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인에게 배우며
사마리아인에게 배우며
김형준
강도가 노상에서 나를 찔렀다.
나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저 멀리서 목사님께서 오시고 있다.
목청껏 큰소리로 외쳐댔다.
목사님, 저를 살려주세요.
119에 전화를 해주세요.
목사님이 내 옆에 와서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아니, 예배시간이 다 되었잖아!
미안해요, 교회에 가서 예배 인도해야 해요.'
전화 한 통화 해주시면 안되나.
피가 샘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정신이 조금씩 혼미해지고 있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서 대학교수님이 오신다.
교수님, 교수님! 저 좀 살려주세요.
강도 만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그 지적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동정이나 연민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미안해요. 나는 지금 수업이 있어요.
학생들이 내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가까운 약국에 가셔서 붕대를 사다 주시면 좋았을텐데.
하늘이시여! 저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귀어 왔던 부유한 친구가 걸어오고 있었다.
친구여, 내 사랑하는 친구여. 나를 좀 살려줘.
내가 이렇게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어.
그 친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누구세요. 날 아세요?
잘 사세요.
당신이나 잘 하시고.
사업가의 웃음을 웃으며 그도 내게서 멀어져 갔다.
신이시여! 저 죽어요. 살려주세요.
근사한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씩씩하게 걸어왔다.
아마도 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민중의 지팡이
정의의 사도
대한민국 경찰 간부
경찰이시여, 저를 살려주세요.
제발 병원에 데려가 주세요.
전 강도를 만나 죽어가고 있답니다.
역시 그 경찰간부는 베테랑답게 침착했다.
사건이 몇시에 발생했습니까?
범인의 인상착의는요?
제가 부하 직원 보내드릴 테니 자세히 설명하세요.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듯 태연히 내 곁을 지나갔다.
나는 거의 죽음에 다가 가고 있었다.
내가 의지하던 내가 믿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배반했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나의 종교 지도자도, 나의 친구도,
교육자도, 경찰도 위기에 처한 나를 모두 외면했다.
내 몸이 죽는 것보다 내 신뢰가 무너진 것이 더욱 슬펐다.
저기에서 얼굴이 시커먼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약간 무섭기도 하고, 기분 나쁘기도 했다.
동남아에서 왔을까, 아프리카에서 왔나, 아님 미국의 소수민족.
도저히 신뢰할 수 없었다. 우리 민족도 아니니까.
내 마음이 '대-한민국'을 외치려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살려달라고 외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민족인 그 존경받는 모든 이들이 지나쳐버렸다.
외국인이 그것도 얼굴이 까만 사람이 나를 도와주겠는가.
나는 이제 어떠한 희망도 품을 수 없었다.
드디어 죽음의 사자가 내 주위를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저승으로 가야할 때가 되었나 보다 하고 체념을 했다.
더 이상 여기에서 살면 뭐하리.
이젠 가리라.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이 세상이 싫다.
눈을 감았다. 두 손으로 찔린 옆구리를 감싸 안았다.
세상과 나 사이에 있는 문을 걸어 잠구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아, 그런데 그 까만 사람이 내게 급히 뛰어왔다.
쿵쿵대며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강도 당한, 부상 당한 나를 또 때리고 강도질할까 두려웠다.
죽음과 맞닥드린 순간에도 그러한 공포가 생겼다.
뭔가 말을 하려 했다.
아마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하고 있나보다.
잘 이해할 수가 없다. 무서웠다. 싫었다.
내가 자신을 이해 못하자 조용히 일어나 택시를 잡았다.
나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택시 뒷좌석에 태웠다.
나를 납치하려나 보다.
이젠 정말 죽었다.
내 수중에는 별로 돈이 되는 것도 없는데.
차라리 다 주고 싶었다.
내 친한 사람, 내가 믿는 사람들이 다 배신한 마당에,
다 죽어가는 마당에 무엇이 아깝겠는가.
나는 택시 안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같았다.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렸는데.
간호사의 말이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단다.
나를 데리고 온 까만 사람이 자신의 양복 상의로
칼에 찔린 피나는 옆구리를 막아주어서 살 수 있었단다.
그 허름한 차림의 외국인이 내 병원비를 다 내 주었단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전화번호도 남기지 않고.
혹시 병원비가 더 필요하면 자신이 나중에 와서 다 내주겠단다.
나는 두리번 거리며 그 사람을 찾았다.
내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 때 그가 나를 구했다.
내가 믿었던 모든 것들을 포기했을 때 그가 나를 안았다.
내가 나 자신조차도 신용할 수 없을 때 그가 나를 사랑해주었다.
나는 살아났다.
내가 신뢰할 수 없었던, 두려워 했던, 별로 좋아하지 않던
그 국적을 알 수 없는, 언어가 통하지 않던 그 외국인 근로자 덕분에.
그가 나의 믿음을 회복시켰다. 인간에 대한.
그가 나에게 사랑을 돌려주었다. 낯선 이에 대한 애정을.
그가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었다.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가 또 내게 환멸을, 불신을, 분노를 일으키는 일을 할 때
그 날 그가 나를 위해 몸소 보여준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의 행위를 생각한다.
나도 그 얼굴이 깜한 사마리아인처럼 살아야지.
조그만 것이라도 이웃에게, 남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내가 한 행위에 대해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내세우려 하지 말아야지.
조용히 숨어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바로 그것이 말도 통하지 않는 그 사마리아인이 내게 주고간 평생의 교훈이었다.
오늘도 나는 그 사마리아인을 닮으려 애쓰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다.
겉만 번드르르한, 겉만 인격자인양 치장한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 않고
비록 겉은 어눌하고, 순진하고, 어리석게 보이지만 마음이 따스한, 진실된
그러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다. 내게 다가온 그 착한 사마리아인 처럼
김형준
강도가 노상에서 나를 찔렀다.
