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감독이 졸아도 되는 아이들 - 생각 여덟 -
시험 감독이 졸아도 되는 아이들
권선옥(별헤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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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4일.
바로 옆에 신축된 도원고등학교에 입학 예정자들의 시험 감독을 나갔다.
내리 다섯 시간 계속해서 들어가니, 머리가 띵하고 잠이 온다.
난 머리가 발달되지 않아서 단순노동이 적성에 딱 맞다고 큰소릴 쳤었는데...
신설학교라 선생님께 수당도 주고, 학생들에겐 빵과 우유도 나누어 주었다.
4교시. 16반(특별반)엘 들어갔다. 고사장은 소회의실.
시험지를 들고 문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 큰소리로 누군가
<안녕하세요.>한다.
짧은 순간 좀 놀랐다. 하지만 분위기에 맞게
<응. 안녕-.>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수험번호만 제대로 마킹한 후, 정답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왜냐하면 그들은 늘 하던 대로 문제는 읽지 않는다.
읽어도 이해하지 못 한다. 정답지에 무작위로 아무 번호나 찍는다.
아니면 한 번호로 통일한다. 5분이면 시험은 끝난다.
나머지 40분은 시간이 보초를 선다.
이 아이들은 부정행위 감시하는 곳에서는 벗어난 지역에서 살고 있다.
나는 결석한 아이의 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졸았다.
그러다 바깥을 내다보며 남은 영어시험지의 여백에 <갈대꽃>이 어쩌고 하며 끌쩍거려 보았다.
5교시에 감독을 한 젊은 아가씨 교사가 본부에 들어서며,
<아이들이 불쌍해 죽겠다.>라고 한다.
교탁 바로 앞에서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시간 내내 시험지를 놓지 않던 남학생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죽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옆 학생이 하는 말,
<선생님 -! 얜 원래 참 똑똑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교통사고가 나서 이렇게 되었어요.>했다는 것이다.
부모님들의 아픔이 어떠할까? 마음이 아프다. 이 아이들은 그래도 신체만은 자유롭다.
혼자서는 먹지도 못 하고 화장실도 못 가는 아이들도 많다. 아니 어른들도 계신다.
늙으신 어머니가 중년의 장애 자식을 두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맘 놓고 죽지도 못 한다고...... .
평생소원이 저 자식이 혼자서 밥 먹을 수 있고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만 있다면
편안히 죽을 수 있겠는데 하시며 TV에서 한숨지으시던 모습이 스친다.
그래서 가끔은 아들딸에게 공부 못 한다고 구박하고 큰소리를 내곤 하는 나였지만
오늘은 건강하고 착한 우리 아이들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갈 대 꽃
권 선 옥 (별헤아림)
공사음이 간간이 들리는
학교에서
지루하다 못해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본다.
벽을 따라
올려다보면
숲밭못 둑이 보인다.
올려다봐서 더 높아 보이는 둑
허전한 마른 가지 위에 까치집 하나
기나긴 겨울을 옆에서 지키다
스치는 봄볕에 졸고 있다.
긴 둑엔 갈대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못 둑을 걸어가는
느긋한 그들의 얘기마저
하얗게 말라
날리고 있다.
떨어져 씨앗으로
묻히고 있다.
갈대꽃처럼...... .
< 2003. 2. 14. >
권선옥(별헤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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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4일.
바로 옆에 신축된 도원고등학교에 입학 예정자들의 시험 감독을 나갔다.
내리 다섯 시간 계속해서 들어가니, 머리가 띵하고 잠이 온다.
난 머리가 발달되지 않아서 단순노동이 적성에 딱 맞다고 큰소릴 쳤었는데...
신설학교라 선생님께 수당도 주고, 학생들에겐 빵과 우유도 나누어 주었다.
4교시. 16반(특별반)엘 들어갔다. 고사장은 소회의실.
시험지를 들고 문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 큰소리로 누군가
<안녕하세요.>한다.
짧은 순간 좀 놀랐다. 하지만 분위기에 맞게
<응. 안녕-.>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수험번호만 제대로 마킹한 후, 정답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왜냐하면 그들은 늘 하던 대로 문제는 읽지 않는다.
읽어도 이해하지 못 한다. 정답지에 무작위로 아무 번호나 찍는다.
아니면 한 번호로 통일한다. 5분이면 시험은 끝난다.
나머지 40분은 시간이 보초를 선다.
이 아이들은 부정행위 감시하는 곳에서는 벗어난 지역에서 살고 있다.
나는 결석한 아이의 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졸았다.
그러다 바깥을 내다보며 남은 영어시험지의 여백에 <갈대꽃>이 어쩌고 하며 끌쩍거려 보았다.
5교시에 감독을 한 젊은 아가씨 교사가 본부에 들어서며,
<아이들이 불쌍해 죽겠다.>라고 한다.
교탁 바로 앞에서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시간 내내 시험지를 놓지 않던 남학생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죽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옆 학생이 하는 말,
<선생님 -! 얜 원래 참 똑똑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교통사고가 나서 이렇게 되었어요.>했다는 것이다.
부모님들의 아픔이 어떠할까? 마음이 아프다. 이 아이들은 그래도 신체만은 자유롭다.
혼자서는 먹지도 못 하고 화장실도 못 가는 아이들도 많다. 아니 어른들도 계신다.
늙으신 어머니가 중년의 장애 자식을 두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맘 놓고 죽지도 못 한다고...... .
평생소원이 저 자식이 혼자서 밥 먹을 수 있고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만 있다면
편안히 죽을 수 있겠는데 하시며 TV에서 한숨지으시던 모습이 스친다.
그래서 가끔은 아들딸에게 공부 못 한다고 구박하고 큰소리를 내곤 하는 나였지만
오늘은 건강하고 착한 우리 아이들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갈 대 꽃
권 선 옥 (별헤아림)
공사음이 간간이 들리는
학교에서
지루하다 못해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본다.
벽을 따라
올려다보면
숲밭못 둑이 보인다.
올려다봐서 더 높아 보이는 둑
허전한 마른 가지 위에 까치집 하나
기나긴 겨울을 옆에서 지키다
스치는 봄볕에 졸고 있다.
긴 둑엔 갈대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못 둑을 걸어가는
느긋한 그들의 얘기마저
하얗게 말라
날리고 있다.
떨어져 씨앗으로
묻히고 있다.
갈대꽃처럼...... .
< 2003. 2.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