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의 꿈 속에서 미친 듯이 산 어느 1.5주일
진대위는 음악적 감성이 매우 풍부한 사람이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표현할 길이 딱히 없다.
그저 진정한 의미에서 음악에 미친 사람이라고 해야 겠다.
아님 차라리 '음악의 신'이 그에게 내렸다고 보아진다.
무당이 무엇인가. 신 내림을 받은 이가 아닌가.
신의 영을 받은 자들은 인간의 영만 가지고 사는 이들보다
훨씬 더 영력이 뛰어난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바이다.
진대위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전공자 이상으로
음악에 점점 더 빠져들어가는 데에는....
허나 그것을 여기에서 언급하기에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 필요하기에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자.
명창이 되는 길은 잘 아시다시피 매우 어렵다.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명창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명창이 되고 싶다고 해서 다 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주변에 명창이 차고 넘칠 것이리라.
일단 타고난 '목청'이 아름다와야 하는 것은 필수조건이다.
목청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도 물론 죽어라 하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그저 그뿐이다. '꽤 잘 하는 수준' 그것으로 끝이다.
소리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허나 예외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대화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거의 매력이 없지만 복식 호습을 잘 하여 압력을 충분히
잘 가하는 경우 노래하는 목소리는 대화 소리와는 판이하게
매우 예쁜 경우가 더러 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이름은 언급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
진대위는 선택할 여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음악의 신'이 내리는 것을 그는 경험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선택해서 노래를 계속 부른 것이 아니었다.
음악의 신인 'muse'가 그에게 찾아와 끊임없이
노래하도록 만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었다.
어찌 노래 공부하는 것이 쉽다고 하겠는가.
듣는 것은 노래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쉬운 작업이다.
진대위는 어느 날 부터인가 시를 낭송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것도 음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기에 하는 작업이었다. 성악 또는 가곡에 속하는
노래들은 예외없이 시를 기초로 하고 있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명창이 될 꿈을 버려야 한다.
진대위는 어느 시인들의 시낭송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교류하면서 그는 시낭송할 기회를 가졌다. 물론
그 시인들 중 한 사람의 시를 낭송하는 것이었다. 낭송이
끝나자 시인 중 한 분이 그에게 노래할 것을 청했다.
약 4, 50명에 달하는 청중이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대위는 도전이 들어올 때 거의 거절을 하지 않고 응전을
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낭송한 시들 중
한 편의 내용과 유사한 노래인 '기다리는 마음'을 불렀다.
일출봉이 나오고 월출봉이 나오는 것이 이 시와 노래의
접목점이었다. 그 노래를 끝내고 다시 섬에 관한 시를
오페라 아리아의 recitative 형식으로 즉흥적 느낌을 담아
노래했다. 그것을 부른 뒤 다시 장사익선생의 '찔레꽃'을 불렀다.
아직 불충분하나 성악적 발성을 추구하고, 성악적 소리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찔레꽃'은 부르기에 그리 십지 않은 곡이었다.
허나 그는 도전하였다. 틀리면 어떠랴! 틀리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이 세 곡을 그는 무반주로 불렀다.
어느 카페에서 진행되는 그 시낭송 모임에는 피아노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대위 스스로 평가하기에 거의 '신 들린 것처럼'
불렀다 한다. 쉽게 말하면 좀 'over'를 했고, 너무 과잉 흥분하여
자아도취에 빠진 듯도 싶다.
그것이 월요일의 밤에 대위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노래를 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시간 관계상 생략하려 했던
그에게 연세가 높은 시인이 배려해 주신 것이다.
대위는 오랜 만에 어느 지인(知人)에게 전화를 하였다.
역시 노래에 미쳐 사는 사람이었다. 제2금융권 회사에서
이사로 근무하는 사람인데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교회에서 지휘자로 일하고 있고, 유명한 작곡가에게
작곡을 사사받기도 하고, 늘 성악 레슨도 받고 다른 몇 명의
성악 매니아 중의 매니아들과 준프로 그룹을 이루어 매달
정규적으로 모여 연습도 같이 하고 발표회도 자주 갖는
사람이었다. 대위가 그를 만난 것도 약 2년 전 쯤에 그런
미치광이 아마(/준프로) 성악가들의 모임에서였다. 대위에게도
정식으로 그 모임의 회원으로 가입하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그는 개인사정으로 인해 그 모임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 주 화요일에 소음악회를 하니
일찍 와요! 이야기 나누게.'
