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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회상.

권혁민 4 724
나는 생전에 할아버지를 직접 뵌 적이 없다.
그분이 너무 일찍 저 세상으로 돌아 가셨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가족사진만 모아 놓은 앨범에서 겨우 몇장의 흑백사진으로만 그분을 만날 수 있었다.

외소한 키에 검게 탄 얼굴.
흰 고의적삼을 둘둘 말아서 집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속에 그분은 그렇게 서 계셨다.

웃는 인상도 아니시고 그렇다고 인상을 찌그리시지 않으시고
무표정한 얼굴로 광대뼈가 유난히 높게 보여서 첫눈에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왜 이리 일찍 돌아 가셨을까?

아버지까지 일찍 돌아가시고 난 어머니로부터 할아버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대충 듣게 되는데....

그분은 소문난 동네 소리꾼이라고 한다.
그것도 꽃가마위에 올라타서 망자의 저승길을 편히 가라고 노래하고

꽃상여를 매고가는 장정들이 너무 힘들지 않게
혹은 유족들의 슬픔을 더 구구절절 자극하기도 하여 답답한 가슴의 맺힌 타래를 풀어주고

앞으로 살아 갈 일에 대한 막막한 것도 생전에 못다한 효도에 대한 한과 설움의 눈물보따리를 대신 풀어주고 고인을 먼저 보낸 안타까움을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넘아 갈 듯 애절하게 불러주시고 막걸리 실컷 얻어 마시고 돼지고기 안주 맘껏 얻어 드시고

기분 좋게 비틀비틀 팔자걸음으로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 오시다가 그만 다리를 헛디뎌서 다리 밑으로 낙상하여
그 길로 저승길로 황천길로 바로 가셨다고 하신다.

그 작은 체구로
상여 위에 한손으로는 세끼줄 굳게 부여 잡고 한 손에는 딸랑딸랑 종소리 울리며

소리높여 노래 부르시는 모습을 이제 난 상상으로나 해 볼 수 밖에 없다.
내 몸에는 아마 그런 그 분의 그런 피가 조금은 흐르고 있나보다.

지금은 사라진 꽃상여.
그 꽃상여가 사라지며 상여 소리꾼도 더불어 사라졌다.

이제가면 언제오나~~~(소리꾼)
어야,디야~~(상여꾼)
 
4 Comments
노을 2007.01.19 13:04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요.
어려서 상여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 소리를 들으면
어린 마음에도 왜 그렇게 막막하던지요.
소리꾼의 피가 흐르는 권혁민님의 끼, 내마노에서 마음껏 발산하시지요.
 
정우동 2007.01.19 22:08  
  지금도 가풍이 연면히 이어지듯 집안의 끼도 이어지나 봅니다.
권혁민 사장님이 할아버지의 끼를 이어 받아서 노래 좋아하듯
노을님과 동생 유랑인님의 재주가 그러한 증거라 할수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땅을 가꾸어 곡식을 거두어 식솔을 거느리는 정직하고 순박한
농부였습니다. 남들이 명당을구하느라 지관을 살때 할아버지는 
초부들이 오가며 찾아와서 땀을 씻고 쉬는 그곳이 명당이라시며
6.25로 먼저 간 삼촌들을 그러한 곳에서 쉬게 하였습니다.
이사등등의 가정사에서 남들처럼 좋은날을 따로 받지않고
손님이 불편하지 않으면 다 좋은 날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수패인 2007.01.20 09:48  
  내마노엔 가족분들도 몇분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권혁민님 조부님 께서도 그당시 내마노가 있었다면 선두에 서서
잘 이끌어 나가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부님의 못다한 열정이
손주님께로 유전됐나 봅니다.
유열자 2007.01.27 17:01  
  나 어릴때의 꽃상여는 두려움과가슴떨림으로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구성진 고인의 살아온 역경과 사랑과 좌절과 환희들을 노래로 읊는걸  들어며 부끄러워 숨어서 눈물을 줄줄 흘리던 기억을 지울수가 없다
인생의 고통도 역경도 모르던 그때 왜 그리 울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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