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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대산

이종균 3 1097
두메에 서린 난고의 한
 (마대 산)

 동강은 언제 봐도 도도하고 풍성하다. 저승 앞을 흐르는 강을 건너면 이승의 모든 추억을 잊는다는데, 나는 이 강 건너 새롭게 펼쳐지는 풍경에 일상의 잡념들을 모두 떨치니 내게 있어 이 강은 망각의 강 “레테”나 다름없다.
 소만을 넘긴 들녘엔 모내기가 한창이고, 임부의 부푼 몸매처럼 배동선 보리밭, 무릎 높이까지 자란 옥수수, 그리고 흐드러진 감자 꽃이 연녹색 신록으로 덮인 산자락에 어울려 위대한 예술작품처럼 느껴진다.
 특히 감자 꽃은 김동인님의 단편 “감자” 복녀의 기구한 운명을 떠올리게 하여 그런지 애잔해 보인다.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마대산은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산지대인 강원도에서 1,052m의 높이면 큰 산이 아니려니와 산세 또한 그냥 평범할 뿐, 사람을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깊고 외진 두메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1982년 한 향토사학자의 노력으로 이산 들목인 노루목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이 한동안 살았던 집터와 죽어 묻힌 무덤이 확인 되면서 점차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져 지금은 영월에서도 손꼽히는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김삿갓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방랑시인으로 기억되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아니 어쩌면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 좀 더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그 뛰어난 풍류와 해학 그리고 위트와 유머를 높이 사고 그의 시 몇 편쯤 암기 하고 있을 것이며 더러는 그 밑바닥에 깔려있는 정서와 인간적인 고뇌, 파격적인 시풍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그냥 “방랑”이라는 어휘 자체에서 오는 매력과 동경심에서 그가 잠시 머물렀던 곳, 앞으로 영원히 누워있을 곳을 찾고 싶었으니 내 마음속에도 방랑성이 조금은 있는 것일까.
 누구나 다 알다시피 김삿갓의 본명은 병연 이다.
 조선 순조(1811년)때 홍경래가 난을 일으키자 문신인 가산군수 정시는 용감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는데 김병연의 조부인 김익순은 선천 방어사인 무인의 신분으로 투항을 하였다.
 그래서 사형을 당하고, 그의 조모는 관비로 축출되며, 부친 김 안근은 남해로 유배되었다가 화병으로 죽고, 모친은 동생 병호를 데리고 이천으로 피신하였는데, 조정의 벌이 멸족에서 폐족으로 감형되자  종복을 따라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했던 병연과 형 병하가 모친 품으로 돌아와 영월 동강 마을인 삼옥리로 이사를 한다.
 병연이 스무 살이던 1826년 영월 도호부 동헌백일장이 열렸는데 병연이 출장한다. 그는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정가산의 충성스런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하늘에 미치는 죄를 통탄하라.)는 시제를 받고 임금과 조상을 저버린 너의 한번 죽음은 가벼우니 백번 죽어 마땅하다고 통렬히 비판하여 장원을 한다.
 그로 말미암아 모친으로부터 비극적인 가문사(家門史)를 듣고 난 병연은 하늘을 볼 수 없다며 마대 산기슭 어둔 이란 곳으로 집을 옮기나 두 해를 다 못 채우고 처자식을 놓아둔 채 기약 없는 방랑길을 떠난다.
 김삿갓의 행적을 살펴보면 금강산을 비롯하여 묘향산, 구월산, 지리산 등 명산을 두루 살폈으니 산을 무척 좋아했던가 보나 이곳을 찾은 것은 아름다운 산의 경관 때문이 아니요 하늘이 부끄러워 한을 품고 숨어 살려했음이다.
 그런데 이곳 어둔 골짜기 너와삼간에서 바라보이는 것은 돈짝만한 하늘뿐이니 어찌 그 하늘을 바라보며 여기 머물 수 있었으랴.
 삿갓으로 하늘 가리고 대 지팡이 짚어 이 골을 빠져나가던 김삿갓의 심중을 헤아릴 만도 하다.
 나는 등산모를 눌러쓰고 산길로 오른다. 50도를 넘는 급한 경사, 그러나 돌밭길이 아니어서 발목에 와 닿는 감촉이 부드럽다. 
 한 아름으로 감쌀 수 없는 거대한 소나무들 한결같이 밑동에 상처의 흔적이 남았으니 혹 일제 말에 송진을 따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마대 산 정수리, 보잘것없는 초라한 모습, 앉아 차 한 잔 마실 곳이 마땅치 않아 뒤돌아 달려간 곳이 전망대이다. 
 바위에 뿌리박고 자란 노송 가지 사이 남쪽으로 소백산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이 소백산과 태백산의 중간지점이라는데 동쪽 태백산의 모습은  울창한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빨리 내려가 시선(詩仙)의 숨결을 살펴봐야겠다는 욕심으로 서둘러 달려 내려오는 바람에 처녀봉의 신선함도 느껴보지 못한 채 선낙 골 일월 암을 스쳐 김삿갓 묘지에 이르렀다.
 노루목 남쪽 기슭 양지 바른 곳, 시선 난고 김병연지묘 (詩仙 蘭皐 金炳淵 之墓), 푸른 이끼가 듬성듬성 자리 잡은 자연석 상석 넘어 잔디에 덮인 봉분이 결코 초라해 뵈지 않는데 초여름의 따가운 햇볕이 내리쪼이고 있다.
 살아생전 부끄러워 삿갓으로 가렸다던 하늘, 원 없이 쳐다보시라!
 20여 년 전 전북에 있는 조선조 말기의 한 고관대작의 묘가 30대 후반인 그의 증손에 의하여 파헤쳐졌다. 명분인즉 “오래 남겨둘수록 치욕만 남기 때문”이었다는데 그로부터 또 십여 년이 흐른 뒤 이순에 접어든 그는 수십억대의 유산을 되돌려 받기위해 소송을 했다는 씁쓸한 기억이 이 무덤 앞에서 불현듯 떠오른다.
 버리고 떠난 자식에 의하여 이곳에 이장된 난고가 살아있어 이를 보았다면 풍자시 한 편 쯤 더 남기지 않았을까.
 이제 두메라 하기에는 허물을 벗어가는 모습이다. 깊은 골짝 산자락이 마구 헤쳐지고 여기저기 식당, 주점, 찻집, 기념품가게, 민박집이 휘황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난고의 한이 서린 곳인데 그의 한을 딛고 한몫 보려는 투자자들의 노름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난고는 경기 양주에서 태어나 이곳에 살다가 전라도 화순 동복에서 한 많은 생을 마쳤으니 양주와 화순에서도 이런 개발이 있을 법도 하다.
 두꺼비 한 병쯤 미리 준비하지 못했어도 시인의 무덤 앞에 섰으니 시나 한 수 읊어보자.