대위는 자신이 아는 이들이 음악회를 한다고 해서 기뻤다.
그들과 만난지 꽤 된데다가 음악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배움은 읽음에서 나고, 들음에서 난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대가들의 음악에 늘 경청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명창이나 대가가 될 수 없다.
모방과 끊임없는 연습 그리고 연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독특한 경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위가 그 발표회에 가자 그날 노래할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이 그에게 노래할 것을 권했다.
'악보는 가지고 있지요?'
이들은 노래 좋아하는 이들이면 응당 언젠나 악보를
가지고 다닌다고 미리 판단을 할 정도의 열성파들이다.
'네!'
하고 말은 했지만 사실 대위는 이태리 가곡 악보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자신이 없었다. 그 노래를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불러본 적도 없었고, 발음이 입에 잘 붙을지도 의문이었다.
음악회는 이미 시작이 되었고, 그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이미 하겠다고 말을 했으니 '못하겠는데요!'하려 하니 용기없는
겁장이처럼 스스로가 느껴졌다. 이 모임은 남성들만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여성 성악가들을 일부 초청해서 솔로도 듣고 자신들과
이중창을 하기도 한다. 주로 오페라 아리아 2중창을 하는 것이다.
마침 직업이 의사인 회원이 임긍수님 곡인 '사랑하는 마음'을 불렀다.
대위는 사실 그 곡에 익숙하지 않았다. 언젠가 배워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녹음된 것을 몇 번 들어본 것은 사실이지만 딱히 어디서
그 노래를 불러 보았거나 제대로 연습한 적도 없었던 것이다.
'도전하기로 했다!'
물론 앞에서 부른 이에겐 실례가 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대위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 맘의 강물'이나 '목련화'와 같은
악보들을 구해보려고 노력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음악회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에서 그 노래를
부른 분의 순서가 끝나자 마자 그에게로 다가가 그 악보를 빌려달라고
해서 받았다. 허나 과연 반주자와 호흡을 맞출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 노래를 잘 모르거나 아예 성악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 앞에서
부르는 것이라면 조금 틀리거나 실수를 해도 어떻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 듣고 있는 이들은 수십년간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공부를 해온 사람들도 섞여 있는 성악 분야의 최고 매니아 그룹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대학의
전임교수인 어느 유명한 소프라노도 앉아서 듣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덜덜 떨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자주 남들 앞에서
노래하다 보니 그리 크게 긴장하거나 떨지는 않게 된 것이다.
'나 가진 것을 모두 ......'
이렇게 시작되는 꽤 어려운 노래를 대위는 발성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소화해 내었다. 물론
자신의 표현과 발성에 대해 그다지 만족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유명 소프라노가 그에게 다른 데서 노래하고 있지 않으면
이 그룹에 속해 노래하는 것은 어떤가하고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이미 레슨을 받고 있으리라고 추측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화요일 밤에 그에게 벌어진 뜻밖의 상황이었다.
그 다음날에 그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다른 시낭송회에 참석하였다.
세 번째로 참석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갔을 때 아는 이가
추천해서 뒷풀이 장소에서 우리 가곡을 하나 불렀었다.
그 모임의 좌장 격인 두 원로 시인 옆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자니
그에게 노래를 다시 해보라고 권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가곡을
지난 번에 했으니 이번에는 독일 가곡이나 이태리 가곡 중에서
한 곡을 하라 했다. 고민 끝에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토스티의 'ideale (이상)'을 부르기로 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이 곡을 정확히 알지 못하리라 여겨졌다. 헌데 그곳에도 음악
전문가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서울대 국악과를 나온 작곡가가
그곳에 늘 참석을 하였다. 또한 작곡가인 그의 동생도 함께
있었다.
