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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이종균 10 1009
침묵
                   
혼자서 산에 오름은
수작 걸 사람 없어 홀가분하다

산을 내려오며
오늘은 말 한마디 안했다고 말하니
무겁게 다물어 온 산이 입을 연다

그 말은 말이 아니냐고
하루도 못 참는 건 침묵이 아니라고

무시(無始)의 침묵을 깨고
산이 말하는 것을
나는 비로소 들었다.
10 Comments
sarah* 2007.02.05 22:38  
  ..묵언중에 교감을 이루는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만큼의 수행이 필요한 것일까요.......
산행으로 이루신 침묵수행이 산과의 교감으로
묵직하게 전해져 옵니다
선생님의 건각이 참.. 부럽습니다
김형준 2007.02.05 22:41  
  가만히 이선생님의 눈망울만 쳐다 보았다.
선생님은 내 눈만 바라 보셨다.
그렇게 눈과 눈의 교감을 이루자니 미소가 흐른다.
말은 필요 없었다.
이미 우리가 확인할 것은 다 했다.
이젠 서로 눈을 보지 않아도 된다.
알 건 이미 다 알았으니까.
가만히 테이블로 눈을 향하며
앞에 놓인 모과차를 조금 맛 보았다.

그렇게 산사나이와 나의 교감이 이루어졌다.
김형준 2007.02.05 22:49  
  Oh! dolci baci,o languide carezze,
mentr' io fremente le belle forme disciogliea dai veli!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다.
젊은 화가 카바라도시는
탈옥한 반역자를 숨겨주었다는 명목으로
토스카는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총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누군가에게도 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 사람은 총살형을 받고 이슬되어 사라지고,
또 한 사람은 높은 곳에서 몸을 날려 조금 먼저 간 이와 만나러 가고...

산이 내게 물었다.
"왜 넌 나를 보러 오지 않니?"

나는 산이 보고 싶었다.
산과 나는 너무나도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하지만 슬프게도 이렇게 밖엔 대답할 수 없었다.

"난 갈 수가 없어!
아프니까.
대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늘 널 만나러 가잖아.
그 사람의 혼 속에 내 혼도 들어있어.
산아, 그 사람 만나면 나를 만난 것 같이 잘 대해 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알았지?"

산은 약간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 그렇게 할게.
하지만 너도 보고 싶다."
하고 내게 대답을 한다.

나도 산이를 만나러 가고 싶다.
하지만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산에 가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주 많이....
이종균 2007.02.06 09:57  
  sarah 선생님

 참 예쁜 이름입니다.
성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내이고 이삭의 어머니이며,
불교 경전에 의하면 娑羅는 성불과 열반에 관계가 있는
나무의 이름이더군요!

선생님의 코멘트 또한
자연과 산에 대한 체험이 없이
피상적인 느낌만으로는 이를 수 없는
무게와 깊이가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김형준 박사님!

"새벽 3시 30분,
고흥의 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죽은 듯이 고요한 밤, 나는 비련의 영창 '별이 빛나건만'을
마음속으로 부르고 있다.
-황홀한 꿈은 사라져 버리고 소망은 끊어져
 나 홀로 죽어가오 나 홀로 죽어가오-
이 노래가 끝나면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극진한 사랑의 주인공이
사라질 것만 같아 노래를 되풀이 한다.
행복한 사랑도 많으련만
나는 왜 이 비련을 그리도 좋아 했는지..." (산 나그네- 팔영산 등행기에서)





김형준 2007.02.06 10:42  
  희극은 행복한 결말을 주니까 즐거울 수 있습니다.
허나 비극은 무언가 장엄한 느김을 선사해 줍니다.
분명 우리는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는 존재들이지만
슬픔과 외로움, 아픔을 완전히 피해갈 수도 없는가 봅니다.

제가 부르고 싶은 오페라 아리아들도
너무 밝은 것들 보다는 약간은 장엄하고 강하고 비극적인
것들 입니다.

이번 주에는 용기가 나면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시리즈 중에서 '발퀴레(Walkure)'에
나오는 테너 아리아인
Wintersturme wichen dem Wonnemoond(겨울 바람 달빛에 어우러져)
라는 곡을 부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 음악 선생님도 이 곡은 한 번도 불러보지 않으셨으리라고
추측이 됩니다. 주로 이태리 아리아를 부르시는 분이시라 그렇습니다.
독일어로 된 것은 그분이 가곡이든 아리아든 잘 부르시지 않으시지요.
사실 내용을 보면 이 곡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아리아입니다만,
바그너의 악극이 대부분 다 그렇듯이 음악적인 선율의 흐름보다는
연극적 대사를 전달하는 것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는 듯 싶습니다.
문제는 베르디나 푸치니, 모짜르트, 롯시니와 같은 작곡가들의
노래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부드럽게 흘러가지만 맑고 서정적으로
이 노래를 잘 표현하는 데 있습니다.