  민란에 투항한 선천방어사가
  하필이면 그대 조부였던가

  조상을 욕한 죄, 하늘이 부끄러워
  삿갓 눌러쓰고 떠돈 삼천리
  서른다섯 해

  허어! 한잔 술에
  미친 듯이 익살을 토해내고
  지친 육신 누운 곳

  이끼 낀 상석(床石) 밑에
  시심(詩心)은 잠들고

  개발을 구실삼아
  망자의 한을 딛고 한몫 보려는
  상심(商心)만 활개 치네.
3 Comments
김형준 2006.06.22 18:58  
  동강과 김삿갓....

'동강은 흐르는데'라는 멋진 가곡이 있습니다.
부르고 또 불러도 너무도 마음에 깊이 와 닿는 노래입니다.

'어서 와!', '어서 와!'하고 동강이 자꾸 저에게 청하기에
왜 그런가 하고 의아했었는데
이선생님의 글을 보며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자유인의 대명사 김삿갓!

바로 그 방랑 시인께서 저를 부르시는 소리였습니다.
동강의 물줄기를 통해서 말입니다.

말씀 듣고 보니 어서 가서
자유인 선배님께 꾸벅 절 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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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끄는 데로 가려 하네
벗 삼을 이 없으면 또 어떠리
발 가는 데로 가다 풀숲에 몸 누이리.

사랑도 그저 하루, 이틀이라
오래 머물 수 없는 자유 인생 어찌하리
된장국 내음 풍기는 다음 마을에서 다시 예쁜 누이 만나리.

아픔도 슬픔도 다 하늘로 날려 보리고
맘 맞는 이 한, 둘 우연히 만나 막걸리 한 잔 걸치다가
석양이 맘 스치면 새소리 바람소리 가자는 데로 훌쩍 떠나리라.
바 위 2006.06.25 12:44  
  시 황제  능침에는  솔 바람도  시 읊도다

백성이 세운 詩碑 하늘 조차 부럽다오

난고여  천지간 방랑길  그립기도 하리라
정우동 2006.07.01 20:14  
 
  - 西山大師 臨終 偈頌詩 -

生也一片浮雲起  /  생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死也一片浮雲滅  /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浮雲自體本無實  /  뜬구름 자체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生死去來亦如然  /  나고 죽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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