'이거 잘 못하다간 된통 욕 먹겠다!'
싶었지만 어쩌리. 틀리면 다시 배우면 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면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한 번 놓치게 되는데.
조그마한 단어장에 적은 가사를 꺼내들고 열심히 불렀다.
그것이 수요일 밤에 그에게 벌어진 상황이었다.
진대위는 일주일에 한 번 그가 진정으로 음악 선생님으로 모시는
분에게 가서 노래 공부를 한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신데
무료로 20여명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노래 공부를 시켜주시는
고마우신 분이다. 무료라고 해서 대충 가르치신다고 보면
그건 오산이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시는 70대 후반의
이 선생님을 대위는 늘 생각하면서 산다.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고 계시는 선생님이 만족하실 만한 수준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그는 대가들의 노래를 듣고 또 듣고, 가사를
외우고 또 외우고, 길에서나 전철 속에서나 완전히 미친 놈이 되어
끊임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 일주일에 한 곡씩
대위 스스로가 정해서 그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오페라 아리아, 이태리 가곡, 우리 가곡 할 것 없이 끊임없이
곡을 바꿔가며 부른 것이다. 심지어는 그 어렵다는 바그너 오페라
아리아들까지 불러대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었다. 이 아름다운
목소리와 너무나도 세심한 자상함과 예의를 늘 갖추시는 선생님
모임에 나가자 갑자기 새로운 발표를 하셨다.
'이제부터 네 째주에는
전체적으로 함께 노래부르는 것은 없애고
자유로이 나와 몇 곡이든지 솔로로 부르기로 합시다!'
부를 것을 한 곡 밖에 준비하지 않았지만 대위는 그러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더 이상 부르지 않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면 그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나가서
노래할 마음이 있었다. ideale를 나가 부르자 선생님께서
세심하게 지도를 해 주셨다. 다 끝나자 '이따가 또 나와 노래해요!'
하신다. 단 조건은 앞에 부른 곡은 다시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 다음 곡을 무엇으로 선정할까 고심했다. 우리 가곡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발음이 잘 붙지는 않지만 남들
앞에서 불러보면 다음에 공부하기에 쉬울 수 있는 이태리 가곡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짧은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 토스티의
'La Serenata'였다. 그 곡을 나가 부른 뒤 '아마 오늘은 이것이
마지막일 거야!'하고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노래들을 듣자니
사람들이 망설이는 틈이 생겼다.
'에이, 모르겠다. 또 나가서 부르자!
비록 욕을 바가지로 들을 망정....
이미 노래에 완전히 빠져 든 미치광이인데 뭘 따지랴....'
조두남님 곡의 '산'을 불렀다. 이 모임에서 우리 가곡을
부른 것이 그에게는 상당히 오래 되었다. 주로 오페라
아리아들을 부르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이것이 그 주 목요일에 대위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노래를 하다 보면 입소문이 나는가 보다.
직접 대위의 노래를 들어본 이들 중에 어느 단체를
이끄는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대위에게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자기 행사에 와서 노래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대위는 시간이 없었기에 번번히 거절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 언젠가 한 번은 초대에 응해 주어야지!'
하며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문학상 시상식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이 여성에게서 다시 부탁이 들어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이다
'이번에 가서 노래해 주자!'하고 결정을 하고 그 자리에 갔다.
처음에는 '산'과 '황혼의 노래'를 부르려 하다가 반주도 없고 해서
'황혼의 노래'를 '물망초 꿈꾸는...'으로 시작되는 '님이 오시는지'로
바꾸었다. '산'도 2절까지 있고, '님이 오시는지'도 2절까지 있는
그런대로 짧은 곡들이었다. 행사장은 음향이 별로 좋지 않았다.
전혀 울릴 음향적 환경이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 경우 마이크를
사용해야 겠지만 대위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힘들더라도
마이크 없이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약 1백50명 정도의 청중이
들어차 있었다. '산'을 무반주로 힘겹게 부르고, '님이 오시는지'를
부르기 위해 호흡을 조절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님이 오시는지'의
가라오케 반주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편 기쁘기도 했지만 대위는
당황스런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행사 시작하기 전에 그런 반주를
틀자는 약속도 없었고, 노래방 반주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미 틀어 놓은 것을 어쩌리!
