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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은 오리 배

별헤아림 7 1512
날고 싶은 오리 배
권선옥(sun)

오리 배는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웃음을 싣고
갈 수 없는 나라 인터불고 앞 강가에 떠 있다.
오리 배를 타고는 닿을 수 없는 곳
원양어업의 대기업가가 세운 궁전이
검푸른 낯빛으로 준엄하게 내려다본다.
내려다 뵈는 오리 배는 정수리가 뜨거워 날고 싶다

이른 봄날
풍선을 잡은 아이는
부모님 손에 매달려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폴짝폴짝
내 배가 간지러워 난생 처음 깔깔대고 웃어도 보았다.
어느새 나도 덤블린이 되어 튀어 오른다

한창 더운 여름날
오리 배는 가끔 부유층의 향수에 곁눈질을 하다가는
마음에도 없는 피곤한 사색도 해 본다.
오늘은
저 인터불고에 숙박하는 사람들과 근사하게 놀고 싶다는 생각
다 부질없다.
그들은 요트나 타겠지 나 같은 오리 배를 탈려구.
그저 지켜 볼 뿐 대꾸 없는 시간만 흐른다.
엄마는 왜 나를 버렸을까 오리배 위 빈 바람소리
이는 어리석은 질문이다.
강바람에 더위도 가셔지고 매미소리 보내던 날
미워진 이름들 더위 먹은 듯 침묵처럼 떠내려간다.

하늘 높아 더 맑은 가을날
모처럼 행복한 가족들도 연인들도 나들이 나온다.
연인들의 웃음소리 중 가장 날카로운 여인
몰래 연애편지를 찢어 놓는다.
발신인 다른 분홍빛너울들이 찢겨진 채 아름답게 침잠한다.
찢겨져도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나이다
폭주족의 오토바이 꽁무니에 매달려 사력을 다하는
여학생의 짧은 옷자락 튀어나온 살 뭉치
펄럭이다 깃발 흔들기 싫어 희망을 버렸다
찢겨진 파편자락 높이도 올라가네.
시선 떼지 않고 어지럼증 느끼다 문양 따라 미로를 헤맨다.
오리 배는 강가의 그림자로 가을을 맞고 가을을 보낸다.

초겨울이 되자 찾는 이의 발길도 뜸하다
그래서 강가의 겨울 더 겨울이다
오늘은 시설에 있는 아동 셋이서 오리 배를 탔다.
수업을 빼먹고 도망친 삶이 그리 즐거울 것도 없다.
기다리는 무엇도 없는데 기다려지니까 온 것이다.
그저 못 견뎌서 온 강가에서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푸른 멍 몇 덩이
조금씩 조금씩 씻어내고 싶은 것이다.
오리 배는 체온이 없다.

강바람 타고 날고 싶다
미워지는 이름들 후우욱 불어서 날려 보지만
이내 그리움에 울먹인다.
가로 지르는 물결 위에
그리운 사람 그리다 없어진 자리
빈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
잔물결 같은 어둠 견딜 수 없어 날고 싶다 더 날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의 문 밖은 여전히 춥고 더 어두운데
막대사탕 빨던 그 때부터 커피 마시는 지금까지
먼 데서 들려오는 겨울 노래는 그 겨울 노래는
유원지에 매어 있어 날고 싶은 오리 배 내 안에 얼어 잠잔다.
찾는 이 없어 녹슬고 고치는 이 없어 물 새는 오리 배는
아직도 가난한 겨울을 지키고 싶다.

<2004.12. 9.>
7 Comments
요셉피나 2005.01.02 10:43  
  찢겨져도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나이다....
슬픈 추억이라도 가진걸 행복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생과 사랑과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우리는 아름다운 중년이지요?*^-^*

님의 글을 읽으니 문득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관심가졌었던
전혜린, 김말봉,나혜석, 천경자, 이상,이광수, 김내성,김동인 등의
옛사람들의 느낌이 느껴집니다.

언젠가는 님께서도 훌륭한 작가로 이름을 남길것만 같다는 생각 때문인지...
님의 내면의 창고 깊숙히 숨겨둔 보물같은 글들을 올해는 꼭 한권의 책으로 엮어보세요.
님의 성공을 젤 먼저 축하해드릴께요. 별헤아림님! 힘내요 화팅!*^-^*
장미숙 2005.01.02 15:36  
  사랑을 싣고 강을 건너주던 오리배~
사랑으로 겨울강을 지켜주는 오리배..
사랑을 해도 외로운 우리들의 자화상..
좋은 글에서 좋은 느낌 받았어요.
새해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별헤아림 2005.01.02 21:34  
  요셉피나 님
너무나 황홀하신 말씀만을 하시니~~~~
잠시 황홀한 꿈 속을 헤매다 돌아 왔습니다.
꿈을 깨도 행복하군요.
너무 응원해 주시니 도망 가야겠습니다. 자신이 없어서... .

장미숙님.
올해도 활발한 작품활동과 아름다운 노랫말 기대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문운이 더욱 깃드시길~!
바 위 2005.01.03 11:54  
  중년이 아름다워야 전 평생이
서운하지 않게 성공한 인생이라
어떤 옛 시인이 시 보는듯 하네요
이해엔 더욱 건강 다음에 걸필 하세요
멋진 글입니다 !

고맙습니다 !!
별헤아림 2005.01.04 00:24  
  바위님.
어떤 분의 글이라도 글 뒤가 외로울까 늘 배려하시는
따뜻한 그 마음
누가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한시(漢詩)를 늘 가까이 하시는 분으로 추측합니다.
쌓으신 은덕 많으시니
가정과 일신에 복록이 가득하시라 또한 그러하길 기원드립니다.
우지니 2005.01.08 21:09  
  옛날에 나룻배를 몇 번 타고 언니집엘 다닌 적이 있는데 (형부가 타면으로 발령이나서.).
 그때는 나룻배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했으니까요. 노를 저으면서 아스라히 보이는 저 건너 바다 끝까지..  참 무섭기도 했지만 낭만적인면도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시골 어디라도 새 길을 내어 아스팔트로 포장을 하여 옛 정취는 다 사라져 버렸지만.  지금도 어느 바닷가에는 날고 싶은 오리배가 묶여 있는 곳도 있겠지요.
그런데 Seattle에 시내관광 버스가 있는데 시내를 한바퀴 돌고나서 워싱턴호수로 들어가서 호수를 한바퀴돌아 다니며 버스기사님이 어찌나 개구쟁이처럼 떠버리는지 가만히 앉아서 운전을 하지않고 섣다 앉았다가 온몸으로 춤을 추며 운전을 하며 어떤 모션을 취하면 승객들 전원이 함께 따라서 흥을 돋구는 것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함께 장단을 맞추기도하고 손을 흔드는 모습이 너무나 정겨웠답니다.
승객 모두가 호르라기를 가지고 불면 그 소리가 꽈악 꽈-악하고 오리소리를 내면서 장단을 맞추며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재미 있더군요. 마치 우리들이 오리가 되어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기분이었답니다.
참 좋은 세상이지요 육지에서는 버스가 되고 바다나 호수에서는 배가 되어 떠다니는 기술력의 편리함을 누리고 사는 세상..  참 많이 변했더군요.
별헤아림 2005.01.31 22:26  
  그래서 우지니님 아이디가 시애틀이군요.
오리가 꽈악 꽈-악 소리내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구요.
즐거운 추억의 장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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