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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할머니의 소망 **

이혜영 5 749
[할머니의 소망]


우리 마을에서 굴을 가장 잘 딴다는 영옥이 할머니께서 어젯밤 돌아가셨다.

여든이 넘으셨지만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셨던 할머니의 사망 소식은 노인정 분위기를
먹장구름만큼이나 침울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홀로 살고 있던 망자와 자신들의 처지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식들의 불효를 성토했지만 내심으로는 자신을 탓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새우처럼 잔득 등을 구부린 채 죽었을까”

늘 붙어 다니다시피 하던 광철이 할머니께서 식어버린 동무의 시신 앞에서 자신을 보는
듯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망자의 일과는 밀물과 썰물을 가리지 않고 온 종일 갯바위에 붙어서 사시다시피,
바다에서 삶을 건지셨던 분이였다.

오죽했으면 ‘따개비할메’란 별호를 얻었을까?

그 분이 따오신 굴은, 갯물에 팅팅 불리지 않고‘강굴’만을 판다고 했다.

그런 확실한 양심(良心)이 있어선지 굴 사발 인심은 바닷물보다 더 짜다고들 했다.

그분의 굴장수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보아왔으니 굴 따는 시험이 있었다면
‘기능장’은 따 논 당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망자의 근면, 절약정신은 또 얼마나 우직스러웠나?

노인들의 연례행사인 봄꽃 구경이거나 단풍놀이는 물론, 청년회에서 공짜로 보내드리는
그 흔한 온천욕도 단 한번 참여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저 눈만 뜨면 바다로 나가서 싱싱한 굴을 채취하여 횟집과 가정집을 돌다가
우체국으로 달려가시는 일이 그분의 일상인 것이다.

읍내에서 의사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없지만 동네 아주머니들의 말을
빌리자면 음식을 차갑게 드셔서 급체 하였을 것이란다.
자식들과 함께 살았다면 그런 변은 당하지 않았을 거라며 모두들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죽음과 싸운 할머니의 마지막 흔적이 여기저기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간출한 살림살이였지만 망자의 꼼꼼한 성격답게 가재도구들은 반듯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볼품없는 자그마한 문갑만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의 몸뚱이보다 훨씬 큰 대형 텔레비전을 힘겹게 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평소
할머니의 무거웠던 짐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반쯤 열려진 문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다.

문갑 안에는 자그마치 다섯 개나 되는 각종 예금통장이 들어 있었다.
통장 두어 개가 밖으로 나와 있던 것으로 보아 돌아가시기 전 입금액을 확인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자신들의 이름으로 개설된 예금통장을 매만지며 슬피 울고 있던, 무정한 세 딸들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한량없는 희생과 사랑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논둑길을 돌아오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곱게 길을 장식했던 작은 풀꽃들의 시들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휘어진 둑길에 쪼그리고 앉아서 스스로 자신의 잎을 떨어뜨리고 있는 풀꽃들을
바라보면서 할머니의 소망도 만져볼 수 있었다.

그래,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서
죽음은 삶의 완성이란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 (퍼온 글입니다.)


5 Comments
수패인 2006.04.25 09:49  
  우리 세대에는 더더욱 우리 자식들 세대에는 이런분 안계실거야.
죽으면 모든게 소용없는것을 뭐하러 그리 아웅다웅 사는지...
그러게 살아있을때 즐겁고 보람되게 시간을 보내야해.
내마노 같은 좋고 아름다운곳을 통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구.
5월 내마노엔 꼭 나와서 여러분께 그대들의 아름다움을 뽑내거라.
유랑인 2006.04.25 10:30  
  귀감은 될지언정 무언가 가슴 답답한 사연 입니다...
산처녀 2006.04.25 13:49  
  가슴 답답한 사연이군요 .
이런 농촌에서는 흔히 있는일이니 ...
자식들은 도회루 가고 꼬부러저 허리가 펴지지 않는 노인들만 집집이 있는 형편이니 비리비재한 일입니다 .
 할머니의 근면은 누굴 주려고 그리 했을까 ?
박성숙 2006.04.25 14:41  
  어떻게 사는게 잘 사는건지..
아웅다웅 살고 싶지 않아도
어느새 아웅다웅 하고 있으니
휴~~
규방아씨(민수욱) 2006.04.26 14:18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요
내일을 위해서라지만 내일이란 시간을 기다리기엔 너무 길어요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만이 진정행복한거 아닐까요
할머니의 무작정 사랑...자식을 너무 가슴아프게 하는거 같아요..
부모님으로 인해서 효자도 불효자도 될수 있음을 시집살이를 하면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요즘 세상에 진정한 효자는 불효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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