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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12/12)

barokaki 3 751
12. 12(일) 맑은 후 흐림

보르헤스의 소설집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보았다.

약 20년 만에 ‘망우산忘憂山’에를 가 보았다. 근심을 잊는다는 산. 동네 산이다. 공동묘지가 있고, 어느 정도 공원화도 되어 있는 산이다. 만해, 소파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의 묘가 눈에 띄었고, 많은 묘비 중 특히  ‘다정하신 우리 아버지 잠드신 곳’이라는 비문碑文에 가슴이 저려왔다. 그의 자식들이 붙였을 직한 그 비문은 그만큼 더, 남은 유족들의 슬픔을 보는 듯해서 안쓰러웠다. 무덤을 쓰지 않을 나이지만 평소 다정한 아버지가 못되는 나로서는 이런 비문은 엄감생심 턱도 없겠구나 싶자 씁쓸한 회한이 스며 온다. 

이제는 동네사람들의 운동장이 되어버린 망자亡者들의 숲을 지나며 나는 무슨 의미를 굳이 끄집어내려 애를 써 본다. 이 사람은 생전에 누구였을까?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을까?  무덤의 규모를 보면 대략 그 사람의 재력은 어림한다지만 사람다움이야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는가?  조락凋落해 가는 묘 앞에서는 “멸문가滅門家로구나......” 그러나 그건 나의 생각일 뿐이다. 한 떼의 참새들이 해가 비치는 노간주나무 덤불에서 어수선히 분주하다.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자들과 오래 지내서일까? ....... 멀리 한강의 산 그림자가 그림 같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듯 아스름히 던져진 그림자에 강마저 정지해 있는 듯 하다.

20년 전에는 산의 서쪽인 망우동에서 살았고, 지금은 산의 동쪽 편인 교문동에 살고 있다. 산마루에 올라서자 양쪽의 동네가 한 눈에 보인다. 당시의 동쪽은 벌판이었다. 土平, 水澤이라는 지명이 그걸 대신해 준다. 그 벌판이 이젠 아파트로 메워져 있다. 서쪽도 망우동을 제외하면 변하기는 매 일반이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 내가 지금 여기에 올라 그때 살던 곳을 내려다 볼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게 있다면 내 발길 옆으로 누워있는 망자의 세계일 뿐.

다음 차례에는 이런 따위 잊고 집사람을 동행하여 아차산(미답未踏의 산) 까지 다녀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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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 안녕하시지요?
어느 덧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한 해였습니다.
기쁜일 좋은 일들은 언제까지나 기억하시고 ......
새해에는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일들만
있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3 Comments
달마 2004.12.16 14:03  
  선생님...

신선도 마음 먹기 나름 아닌가요...
굽어 보는 마음이 여유로와
너무 좋으니다...
강산은 유구 한데
인걸만 앞뒤 분간이 안되나 봅니다...
아차산 아 미답산이군요 ...
늘 처럼 건안 하시라
기원 놓고 갑니다 !!
장미숙 2004.12.16 18:43  
  12월12일.. barokaki님의 일기가
급하게 시대를 살다가 해를 보내며..
무언가 잊은 게 많은 듯 뒤를 돌아보아지는
우리들의 일기라는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기쁨 안에 맞이하시는 새해 되시길..




서들비 2004.12.17 11:56  
  늘 함께 해주시는 님께도
좋은일들이 많은 새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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