한, 두 군데 틀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나마 반주가 있는 것이
그를 덜 힘들게 했다.
이것이 금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토요일에 그는 또 다른 모임에 나가 뒷풀이 자리에서
소프라노 한 사람과 둘이서 2중창을 했다. '황혼의 노래'와
'목련화'를 둘이 함께 불렀다. 둘이 부르자니 솔로로 하는
것보다는 힘이 덜 들었고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것은 토요일 밤의 상황이었다.
대위는 이렇게 해서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내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여러 다른 상황 아래서 노래를 했다.
일요일에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했다.
그리고 그 전 주 토요일에는 동작현충원에 있는
이승만대통령 묘소 앞에서 돌아가신 대통령을 위해
'목련화'와 '청산에 살리라'를 친구와 함께 둘이서 노래했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고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고로 토요일-일-월-화-수-목-금-토-일요일 이렇게 9일 내내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다. 솔로로, 이중창으로,
합창으로.... 다시 월요일에는 열 명정도의 사람들과 함께
남들 앞에서 '사월의 노래'를 외워서 부르게 될 것이다.
10일 내내 크고 작은 무대에서 계속 노래를 하다보니 대위가
얻은 것이 있었다.
'무대 공포증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대위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다시 부탁을 받으면
작고, 큰 무대를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할 것이다.
연습으로 매우 유익하기 때문이다.
명창이 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허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즐거움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을 가진 이에게는...
히말라야의 꼭대기에 가는 이가 과연 몇인가.
중도에서 죽는 자가 많지만
여전히 그 꼭대기에 기를 쓰고 오르고 있다.
명창의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미친 사람들이 있다.
그들로 인해 성악은 보다 높은 산의 정상을
유지할 수 있고, 또한 그 정상을 밟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잠 못이루며 고민하고 있다.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비록 도전하다 피 터져 죽을망정.....'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표현할 길이 딱히 없다.
그저 진정한 의미에서 음악에 미친 사람이라고 해야 겠다.
아님 차라리 '음악의 신'이 그에게 내렸다고 보아진다.
무당이 무엇인가. 신 내림을 받은 이가 아닌가.
신의 영을 받은 자들은 인간의 영만 가지고 사는 이들보다
훨씬 더 영력이 뛰어난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바이다.
진대위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전공자 이상으로
음악에 점점 더 빠져들어가는 데에는....
허나 그것을 여기에서 언급하기에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 필요하기에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자.
명창이 되는 길은 잘 아시다시피 매우 어렵다.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명창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명창이 되고 싶다고 해서 다 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주변에 명창이 차고 넘칠 것이리라.
일단 타고난 '목청'이 아름다와야 하는 것은 필수조건이다.
목청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도 물론 죽어라 하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그저 그뿐이다. '꽤 잘 하는 수준' 그것으로 끝이다.
소리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허나 예외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대화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거의 매력이 없지만 복식 호습을 잘 하여 압력을 충분히
잘 가하는 경우 노래하는 목소리는 대화 소리와는 판이하게
매우 예쁜 경우가 더러 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이름은 언급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
진대위는 선택할 여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음악의 신'이 내리는 것을 그는 경험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선택해서 노래를 계속 부른 것이 아니었다.
음악의 신인 'muse'가 그에게 찾아와 끊임없이
노래하도록 만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었다.
어찌 노래 공부하는 것이 쉽다고 하겠는가.
듣는 것은 노래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쉬운 작업이다.
진대위는 어느 날 부터인가 시를 낭송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것도 음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기에 하는 작업이었다. 성악 또는 가곡에 속하는
노래들은 예외없이 시를 기초로 하고 있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명창이 될 꿈을 버려야 한다.
