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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는 고진숙 선생님을 모시고

정우동 3 756
고진숙 선생님은 1934년 사리원시 태생으로 올해 일흔 둘이신데 정정하고 건장 조쌀하시다.
6. 25 전란의 와중에서 피난처 부산에서 부산사대 음대를 나온 후 마산에 정착하여 교직에
몸 담고 후진의 교육에 힘쓰는 한편 왕성한 음악활동과 더불어 지상에 음악평론을 쓰셨다.
그후 상경하여 육군정훈학교를 거쳐 육군행정학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으시다 음악전문
의 세광출판사에 근무하셨고 스스로 출판사를 경영하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55년 시영토, 60년 자유문학지로 데뷔한 시인으로 첫시집
<꿈에서 깬 내 이야기>등 10 여권의 시집이 있고 조두남 선생이 작곡한 그리움등의
노랫말 100여편을 지었으며 그중에는 특히 김연준 선생이 대부분의 곡을 붙혔다고 증언하시
며 자신도 김소월님의 <먼 후일>과 김안서님의 <봄바람>에 몸소 작곡한 사실도 밝히셨다.
그래서 김동진 선생님은 어느 자리에서 고진숙 선생은 음악을 아는 시인이기 때문에 작곡하
기에 좋은 시를 써주는 시인이라고 평해 주셨고, 오늘 바로 우리 임준식 지도 선생님도 같은
취지의 말을 해 주셨다.

피난살이의 동병상련이련가 ........
선생님은 평양출신 석호 조두남 선생과는 각별한 사이였고 그런중에도 애증이 교차되는 상
황도 더러 있었다. 조두남 선생의 "그리움"은 원래 자작시에 붙여진 곡이었던 것을 고진숙
선생님이 지금의 "기약없이....." 로 시작되게 개사를 하여 널리 사랑받는 노래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선구자의 작곡 문제와 석호 선생의 애제자의 피아노 연주에 대한 혹평으로 한때
는 두분 사이가 소원한 적도 있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선생님은 현재 한국음악 저작권 협회 이사로 계시며
지난 6월 28일 우리가곡의 발전과 보급을 목적으로 창립된
한국 신작시 가곡 운동의 부회장겸 사무국장의 중책을 맡고 계시는데
앞으로의 선생님의 활약에 같은 목적으로 뭉친 우리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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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김경선 2005.08.23 06:57  
  주옥같은 우리가곡을 만들어 오신 산증인을
모시고 함께 노래를 부르신 회원들 가슴은
어떠하였을까? 음악도가 시인으로 노래말을 쓰시고...
고진숙 2005.08.23 18:52  
  정 삿갓 님, 언제 그렇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조사했는지 나 자신이 놀랄 정도로...한참 동안 조두남 선생님한테 받은 사랑과,--정말 20대 후반서부터 마산을 떠나기까지(66년)
날 끔찍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정 삿갓 님의 표현대로 '애증이 교차되는 상황'에 대한 상념에 젖어 봤습니다. 그런데 '애'는 지속되었지만 '증'은 단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
김경선 님, 그야말로 주옥 같은 짧은 글에 매력을 느낍니다. 다른 데서도 긴 글을 못 본 것 같은데, 예쁜 글 좀 길게 써 보셔요. 아, 여기는 짧은 글 남기는 곳이군요. 관심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해야로비 2005.08.26 22:31  
  얼핏 듣고 지나치기 쉬운 귀한 말씀을 이렇게 정리해 주시니...
다시 한번 정우동국장님의 세심함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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