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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 그 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별헤아림 10 1562
피아골 그 밤 무슨 일이 있었는가
권선옥(sun)

테마 여행 '섬진강 벚꽃축제' 행사의 마지막 순서인 캠프파이어.
그 곳에 모인 모든 회원들은 나이를 잊고 시간을 잊고 음악 속에서, 마치 젊은 날의 대학 축제가 열리던 그 추억의 밤을 떠올렸고, 그 때의 친구들을 그리워했을 지도 모른다. 나이는 다만 숫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몇몇 분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축제의 인파가 서서히 자리를 뜨자, 캠프파이어 불꽃의 불기둥 높이도 차츰 낮아지고 있었다.
소멸의 시간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바람에 그을름과 재가 날릴 무렵, 그 날의 소방 책임자 작곡가 황덕식 선생님을 뒤로 하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 앞에서 편가르기가 시작되었다. 피곤하여 자는 쪽과 더 이야기하는 쪽으로 양분을 했다. 피곤하긴 했지만 휴식을 다음 날로 미루고, 모임의 시간을 연장하는 쪽으로 줄을 섰다.

밤이라 지척을 분간할 수없는 곳으로 안내가 되었다. 낮이라 해도 낯선 길이니 모르기는 매한가지일 테지만. 피아골 김경선 원장님 부군이 주로 거처하시는 토굴이 가까워지자, 길이 난코스였다. 놀이기구 타는 기분으로 운전하시는 분께 목숨을 맡겼다.
들어서니, 바로 앞에 오신 전준선 선생님께서 주인장 분위기로 마루에 서 계셨다. 내려다 보시며 올라들 오라고 하셨다. '토굴'이라 명명함은 김경선 원장선생님의 부름에 따른 것이다. 황토방 앞에는 밤물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깊은 산골의 밤 물소리 산새소리. 그래도 꽤나 많은 분들이 모였다.

피아골 깊은 산 속에서의 아름다운 음악과 사색적 얘기가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색깔들로 꽃이 피는 시간이었다.
노래하다 술 마시고, 술 마시다 철학적인 말씀들을 하시고, 사색적이 되어 가는가 싶으면 어느새 또 노래를 시작하셨다. 화음이 느슨해지면 다시 '산토끼 토끼야'. 학교 종이 땡땡땡'. '나리 나리 개나리'...... .
모두 내가 아는 동요에다, 초등학교 때는 음악 시간에 노래 불러서 통지표에 '우(優-넉넉할 우)'를 받은 실력이 아니던가.
예술을 한다고 놀면서 돈벌이를 하지 않는다거나, 잃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이수인 선생님.
홍일중 시인님, 작곡가 전준선 선생님, 장기홍 지휘자님, 음악 평론가 탁계석 선생님, 그리고 주인장 정영명 교수님은 심포지엄에 초대 되신 각 분야의 전문가 같으신 입장이었고, 정우동 선생님, 이용수 사회자님 그리고 정동기 운영자님을 비롯한 비교적 젊은 층은 자주 대하는 탓에 식구 같은 분위기였다. 번뜩이는 진리의 깨달음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주로 듣기만 하는 나를 불러 세워서 시 낭송을 하라고 해서 이 즈음의 계절에 잘 어울리는 '벚꽃 지는 계절'을 낭독했다. 홍일중 시인님과 탁계석 평론가님께서 관심을 보이시며,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고 하시더니, 아까 낭송하던 시 좀 보여 달라고 하셨다. 마이크가 울려서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보여 드렸더니, 두 분 다 '해의 꽃'에서 중심 소재를 '그늘에서 자라는 풀'로 모티브를 잡은 점을 칭찬하셨다.
요들팀의 노래에 떠올려지는 '스위스 아가씨'.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산골의 밤은 자꾸만 자꾸만 깊어 갔다. 내게 남녀 구분을 못 한다고 등짝 세게 맞은 분은 한 분 계시지만, 산을 내려 오던 새벽 4시 넘어서까지 억지를 부리거나 술주정하시는 분은 보지 못 했다.

가르치시고, 깨우치게 하시고, 감동을 주신 분들.
계획되지 않은 만남. 예기치 못 한 곳에서의 감동.
평소에 그리 사색적이지 못 한 나도 순간, T.S. 엘리어트와 사르트르를 떠올렸다.
실존주의자들이 인간이 가장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만남'과 '위기'라고 했던가.

잊어 버려서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12만원 하던 <미스 사이공>보다 더더욱 리얼한 시인 홍일중 선생님의 퍼포먼스와 시 낭송 장면을 올려 봅니다. 진한 진달래빛 종이에 적어 오신 즉흥시. 나이 드신 분도 때로는 깜찍안 모습을 보이십니다. 너무 튀는 진분홍 색상의 왠지 부끄러우셨는지, 시를 적은 메모지가 왜 진분홍색일 수밖에 없었는지의 배경 설명을 하신 후, 시 낭독을 하셨습니다. 제목과 내용을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언제 뵈게 되는 날, 그 시를 다시 읽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전에 다시 지리산 피아골엘 가 보니, 지난 밤의 흔적은 말장하게 가셔진 듯, 봄날의 따사로운 햇빛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뿌연 흙먼지나 황사 때문에 호흡기에 해로운 그 무엇도 없었습니다.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김경선 원장선생님께서 잔디에 다리를 뻗고 앉아 계시는 동안 저는 토굴 주변의 봄꽃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산은 높고 골은 더욱 깊은 지리산 피아골을 내려 왔습니다.

