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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동 시인의 죽음

김형준 3 805
님이 떠나셨다.
50도 채 안된 젊은 님이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했던 님이.

시인이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존재하던.

    살아 생전 너는 내게 죽었고
    삶 속에서 나는 너를 처절히 무시했다.
    죽음이 불러 데려가자
    비로소 너는 내 속에서 생명을 부여받았다.

그의 이름은 박영근
'최초의 현대문학 노동시인'
죽으면서 내 의식에 이름을 그렇게 각인하고 먼 길 떠났다.

그의 형은 좋은 인연 되어 내 삶에 들어왔다.
참 친한 사이가 되었다. 짧은 시간 내에.
그 형님은 연출가로, 나는 배우로 함께 연극판 벌린 관계로.

죽지 않았음 과연 내가 그 시인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

입이 무겁디 무거운 그의 형.
마음이 천사보다도 더 천사같은 형.
가족사를, 특히 동생에 대해 말한 적은  없다.

얼마나 힘들까. 그렇게 많은 것을 가슴에만 담고 살면.

때론 불평도 하고, 화도 내고, 울기도 좀 하시지.

그외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가슴 속에 묻어 놓고 연극판을 헤맸을까.
그러니 어찌 망각을 가져다 주는 힘이 필요하지 않으리.

40대의 젊디 젊은 나이로 시인은 무정하게 떠나버렸다.
내 어찌 그의 인생 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쉽사리 어줍잖게 설익은 해석 내리기를 거부하고프다.

전북 최고 명문고를 다니다 말고
서울 노동판으로 가서 30년 가까이 민초로 살다 갔다.

왜 그랬을까?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그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유일한' 길이었을까?

네 잎 클로버가 그에게 찾아오지를 않은 걸까.
아님 그는 차라리 그 많은 세 잎 클로버들과 어우러져 산 것이 더 행복했을까?

'데모', '진보'라는 단어들과 너무도 거리가 먼 나였지만
그의 죽음은 충격이 되어 내 온 몸과 마음을 쑤셔대고 있다.

50대 초반의 형이 40대 말의 동생을 여위었다.
말로 표현도 잘 하지 않는 그 형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어머니도 엄연히 살아 계신데 불효자식 되어 갔다.
어버이날 지난 지 며칠 되었다고 그렇게 가버리나.
꼭 가시려거든 5월은 넘기고 떠나시지.....

대학 영문학과 교수이자 시인인 형 - 연극판 인생 30년
노래를 성악가 보다 더 잘 부르고 진한 감동을 전해주는 착한 형.

이 형제는 어떤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갔었나.

그 형님이 내게 연극 주연을 맡겼다. 교회서 하게 될.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내가 심상한 걸까. 투정을 약간 부렸다.

'에이! 저 연극 안 할래요.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이젠 그런 말을 그 형에게 쉽사리 하지 못할 것 같다.
믿고서 주연하라고 맡겼더니 '웬 그리도 무정한 배신때리는 소리!'

얼마나 속으로 아프셨을까.

예쁘게 봐서 좋은 배우로 키워보겠다고 국립극장이다 대학로다 끌고 다니며
이 연극 저 연극 보여주었는데 한다는 말이 '그런 철딱서니 없는 ......'

혼신을 다해 그 연극 속에서의 내 역할을 해야할 것 같기는 한데....
그 형님을 위해, 아픔과 괴로움 속에 돌아가신 시인을 위해.
아니 그 보다도 하나님의 영광과 선교, 교회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

아직 나는 내 속으로 침잠하여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연극 참여에 대한 어떠한 결론도 쉽게 내지 못한 채.
허나 이미 마음의 눈에 환히 보이는 것 하나가 있다.
하겠다고 작심하면 나와 우리들 앞에 산더미 같은 과제가 놓여 있다는 것.

후유! 박집사님, 어쩌면 쓸까요 잉!
으메, 징한 것, 환장 하겄네!

아마 내가 끝까지 안 하겠다고 버티면
시인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호통을 칠 것 같다.

'야, 이 놈아! 우리 형님 좀 그만 괴롭혀라.
좋은 기회 주었는데 왠 투정이냐. 행복한 줄 알아라!
주연을 아무나 시켜주는 줄 아니!

나는 이렇게 죽었고 너는 엄연히 살아 있는데, 웬 수작이냐!
미친 놈,  살아 있을 때 얼른 춤 추고 노래해라!
니 몸을, 정신을, 영혼을 불살러 연극쟁이 노래쟁이 흉내 내거라.
그래야 니가 그리도 원하는 깊이 있는 진솔하고 올곧은 글이
술술 누에고치 실 빠져 나오듯 할 것 아니냐!

생명력있는 글 쓰기가 쉬운 줄 아느냐! 
굴러라, 뒹굴어라! 맑은 물, 흙탕물 가리지 말고.
지쳐서,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서 더 이상 구를 수 없을 때까지.

열정으로 너를 완전히 불태워 버려라!
네가 속한 세상에 더 할 수 없는 광채 뿜는 불을 질러라!
자유의 불을, 생명의 불을, 예술의 불을, 진리의 불을, 구원의 불을.

