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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감독이 졸아도 되는 아이들 - 생각 여덟 -

별헤아림 6 1178
시험 감독이 졸아도 되는 아이들
권선옥(별헤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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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4일.
바로 옆에 신축된 도원고등학교에 입학 예정자들의 시험 감독을 나갔다.
내리 다섯 시간 계속해서 들어가니, 머리가 띵하고 잠이 온다.
난 머리가 발달되지 않아서 단순노동이 적성에 딱 맞다고 큰소릴 쳤었는데...
신설학교라 선생님께 수당도 주고, 학생들에겐 빵과 우유도 나누어 주었다.
4교시. 16반(특별반)엘 들어갔다. 고사장은 소회의실.
시험지를 들고 문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 큰소리로 누군가
<안녕하세요.>한다.
짧은 순간 좀 놀랐다. 하지만 분위기에 맞게
<응. 안녕-.>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수험번호만 제대로 마킹한 후, 정답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왜냐하면 그들은 늘 하던 대로 문제는 읽지 않는다.
읽어도 이해하지 못 한다. 정답지에 무작위로 아무 번호나 찍는다.
아니면 한 번호로 통일한다. 5분이면 시험은 끝난다.
나머지 40분은 시간이 보초를 선다.
이 아이들은 부정행위 감시하는 곳에서는 벗어난 지역에서 살고 있다.
나는 결석한 아이의 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졸았다.
그러다 바깥을 내다보며 남은 영어시험지의 여백에 <갈대꽃>이 어쩌고 하며 끌쩍거려 보았다.
5교시에 감독을 한 젊은 아가씨 교사가 본부에 들어서며,
<아이들이 불쌍해 죽겠다.>라고 한다.
교탁 바로 앞에서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시간 내내 시험지를 놓지 않던 남학생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죽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옆 학생이 하는 말,
<선생님 -! 얜 원래 참 똑똑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교통사고가 나서 이렇게 되었어요.>했다는 것이다.
부모님들의 아픔이 어떠할까? 마음이 아프다. 이 아이들은 그래도 신체만은 자유롭다.
혼자서는 먹지도 못 하고 화장실도 못 가는 아이들도 많다. 아니 어른들도 계신다.
 늙으신 어머니가 중년의 장애 자식을 두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맘 놓고 죽지도 못 한다고...... .
 평생소원이 저 자식이 혼자서 밥 먹을 수 있고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만 있다면
 편안히 죽을 수 있겠는데 하시며 TV에서 한숨지으시던 모습이 스친다.
 그래서 가끔은 아들딸에게 공부 못 한다고 구박하고 큰소리를 내곤 하는 나였지만
오늘은 건강하고 착한 우리 아이들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갈 대 꽃
                            권 선 옥 (별헤아림)

공사음이 간간이 들리는
학교에서
지루하다 못해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본다.

벽을 따라
올려다보면
숲밭못 둑이 보인다.
올려다봐서 더 높아 보이는 둑

허전한 마른 가지 위에 까치집 하나
기나긴 겨울을 옆에서 지키다
스치는 봄볕에 졸고 있다.

긴 둑엔 갈대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못 둑을 걸어가는
느긋한 그들의 얘기마저
하얗게 말라
날리고 있다.
떨어져 씨앗으로
묻히고 있다.

갈대꽃처럼...... .
                                        < 2003. 2. 14. >
6 Comments
평화 2003.02.25 15:30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 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그래도 소담스레
웃을 수 있는 여유는
그런 사랑에 쓰여진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 '시'는 배영희 엘리사벳이라는 분이 지은 '시 입니다.
이 분은 19살에 뇌막염을 앓고나서 앞 못보는 전신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12월 10일 설흔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몇년전 제가 음성 꽃동네엘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침대에 누워있는 엘리사벳의 모습을 보았지요.
그런데 이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계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쓰러질 정도의 휘청거리는 갈대도
함부로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촛불이 밝지
않다고해서 쉬이 꺼버리시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별헤아림님께서 보신 장애아이들도 언젠가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알고 그들 나름대로의 행복한삶을 누릴수 있게되기를 바랍니다.

갑순이 2003.02.26 02:56  
  행복의 잣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맑은눈동자 2003.02.26 08:53  
  쓸모없는 잡초라 할지라도  함부로 꺽어서는 안된다는 글귀가 생각나는군요
사람마다 잣대는 틀리지만  살아 숨쉴수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바다 2003.02.26 16:03  
  그 아이들의 시험 감독은  하느님이 하셨을 것입니다.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서 시험을 보도록 허락하셨지만
그 아이들은 정직을 택한 거 같습니다.
실력은 덤으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소렌 2003.02.28 01:10  
  오늘 서천의 갈대밭을 다녀 왔지요.
숨어 하늘을 실컷 보기엔 딱이더라구요.
우우~~
별헤아림 2003.03.07 23:59  
  <갈대밭에서 숨어서 보는 하늘?>
어떤 색깔을 가지고 그 하늘은 우리에게 미소를 보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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