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연주.감상후기, 등업요청, 질문, 제안, 유머, 창작 노랫말, 공연초대와 일상적 이야기 등 주제와 형식, 성격에 관계없이 쓸 수 있습니다.
단,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는 금지하며 무단 게재할 경우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회원문단은 자유게시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

해아래 10 1301



<어찌 하면 좋을까>



언제부터인가 부쩍 큰 까치소리가 우렁차게 집안으로 차고 들어왔다.
그 소리는 유난히 가까웠고 아파트 유리창에 부딪쳐 공명이 되었는지
더 맑게 들려 왔으므로 늘 듣던 까치 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우리 집 맞은 편에 넉넉하게 교행할 수 있는 2차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느티나무가 한 그루 늠름하게 서 있다. 730년 수령의 그 느티나무에는
꽤 큰 까치집이 하나 있는데 이른 아침, 까치들이 부지런을 떠는 날은
크게 나무 주위를 원을 그리며 날아 오르곤 한다, 그럴 때 어김 없이 내지르는
까치소리와는 요즘 들려오는 이 소리는 새벽 잠결에도 쉽게 구분이 될 만큼
거리감이 다르다.

마치 베란다 유리창에 붙어 앉아서 소리치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날은
베란다 난간에서 두 마리가 화답하듯 이중창으로 들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오늘도 무슨 좋은 소식이 있을려나 보다.
오늘 따라 노랫소리가 맑고 우렁찬 걸 보니 분명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그렇게 그날 그날 까치움음소리에 따라 행복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며칠 그 일을 잊었나 싶은 어제 아침, 일찍 눈을 뜨고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을 때, 이유는 이불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작은 기온차로 다소 잦아들었던 기침이 계속될 것 같아서였다. 때 맞추어
커다란 까치 울음소리가 쳐들어 왔다, 그 우렁찬 소리는 나를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앞뒤 생각 않고 베란다 쪽으로 가서 급히 블라인드를
걷어 젖혔다. 남쪽으로 난 작은 애 방앞 외벽에 부착된 에어컨 실외기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흔한 조류이긴 해도 도심에 살면서 날개 있는 짐승을 가까이서 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녀석들, 그 동안 여기에 앉아서 울어대고
있었구나. 아무튼 고맙고도 기특한 마음에 잠시 지켜 보노라니 또 한마리의
까치가 힘차게 그 주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입에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물고 있었는데 내가 보고 있는 걸 감지했는지 내려 앉지 않고 비행만
계속하다가 결국 앉아 있던 다른 한마리 마저 데리고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는 주위를 살펴보니 에어컨 실외기를 매달아 놓은 받침대 사이 좁은
공간에 어느새 물어다 놓았는지 비숫한 굵기와 고만고만한 길이의 나뭇가지들이
꽤 모여있었다. 집을 지을 모양이었다.

그렇구나, 그래, 봄이면 모든 것이 눈을 뜨지, 얘네들이라고 새 보금자리에서
새 생명을 양육할 계획이 없을라고.. 내 가슴은 마구 뛰었다.
아, 이렇게 가까이서 얘네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게 되겠구나,
집을 짓는 과정이며 새-끼를 낳고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가 커서 첫비행을
하는 장면까지도 소상히 볼 수 있게 되겠구나,

웬 행운인가 하면서 이제부터 앞으로 몇 달 동안은 나를 족히 행복하게 해줄
정말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생겼구나, 꿈에 부풀었다. 고맙다.. 까치야,
까치 한쌍이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우기 위한 사전 준비작업, 이 얼마나
자신의 삶과 의무에 충실한 모습인가. 어린 생명을 키우기 전에 삶의 터전을
먼저 다지는 그들에게서 자연의 신비감과 미물이지만 생명있는 것들에 대한
경외심마저 들었다.

그 때부터 내 신경은 온통 그 까치집에 쏠렸고 눈만 뜨면 블라인드를 걷고
그들의 새로운 집 신축현장의 공사진행상태를 점검했다. 그 녀석들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출근하는 날이면 혹 종일 날아오지 않았으면 어떡하나,
다른 곳, 더 입지조건이 좋은 곳에다 집을 지어버리면 어쩌나 조바심도 내면서
나뭇가지가 모이는 속도가 더딘 날은 이 집을 언제 다 지을까 안달도 했다.

그러나, 기쁨을 나누면 두 배로 된다고 누가 말했을까, 남편에게 빅 이벤트가
생긴 양 흥분한 어조로 이 사실을 알렸을 때 반응은 의외였다.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까치집이 완공되었을 때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얘기하는 거였다.

요약하면 '신문도 안 보느냐' 였다. 까치집이 비나 이슬에 젖게 되면 그대로
전기가 흘러 합선으로 인한 정전사고가 난다는 것. 그래서 어떤 지방에서는
‘100일 까치소탕작전’을 벌여 사냥꾼들로부터 사들인 까치로 박제품을
만들어 팔아 불우이웃 돕기를 한다는 둥, 한전 어느 지점의 경우
하루 3백여개의 까치집을 철거한다는 둥, 무척 신빙성 있어 보이는 예를 들어
차근차근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설마, 그래도.. 하면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까치집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자연생태관찰의 훌륭한 자료라거나,
야생조류 한 세대가 자라는 과정을 살핌으로써 생명의 경외심을 깨우치는
멋진 계기가 될 거라 거나, 아침나절 아름다운 울음소리로 기쁜 소식을
예고해 주는 길조라는, 가슴뛰는 낭만적 기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까치와 한전 사이의 팽팽한 생존의 대결구도 만이 화두에 올라와
있을뿐 까치는 이미 문명생활에 골칫거리로 전락해 있었다. 이건 타협의
선을 넘어 '인간과 까치와의 전쟁 선포' 바로 그거였다. 특히 산란기인
2-4월에는 한전 직원뿐 아니라 일용직 배전공까지 고용, 배전선로 순시조를
편성해 전신주에 불법으로 지은 까치집 철거활동을 벌인다고.

