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를 위한 노래
배신 만큼 사람을 격노케 하고 가슴 아프게 하는 것도 없다.
현대를 불신의 시대라 하고 그런 불신 때문에 늘 경계심을 가지고 살면서도 사람들은 가슴 아파한다.
역시 사람은 착한 것인가 보다. 착하기에 믿음을 주고 그 믿음에 대한 역 작용으로 배신이란 멍에를 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는 식으로 살아 간다는 것은 삶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세상은 믿고 사랑하고 살아가되 배신 없는 그런 삶이어야 한다.
나는 그를 그토록 사랑하건만 그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세상에 가장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 사랑이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최고의 선> 이요, 사회적으로 <공동의 선> 이며, 이간적으로 가장 값진 결실이겠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살면서 실감하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기는 커녕 이용하고 배신하기가 능사이다. 세상에 배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배신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왜 배신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나의 부족함은 무엇인가.
당신이 구름이라면 나는 호수의 물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대는 돌아서고 배신의 아픈 상처만이 나를 분노케 하는 것이다.
배신자여! 그대를 위하여 나는 무슨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중국 제나라의 재상 맹상군은 왕족 출신으로 특히 인재를 좋아했기 때문에 많은 식객들을 두고 있었다.
<사기> <맹상군 열전> 편에 나와있는 것을 보면 <식객 3천명> 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그는 많은 사람들을 아끼고 키워주곤 했었는데 그중 하나가 그를 모함해 재상 자리를 내놓게 만들었다.
그가 파면을 당하자 그 많던 식객들도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맹상군은 이들의 배신에 격노해 그의 곁을 떠난 사람은 다시 보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이때 풍환이란 사람이 그를 달래며 한 말이 명언이다.
"저자 거리를 보십시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물건이 있을 때 모여들고 없으면 떠나 버리고 맙니다. 떠나는 사람만을 야속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때 맹상군은 깨닫는 바가 있어 다시 예전처럼 식객들을
불러들이고 한결같이 대우를 했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해 줄 경우 답례를 기대하지 않는 쪽이 마음이 편하다.
그런가 하면 우리 주위에도 자신의 과도한 피해의식에서 자신이 얻은 작은 상처를 삭이지 못하고 끝내 상대의 목숨까지도 빼앗는 극도로 이기적인 행위를 찾아 볼 수도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너도 반듯이 나를 사랑해야 하는 법은 없다. 나는 그에게 바랄 것이 있어도 그가 내게 바랄 것이 없다면 그는 떠나려 할 수도 있다. 떠나는 이를 배신자라 부르지 말자.
사랑의 배신자에게는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자. 그도 사랑을 찾아 헤메다 사랑의 상처를 입고 또한 배신자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배신자에게도 배신하는 가책이 있고 아픔이 있게 마련이다. 배신의 댓가가 결코 좋을리는 없으리라.
배신을 당한 이들이여!
배신자를 위한 노래를 부르자.
배신을 당한 나의 마음은 참담한 밤과 같다.
밤이다.
이제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눈을 뜬다.
내 영혼이 눈을 뜬다.
눈뜬 영혼으로 밤을 보라.
이제 밤은 두렵지 않다.
배신자여, 아직은 용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대를 위해 노래를 부르리라.
지금부터 내 영혼이 화음을 이루고 아름다운 음율을 낳는 것을 이제 또 누군가가 듣게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