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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푸코의 팬옵티콘[panopticon]

별헤아림 4 1201
미셀 푸코의 팬옵티콘[panopticon]
권선옥(sun)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대학 졸업하고, 안동에서 남자고등학교에서 3년 근무한 후, 그 다음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은 똥기저귀 빨고(그때는 시대상으로 일회용 기저귀는 외출용으로만 사용됨.) 설거지하고 밥하고 댑따 고생하면서 사느라고 집밖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심지어 손에 펜 쉬는 것조차 잊어 버릴 정도였습니다.
저는 4층에 살고 있었습니다만(지금도), 서울에서 내려와 2층과 3층에 살던 교수 부인들은 남편들이 출근하고 나면 꽤나 어울리는 눈치였습니다. 나름대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관계로 오전에는 그런대로 여유로운 시간들이 있는 게지요. 그러다 드디어 둘째 출산 관계로 한 달 늦게 입주하여 장독립형으로 살고 있는 저의 근거지까지 진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딩동딩동.
“네~!‘
“놀러 가도 되요?”
“들어오세요?”

한마디로 배운 인간들은 왠지 조심스럽고 피곤합니다. 저는 생각 않고 대답할 수 있는 단순한 질문이 좋은데, 질문을 해도 꼭 생각을 해야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만 골라서 합니다.
가령 "포도 한 상자 샀는데 좀 먹어 보세요." 하면서 포도 두세 송이 들고 오면, 생각 않고 “네!”하고 그냥 받아서 먹으면 되는데, 예를 들면 “이러저러해서 이랬는데....., 벼리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하는 식의 꼭 사고력을 요하는 고런 질문들만 합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 키우느라 골몰하던 저는 멍하니 있다가는, 대답을 하긴 해야 하는데 안 쓰던 머리 굴릴려면 한 마디로 엄청 피곤합니다.
서울 개포동에서 가정 선생을 했다는 그녀는 넘치는 열정에 남는 시간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다 관심의 범주를 사회쪽으로 확장시킨 탓인지 슬슬 동네의 소식들을 물어다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얘기인즉, 1층에 나름 세련된 아가씨가 혼자 사는데, 공부하러 가는 걸 본적이 없는데 H대학 1년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했습니다. 1990년, 승용차가 차츰 늘어나기 시작할 무렵 자동차에 사람들의 관심이 지극히 높았던 시절입니다. 비싼 승용차에다 젊은 운전기사까지 딸린 방문객이 가끔 보였었는데, 그녀의 후원자라고 했습니다. 그 젊은 운전기사는 처음엔 주인님이 나올 때까지 아파트 모퉁이에서 기다리느라고 자다가 담배를 피우다 그래도 지루하면 등을 돌려 을 멍하니 화단을 바라보곤 했었는데, 요즘은 심심해서 놀러 나간 자기 아이들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면서 너무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러다 중후한 외모의 점잖은 방문객이 어느 한여름, 땡볕에 운전기사도 없이 혼자서 수박 한 덩이를 사들고 걸어오는데, 절름발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절뚝거리면서 혼자서 수박을 사들고 오는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는 것이 두 번째 뉴스였습니다.

나이가 스물 두셋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대학1년생이라더니,학교는 다니는 것도 않더니만 어느 날 자기보다 나이가 아래로 보이는 남녀 대학생들을 떼거리로 초대한 걸로 봐서 학교에 다니긴 다니나 보다 했습니다.

봄에 모두들 입주를 해서 가을이 왔습니다. 수다 아줌마들의 물고 온 세 번째 뉴스는 1층 아가씨에게 젊은 애인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키도 크고 얼마나 멋있게 생겼는지 영화배우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아파트의 제일 안쪽인 우리 통로에 초등학생만 있고 중고등학생이 없는 것이 그나마 아이들 교육상 다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가 아마 초겨울이었나 봅니다..
저는 아이들 재워 놓고 늦은 시간에 베란다에서 빨래를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넋 놓고, 무념무상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것이 저의 취미입니다. 아마 밤 11시 쯤 되었나 봅니다. 빨래를 하는데 베란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내다보았습니다.
아파트 마당에서는 두 청춘남녀를 주연으로 한 말하자면 실시간 실물 동영상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4층에서 내려다보는 관람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 했습니다. 서로 손을 흔들면서 뭐라고 하면서 아쉬운 듯, 몇 발자국 멀어지는가 헸는데 다시 주위를 한 번 둘러 보고는 재빨리 다가가면서 포옹하는 키스신이야말로 리얼 했었습니다.

