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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나라 애인이 보낸 향긋한 선물바구니

김형준 4 832
사람은 늘 꿈을 꾼다. 큰 꿈, 작은 꿈, 소박한 꿈, 야무진 꿈....
인간의 세상에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다. 만년빙들이 다 녹아드는 날에는....
꿈을 꾸는 자는 자유롭다. 비록 어려운 처지에 있을지라도
미래에 대한, 보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이루어질 사랑에 대한,
또한 그외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꿈을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긍정이 있고, 빛이 있고, 노래가 있다.

천둥 번개가 사정없이 하늘에서 내려치고 울려도 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려움이 다시 삶의 중심을 뚫고 들어와도
꿈은 그리 쉬이 꺾여 들지 아니한다. 작은 시험에도 무너지는
것은 제대로 된 꿈이라고 볼 수 없다. 꿈은 마음 속에서 자라나는
싱싱한 야생 식물이다. 비록 때론 비가 부족해서 마르기도 하지만
여전히 땅 속 깊숙이 뿌리를 박고 언젠가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시길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는 '겨자씨가 자라 누구도 넘보지 못할
멋진 청년 나무가 되듯이' 자신도 자신의 전성기를 누릴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그런 푸르디 푸른 풀이 꿈이다. 꿈은 이루고자
하는 자에게 내려진 하늘의 선물이며, 꿈을 이루기 위해 늘 긍정
속에서 사는 이에게는 삶은 그 자체가 축복인 것이다. 꿈을 이루며
다음 생으로 가는 인간의 모습은 늘 눈부시며 본받을만 하다.

이 세상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이 있다. 물론 가진 것이
넘쳐나는 이들은 큰 불안 요소가 없기에 기본적으로 삶은 즐길 수
있는 기쁜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무언가 보람있는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이들도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랑이란 마르지 않는 샘물 곁에 있는 젊은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비록 언젠가는 바닥이 날 수도 있겠지만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싱싱함과 건강함이 넘쳐나는 것을 주변에 서있는 사람은
다 안다. 너무 표현이 지나쳐서 때론 눈살을 찌푸리거나 질투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랑이란 옹달샘에서 물을 마시기 싫어하는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랑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이룩하기를 원하는 꿈의 성취 내지는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화평을 이루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때로 보일 때도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허나 화평이라는 것은 편안함, 즉 불안감이
 해소된 상태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최소한 심리적, 정신적 화평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누구식의 화평을 이루냐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 여성과 남성,
유권력자와 무권력자 등으로 분류되는 인간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화평은 과연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을까. 금권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권력을 잡은 사람들, 어찌보면 사회의 엘리트
층에 속한 이들이 주도하는 화평은 때론 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불안, 초조, 공포 등을 유발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 세상에서 만족을 이루기 어려운 사람은 다음 세상 또는 하늘
나라에 대한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어차피 이생에서는 진정한
또는 만족스런, 이루고자 하는 행복내지는 기쁨을 얻을 수 없다고
어떤 이유에서건 느끼는 이들은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지 못한
무언가를 해결해 주고, 마음 속에 태어난 불안감을 없애 주고,
불만이 없는 상태를 이루어 줄 수 있는 유토피아 내지는 낙원,
또는 하늘 나라에 대한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하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하늘 나라는
믿음의 영역이다. 이 인간 세상보다 더 나은 곳, 즉 하늘 나라가
어디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생활하는 이들은 여러 면에서
많은 것을 가진 이들보다 삶이 더 행복할 수 있고, 고로 더욱 더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보여진다.

'하늘 나라'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늘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그 상태 자체가 낙원일 수 있겠다.
그보다 더 바랄 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리라.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더불어 존재하고 더불어 기뻐하고
더불어 만족해하는 그런 상태 내지는 공간이 바로 낙원이 아닐까.
노래를 보다 잘 부르기를 원하는 사람은 매일, 매시간 늘 멋진
노래를 보다 탁월하게 불러낼 수 있는 그런 상태 또는 환경이
바로 자신의 꿈을 이룬, 더 할 수 없는 만족한 낙원이 될 수 있겠다.