진대위는 어느 시인들의 시낭송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교류하면서 그는 시낭송할 기회를 가졌다. 물론
그 시인들 중 한 사람의 시를 낭송하는 것이었다. 낭송이
끝나자 시인 중 한 분이 그에게 노래할 것을 청했다.
약 4, 50명에 달하는 청중이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대위는 도전이 들어올 때 거의 거절을 하지 않고 응전을
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낭송한 시들 중
한 편의 내용과 유사한 노래인 '기다리는 마음'을 불렀다.
일출봉이 나오고 월출봉이 나오는 것이 이 시와 노래의
접목점이었다. 그 노래를 끝내고 다시 섬에 관한 시를
오페라 아리아의 recitative 형식으로 즉흥적 느낌을 담아
노래했다. 그것을 부른 뒤 다시 장사익선생의 '찔레꽃'을 불렀다.
아직 불충분하나 성악적 발성을 추구하고, 성악적 소리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찔레꽃'은 부르기에 그리 십지 않은 곡이었다.
허나 그는 도전하였다. 틀리면 어떠랴! 틀리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이 세 곡을 그는 무반주로 불렀다.
어느 카페에서 진행되는 그 시낭송 모임에는 피아노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대위 스스로 평가하기에 거의 '신 들린 것처럼'
불렀다 한다. 쉽게 말하면 좀 'over'를 했고, 너무 과잉 흥분하여
자아도취에 빠진 듯도 싶다.
그것이 월요일의 밤에 대위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노래를 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시간 관계상 생략하려 했던
그에게 연세가 높은 시인이 배려해 주신 것이다.
대위는 오랜 만에 어느 지인(知人)에게 전화를 하였다.
역시 노래에 미쳐 사는 사람이었다. 제2금융권 회사에서
이사로 근무하는 사람인데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교회에서 지휘자로 일하고 있고, 유명한 작곡가에게
작곡을 사사받기도 하고, 늘 성악 레슨도 받고 다른 몇 명의
성악 매니아 중의 매니아들과 준프로 그룹을 이루어 매달
정규적으로 모여 연습도 같이 하고 발표회도 자주 갖는
사람이었다. 대위가 그를 만난 것도 약 2년 전 쯤에 그런
미치광이 아마(/준프로) 성악가들의 모임에서였다. 대위에게도
정식으로 그 모임의 회원으로 가입하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그는 개인사정으로 인해 그 모임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 주 화요일에 소음악회를 하니
일찍 와요! 이야기 나누게.'
대위는 자신이 아는 이들이 음악회를 한다고 해서 기뻤다.
그들과 만난지 꽤 된데다가 음악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배움은 읽음에서 나고, 들음에서 난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대가들의 음악에 늘 경청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명창이나 대가가 될 수 없다.
모방과 끊임없는 연습 그리고 연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독특한 경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위가 그 발표회에 가자 그날 노래할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이 그에게 노래할 것을 권했다.
'악보는 가지고 있지요?'
이들은 노래 좋아하는 이들이면 응당 언젠나 악보를
가지고 다닌다고 미리 판단을 할 정도의 열성파들이다.
'네!'
하고 말은 했지만 사실 대위는 이태리 가곡 악보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자신이 없었다. 그 노래를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불러본 적도 없었고, 발음이 입에 잘 붙을지도 의문이었다.
음악회는 이미 시작이 되었고, 그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이미 하겠다고 말을 했으니 '못하겠는데요!'하려 하니 용기없는
겁장이처럼 스스로가 느껴졌다. 이 모임은 남성들만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여성 성악가들을 일부 초청해서 솔로도 듣고 자신들과
이중창을 하기도 한다. 주로 오페라 아리아 2중창을 하는 것이다.
마침 직업이 의사인 회원이 임긍수님 곡인 '사랑하는 마음'을 불렀다.
대위는 사실 그 곡에 익숙하지 않았다. 언젠가 배워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녹음된 것을 몇 번 들어본 것은 사실이지만 딱히 어디서
그 노래를 불러 보았거나 제대로 연습한 적도 없었던 것이다.
'도전하기로 했다!'
