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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아까 6 981
반드시 교복입고 출발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어느 한반에서 사복에, 화장까지 하고 무더기가 나타났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화가 나셔서 학생들 앞에서 담임 선생님을 꾸중하는데.
교복 가져 오라고 전화했더니 퀵써비스로 교복이 배달되고, 출근하던 아빠가 회사로 가지 않고 공항으로 달려오고, 화장한 아이는 세수시키고.
무슨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제주 공항에 도착했을 때.
32도를 웃도는 제주도 날씨에 모두들 인상 찌푸리고.
혹시 추울까 싶어서 긴옷만 챙겼는데.
2박 삼일 내내 32도, 33도 바람 한점 없고.
첫날 밤은 열대야까지.


요즈음 아이들 참 이상해요.
걷기를 싫어해요.
바다가 좋고 산이 좋은 걸 몰라요.

우리 모두의 계획은 낮에 강행군을 하면 저 아이들이 밤에는 골아 떨어질 것이다.그러니깐 관광을 철저히 시키자.
그런데 차에서 내려오질 않아요.
덥다고.
잠만 자요.
그리고선 밤에는 박쥐처럼 움직여요.

이틀동안 잠이라곤 3시간 밖에 못잤습니다.
밤새도록 애들 감시하느라 요소요소에 배치되었거든요.

그런데 덥다고. 목마르다고. 배 고프다고.
쉴새없이 현관출입이에요.

근무조를 교대하고  카페촌에 가서 시원한 빙설을 먹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누가 누굴 쳐서 코뼈가 어떻게 됐다나요.
담임 선생님은 얼굴이 노래지고.
빙설을 먹다 말고

한팀은 병원 가고.
한팀은 가해자 붙들어서 진정시키고.

마침 근무조를 서던 학년 부장 선생님은
 내가 어쩌다 교사가 되었을까 후회가 막심하더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불안한 마음에 우리 애들 자는 방을 열어 보려는데 문이 잠겨 있어요.
자는가 보다 했더니 문을 잠가 놓고 비상구로 도망을 나갔더라구요.

덩치 큰 녀석들이 혹시나 바깥에 나가 시비나 붙지 않을까 싶어서 그 일대의 피시방, 술집을 수색했는데 애들이 없어요.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불안해지고.
오기만 오면 가만두지 않을거라고 벼르고 있는데.
새벽 5시가 되어서 저기서 걸어오고 있어요.

우리반 짱은 선생님 드릴 음료수 사갖고.
무탈하게 돌아와 주니 얼마나 고맙던지.

이틑날 여행사 전무님이 하시는 말씀.
" 22년을 수학여행 다녔지만 이런 학교는 처음이에요.
 일년에 한번은 반드시 간기능검사 해 보셔야 되겠어요."

" 우리 교장 선생님께 그 말씀 좀 해 주세요.항상 우리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꾸중만 하세요."

이튿날.
여전히 애들은 차에서 내려오질 않고.
 기사 아저씨가 에어콘도 끄고. 나가라고 고함도 질러 보았지만 꼼짝도 않아요.
급기야 기사 아저씨가 비상 싸이렌을 울리고.
이젠 그늘밑에 앉아서 자요.

문제의 밤이 되었습니다.
어제 새벽 다섯시 팀들에게
" 야. 오늘 저녁도 나갈 거니?"
" 모르겠어요. 생각중이에요."
" 그 생각 지금 좀 말해 봐라."
" 지금은 결정 못해요."

 어제 놓쳤던 비상구를 지키며 마음 든든해 하며 반장에게 또다시 인원 점검하라고 했더니 또 누가 없어졌대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1층 화장실 창문으로 탈출을 했던 것입니다.
또 피시방, 술집을 밤새도록 돌고.
그런데 문제는 덩치 작고 얌전한 녀석들이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디가서 맞고 있지나 않나 싶어서.

 2시 5분
저멀리에서 고함 소리가 났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또 한편으론 부모님께 핸드폰을 치고 싶더라구요,

우리 잠 못 자게 했으니 너희들도 고생 좀 해봐라는 마음에서 잠을 못자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잠 좀 자게 해달라.
선생님 누가 누구하고 헤어졌어요.
선생님, 이제 마지막이잖아요
모두 자기 잘못이니 친구들은 용서를 해 달라.
했던 말 또하고 또하고 하니깐
걔중에 덜 취한 아이는 입좀 그만 다물라고 뺨을 치고, 입을 털어 막고.

3시 되어서 저는 잠을 자러 들어왔습니다.
어제저녁에 잠 많이 잤던 선생님을 애들 잠 못 자게 하는 벌 세우고.

여행 마지막 아침이 되었습니다.
모두들 2박 3일 이었으니 망정이지. 3박 4일 되었더라면 어떡할 뻔 했을까하며.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어젯밤 잠 못 잘 때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부모님께 보내드린다고 하는 줄 알았더니 조물주에게 보내서
다시는 이런 불량 제품을 재 생산하지 말라고 보내줘야 한다나요.

