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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세는 나이 日齡

鄭宇東 0 1440
나는 오늘 1972년 6월 1일 현재로 이만 구백 서른 세날을 산다.
이것이 나의 일령(日齡)이다.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사람들이 해로 나이 세는 것은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의 한살이를
더욱 짧게 하는 요인 같아서 불만이었다. 이런 나에게 카프카가 그를 따르던 문학청년 야누후
에게 “이제 우리는 해로 사는 것이 아니다. 달로 사는 것도 아니다. 주 날 시간 분으로 사는 것
마저도 아니다. 초로도 살고 있지 못하다. 그저 순간에 살고 있을 뿐이다“고 한 말이 영감처
럼 나에게 비쳐왔다.

오늘날 학문 문명의 발달은 온갖 사상(事象)에 대한 단위를 극대 또는 극소화하여 우리들의
우주는 불가 해의 무한이라고 하여도 좋을 만큼 그 개념의 내포(內包)를 단순화 시키면서
외연(外延)을 꾸준히 넓혀 온 것이다.
저간의 사정은 때매김의 단위에 있어서도, 종교나 거시세계를 운위할 때의 영원 또는 천문
학적인 시간과, 양자세계나 미시세계를 논의할 때의 순간 찰나가 그러하다.
우리가 순간에 산다고 한 카프카의 말은 저러한 미시, 거시세계의 발견에 의한 인간사고
영역의 확대와 핵무기의 가공할 살인력의 위협하에 사는 현대인이 갖는 급박한 정신상황을
상징하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급격히 변하고 있는 세정의 템포에 맞춘 명민한 판단
과 신속한 행동이 요구됨을 깨우쳐 주는 말이겠다.

그런데 우리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해로서 나이를 먹고, 달로 봉급을 받고, 주로 휴일을 즐기
며, 날로 변제일을 삼고, 시로 만날 약속을 하고, 분으로 기차가 내닫게 하는 정도가 고작이
었다. 그러다가 우주시대에 들어 투 원하고 카운트 다운하여 우주비행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도 순간을 사는 것은 일부 학자들의 전유 물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순간에 사는 지혜는 아득한 옛날에 꽃피었으니 그것은 인류가 땅위에 발딛고 선이래
헤아릴수없 이 많은 남녀의 애정을 나누는 불꽃튀기는 눈과 눈의 마주치는 순간들이었다.
이렇듯 순간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제 모습을 드러내어 짧고 급한 세상을 쨈새 있고 낭비
없이 살 것을 요구하지만 우리들은 구태의연히 너무도 게으른 삶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나 앞으로 맞을 새날에 대한 다짐과 계획을 세모나 정초까지 미루다가
해로 나이를 세는 것은 나에게는 못할 짓이다. 챙기지 않고 보내버린 삼백 예순 날은 고스란
히 손실이다. 왜 나이를 해로만 세어야 하는가? 법률문제라면 육법전서에 따라 해로 세어야
겠지만 그밖의 문제는 그것에 맞는 나이를 가져서 안 될리 없다. 나는 여기서 잠시 바이블에
서 아담이 구백 서른 살, 노아가 구백 쉰 살을 살았다 하는 것은 年아닌 매 계절이나 매 달로
계산한 나이는 아닐지? 하는 의문을 품는다. 수직사고에 수평사고를 가미할, 아니 후자를
전자에 우선 시켜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머리는 생각하는데 쓸 것이지 만 나쁜 머
리는 축구공으로 치고 차 날려버려도 좋지 않은가?  방향 전환 때 쓰이는 차의 방향지시기는
분류된그 명칭 때문에 절대로 조명이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버리지만 이것을 점등하면
역진할 때 후방을 비추어 주는 리어라이트의 구실을 거뜬히 해낸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겠다.
                                                   
나는 해로 나이를 세는 굼뜬 달팽이 셈본을 버리고 싶다. 달로 조차도 느림보의 셈본이다.
해와 달의 인지를 다한 역법에 의한 때매김은 인위적으로 더 나누어진 시, 분, 초의 단위들
과 더불어, 신이 해를 띄우고 지움으로서 때매김 하는 것에 미칠 바 못된다. 날은 자연의
기본적이면서 최선의 운율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신을 따르면서 자연의 운율에 조화되는
짜임새 있고 낭비가 없는 생활은 해로 보다, 달로 보다는 날로 나이를 세는것일 수밖에 없다.

옛날에 은 나라 탕왕은 그의 세숫대야에 盤銘(반명)으로 日新 <註> 이라 새겨놓고 날마다
구습의 나쁜 점을 버려 스스로를 새롭게 하며 끊임없이 덕을 닦아 진보하기를 힘쓴 나머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어진 임금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와 같이 日齡 쓰기를 권하면서 나와 우리 모두 日日新又日新 하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註 > : 大學에 湯之盤銘曰苟日新日日新又日新이라 한 글이 있다.



 ㅡ 19720601 ㅡ 韓一合纖 사보 제8면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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