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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도 못 다듬는 여자

노을 8 1019
파주에 사시는 분이 어느 날 신문지에 무언가를 둘둘 말아서 주고 가셨다.
펼쳐보니 갓 캐어낸 냉이가 수북하다.
봄에 입맛 돋우라고 일부러 갖다 주셨는데 그 모양새를 보니 감사한 마음에 이어 한편 난감해진다.
아직 흙이 묻어있는 뿌리와 잡초까지 섞여 서로 얼크러져 있는 것이 짧은 시간에 다듬기 어려울 것 같아 한참을 드려다 보기만 하다가 다시 신문지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캐다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하면 얼른 손질해서 맛있게 먹어야 하는데 쭈그리고 앉아 다듬을 시간도 없고(물론 핑계다) 어떻게 해먹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아마 그분은 나라는 사람이 나물 하나 다듬지 못하는 여자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셨겠지. 아무래도 그 귀한 것을 냉장고 속에서 그냥 말려버리지 싶어 계속 마음이 켕겼다.
‘나, 누가 냉이를 캐다 주었는데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몰라 넣어두었어’
부끄러운 얘기지만 살림 잘하는 이웃에게 말했다.
‘그 이파리가 그 이파리 같아, 어디를 떼어내야 해?’
‘다듬을 것도 없어, 물에 넣고 휘휘 씻다가 떨어져 나간 것만 골라내면 돼’
‘뿌리는 어떻게 해? 잘라 내?’
아아! 이런... 스스로가 한심하다.
‘가져와, 내가 만들어 줄게’ 안 되겠다 싶었나보다.
때를 놓칠 새라 나는 냉이뭉치를 얼른 그녀에게 주었다.
다음날 그녀가 다녀가라 한다. 주방 싱크대 위에 갓 삶아낸 냉이가
언제 그렇게 얼크러져 잡스러웠느냐 싶게 깨끗한 푸른빛을 띠고 소담하게 담겨져 있다.
큰 대접에 옮겨 담더니 그녀는 된장과 갖은 양념을 넣고 조무락조무락 무치기 시작했다.
감기 때문에 둔해진 후각에도 구수하고 향긋한 냄새가 느껴졌다.
‘냉이로 국만 끓이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무쳐서 나물로 먹는 게 훨씬 맛있네’
간을 보면서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수다가 저절로 늘었다.
나물 반찬 해서 밥까지 얻어먹고 게다가 따로 싸주는 것도 챙겨서 다음날까지 잘 먹었다.
순전히 남의 덕에 봄의 미각을 맛보게 된 것이다.
오랜 직장생활에 딱히 챙겨줄 사람이 없다보니 편하게만 살던 버릇이 들어
하기 쉬운 음식만 해 먹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다듬고 손이 많이 가는 재료는 으레 제쳐놓거나 먹고 싶어도 참았다. 
그러나 천성적인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유혹 당하는 것이 있다.
통통한 연초록 연한 잎이 모여서 이룬 조그만 떨기들, 바로 돗나물이다.
뿌리만 살짝 손질해 물에 씻어 건져놓았다가 된장 양념을 해도 좋고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그 또한 별미다. 그 맛으로 치면 가히 ‘봄을 먹는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요즘은 제철 아닌데도 하우스 재배가 많아 수시로 봄나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자연의 때에 땅기운, 봄기운 받아 순환의 체액이 제대로 오른 나물이라야
비로소 봄나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올봄엔 나도 게으름을 털고 기지개를 한껏 켠 다음 가까운 들로 흙냄새 맡으며
진짜 봄나물을 캐러 가보고 싶다. 
'푸른 잔디 풀 위로 봄바람은 불고
아지랑이 잔잔히 끼인 어떤날'  콧노래라도 부르면서....


8 Comments
박성숙 2006.03.31 18:46  
  ㅎㅎ 어쩜 나랑 그리 비슷한지..
나도 하기 쉬운 것만 대강 해 먹고 살거든요
얼굴 이쁜 마누라보다 음식솜씨 좋은 마누라랑
사는 남편이 행복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울 남편은 불쌍한 사람 ㅎㅎㅎㅎ
김형준 2006.03.31 19:09  
  아침에 쑥국을 먹느라니 봄과 내가 하나가 되었어요.
개나리와 철쭉이랑 목련을 보노라니 나도 꽃이 되었어요.
화창한 봄날씨에 따스한 봄바람과 산보하니 자연이 되었어요.
살짝 대친 냉이무침에 초고추장.... 음, 맛있어, 정말 맛있어.
어디로 가실까요. 봄을 캐러. 봄 캐어 먹고, 여름으로 가는
전령이 되실까요.
바다 2006.03.31 22:24  
  노을님!
우리 같이 냉이 캐러 갑시다. ㅎ ㅎ
냉이를 캐보려고 집 주위를 돌아다녔는데
 몇 포기 없어서 그냥 쑥을 캤어요.
그리고 된장을 풀고 반지락을 넣어 맛있게 끓여 먹었지요 ㅎ ㅎ.

잘 지내시지요?
유랑인 2006.04.01 11:22  
  여인네들의 봄이야기 ~~~  구수하고 향긋합니다.  ㅎㅎ
규방아씨(민수욱) 2006.04.01 16:34  
  지금은 쑥이 좋아요 쑥을 뜯어다가 쌀가루묻혀 범벅해먹으면 일품이죠..범벅에 볶은 콩가루 묻혀서 먹으면 영양만점이라네요,,,ㅎㅎㅎ
김메리 2006.04.02 23:37  
  노을님~울집주위에 냉이 천지에요
참냉이랑 황새냉이...
냉이를 먹으면 간에 좋대요 고혈압에두 좋대죠 아마~~
근데 냉이 아닌게 꼭 냉이같은게 있대요
그래서 냉이캐려면 머리에 쥐나요
서들비 2006.04.04 12:20  
  노을님 옆집으로 이사가야지.......  ^^*
노을 2006.04.04 18:27  
  아래서부터 인사 시이작!
1.서들비님 왜요? 냉이 다듬어 주실라우?
2.메리님, 냉이가 이름이 그리도 많아요? 냉이 많이 캐서 유랑인 좀 주  시면 어떠하올지요.
3. 규방아씨님, 흙과 더불어 사시는 아씨님 보시기에 우습지요? 제가 그렇게 많이 모자르답니다. 쑥범벅 너무 먹고자픈디...
4. 유랑인, 내가 메리님한테 부탁했으니 올봄 냉이좀 자셔보시게나.
5. 바다님, 뵌지 오래 된 듯 합니다. 어제 무슨 공부하면서 '어부가 놓쳐버린 바다'라는 표현을 보고 바다님 생각했습니다. 4월엔 만날 수 있을지요.
6. 김형준님 영어로 댓글 안 달아주시어 천만다행입니다. ㅎㅎㅎ  나물 이야기는  절대로 국산이어야 하니 말입니다. 늘 열정적인 모습 보기 좋습니다.
7. 박성숙님, 설마 저같으려구요. 그리 생각하면서도 저같은 분이 또 있다니 조금 안심이 됩니다. 여자다운 일에는 젬병이라서요. 저는 저 때문에 불쌍해질 사람이 없어 참 다행이랍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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