요즘은 서울 앞산 타워에 가만 더러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1990년 당시로는 그리 흔한 장면은 아니었습니다.
업소에 나가는 아가씨가 대학을 다녔는지, 대학생이 업소엘 나갔는지는 본업을 알 수는 없지만 그녀는 아마 가을부터는 학교를 다니지 않은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이듬해 2월 그녀는 앞산 밑에 있는 더 비싼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했습니다. 이사하는 날 저도 왠지 호기심이 생겨서 바깥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쓸 만한 한두 개의 가구를 버리고 가는 그녀의 이삿짐 중에는 유독 양주병들이 많았다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문득 제르미 벤담(Jeremy Bentham)이 1791년 처음으로 설계하였다는 팬옵티콘[원형 감옥-panopticon]에서 시작하여 미셀 푸코의 저서인 <감시와 처벌>에서 현대 정보화 사회로 비유된 팬옵티콘[panopticon] 이 생각납니다.
중세의 지하감옥은 보이지 않게 할 목적으로 지하에 만들어진 감옥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팬옵티콘[panopticon]’은 안에 있는 죄수들에게는 바깥이 보이지 않지만, 바깥에서는 죄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조망해 볼 수 있는 점검 장치입니다. 때문에 죄수는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감옥 밖의 더 넓은 감시망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2008. 6. 4.>
4 Comments
노을 2008.06.05 13:23  
제목만 보고 난해할 것 같아 안 읽어 봤는데 안 읽어봤으면 큰일 날뻔 했어요.
별헤아림님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상대적으로 강해 보이던 눈빛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안 그래도 이런 저런 카페에 회원으로 있으면서
더러 글도 올리고 댓글도 달다 보니 팔자에 없는 신경이 쓰이기도 하더군요.
누군가 말없이 보고 있다는 느낌,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의적 해석을 할지도 모른다는 기우...
별로 관심 안 가져주면 또 은근히 섭섭하고...
참 쓸데없는 걱정이지요. 그런 게 걱정되면 국으로 잠자코 있으면 될 것을...
감옥 밖의 더 넓은 감시망, 지하 감옥보다 더 무섭네요.
별헤아림 2008.06.05 14:23  
노을님.
노을님의 아우님께서도 잘 계시겠지요?
제가 무표정하게 있는 것은
얼굴에 주름살이 덜 생기게 하려는 의도에서~~!

사이트 회원으로 활동하시는 분
작시자, 작곡자, 연주가 그 외 모든 분들이
스스로에게 반문하여 거리낌이 없이 당당하다면
결코 원형 감옥 같은 정보망 속의  죄수로 비유될 수가 없겠습니다.

오히려
맑은 의식에서 나오는 열정은
보이지 않는 다수를 감동시킬 수도 있으며,
보여 주는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을님처럼 밝은 빛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자 연 2008.06.10 08:04  
아마도 별님 눈빛 안좋아 할수없다

가문의 기품지킴 우러남 천품이리

여심에 은근 섭함야 그맞이라 하더라



창살없는 감옥이 더무섭단
소문이 맞나
궁금합니다

고맙습니다...
별헤아림 2008.06.10 19:16  
자연님
'창살 없는 감옥' 많이 듣던 구절임에도 왠지 들으면
그 뒤에는 재미있는 얘기들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았지요.^^*

CCTV와 인터넷 등의 발달로 인하여 정보화 사회로 가는 현대 사회를
때로는 감시 당하는 감옥으로, 때로는 무대로 작용하여,
개인으로서는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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