간 다음 읍내의 조금 길다 싶은 골목길을 지나서
학교로 가야 했다.

학교에 가고 올 적 마다
이웃해 있는 여학교의  학생과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부끄런 생각에 먼 산만 바라보고 지나치다가
어느 날 우연히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는데 ,
그때 그 여학생이 참 이쁘다고 생각되었다.

동그란 눈에 짧고 단정하게 늘인 머리, 하얀 윗저고리와 어울린 까만 치마폭이
바람처럼 흔들거리는 모습이 나의 시각을 잠시 멈추게 하였고
나도 몰래 얼굴이 닳아 오름을 느꼈다.

학교에서 늦게 공부를 마치고 밤 10시쯤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벼들이 누렇게 익은 들길 가운데로 오다가 하도 달이 밝아서
글자가 보일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꺼내어 펼쳐드는데
글자보다는 낮에 본 그 여학생의 얼굴이 책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한 사흘 쯤 고민을 하다가 편지를 쓰기로 작정하고
하루 밤을 꼬박 새우며 편지를 적었다.

안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마주치면 얼른 전해주고 달아날 작정이었다.
그러나 마주칠 적마다 나의 손은 편지가 든 주머니 쪽으로 가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무려 석 달 동안을 망설이며 그냥 지나치다가
편지는 이미 닳아빠져 누더기처럼 되어버렸고
결국 그 편지를 찢어버리고 말았다.

그 여학생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 살며 몇 학년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세월은 가 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그 골목길이 사라지고 없지만
가끔 고향에 가서 그 골목길 근처를 지날 때에는
어릴 적 기억이 살아나,
여름에는 돌담 밖으로 늘어진 장미와
가을에는 붉게 익은 감들이 손에 닿을 듯이 대롱거리던 그 골목길이
아른히 떠오르며
그때 그 여학생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

그대 마음 알길 없어
나의 입술은
가지 끝에 달린
감잎처럼
떨고만 있었네.

부끄런 마음 앞서
차마 좋아한다 말은 못하고
넌지시 그대를 보기만 했었네,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고향마을 긴 골목길엔
그대의 옷자락처럼
가을바람이 지나가고 있겠지.
2 Comments
열무꽃 2009.10.14 08:39  
끝나지 않는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가
이어지기 바랍니다.
차성우 2009.10.17 08:45  
끝날까지 쓰야겠지요,  잘 계시지요^0^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