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슴아픈 현충일
이 날이 오면 우리 가족들은 가슴이 아픔니다.사촌동생이 25살 나이로 대학재학중에 입대하여
전방에서 추운계울 동료의 보초를 대신 서 주다 쓸어져 그길로 병원에 실어왔지만 갔습니다.
곡절이 많습니다, 너무나 똑똑하고, 미남이고 음악을 잘 하고 마음이 착하여 꼭 숙부님의 대를
이어 목사를 시키겠다고 했는데 옆 자리에 누워있는 동료를 전도하여 현재 목사가 됨. 지금 국
립묘지에 누워있
습니다. 숙부님은 해마다 국립묘지에 가십니다. 오늘도 80세이신대도 가셨을 것입니다. 숙모님
은 그 당시 눈물 한방울 흘리시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천국에 가고 또 그 동료를 대신하다 죽었
으니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참겠다고 하시더만 몇년전에 아들 곁으로 가셨습니다.
아침 식사하다 어머니와 저는 국립묘지에 누워있는 사촌동생 이야기를 하며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전방에서 추운계울 동료의 보초를 대신 서 주다 쓸어져 그길로 병원에 실어왔지만 갔습니다.
곡절이 많습니다, 너무나 똑똑하고, 미남이고 음악을 잘 하고 마음이 착하여 꼭 숙부님의 대를
이어 목사를 시키겠다고 했는데 옆 자리에 누워있는 동료를 전도하여 현재 목사가 됨. 지금 국
립묘지에 누워있
습니다. 숙부님은 해마다 국립묘지에 가십니다. 오늘도 80세이신대도 가셨을 것입니다. 숙모님
은 그 당시 눈물 한방울 흘리시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천국에 가고 또 그 동료를 대신하다 죽었
으니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참겠다고 하시더만 몇년전에 아들 곁으로 가셨습니다.
아침 식사하다 어머니와 저는 국립묘지에 누워있는 사촌동생 이야기를 하며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을 흘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