제목은 재생산 금지 품목이라나요.

어젯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던  녀석은 자다가 오줌을 쌌다는 거 아닙니까?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사복을 입고 나와요.
교복은?
어제 빨았는데 덜 말랐어요.
알고보니 아침에 물에 담갔던 것입니다.
사복입으려고.

그런데 어젯밤 술먹었던 우리반 녀석은.
교복을 입고 학교 가겠다고 술김에 세탁은 하긴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교복이 물 속에 담겨져 있더랍니다.

귀여운 녀석들.

찾아 다닐 땐 엄청 열받고 힘들었는데.
뒤돌아 보니깐 너무 재미있었던 거 있죠.

돌아오는 길에 모두들 내년에는 수학여행하는 학년은 희망하지 않겠다고 하자
한문 선생님 왈 " 저는 고 3밖에 못해요. 3학년만 한문이 있거든요."
모두들 동정해마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도 다행입니다.
1,2,3,학년 모두 수업가능하니깐요.

집에 들어오면 고함만 지르는 엄마가 왔는데도 우리 아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역시 집이 최고입니다.

저 솔직히 인기가 많거든요.
돌아오는 전철 속에서 핸드폰이 울려요.
 지난 학교 학부형이었습니다.
우리집에 오겠대요.

공부 못하던 당신딸이 저로 인하여 학교를 재미있게 다니고, 생의 목표( 제가 근무하는 학교)가 생겼다고 좋아하시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화장품, 밀가루, 빵 구운 거, 국수를 갖고 오셨습니다.
(이번 스승의 날에도 아버지와 함게 어머니가 오셨더랬어요.)
한장 가득한 편지와 함게.
참고로 이 아빠는 밀가루 관련 회사에 근무하세요.

옛날에는 편지 받으면 읽고 버렸는데,
우리 애들 아빠가 스크랩해 두래요.
학생은 물론이고, 학부모들한테까지 사랑받으며 돈 벌어온 거 생각하면 행복해 진다고.

우리 남편이 또 스크랩 햇습니다.
 
 제주도 가서 회 한번 못 먹고 돌아왔습니다.
애들 지키느라.
처음 게획은 애들 자면 회 시켜 먹자고 했는데.

밤새도록 애들 찾아다니느라 회 한 젓가락 못 먹고 왓습니다.
우리 모두 너무 불상하죠.

 
6 Comments
바다 2003.09.07 12:16  
  아까선생님!
그리고 그 학교 수학여행을 인솔하셨던 그 모든 선생님들께
심심한(?) 위로와 감사와 존경을 보내 드립니다.

제주도에서 못먹은 회를 우리 언제 번개쳐서 실컷 먹어봅시다.
그러니 번개가 치도록 먹구름, 새털구름, 흰구름, 기타 등등 구름..
 다  불러봅시다
정우동 2003.09.07 16:00  
  아까 선생님의 고생담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들 애태우면서 크는 저들인데 철들어야 알겠지요.
다들 훌륭하게 되어 잘 살아주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행복을 갖다준 사랑의 편지는  뒷날 훈장일테니 잘 챙겨두세요.
아까 2003.09.07 16:14  
  바다 선생님.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겨울 방학 때 광주로 불러서 회 좀 실컷 먹여 주세요.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들과 회 먹을 계획 세웟습니다.
추석 다음주에 가까운 곳에 가서 회 먹고 오자구요.
파리넬리 2003.09.08 10:42  
  아까님,
잘 다녀오셨군요. 세상에는 두 부류의 학생들이 있죠.
선생님 말씀 잘따르는 학생과 짤 따르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하는 부류입니다.
나름대로 이유도 있고 장단점이 있는것 같아요. 저는 지금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한번 말썽장이로 돌변해 하고 싶은 것 실컷해보는 거랍니다.
선생님들 속은 좀 썩이겠지만요. 그래도 그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해보지 않고 밋밋하게 지나가는 학생들보다는 더 많은 경험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잇는 것 아닐까요?
제생각 어떠세요?
서들비 2003.09.08 12:59  
  심심한(?) 위로와 감사와 존경을 보내 드립니다.  ~~~^^*

에구
옛날 생각도 나고,
사춘기 아이둔 엄마로서
제 아이가 그런것처럼 죄송하기도하고..........

이땅의 모든선생님들 화이팅!!~~~

은사님께 문안전화라도 드려야겠어요.
동심초 2003.09.09 13:26  
  아까 선생님 ~ 수고 많으셨어요
갑자기 여고시절 수학여행이 생각나 잠시 즐거웠습니다

 으이구..그런데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선생님 말씀을 안들었던지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웃음만 나오네요

 드시고 싶으셨던 회는  겨울방학하면 동해바다로 내려오세요
 제가 좋아하시는 회 실컷 드시게 해 드릴께요

 우리 사랑방 님들의 위로롸 격려속에 행복한 나날 보내시고
  힘내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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