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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의 토리노에서 온 멋진 친구

김형준 0 1019
'유럽에서는 가장 잘 생긴 남자들로 이탈리아인을 꼽지요?'하고
언젠가 뉴스에 나왔던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껄껄껄 웃으며 하는 말이
'이탈리아 남자들 하면 골치가 아프대요.'하고 만다.
'왜 머리가 아프대요?'하고 궁금해서 물으니
'이탈리아 남자들은 바람둥이란 소문도 있고, 약속을 잘 안 지키는
거짓말장이라고도 하고요...'하곤 다시 말꼬리를 흘린다.

잉글랜드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인 파올로가 하는 말이었다.
우연히 해변에서 만나 말이 잘 통하기에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해 보았다.
또리노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의 북서쪽, 즉 프랑스와 인접해 있는
지역이란다. 2006년도에는 동계 올림픽을 치룬 곳이기도 하다.
'인구가 몇 명이나 돼요, 또리노는?' 했더니 약 100만명 정도 산단다.
'굉장히 큰 도시이군요.'했더니 요즘에는 인구가 좀 줄어들고 있다고도 했다.
대도시가 싫어서 인근 작은 도시나 시골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했다.

잉글랜드 쉐필드에 있는 대학에서 연구 조교를 하면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했다.
현재는 잉글랜드 여자 셋과 자기 그렇게 넷이서 같은 집에서 산단다.
분명히 이 사람은 남자인데 여자들과 동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와! 여자 셋하고 살고 있어요?' 했더니 얼른
'전에는 남자 셋하고 살았어요. 잉글랜드 남자, 멕시코 남자, 그리스 남자 이렇게 셋하고' 한다.
농담조로 '여자 셋 하고 살면 힘들겠어요. 어떻게 다 감당해요?'하며 윙크를 해댔더니
무슨 소린지 알아 듣곤 다시 껄껄 대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좀 힘들 때도 있어요.'한다.

아직은 피서객이 많지 않은 동해시 망상 해수욕장에서 만난 사람이다.
대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일부 있고, 그외 카이트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약간 보일 뿐 그 넓은 망상 해변은 꽤 황량하게 느껴졌다.
모래밭을 거닐면서 중동의 그 뜨거운 모래 사막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비어 있었다.
외국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그 해변에 배를 척 깔곤 아무런 염려도 없는 사람마냥
작은 글씨로 된 무언가를 읽고 있던 그에게 'Hi!'하자 다정하게 다시 'Hi!'해 준다.
바쁘디 바쁜 도시에서야 누가 있던 말든 신경을 쓸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바다가 널리 펼쳐져 있고, 하늘도 낮게 떠있고, 산들이 병풍을 이루었으니
마음이 열려 있으니 서로 인사를 나눈 것이다.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정도로 처음엔 생각했었다. 나의 박사 논문 지도교수였던
영국인을 연상시키는 학자적인 예리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스페인 사람들과
더불어 이탈리아 사람들은 영어를 그다지 잘 못 하는 사람들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었더니 'I'm from Italy.'라고 대답한다.
약간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영국 억양을 지니고 있고,
상당히 유창하게 영어를 했다. 이탈리아 억양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좀 의아해서
'You speak very good English. And I don't hear the Italian accent.'이라고 했더니
'I've been in English for two years.'라고 대답을 한다. 영국에서 지금 일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망상 해변에 간 이유는 말을 하지 않고, 명상에 잠겨 바다와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기
위해서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글 쓸 재료를 만들기 위해서 였다. 이틀에 걸쳐
망상에 갔는데 이 이탈리아인이 똑같은 자리에서 혼자 일광욕하고 있는 것을 보곤
궁금해서 말을 붙인 것이었다.

'오 솔레미오'라는 노래 알아요? 했더니 '알아요'한다. 둘이서 신나게 이탈리아어로
함께 불렀다. 옆 테이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는 줄 잘 알면서도 그냥 모른 척하고
고성방가를 한 것이다. '오'가 정관사인 'el'의 방언인 것을 이때 알게 되었다.
'그럼 산타루치아'는요 하고 되물었더니 '뭐요?'한다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다.
'Sul mare lucica l'astro dargento'라는 이 노래의 처음 부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 저기 생각나는 것을 이탈리아어로 불렀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쩔 수 없이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하고 우리말로
노래를 불렀더니 '모르는 노래에요.'하는 것이었다. 좀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거의 다 아는 곡인데 그 곡의 탄생지인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 모르다니...
"'Torna surriento(돌아오라 쏘렌토로)'는 알아요?" 했더니 그곡은 안 단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계 공학 분야에서 일하고 공부를 하는 사람인데 코엑스(COEX)에서 열리는 학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미리 와서 경주도 가보고, 일본으로 가서 교도, 나라 등에도
갔다가 해변에서 relax하기 위해 왔단다. 팻션과 오페라의 도시 밀라노에 가보고 싶다
했더니 자신은 개인적으로 밀라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누가 자기 의견을
물어 보았나... 잉글랜드 사람들은 성격이 차가와서 영국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단다.
이탈리아 보다 연봉이 잉글랜드는 약 세 배가 많아 돈 벌기는 좋지만 그다지 오래 살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대화의 기술' 중 가장 훌륭한 테크닉은 상대방의 관심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질문도
하고 경청을 하는 것이다.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이 설교단에
올라 서면 그날 교인석에 'hearing'을 하는 사람이 많은지 'listening'을 하는 사람이
많은지 금방 알 수 있다고 하셨다. 'hearing'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듣는 사람의 태도를 말하고, 'listening'은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듣는, 즉 경청을
하는 사람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난 파올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들에 대해서
열심히 질문도 하고, 대답도 하였다. 그래서 얻은 소득이 하나 있다. 이탈리아 대중 가수들
중에서 매우 유명한 네 사람의 이름을 그가 내게 적어 준 것이다. 그 중 두 명은 음유시인
이었다. 시를 노래하듯이 읊은 그런 스타일의 가수 내지는 시인들이었던 것이다.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둘 다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서, 너 시간을 즐겁게 떠들어 댔다.
내가 맥주를 사 주었더니 자신도 꼭 답례를 해야 한다고 또 뭔가를 사주는 것이었다.
또 다음 행선지로 내가 길을 떠나야 했기에 아쉬운 작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적어 주면서 자신이 서울에 머물고 있는 동안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이메일을 보내 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침묵을 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파올로.
나의 침묵은 비록 깨어졌지만 그와 나눈 이야기들은 내 마음 속에서
기쁜 노래로 오랫 동안 머무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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