나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저 멀리서 목사님께서 오시고 있다.
목청껏 큰소리로 외쳐댔다.
목사님, 저를 살려주세요.
119에 전화를 해주세요.
목사님이 내 옆에 와서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아니, 예배시간이 다 되었잖아!
미안해요, 교회에 가서 예배 인도해야 해요.'
전화 한 통화 해주시면 안되나.
피가 샘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정신이 조금씩 혼미해지고 있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서 대학교수님이 오신다.
교수님, 교수님! 저 좀 살려주세요.
강도 만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그 지적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동정이나 연민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미안해요. 나는 지금 수업이 있어요.
학생들이 내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가까운 약국에 가셔서 붕대를 사다 주시면 좋았을텐데.
하늘이시여! 저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귀어 왔던 부유한 친구가 걸어오고 있었다.
친구여, 내 사랑하는 친구여. 나를 좀 살려줘.
내가 이렇게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어.
그 친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누구세요. 날 아세요?
잘 사세요.
당신이나 잘 하시고.
사업가의 웃음을 웃으며 그도 내게서 멀어져 갔다.
신이시여! 저 죽어요. 살려주세요.
근사한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씩씩하게 걸어왔다.
아마도 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민중의 지팡이
정의의 사도
대한민국 경찰 간부
경찰이시여, 저를 살려주세요.
제발 병원에 데려가 주세요.
전 강도를 만나 죽어가고 있답니다.
역시 그 경찰간부는 베테랑답게 침착했다.
사건이 몇시에 발생했습니까?
범인의 인상착의는요?
제가 부하 직원 보내드릴 테니 자세히 설명하세요.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듯 태연히 내 곁을 지나갔다.
나는 거의 죽음에 다가 가고 있었다.
내가 의지하던 내가 믿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배반했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나의 종교 지도자도, 나의 친구도,
교육자도, 경찰도 위기에 처한 나를 모두 외면했다.
내 몸이 죽는 것보다 내 신뢰가 무너진 것이 더욱 슬펐다.
저기에서 얼굴이 시커먼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약간 무섭기도 하고, 기분 나쁘기도 했다.
동남아에서 왔을까, 아프리카에서 왔나, 아님 미국의 소수민족.
도저히 신뢰할 수 없었다. 우리 민족도 아니니까.
내 마음이 '대-한민국'을 외치려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살려달라고 외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민족인 그 존경받는 모든 이들이 지나쳐버렸다.
외국인이 그것도 얼굴이 까만 사람이 나를 도와주겠는가.
나는 이제 어떠한 희망도 품을 수 없었다.
드디어 죽음의 사자가 내 주위를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저승으로 가야할 때가 되었나 보다 하고 체념을 했다.
더 이상 여기에서 살면 뭐하리.
이젠 가리라.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이 세상이 싫다.
눈을 감았다. 두 손으로 찔린 옆구리를 감싸 안았다.
세상과 나 사이에 있는 문을 걸어 잠구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아, 그런데 그 까만 사람이 내게 급히 뛰어왔다.
쿵쿵대며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강도 당한, 부상 당한 나를 또 때리고 강도질할까 두려웠다.
죽음과 맞닥드린 순간에도 그러한 공포가 생겼다.
뭔가 말을 하려 했다.
아마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하고 있나보다.
잘 이해할 수가 없다. 무서웠다. 싫었다.
내가 자신을 이해 못하자 조용히 일어나 택시를 잡았다.
나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택시 뒷좌석에 태웠다.
나를 납치하려나 보다.
이젠 정말 죽었다.
내 수중에는 별로 돈이 되는 것도 없는데.
차라리 다 주고 싶었다.
내 친한 사람, 내가 믿는 사람들이 다 배신한 마당에,
다 죽어가는 마당에 무엇이 아깝겠는가.
나는 택시 안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같았다.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렸는데.
간호사의 말이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단다.
나를 데리고 온 까만 사람이 자신의 양복 상의로
칼에 찔린 피나는 옆구리를 막아주어서 살 수 있었단다.
그 허름한 차림의 외국인이 내 병원비를 다 내 주었단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전화번호도 남기지 않고.
혹시 병원비가 더 필요하면 자신이 나중에 와서 다 내주겠단다.
나는 두리번 거리며 그 사람을 찾았다.
내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 때 그가 나를 구했다.
내가 믿었던 모든 것들을 포기했을 때 그가 나를 안았다.
내가 나 자신조차도 신용할 수 없을 때 그가 나를 사랑해주었다.
나는 살아났다.
내가 신뢰할 수 없었던, 두려워 했던, 별로 좋아하지 않던
그 국적을 알 수 없는, 언어가 통하지 않던 그 외국인 근로자 덕분에.
그가 나의 믿음을 회복시켰다. 인간에 대한.
그가 나에게 사랑을 돌려주었다. 낯선 이에 대한 애정을.
그가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었다.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가 또 내게 환멸을, 불신을, 분노를 일으키는 일을 할 때
그 날 그가 나를 위해 몸소 보여준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의 행위를 생각한다.
나도 그 얼굴이 깜한 사마리아인처럼 살아야지.
조그만 것이라도 이웃에게, 남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내가 한 행위에 대해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내세우려 하지 말아야지.
조용히 숨어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바로 그것이 말도 통하지 않는 그 사마리아인이 내게 주고간 평생의 교훈이었다.
오늘도 나는 그 사마리아인을 닮으려 애쓰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다.
겉만 번드르르한, 겉만 인격자인양 치장한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 않고
비록 겉은 어눌하고, 순진하고, 어리석게 보이지만 마음이 따스한, 진실된
그러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다. 내게 다가온 그 착한 사마리아인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