<2007.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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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의 불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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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피아골 '토굴' 방문자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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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피아골 '토굴' 방문자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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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는 시작 되고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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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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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포먼스1 : 시인 홍일중 선생님의 77세 청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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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포먼스2 : 시인 홍일중 선생님의 다리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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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포먼스3 : 시인 홍일중 선생님의 다양한 동작 : 심장 약하신 분은 따라 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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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포먼스4 : 좌중 웃음 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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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포먼스5 : 얼마나 지났을까. 이마엔 구슬땀.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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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포먼스 휘날레 : '흔들림 방지 시스템'이 있는 나의 디카마저도 홍일중 시인님 퍼포먼스에는 그 흔들림을 이기지 못 하여...... . (사진이 좀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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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중 시인 : 뒤에 숨기신 것이 무엇일까요? ㅎ.ㅎ. 지치지도 않으신 듯 이어서 바로 시 낭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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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흥시 낭독 : 행사장에서 벚꽃 핀 모습을 옛 여인네들의 한(恨)으로 다시 피어난 영혼으로 관조한 시, 참으로 감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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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식사 시간1 : 어젯밤 뭔(?) 일이 있었당가? 식탁에 자리한 막걸리병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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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식사 시간2 : 한 방울의 물에도 우주의 신비가 깃들여 있고, 한 알의 밥에도 농부의 노고가 서려 있듯이 한 개의 재첩에도 채취는 아낙의 손길이 묻어 있고, 이 모든 것 다음에는 김경선 원장님의 열정이 있었나니, 우리 모두 이 아침밥을 먹고 더욱 튼튼해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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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날 다시 찾은 지리산 피아골1 : 김경선 원장선생님 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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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날 다시 찾은 지리산 피아골1 : 정영명 교수님께서 설거지를 하실 동안, 김경선 원장선생님은 잔디에 다리를 뻗고 봄빛을 완상하시고, 시인 권선옥은 주변에 핀 봄꽃을 디카에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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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 토굴 주변1 : 초롱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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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 토굴 주변2 : 풍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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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 토굴 주변3 : 민들레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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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 토굴 주변4 : 야생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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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 토굴 주변5 : 화단의 잔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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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 토굴 주변6 : 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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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 토굴 주변7 : 개울물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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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피아골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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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피아골2 -
10 Comments
산새발자국 2007.04.22 08:35  
  맞아요 맞아 저 장면들! 권시인도 함께 하셨구먼요.
<온 밤을 꼬박 지새운 피아골의 추억>
카메라가 있었는지도 모르게 노래에 술에 취했던 그 밤.
홍일중님의 저 춤. 그 스테미나. 다시 떠오릅니다.
밤 중에는 방 안만 생각했었고 아침엔 술이 덜깨서 어영부영
나와 산을 내려왔는데 아 저런 집이었군요. 공기가 어찌나 좋던지.
좋은 기록을 보여주어 감사합니다.
별헤아림 2007.04.22 08:59  
  산새발자국 전준선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 밤 선생님의 음악 메들리 인상 깊었습니다.
노래 부르는 동안 알퐁스 도데의 '별'의 배경이 된
프로방스 지방의 깊은 산골에 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미 중복되는 얘기는 가급적 생략하고
사진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올렸습니다.
산새발자국 2007.04.22 09:39  
  알퐁스 도데의 '별'
내 젊은 시절 모델이었던 '사랑의 빛깔'
소녀의 비에 젖은 드레스를 목동의 마른 옷으로 갈아 입혀,
언덕에 올라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목동의 별 이야기에 소녀는 목동에 기대어
스르르 잠이 든다는 이야기. 얼마나 순수하든지.
*하두 오래 되어서 희미한 기억으로 남았네요.맞는지?

내가 생각해도 그날 노래를 얼마나 많이 불렀든지
행복한 밤이었다는 것으로 오래 기억하고 픕니다.
별헤아림 2007.04.22 09:50  
  '매기의 추억', '산골짝의 등불', 산타루치아', '에델바이스' etc.

알퐁스 도데의 '별'이 교과서 생긴 이래 한 번도 빠지지 않고(제 6차 교육과정까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습니다. 그러다 2000년 이후, 제7차 교육과정부터는 그 순수함의 정서가 디지탈 시대의 요즘 청소년들의 정서에 어필하지 못 한다는 이유로 처음으로 교과서에서 빠졌습니다. ^^*
민수욱 2007.04.22 11:41  
  확실이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인연들이 되셨군요
그날을 떠 올리는 그 자체가
행복충전이라....
ㅎㅎ
송월당 2007.04.22 12:14  
  별헤아림님 저 곳을 못가 많이 궁금했는데
사진으로 설명으로 너무 잘 보아 감사 드려요.
에버그린 2007.04.22 13:39  
  별~님!
하동오는길에 지리산을 버스타고 넘어오면서 피아골을 눈으로만 보고 왔는데..아늑한 토담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셨군요~~~
별헤아림 2007.04.23 00:59  
  민수욱님.
아침식사 시간에 김경선 원장님이
민수욱님의 '성주 참외'라고 하셔서 한 쪽 먹었습니다.
민수욱님이 손길이 지나간 참외겠지요. ^^*
과육질이 대구에서 사먹을 때는 좀 두터웠습니다만...... .

송월당님.
에버그린님.

이젠 길도 알게 되었으니,
다음엔 청학동과 피아골 팬션에도 가 볼 생각입니다.

오경일 2007.04.23 10:49  
  목숨 걸고 다녀오신 토굴 속에서는 세상과 단절되 즐거움의 꽃들이 활짝 피어 있군요.
즐겁게 보낸 시간들이 부럽습니다.
역시 밤에는 역사가 이루워 지는군요.
별헤아림 2007.04.23 11:51  
  오경일님
그래도 '바이킹'타는 것보다는 수월했습니다.

낮에는 또 뒤탈없는 산뜻함.
'Cool'하다 라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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