다 타버린 후 엘랑 재 한 톨 남기지 말고 조용히 퇴장하거라!
관객들이 지루해져 짜증내지 않도록.....

니 인생 연극 한 번 멋지게 연기해 보고 오너라!
니 할일 제대로 한 뒤 내가 먼저 간 외로운 길 따라 오너라.

철부지 같이 앵앵 거리며 우리 착하디 착한 형님 괴롭히지 말고.
알것냐, 이 잡것아!"

나는 소위 민초나 민중 또는 그들의 리더가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데모를 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며,
'나 죽여라! 악을 쓰지도 못하는 그저 나약한 지식인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도 하늘에서 내게 주신 삶의 목적을 이루려 애를 쓰리라.
영혼이 가진 불멸의 광채를 번뜩이며 글로, 노래로 세상을 깨워나가리라!

박영근시인의 죽음은 내 속에 있던 경계를 단번에 허물어 버렸다.

보수와 진보, 부르조아와 민중,
부유와 가난, 너와 나, 권력과 비권력
지식인과 비지식인, 남자와 여자, 민족과 비민족

나는 맘 문이 보다 활짝 열린 자유인이 되었다!
이젠 나와 여러모로 다른 이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학 다니다 말고 노동 운동에 뛰어들어 노동자로 오랫동안 생활했던
어느 친구를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생전 단 한 번 만난 적조차 없던 시인이 내게 남기고 간 소중한 선물이다.

나는 누구냐?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는가.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가?

그러는 너는 또 누구냐?
너는 과연 너 자신을 잘 알고 있느냐!

글 밖에 쓸 수 없는 힘 없는 나!
글이 있기에 자유로운 나!
내가 떠난 뒤에도 내 자식들 되어 살아 숨 쉴 나의 글들!

글판에 뛰어 든 나는 아직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는 싸구려 예술가다.
글로 한 푼도 못 벌고서도 글쟁이라는 딱지를 어디 제대로 붙일 수 있겠는가!

그런 말 들으면 또 어떤가?
그저 한 번 씩 웃어주고 다시 끄적이고 두드리련다.
내 속에 있는, 내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노래하다 가리라.
자연을 노래하고, 사람을 그리고, 하늘나라를 동경하며 나누다 가리라.

허무하게 떠나 버린, 아픔 남기고 가버린 시인 따라서....

그의 작품들을 천천히 읽어 나가리라.
그와 그가 살았던 세상을 엿보고자 하는 맘에서.
또한 내 곁에 계신 그의 형님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리라 믿으며.

그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드디어 하나가 되어 부드러이 돌아가고 있다.

그의 몸이 술로 썩어져 들어갈 때, 정신은 더욱 말짱해졌다.
그의 정신과 혼이 시어로 승화될 때
그의 형님은 눈물 깃든 이슬을 마시고 있었다.

동생에 대한 연민으로 그의 형님이 잠 못 이루고 있을 때
슬며시 옆에 앉아 더불어 하얀 밤을 세워가며 얘기하고프다.

그럼 그 형님의 마음 속 깊이 배인 아픔과 슬픔이 조금은 해소될까?

아, 오월은 진정코 잔인한 달,
우리에게서 숭고한 시인을 앗아가다니

  2006년 5월11일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 떨어졌다.
  미래의 씨를 이미 많이 뿌려 놓고.
  바람아 어서 어서 불어라!
  꽃분이랑 씨앗이랑 사면팔방으로 싣고가
  희망의 새싹을 싸게싸게 피우거라.

시인이시여, 평안히 깊이 잠드소서!
3 Comments
열린세상 2006.05.15 09:56  
  고 박영근님이 쓴 "솔아, 푸른 솔아"라는 시가 한참 불리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안치환이 부른 노래의 원전 시라더군요.
안타까운 한 살이였지만 그래도 다섯권의 시집을 내었으니
세상에 한 몫은 충분히 하신 것은 아닌가 싶군요!!
김형준 2006.05.15 17:05  
  오늘 아침 서울의 강남성모병원에서 행해진
고인의 장례식에 다녀 왔습니다.
꽃이 단출하게 영정 옆과 앞에 놓여 있고
6권의 시집이 영정 밑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단출하게 보일 수도 있는 책들이지만 한 권 한 권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분과 뜻을 같이 하시던 분들에게는 더욱 큰 의미가
서려있는 '노동자 시인'의 작품들이었습니다.

기독교 장례 예배가 간단하게 있었고,
시인장으로 다시 아름답게 장례식이 진행되었습니다.
김형준 2006.05.15 17:24  
  아 참! 열린세상님께서 '솔아, 푸른 솔아'에 대한
코멘트가 정확한 것입니다. 시인장에서 참석한 분들과
더불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함께 불렀습니다.
저는 정말 단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는 노래를 옆 사람을
흉내내어 그나마 열심히 불렀습니다.

작사가로 '박영근&안치환'이라고 써있었고, 작곡가로
'안치환'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비로 이념과 사상은 저와 상당히 다른 분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동지 내지는 한 울타리 의식을 느꼈습니다.
저는 '진보'보다는 '중도' 정도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시인장에 참석하셨던 '민족 작가 회의' 내지는 '민예총' 분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진보적 성향을 가지신 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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