물론 앞에서 부른 이에겐 실례가 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대위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 맘의 강물'이나 '목련화'와 같은
악보들을 구해보려고 노력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음악회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에서 그 노래를
부른 분의 순서가 끝나자 마자 그에게로 다가가 그 악보를 빌려달라고
해서 받았다. 허나 과연 반주자와 호흡을 맞출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 노래를 잘 모르거나 아예 성악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 앞에서
부르는 것이라면 조금 틀리거나 실수를 해도 어떻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 듣고 있는 이들은 수십년간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공부를 해온 사람들도 섞여 있는 성악 분야의 최고 매니아 그룹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대학의
전임교수인 어느 유명한 소프라노도 앉아서 듣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덜덜 떨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자주 남들 앞에서
노래하다 보니 그리 크게 긴장하거나 떨지는 않게 된 것이다.
'나 가진 것을 모두 ......'
이렇게 시작되는 꽤 어려운 노래를 대위는 발성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소화해 내었다. 물론
자신의 표현과 발성에 대해 그다지 만족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유명 소프라노가 그에게 다른 데서 노래하고 있지 않으면
이 그룹에 속해 노래하는 것은 어떤가하고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이미 레슨을 받고 있으리라고 추측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화요일 밤에 그에게 벌어진 뜻밖의 상황이었다.
그 다음날에 그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다른 시낭송회에 참석하였다.
세 번째로 참석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갔을 때 아는 이가
추천해서 뒷풀이 장소에서 우리 가곡을 하나 불렀었다.
그 모임의 좌장 격인 두 원로 시인 옆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자니
그에게 노래를 다시 해보라고 권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가곡을
지난 번에 했으니 이번에는 독일 가곡이나 이태리 가곡 중에서
한 곡을 하라 했다. 고민 끝에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토스티의 'ideale (이상)'을 부르기로 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이 곡을 정확히 알지 못하리라 여겨졌다. 헌데 그곳에도 음악
전문가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서울대 국악과를 나온 작곡가가
그곳에 늘 참석을 하였다. 또한 작곡가인 그의 동생도 함께
있었다.
'이거 잘 못하다간 된통 욕 먹겠다!'
싶었지만 어쩌리. 틀리면 다시 배우면 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면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한 번 놓치게 되는데.
조그마한 단어장에 적은 가사를 꺼내들고 열심히 불렀다.
그것이 수요일 밤에 그에게 벌어진 상황이었다.
진대위는 일주일에 한 번 그가 진정으로 음악 선생님으로 모시는
분에게 가서 노래 공부를 한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신데
무료로 20여명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노래 공부를 시켜주시는
고마우신 분이다. 무료라고 해서 대충 가르치신다고 보면
그건 오산이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시는 70대 후반의
이 선생님을 대위는 늘 생각하면서 산다.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고 계시는 선생님이 만족하실 만한 수준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그는 대가들의 노래를 듣고 또 듣고, 가사를
외우고 또 외우고, 길에서나 전철 속에서나 완전히 미친 놈이 되어
끊임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 일주일에 한 곡씩
대위 스스로가 정해서 그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오페라 아리아, 이태리 가곡, 우리 가곡 할 것 없이 끊임없이
곡을 바꿔가며 부른 것이다. 심지어는 그 어렵다는 바그너 오페라
아리아들까지 불러대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었다. 이 아름다운
목소리와 너무나도 세심한 자상함과 예의를 늘 갖추시는 선생님
모임에 나가자 갑자기 새로운 발표를 하셨다.
'이제부터 네 째주에는
전체적으로 함께 노래부르는 것은 없애고
자유로이 나와 몇 곡이든지 솔로로 부르기로 합시다!'
부를 것을 한 곡 밖에 준비하지 않았지만 대위는 그러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더 이상 부르지 않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면 그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나가서
노래할 마음이 있었다. ideale를 나가 부르자 선생님께서
세심하게 지도를 해 주셨다. 다 끝나자 '이따가 또 나와 노래해요!'
