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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노을 7 749
동생이 군 입대를 예정하고 있던 그 해 가을,
어느 일간지 주최로 제1회 가을맞이 가곡의 밤이 열린다는
광고에 애독자 00명을 초대하니 원하는 사람은
엽서를 보내달라는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귀가 번쩍 뜨이는 초대였기에 같이 살던 우리 4남매
모두의 이름으로 엽서를 네 장 보냈습니다.
그래도 한 두 장은 오려니 기대하면서...
가을이 깊어가면서 기다림의 나날도 흘러가고
시월 이십 며칠인가로 예정된 동생의 군 입대 날짜도
다가오는데 가곡의 밤 초대장이 날아들었습니다.
희한하게도 동생의 이름으로 된 초대장만 빠지고
세 명 모두 초대되었습니다.
가곡의 밤은 시월의 마지막 날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군대 가고 없을 줄 알고 빠뜨렸을까?'
정말 신기했습니다.
동생이 입대하는 날은 凋落의 깊은 아름다움과
시월 특유의 청명함이 어우러진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왕십리 역 부근 어디에선가 모였던 그 어설픈 예비신병들이
줄을 서서 역으로 향할 때 배웅을 나간 우리도 모두 따라 갔습니다.
햇살이 환한 정거장엔 떠나는 젊은이들과 배웅 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대열을 열심히 따라가 기차에 오른 동생의 손에는
아침에 만들어준 김밥 꾸러미가 터진 채 들려 있었고
차창으로는 서로 얼굴을 내밀어 친지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는 청년들의 모습이 꽃송이처럼 가득했습니다. 
출발신호음이 길게 들리자 기차는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플랫홈에 서있던 사람들의 팔이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듯 일제히 차창을 향하고
차창 안에서도 수많은 팔들이 내밀어져
셀 수 없이 많은 하얀 팔들이 서로 붙잡고 흔드는 모습만
시야에 가득하여 눈이 시려왔습니다.
그리고 기차가 떠나버렸습니다.
남아있는 어머니들, 친구들, 형제들 그리고 여자친구인 듯 싶은
고운 소녀들이 서로 품에 기대어 울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 마음은 알 수 없는 서러움으로 가득 차서
누가 말만 시키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집안이 텅 빈 것 같은 며칠이 지나고
가곡의 밤이 열리는 날이 돌아왔는데 거짓말처럼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그 날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렸던 첫 번째 가곡의 밤은
그 해 유난히 혹독하게 느껴졌던 첫 추위와 함께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추위에 훈련받으려면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싶은 걱정과
우리만 아름다운 가곡의 밤을 즐기게 된 일이 미안해서
동생 생각이 많이 났었던 기억과 더불어...
그 날 혼자 빠졌던 그 동생은 지금
가곡이 좋아서,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내마노'에서 행복해 하며 살고 있습니다.
 
7 Comments
요들 2005.08.03 13:33  
  노을님~~ ^^*
아름다운 추억 한토막을 무릎에 아가에게
자장가 들려주듯...

노을님의 추억속에서 저도 옛날 일이 생각나네요.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가을맞이 가곡의 밤"...
지금의 남편이랑 ...  고맙습니다.
바다 2005.08.03 13:59  
  잔잔한 물이 흐르듯이 써내려간 아름다운 이야기
가슴이 아림을
그리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오늘을 살찌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군요.
참 멋진 누님이시군요. 그리고 동생도 멋지고 ㅎ ㅎ
김경선 2005.08.03 14:01  
  가곡감상실에서
옛이야기를 속삭이듯
들려주시는 우리의 어머니같으신 분,
감사합니다!
산처녀 2005.08.03 14:29  
  자근 자근 들려주는 옛 이야기 ,
마치 화롯가에 앉아서 엄마에게 듣는듯한 느낌이예요 .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면서 막동이 동생을 군에 보내실때의 그 아픈마음이 짐작이 갑니다,
대사관 2005.08.03 17:11  
  노을님..
예전과는 많이 달라 졌지만, 저도 아들 군입대할때 생각이 나네요.
동생 군에 보내실때의 마음이나 제가 아들 들여 보낼때나 진배 없겠지요.
항상 정스러운글 에 가슴이 푸근해집니다.
노을 2005.08.04 14:41  
  요즘은 옛날처럼 그렇게 설레이는 '가곡의 밤'이 없는 것 같아
옛 생각을 좀 해보았습니다. 옛 이야기처럼 편하게 읽어주셔서
요들님, 바다님, 김경선님, 산처녀님 감사드립니다.
대사관님은 어느나라 대사관에 근무하실까 궁금해지면서...
 
대사관 2005.08.04 16:34  
  노을님......
죄송합니다.
이름을 다시 '이 니'로 원상 회복 해야 겠어요.
전 말레이시아 에서 '대사관'이라는 한식당 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정정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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