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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남은 그대 음성

노을 6 891
 
  이른 봄의 날씨처럼 적당히 차가운 바람과 포근함이 한데 섞인 드물게 좋은 날씨였다.
해가 좀 길어져서인지 저녁 6시가 넘었는데도 어슴푸레한 여명이 연자빛 푸르름으로 남아있는 하늘에 너무도 가늘고 새침해서 싸늘하기만 한 상현달이 떠 있었다. 포근한 날씨 탓인지 그래도 그 가느다란 초승달이 그다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녁외출이라 혹시 싶어 두른 머플러 때문에 전철역 가기도 전에 땀이 나려 했다. 이렇게 좋은 저녁에 가곡의 향기에 흠뻑 잠기기 위해 외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발걸음은 춤을 추듯 경쾌했다. 아마 오늘은 어느 때보다 많이들 오시리라...

  예상은 빗나갔다. 우선 언제나 길목 아니면 입구에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서계셨던 정우동 선생님이 안 보이시니 어쩐지 허전했다. 늘 보이던 사람은 안보이면 허전한 존재로 자리매김이 되는 모양이다.
내마노의 귀한 기둥이시니 더욱 그렇다.

 몇몇 분들만 준비에 분주했고 안을 들여다봐도 핑크무드 조각문양 화려한 빈 의자만 주욱 늘어서 있을 뿐 상당히 썰렁했다.

 나중에 덕담을 주시려 마이크 앞에 서신 홍일중 시인님(은빛 긴 머리와 수염, 그리고 형형한 눈빛 때문에 늘 어느 산에서 하산하셨나 궁금증을 일으키시지만 주시는 말씀마다 觀照의 미학을 맛보게 하신다)도 언제나처럼 3층으로 올라가셨다가 재롱이 잔치에 홀려서 늦어졌음을 고백하셨다시피 찾기가 좀 어려워 그런지 시간이 다 되도록 그 썰렁함은 쉬 더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나 내마노 가곡교실이 어떤 곳인가, 어떤 모임인가.
  사회자 이용수님의 어느 때보다 돋보이는 절제의 선언(이 선언은 매우 중요하다)을 시작으로  진행된 순서마다 감동과 즐거움이 점점 증폭되어 훈훈한 정감이 실내에 가득했다. 나중에 보니 뒷자리도 그럭저럭 채워지고 열기와 환호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바리톤 이광수님, 소프라노 김희정님
어느 분 말씀처럼 비디오, 오디오가 다 뛰어나시니 눈도 귀도 다 즐겁다. 하여 소수를 위한 그 걸음이 귀하게만 다가와 그저 고맙고 행복할 뿐이었다.
  이광석님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가슴이 달콤해졌다가 김희정님의 너무도 아름다운 음의 유희에 매료되어 마치 그 멜로디를 타고 노니는 것 같은 황홀함에 넋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래서 잔뜩 상기되고 고무된 나머지 다같이 부르는 노래를 부를 때는 내 멋에 겨워 안되던 고음도 어쩌다 나오는 이변을 겪기도 했다.

  김명희 시인님, 시 낭송을 시작하셨을 때 솔직히 약간의 탁음이 공연히 혼자 걱정되어 몰입이 안 되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너무 지나친 기우!!!
  열정이라 하기에는 부족할만큼 도도한 시인의 그 격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쩐지 가슴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의 순간이었다. 

  아마 고영필 선생님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썰매를 끌었던 게 아닌가 싶다. 장로님이시니 결코 링게르는 맞지 않으실텐데 볼수록 유쾌한 빨간 코(죄송합니다)를 지니고 계시는 걸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많은 달란트에도 불구하고, 그 저명한 네임 밸류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소박하신지 누구라도 좋은 노랫말을 보내면 곡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무명을 위해 저명한 음악가가 곡을 준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데...

  같은 선생님(정회갑 선생님)에게 배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이 왈칵 솟았다. 물론 단발머리 여학생 시절의 내 배움이란 전공자의 배움과 그 격이 하늘과 땅만큼 다르지만 그래도 고영필 선생님과 나는 同門修學이라고 주장하고 싶으니 이 억지춘향을 어찌하랴.     
 
  동호회 회원 노래 순서는 언제 들어도 유쾌하다. 그 진지함, 그 열성, 그 긴장감이라니... 박수를 암만 쳐도 모자란다.
그런데 수패인님의 떡을 맛도 못보고 온 것이 밤 10시에 아쉬움으로 되살아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그때는 배가 불렀고 집에 오니 배가 고파 그 떡의 푸짐함이 눈에 아른아른한다. 때에 먹어두지 못함 이 또한 홍일중 시인님의 上善若水를 따르지 못한 연유 아닌가...

  귀한 악보 세 권에 욕심 부려 하나 더 가진 CD 두 장, 김명희 시인님의 시집까지 푸짐한 선물 가슴에 안고 전철역에 오니 다른 때는 두어서넛 전철동행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다.
오늘 보이지 않던 얼굴들을 떠올려 보며 궁금해지는 것을 보니 그새 모르는 정이 들었나보다.

  아, 귀에 남은 그대 음성은 비제의 ‘진주잡이’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윤주 교수님의 풍부하고 윤기 있는 음색이 아직 귓전에서 맴돌지만 가르침 때문에 언제나 전곡을 다 들을 수 없어 갈증처럼 아쉬움이 남아 있다. 클릭을 해서 들어봐야지. 콕콕 집어주는 예리함과 유머러스한 가르침으로 얼마나 즐거운 수업시간이었는지 반추하면서....

  1월, 내마노에서의 내 배터리 충전은 그만하면 더 바랄 게 없었다.   

 
   
 
6 Comments
장미숙 2007.01.24 13:02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여 아쉽지만
노을님의 가곡 사랑 마음을 엿듣는 저도 행복해집니다~
해야로비 2007.01.24 14:19  
  맛있는 떡...배부르시다고 안 드시더니.......조금 싸드릴것을 그랬나봅니다.  ㅎㅎ
잔잔한 글로써.....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행복이 일렁입니다.
노을 2007.01.25 09:47  
  장미숙 시인님
그날은 친근한 얼굴들이 너무 많이 보이지 않아 약간의 쓸쓸함을
어쩌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혼자 신명을 좀 내봤답니다. 글로라도...

해야님
얼굴이 많이 상해보여 마음 한쪽에 안쓰러움이 솔솔...
많은 분들의 사랑 속에 사시니 금방 예전의 건강 되찾으시겠지요? 
바다 2007.01.25 19:03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노을님의 글로 대리만족을 합니다.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
또 넉넉한 마음
아름다운 글
 언제라도 보고 싶고 읽고 싶습니다.
노을 2007.01.26 11:13  
  참 바다님은 방학 중이었을텐데 왜 안오셨어요.
언제 한 번 또 진하게 포옹(???)을 나누어야 할텐데...
김성록 2007.01.29 09:15  
  저도 한 번 뵙고 싶네요.
 가곡 교실은 언제 모입니까
 노을: 아련한, 은은한, 우수에 젖은.
 제 딸이 이런 느김을 지녔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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