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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씨를 주워 공터에 뻐려라

이종균 3 1161
차 씨를 주워 공터에 뿌려라   
                              (두륜산)

 산고다석고(山高多石故)란 옛말이 있는데 산이 높은 것은 돌이 많기 때문이다 는 뜻이다.
 호남정맥 무등산에서 뻗어 나온 곁줄기 하나가 호남 내륙을 가르며 영암 월출산을 우뚝 세우고 해남에 이르러 두륜산과 달마산을 일으켜 멈춰 선다.
 이 노년기의 산줄기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이어 낮아진 흙산들이나 그 가슴에 바위를 지닌 산만이 암 봉을 드러내 높이와 위엄을 자랑한다.
 해남 두륜산, 불과 네 시간 안팎이면 오르내릴 수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산을 왕복 열세시간이 걸려 간다는 것이 어찌 보면 비생산적일 수 있지만 그래도 희망하는 산 꾼이 버스 두 대에 이르렀다.
 해남군 삼산면, 오소 재에서 내려 산길로 드니 활짝 핀 진달래가 화사한 웃음으로 낯선 나그네를 반기고, 깊지 않는 계곡 음습지에 피어나는 현호색의 홍자빛 꽃이 가끔 눈길을 끈다. 올 들어 처음 대하는 꽃들이다.
 오심 재 남쪽에 솟은 게 노승 봉(老僧峰)인데 하늘을 찔러선 기상이 젊은 승려 못지않다.
 허겁지겁 선두를 따라 오르니 뾰족한 단봉으로 보이던 암 봉이 병풍처럼 줄을 이었다. 그 다음 봉이 이 산의 최고봉인 700미터의 가련 봉이요, 또 그 다음에 이름 없는 690미터 암 봉 하나가 덧붙어있다.
 뒤돌아 북녘으로 운치 있게 솟아오른 우람한 봉우리에 거창한 인공 구축물이 보인다. 저게 무얼까 또 무엇을 개발하는 것일까 걱정스러워 군청 문광과에 물었더니 고계 봉 케이블카 상부역사(驛舍)라고 일러준다.
 그러고 보니 주체 못할 만큼 밀려드는 관관 객을 수용하기 위해 불가피했으리라는 생각도, 그리고 주능선을 피해 저기에 설치한 당국의 배려도 고맙게만 생각된다.
 남쪽으로 유난히 깊어 보이는 만일 재, 핼리포트 표지 주변에 둘러앉아 요기를 하고 있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사뭇 급한 경사를 타고 휘감아 오른 봉우리, 돌다리(石橋) 속으로 난 철 계단을  타고 오른 곳이 이 산의 주봉인 두륜(630m)이다.
 이 돌다리는 또 다른 이름으로 백운교(白雲橋)라고도 부른다는데 예로부터 발이 빠른 젊은이는 그 위를 지나 정상에 오른다 하였다.
 맑은 날씨에 제주 한라산이 바라다 보인다는 두륜 봉, 화창한 봄날의 아지랑이도 청명한 가을날의 흰 구름도 모두 이 다리를 통하여 남해로 넘나든다니 이는 정수리에 오르는 길목이라기보다 사계절이 들고나는 관문이 아닐까.
 남서방향으로 통신 중계 탑이 서있는 온후한 대둔산에 바람꽃이 자욱한데 그 그늘에 하반신을 가린 뾰족한 봉우리가 우리 땅 끝을 지키는 달마산(達摩山)이 틀림없다.
 고려의 승려 무외(無畏)의 기록에 의하면 전라도 낭주(영암의 옛 이름)의 속현을 송양 현이라 하는데 천하에 궁벽한 곳이다. 그리고 그 경계에 달마산이 있는데 북으로 두륜에 접해있고 삼면은 모두 바다에 닿아있다. 그 땅 끝 편에 화엄조사 상공(湘公)이 터 잡아 지은 도솔 암이 있다.
 지원 신사(辛巳)년에 남송의 큰 배가 표류하여 이 산 동쪽에 정박하였는데 한 고관이 달마산을 향하여 예를 하고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 고 감탄하며 그림으로 그려갔다 전하는 곳이다.
 거기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접고 발길을 돌려 진불 암으로 향한다.
 진불 암은 역대 고승들의 선 수행 처로 알려진 곳이다. 청화(淸華) 큰 스님께서 40대의 젊은 나이에 이 암자의 증개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모두 등짐으로 나르셨다는데 20대의 행자 승이 따르지 못했다 전해진다. 스님께서 축지법을 쓰셨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먹을거리를 잔득 짊어진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담한 응진 당 왼편에 유리문을 단 우물, 목마를 때 마시는 물이 약수 아니랴, 꿀맛 같은 석간수로 마른 가슴을 축이고 서둘러 북 암으로 향했다.
