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귀머거리가 된다
- 때론 귀머거리가 된다 - 이훈자
자물통에 입 맞추니 기다렸다는 듯 '딸깍' 혀를 내민다
홍조 띤 얼굴로 들어오는 남편을 맞는 아이들
굴렁쇠처럼 굴러나와 탁구공 튀듯 사라지고
전기밥통에선 증기기관차인양 '삐이...' 김 빼면서
밥 해놨으니 먹으란다
열 달 지나도 해산하지 못한 남편 배가 알아들었는지
입맛 다시며 함께 먹자는 표정을 짓는다
툭망스럽게 "잘 거면서 무슨 밥이야,우유에 청국장이나 타먹고 자!"
냉장고 문 여는 부인에게 살갑게 다가서자
안주가 발효됐는지 엮겨운 냄새가 쏟아져 나온다
"왜 그래" 부인 오발탄을 맞고 격분한 남편
철퍼덕 주저앉아 할 말 못할 말 못 가리는 아이가되어
오징어 씹듯 아내를 세 치 혀로 잘근잘근 씹는다
남편은 햇볕에 뽑아논 푸성귀처럼 늘어지고
아내는 못 들은 척 귀머거리 되어
총각무 다듬으려니 자기에게 화풀이 하라 몸을 맡긴다
잠시 후 코고는 소리
아침햇살 퍼지듯 안방 넘어 거실로 퍼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