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추석
거리는 지금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맞이하여 전국 체전의
성화가 봉송되어 성스럽게 점화되듯이 전국에서 동시에 도미노
현상처럼 귀향의 행렬을 이루고 있다.
고향이 무엇이기에 혈육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만사 다 제쳐두고
오늘만큼은 무사고 운전을 다짐하듯 거북이 속도로 마음은 초고속
으로 그 고향에 가면 아련한 기억속의 첫사랑을 다시 만날 것 같은
그 마음으로 달리는 것일까?
초등학교 시절 일년 중에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제일 즐거웠던 추석.
미리 사놓은 리본 신발, 색동옷을 아무도 안볼 때 몇 번이고 꺼내어
입어보고 거울 앞에 섰던 그 시절. 혹시라도 먼지가 묻을까봐 손때가
묻을까봐 가장 성스러운 물건을 만지듯 했던 오직 추석날만을 빛내기
위해서 마련된 그 추석빔들.
동네 아낙네들. 석작 ,바구니, 제기며 남비를 한 아름 이고 마을 우물로
와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온갖 정성 다해 씻고 또 씻던 그 모습.
그 우물은 마을사람들의 생명수였으며 푸념거리를 털어놓으며 그 물로
응어리진 마음까지 씻고 갔던 영혼의 안식처였으며 또한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곳.
텃밭 한 모퉁이에 심어놓은 모시잎을 따다 잘 익은 돈부를 넣어 반달 같은
송편을 빚어 솔잎 겹겹이 넣어 쪄내서 고소한 참기름에 묻혀 내시며 한 입
물려주시던 지금은 꿈 속에서조차도 뵐 수 없는 그 어머니.
차례를 지낸 다음 행여 아들일까 늦동이로 낳은 다섯째 막내딸을 데리고
성묘 가시며 너는 딸이지만 아들 못지않게 으뜸이 되라고 지어주신 이름의
뜻을 들으며 아버지 따라 쫄랑쫄랑 따라갔던 성묘길.
오후에는 저마다 새 옷에 새 신발을 수줍게 뽐내며 몇 개의 송편과 과일
조각들을 손수건에 싸들고 뒷동산에 올라 이름 모르는 넓고 큰 묘 그 동산의
상석에 놔두고 소꿉놀이하던 기억.
술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너무 오래 숨어 숨바꼭질이 끝나버렸던 그 날.
동산에 둥근 달이 떠오른 줄도 모르고 노는 아이들에게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들이......
다시 돌아와 저녁 먹고 또 마당 제일 넓은 집에 모여 강강술래를 하며 소리를
메기는 아이의 메김이 막힐 때까지 했던 강강술래.
다시 헤어지기 싫어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멀리 서울에서 남의 집 가정부를 해도 아주 세련된 옷에 세련된 서울말을 하던
동네 언니가 부러웠던 시절.
오늘 나는 왜 이리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일까?
고향에 가보아도 그 추억 속의 친구가 하나도 남지 않은 그 고향이 너무도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가고 싶어도 결혼한 여자는 고향도 추억도 사랑도 남편의 것이 되어버림이
못내 서글프기만 하다.
(2002.9.19. 추석 전 날)
거리는 지금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맞이하여 전국 체전의
성화가 봉송되어 성스럽게 점화되듯이 전국에서 동시에 도미노
현상처럼 귀향의 행렬을 이루고 있다.
고향이 무엇이기에 혈육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만사 다 제쳐두고
오늘만큼은 무사고 운전을 다짐하듯 거북이 속도로 마음은 초고속
으로 그 고향에 가면 아련한 기억속의 첫사랑을 다시 만날 것 같은
그 마음으로 달리는 것일까?
초등학교 시절 일년 중에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제일 즐거웠던 추석.
미리 사놓은 리본 신발, 색동옷을 아무도 안볼 때 몇 번이고 꺼내어
입어보고 거울 앞에 섰던 그 시절. 혹시라도 먼지가 묻을까봐 손때가
묻을까봐 가장 성스러운 물건을 만지듯 했던 오직 추석날만을 빛내기
위해서 마련된 그 추석빔들.
동네 아낙네들. 석작 ,바구니, 제기며 남비를 한 아름 이고 마을 우물로
와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온갖 정성 다해 씻고 또 씻던 그 모습.
그 우물은 마을사람들의 생명수였으며 푸념거리를 털어놓으며 그 물로
응어리진 마음까지 씻고 갔던 영혼의 안식처였으며 또한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곳.
텃밭 한 모퉁이에 심어놓은 모시잎을 따다 잘 익은 돈부를 넣어 반달 같은
송편을 빚어 솔잎 겹겹이 넣어 쪄내서 고소한 참기름에 묻혀 내시며 한 입
물려주시던 지금은 꿈 속에서조차도 뵐 수 없는 그 어머니.
차례를 지낸 다음 행여 아들일까 늦동이로 낳은 다섯째 막내딸을 데리고
성묘 가시며 너는 딸이지만 아들 못지않게 으뜸이 되라고 지어주신 이름의
뜻을 들으며 아버지 따라 쫄랑쫄랑 따라갔던 성묘길.
오후에는 저마다 새 옷에 새 신발을 수줍게 뽐내며 몇 개의 송편과 과일
조각들을 손수건에 싸들고 뒷동산에 올라 이름 모르는 넓고 큰 묘 그 동산의
상석에 놔두고 소꿉놀이하던 기억.
술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너무 오래 숨어 숨바꼭질이 끝나버렸던 그 날.
동산에 둥근 달이 떠오른 줄도 모르고 노는 아이들에게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들이......
다시 돌아와 저녁 먹고 또 마당 제일 넓은 집에 모여 강강술래를 하며 소리를
메기는 아이의 메김이 막힐 때까지 했던 강강술래.
다시 헤어지기 싫어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멀리 서울에서 남의 집 가정부를 해도 아주 세련된 옷에 세련된 서울말을 하던
동네 언니가 부러웠던 시절.
오늘 나는 왜 이리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일까?
고향에 가보아도 그 추억 속의 친구가 하나도 남지 않은 그 고향이 너무도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가고 싶어도 결혼한 여자는 고향도 추억도 사랑도 남편의 것이 되어버림이
못내 서글프기만 하다.
(2002.9.19. 추석 전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