 북 암은 우리나라 보물 제48호로 지정된 마애여래 석불이 있어 북 미륵 암 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미륵불에 건물을 이어지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데 암팡진 진도 백구 한 마리가 쇠사슬에 묶인 채 토마루에 버티고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다산 선생이 강진 유배 중에 자주 만나 차를 마시며 대화했다던 혜장스님이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로 이 암자에서 입적을 하였을 때 “얼마 남지 않은 내 세월에서 그대 입 다무니 산속의 숲마저도 적막하기만 하다.”고 슬픔을 읊었다던 탑명도, 이를 물어볼 사람도 보이지 않는데, 암자입구에 서둘러 핀 자연 생 동백 꽃 한 송이가 잠시 나그네의 마음을 붙든다.
 내려오는 순서대로 출발한다기에 쫓기는 마음으로 위험한 돌길을 달리는데 언뜻 일지 암이 스친다. 나는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시와 글씨와 그림에 능한 삼절(三絶)로, 호남의 일곱 고붕(高朋)으로 추앙받던 초의(艸衣), 선(禪)과 차(茶)를 통하여 민족 정신문화의 기틀을 세운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선사가 세속나이 여든하나, 법랍 예순다섯으로 열반한 곳이니 어찌 그냥 지나치랴.
 생전에 진묵대사를 흠모해 만년에 자주 읊으셨다던 그의 게송(偈頌),
 天衾地席山爲枕  하늘을 덮고 산을 베고 땅위에 누웠다가
 月燭雲屛海作樽  구름병풍 두르고 달을 촛불삼아 바다 술을 마신다
 大醉居然仍起舞  크게 취하여 비틀비틀 춤을 추니
 却嫌長袖掛崑崙  긴 소매 큰 산에 걸릴라...
 진묵대사께서 태어나신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진묵 사”의 주련으로 걸려있는 이 게송은 대사께서 대둔산 태고사에 계실 때 읊으신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 범상치 않은 기개와 뒷산의 배경에 공통점이 있어서였을까.
 -초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나서 속삭이듯 말했다.“이 눈이 녹으면 차나무 밑에 떨어져있는 씨를 주워 다가 그늘진 공터에 뿌려라!” 이후 초의의 숨결 소리는 방바닥 아래 지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승원은 그의 소설 「초의」에서 선사의 마지막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문화재자료 제78호 대둔 사,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한 불교문화의 산실인 대흥사 뜰, 눈바람을 피하지 않은 한데에 앉아있는 선사의 동상이 대 두륜의 모습처럼 의젓하다.
 고승들의 부도 밭을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목에 부러 남루하게 꾸민 전통찻집이 눈에 띈다.
 주전자에 차를 넣고 맥박이 뛰는 속도로 아홉 번을 세고 다시 아홉 번을 헤아리면 애벌차가 울어 나오는데 첫 번째 아홉 번을 세고 뚜껑을 살짝 열 때 나오는 가장 신비로운 향, 배냇향을 저곳에 가면 맡을 수 있을까...
3 Comments
달마 2006.06.02 14:02  
  귀한 귀필 맞으니
더듬어 보는맘 여며져
다시 읽고 고쳐 읽는 맞
그지없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


  반가움 / 권 운


못보던 제비와서 내눈앞 오가는다

잊었던 춘정쏫아 헛기침 해보는데

저바람 산 내려와서 빙긋이야 웃누나
이종균 2006.06.02 17:11  
  몇줄 마딧글에
함축된 깊은 뜻이
제 가슴을 데웁니다.


초의(艸衣) 동상 /이 종 균

두륜산기슭 대둔 사
산보다 무거운 가부좌(跏趺坐)
어깨에 멘 지팡이가
하늘을 난다

살아 외치던
다선일미(茶禪一味)
선과 차는
다른 것이 아니라더니

이 눈이 녹거든
차나무 씨를 주워
그늘진 공터에 뿌려라!
남기고 떠난 임

구리로 빚어져
비눈 바람 가리지 않은 
한데에 앉아서도

살아 숨 쉬듯
배냇내* 풍기는 임은
장삼(長衫)을 걸쳤어도
풀옷(艸衣).
바 위 2006.06.06 03:34  
  오동 잎 넓은 치마  휘감는 바람소리

얼마나 무심해야  우리 임 미소일까

작금에  비 웃음 소리  초 여름이 웁디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