한전은 갖은 아이디어를 발휘, 전신주 전선시공을 하향식으로 변경,
전력선이 까치집에 닿지 않도록 하고 전신주와 전선의 연결부위에 절연호스를
사용하는 등 ‘조류 공존형 설비’ 라는 이름 아래, 까치로 인한 고장을
방지하기 위해 바람개비, 거울 또는 은박지, 모형뱀·매, 죽은 까치, 빙초산,
나프탈렌, 시너 등 시·후· 촉각을 총동원한 퇴치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배전선로 고장건수 2769건 중 19.8%인 547건이
까치로 인해 발생했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월별로는 까치들이 산란을
위해둥지를 트는 시기인 2~4월에 고장사고가 집중되는데 지난해 2월에
50(9.1%), 3월에 208건(38%), 4월에 71건(12.9%)이 발생했다 한다.

어찌하면 좋을까,

까치의 성장과정 관찰이란 매력있는 대형 프로젝트를 포기할 것인가,

처음 발견했을 때 고맙고 기특해 했던 그 며칠간의 까치와의 신의를 저버리고
저 신축공사 현장을 무자비하게 허물어 버릴 것인가,

한전의 통계는 어디까지나 통계이고 운 좋으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최고 40%도 안되는 정전사고를 피하느라 그 들의 꿈의 보금자리를
헐어버리는 우를 범할 것인가,

정전이 되면, 사후 조치를 감수하고도 집 짓는 일을 묵과해 줄 것인가.
/김필연



nest.4.2.8-1.gif






nest.4.2.8-2.gif




10 Comments
自 然 2004.02.09 10:44  
  혜안 있는 까치 부부의 선택은 ...
시인에 집이 였습니다...!?
정우동 2004.02.09 15:29  
  오는 손 막지 말고 가는 손 잡지 말라 하더군요.
지금당장 처결해야 할 위해가 없다면 그냥 놔두고
와주어 고맙고 기특하던 그 마음을, 나라면, 살리겠습니다.

나는 희랍인 조르바와 조르바-붓다에게 묻곤합니다.
톰돌이 2004.02.09 17:12  
  해아래님의 까치집은 계속 있어도 안전합니다
에어콘 실외기는 외부에 노출되어도
전류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다만 그래도 못미더울 경우 본체와 까치집사이에
절연성질을 가진  보드를 끼워주시면 좋겠습니다
까치가 안볼때에요 ^^
서들비 2004.02.09 19:33  
  어찌할꼬~~~~~
이 갈등을...........
해아래 2004.02.09 21:58  
  어제 자다 깨다 몇가지 궁리를 했습니다.
그 궁리 중 가장 그럴듯한 것은 인조 나뭇가지를 그 옆에다
매달아두어서 그 곳에다 둥지를 만들게 하는 것입니다.
까치측에서 거부반응이 있을려나요.
저는 도회지에서 자랐기 때문에 새 둥지를 가까이서 본 적이
한번도 없어 지금 조금 흥분한 상태랍니다.
제가 이 까치집을 허물지 않겠다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음을
눈치챘는지 옆에서 더는 반대를 않네요.
장미숙 2004.02.10 01:11  
  해아래님~ 새봄에 정말 신기하고 좋은 소식인데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을 옮기시어
새로운 프로젝트의 과정을 수시로 내마음의 노래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많은 분들이 새소식에 궁금해 하며 행복하실 거에요.
인조 나뭇가지의 생각도 좋으시지만
현재의 상태가 해아래님 가정에나 까치에게 위험하지 않다면
그 환경에서 어떻게 집을 완성하고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는지를
관찰하는 일도 특별할 것 같아요~
음악친구♬ 2004.02.10 09:52  
  엉클톰 말씀이 맞아요
전 다른 경우였지만 전기가 흘러서 수돗물을 만질수가 없었어요
수리하기 전까지 고무판을 싱크대와 까스렌지 사이에 끼웠더니 해결이 됐었던 기억이 있어요
까만 고무판을 나뭇가지와 실외기 사이에 끼우시면 되요
동심초 2004.02.10 11:46  
  우와~~~ 생명의 소중함과 신비로움이여~~
삭막한 도시의 한 모퉁이에 둥지를 튼 까치집
주변에 큰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이대로
까치들 여기서 살게 해 주세요

작은미물일지라도 생명이 있는 한 존중 받아야 할
가치가 충분히 있구요 그 생명의 존중함을 지켜주었을때
자연으로부터 받을 수 잇는 크나큰 혜택이 분명히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부디 아름다운 선택을 하시리라 믿어요
해아래 2004.02.10 12:45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한 녀석이 날아와
나뭇가지 위에 올라 앉아 큰 소리로 울고 갔습니다.
이해가 안되는 건 까치의 몸 길이가 실외기보다 폭 보다 더 긴 것 같은데..
그렇담 집을 얼마나 크게 지을까.. 집안에서는 꼬리를 접나.. 궁금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모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하늘곰 2004.02.11 03:21  
  까치가 어떻게 집을 지을지 공간이 부족한 듯한데 참 궁금하군요.
계속 중게를 부탁드려도 될런지요.
늦은 봄이나 이른 여름에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는데 그때까지 실외기를 작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텐데 뭐 이런 걱정이 먼저 앞서네요.
제가 시골에서 본 까치집은 지금공간의 4~5배 정도는 되어 보였거든요
실외기 함 옆으로 부목을 받쳐서 공간확보를 해주심이 어떨런지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