이선생님,
혹시 이 곡 아시나요?
제가 지금 들을 수 있는 것은 Placido Domingo가 뮌헨에 가서
연주한 것과 캐나다 출신의 Helden Tenor인 Jon Vickers가
부른 것 이 두 가지 입니다. 이 두 가수의 노래하는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비교해가면서 듣자니 꽤 좋은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다음에 만나 뵐 때에는 이 곡을 콧노래라도
선생님 앞에서 부를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만큼의 음악적 향상이 이루어졌다는 뜻일 테니까요.
지난 주에 'Celeste Aida'를 부르고 난 뒤에 음악적으로
보다 큰 용기가 생겼답니다. 어렵고 힘든 대곡이기 때문이어서
정말 많이 망설이다가 불렀습니다. 과연 제대로 부를 수
있을까에 대한 심한 번민을 하였습니다.
김형준 2007.02.06 10:47  
  아, 그리고 참,
김조자선생님(/송월당님)께서 아마 조만간 솔로로
노래를 하시게 될 것이라는 어느 댓글을 읽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노래하던 그날 오디션(?) 통과하셨잖아요.
기억나세요?
제가 보기에는 김조자선생님께서 솔로도 잘 부르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약간 어색해
하실 수도 있겠지만 두 번, 세 번 부르시면서 점점 더
본인이 가지고 계신 아름다운 감정과 음색을 잘 살려나가시리라고
느꼈습니다. 고음에서 특히 멋진 소리가 나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김조자선생님께서 솔로 데뷔에 성공하시면
그분과 늘 함께 이중창 내지는 삼중창을 하시는
친구분이신 유열자선생님께서도 솔로로 부르시게 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이선생님,
혹시 유열자선생님과 만나 대화를 나누신 적이 계신지요?
대화 목소리가 은방울 굴러가듯이 매우 예쁘고 매력적이십니다.
여하간 김조자선생님께서 솔로로 노래를 한 번 부르신 뒤에
이선생님께서도 내 마음의 노래 매월 모임에서 노래를
하시기를 학수고대하겠습니다.
이선생님도 한 번 솔로 하신 뒤에는
선생님과 김조자선생님, 정우동선생님, 저 또 다른 분이 계시면
이렇게 함께 중창으로도 노래를 하게 되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참 꿈이 많은 사람이지요? (^)^)
노을 2007.02.06 16:54  
  그 말은 말이 아니냐는 대목에서
제가 그만 웃었답니다.
말없는 말을 주고받는 경지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요즘 일요일 밤 늦게 KBS 1TV에서 다큐멘타리 '산'을 즐겨 봅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산행수필도 떠올리며
산은 참 내게 멀고도 그리운 존재구나 싶어요.
이제쯤은 산과 많이 닮으셨을 선생님, 산처럼 늘 그 자리에 계셔주시기를...
김형준 2007.02.06 22:54  
  산이 내게로 오고 있다.
물씬 그립던 산 내음새가 나고 있다.
산의 그 멋진 모습을 보지 않아도 난 안다.
그것은 내 친구 산의 모습인 것을
아, 그 언젠가 늘 함께 했던 산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난 안다.
산은 또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내게로 걸어온 그 산이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산이 함께 있을 때 난 큰 평화를 느낀다.
마치 바다가를 걸을 때의 느낌이다.

바다는 엄마 같이, 산은 아빠 같이 내 곁에 있다.

산에게 오래 있으라고 조르지 못하겠다.
산은 자신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가끔 내게 와주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기쁨인가.
부담을 주면 곁에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산이 얼마나 뚝심이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기 때문이다.
김형준 2007.02.07 00:22  
  아, 그렇네요.
제 주변에 또 산에 열광하는 분이 한 분 더 계십니다.
어느 대학 영문학과 교수를 하시다 은퇴하시고
늘 산과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겸손하시고, 말수도 별로 없으시고, 진실되신 분입니다.

산이 그러한 미덕을 그분에게 전수해 준 것일까요?
그분은 6.25때 10때의 나이로 인천에서 자신의 고향인
광주까지 굶주린 배를 움켜 쥐고 '봉숭아'를 1절에서
3절까지 계속 외워 노래부르며 걸어서 가셨답니다.

어디선가 '봉숭아'를 부르게 되면그분 생각에,
일제 때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에 대한 아픈 마음에,
제 몸과 마음과 영혼이 깊은 울음을 울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울 밑에서 봉숭아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처량한 신세 타령만 하는 것은 물론 그리 건설적이지 않겠지만
그래도 슬픔을 제대로 이해를 해야만
기쁨도 올바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이라 봅니다.
김형준 2007.02.10 23:20  
  아, 오늘도 산사에선 뜨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가장 깊은 곳을 지나서 해탈이라는 다시
환히 열린 공간과 시간으로 연결되기 위해서
자연의 소리에도 귀를 닫고 오직 내면에서 흐르는
도의 진리와 법칙과 더불어 조용히 가부좌하고 계신
분들을 마음 속에 그려 봅니다.

이선생님께서 가시는 산들과 마음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 마음 속에 기억 흔적으로 남아 있는
산들의 아름다움과 멋진 모습에 그저 취해 버리고 맙니다.
만남이 없어도, 이미 만났으며
대화가 없어도, 이미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다시 외로움이 섞이지 않는 침묵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 침묵 속에서만 우리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