하신다. 단 조건은 앞에 부른 곡은 다시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 다음 곡을 무엇으로 선정할까 고심했다. 우리 가곡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발음이 잘 붙지는 않지만 남들
앞에서 불러보면 다음에 공부하기에 쉬울 수 있는 이태리 가곡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짧은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 토스티의
'La Serenata'였다. 그 곡을 나가 부른 뒤 '아마 오늘은 이것이
마지막일 거야!'하고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노래들을 듣자니
사람들이 망설이는 틈이 생겼다.
'에이, 모르겠다. 또 나가서 부르자!
비록 욕을 바가지로 들을 망정....
이미 노래에 완전히 빠져 든 미치광이인데 뭘 따지랴....'
조두남님 곡의 '산'을 불렀다. 이 모임에서 우리 가곡을
부른 것이 그에게는 상당히 오래 되었다. 주로 오페라
아리아들을 부르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이것이 그 주 목요일에 대위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노래를 하다 보면 입소문이 나는가 보다.
직접 대위의 노래를 들어본 이들 중에 어느 단체를
이끄는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대위에게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자기 행사에 와서 노래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대위는 시간이 없었기에 번번히 거절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 언젠가 한 번은 초대에 응해 주어야지!'
하며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문학상 시상식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이 여성에게서 다시 부탁이 들어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이다
'이번에 가서 노래해 주자!'하고 결정을 하고 그 자리에 갔다.
처음에는 '산'과 '황혼의 노래'를 부르려 하다가 반주도 없고 해서
'황혼의 노래'를 '물망초 꿈꾸는...'으로 시작되는 '님이 오시는지'로
바꾸었다. '산'도 2절까지 있고, '님이 오시는지'도 2절까지 있는
그런대로 짧은 곡들이었다. 행사장은 음향이 별로 좋지 않았다.
전혀 울릴 음향적 환경이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 경우 마이크를
사용해야 겠지만 대위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힘들더라도
마이크 없이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약 1백50명 정도의 청중이
들어차 있었다. '산'을 무반주로 힘겹게 부르고, '님이 오시는지'를
부르기 위해 호흡을 조절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님이 오시는지'의
가라오케 반주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편 기쁘기도 했지만 대위는
당황스런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행사 시작하기 전에 그런 반주를
틀자는 약속도 없었고, 노래방 반주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미 틀어 놓은 것을 어쩌리!
한, 두 군데 틀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나마 반주가 있는 것이
그를 덜 힘들게 했다.
이것이 금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토요일에 그는 또 다른 모임에 나가 뒷풀이 자리에서
소프라노 한 사람과 둘이서 2중창을 했다. '황혼의 노래'와
'목련화'를 둘이 함께 불렀다. 둘이 부르자니 솔로로 하는
것보다는 힘이 덜 들었고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것은 토요일 밤의 상황이었다.
대위는 이렇게 해서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내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여러 다른 상황 아래서 노래를 했다.
일요일에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했다.
그리고 그 전 주 토요일에는 동작현충원에 있는
이승만대통령 묘소 앞에서 돌아가신 대통령을 위해
'목련화'와 '청산에 살리라'를 친구와 함께 둘이서 노래했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고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고로 토요일-일-월-화-수-목-금-토-일요일 이렇게 9일 내내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다. 솔로로, 이중창으로,
합창으로.... 다시 월요일에는 열 명정도의 사람들과 함께
남들 앞에서 '사월의 노래'를 외워서 부르게 될 것이다.
10일 내내 크고 작은 무대에서 계속 노래를 하다보니 대위가
얻은 것이 있었다.
'무대 공포증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대위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다시 부탁을 받으면
작고, 큰 무대를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할 것이다.
연습으로 매우 유익하기 때문이다.
명창이 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허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즐거움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을 가진 이에게는...
히말라야의 꼭대기에 가는 이가 과연 몇인가.
중도에서 죽는 자가 많지만
여전히 그 꼭대기에 기를 쓰고 오르고 있다.
명창의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미친 사람들이 있다.
그들로 인해 성악은 보다 높은 산의 정상을
유지할 수 있고, 또한 그 정상을 밟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잠 못이루며 고민하고 있다.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비록 도전하다 피 터져 죽을망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