'더불어 한 잔'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좋은 것이다.
아무 것도 '복심'을 깔 필요가 없는 편안한 벗을 가진 사람은 누구
보다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어찌보면 참
간단한 행복의 조건 같으면서도 인연이라는 아님 필연이라는 묘한
전령사가 와주어야 하는 우연의 법칙 속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여도 남편이어도 좋다. 자녀여도 부모여도 친척이어도 동창이어도
좋다. 그런 이들 몇 명만 있으면 이미 꿈나라는 내가 사는 영역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어려움이 있을 때 말없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벗들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
연일 신문과 대중들의 텅빈 공간 속에 사랑과 사기, 허영과 꿈,
힘과 종교 등 복잡다단한 요소들을 묶고 태어난 신데렐라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나름대로 꿈나라의 공주처럼 최소한 몇 년을 살았고, 누릴 대로
다 누렸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기준에서, 어떤 상황적 논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정죄할 몸 파는 이와 같은 위치로 떨어질 수도 있고,
동화 속에서 나오는 결과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행복한
위치에 이르게 되는 주인공과 같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꾸며나가는
멋진 사람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죽는 그 순간까지 진행형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완전히 정체되어 있는 상태로 가지는 아니한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가슴 속에 꿈을 꾸지 못하는 자는 이미
움직임이 멈추어진 사람이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무덤
속으로 들어간 자들과 전혀 다름이 없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생동감이 있어야 살고 있는 것이며, 꿈을 꾸어야 자꾸 움직임을
멈추려고 하는 타성을 벗어나 맘 속의 젊음을 늘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소유의 유무 내지는 다소와는
상관없이 이미 다시는 잠에서 깨어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러한 잠 속에서 또다른 꿈나라로 빠져들기를 바랄 수 밖에.....
4 Comments
김형준 2007.09.25 13:16  
  꿈을 꾸자. 좋은 꿈을. 나만 좋은 꿈이 아니라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꿈을 꾸자. 굳이 선택을 하라면
나보다는 남을 더 살리고, 키우고, 아름답게 하는
꿈을 꾸어 보도록 하자. 어둠이 밀려올 때에 다른
이들을 위해 빛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해 보자. 슬픔이 있는 곳에서 희망과
기쁨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어보자.

꿈을 꾸자. 꿈은 삶이다. 보다 나은 삶이다.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가꾸는 그런 꿈을 꾸자.
김형준 2007.09.25 23:54  
  인간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표면적인 현상조차도
다 이해하기가 벅찬 존재이다. 고로 표면이 아닌
우주의 깊은 내면에서 흐르고 있는 것들을 깨닫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경우가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그렇다고 실망하여 좌절해 무너질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모든 종류의 존재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한계들이
있고 우리도 또한 그러한 한계 내에서 사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서 우리의 범위를 넓힌다고 한들
그것도 어느 정도의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늘 품고, 꿈을 가지고 보다 넓고 깊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어진다. 그렇지 아니한가!
김형준 2007.09.29 12:25  
  숨겨진 감정 속에 또 다시 감싸인 복잡한 감정의 연속,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스테인드 글래스처럼
무언가 기호 또는 그림 아니면 하나의 연속적인 영상을
그려내고 있다.

수천년간 많은 나라에 존재했던 뛰어난 예술가들과
맞짱을 뜰 준비를 하는 것은 먼저 정신적인 것이며,
상상적인 날개의 펄럭임이며, 영혼의 끊임없는
나락을 동반한 잔잔한 폭풍우의 눈 속에 들어가는 일이다.
김형준 2007.09.29 13:13  
  감성적인 시를 쓰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하긴 감성이 완전히 배제된 이성적인 시만을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3년 열흘 동안 내내 비 한 번 오지 않아 모든
살아있는 것들 조차 메말라 비틀어지기 쉽상인 그런 사막
위를 걷는 것과 같아 고통스럽겠지만
너무나도 물기 촉촉한 희노애락의 감정들을 폭발적으로
쌓아 놓은 공간들에서도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된다.

다양성이 그만큼 존중되는 시대인 만큼 동서남북,
여러 종교, 문화, 사회 등이 복합적으로 숨겨져 있고,
껴안고 싸우고 헤어지고 모이는 과정들이 보다 멋있게
전개되어 있는 그런 작품들이 많이 보이면 그만큼
읽는 사람들도 더욱 재미있고 보람있는 삶, 즉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깊이가 있는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나 싶다.

돈 되는 시, 돈 되는 수필도 필요하다.
허나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예술에 의한 작품 몇 점 남기면 그것 또한 좋지 아니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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