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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정신을 죽음 문턱까지 지키다 가신 음악의 명인

김형준 9 822
바리톤 윤치호님이 2007년 6월 5일 다음 세상으로 가셨다.
칠순의 연세이셨다. 가시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암과 투병하다가 아마 합병증이 있으셨던 모양이다.
언젠가 잠시 윤선생님께 배운 기억이 난다. 2, 3년 전의 일이다.
대단히 귀가 좋으셔서 섬세한 부분까지 잘 지도를 해 주셨다.
그 당시에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일하지 않으면 죽어.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도 하고,
이렇게 노래도 가르치고 해야 난 살 맛이 난단 말이야!'

정말 그러한 말씀을 마지막까지 실천하고 가셨다.
어제 어느 가곡 동호회 모임에서 윤선생님이 가르치시던
성악 수업의 반장을 맡으셨던 분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네, 잘 지냈습니다.'
'저... 윤치호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네요?'

그분은 그 질문에 금방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가 잘
못 들어서 그런가 하고 다시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쉬이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머슥해 져서 다시 묻기가 어려웠지만
용기를 내어 물었다.

'윤치호선생님 언제까지 강의를 하셨어요?'

이 말에 그분의 눈은 금방 슬픈 기색을 띤다. '괜히 물었나'
하고 생각하자니 입이 떨어진다.

'5월22일까지요.'

이렇게 짤막한 한 마디를 뱉었다. 그 말 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항암제 주사를 맞고, 화학 치료를 하느라
가발을 쓰고 다니시던 윤치호선생님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살이 다 빠져서 너무 보기가 안 되었던 윤선생님의 모습.
그 분이 암에 걸리시고 난 뒤 그분 수업을 청강하기 위해
갔을 때 보았던 그분의 모습이 내 맘에 강렬히 꽂혔였다.

'왜 저렇게 아프신데 아직도 강의를 하고 계시는 걸까.'

걸으시는 모습이 너무도 안되 보였었다. 매우 조심 조심
혼자서 압구정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며
말을 걸기도 힘들어 내 발걸음도 자연스레 윤선생님과
같이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강의를 하실 때만은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가르치셨다.
나이 많은 학생들을 한 사람씩 노래를 부르게 하고,
지적해 주시고, 또 피아노도 직접 치시고......

돌아가시기 10여일 전까지 강의를 하시는 그 모습,
함께 그 자리를 지킨 50대, 60대, 그리고 70대 학생들..
모두가 승리자이다. 왠만하면 그렇게 아픈 분에게
강의를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이제 강의를 그만하시라고
권했을 법도 한데 '나 일하지 않으면 죽어!'하시는 말씀에
순종해서 마직막까지 함께 한 그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바리톤 윤치호선생님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음악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다 가셨다.
비록 마지막 1, 2년을 투병 생활을 하시느라 너무나도 힘드셨겠지만
그분은 장인 정신을 끝까지 실천하신 위대한 음악가이시다.
한 길을 끝까지 걸어가신 그분의 모습이 너무나도 고귀하게 생각된다.
그분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신 연세 드신 학생분들도 대단한 승리자이다.
9 Comments
김형준 2007.06.08 12:18  
  바리톤 윤치호님은 그렇게 조용히 떠나 가셨다.
어떠한 spotlight도 그의 마지막 시간엔 그를
비추고 있진 않았지만 난 안다.
그의 마지막은 매우 아름다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이 택한, 또는 신이 주신
그 길을 순종하고 묵묵히 걸어간 명인 윤치호,
나는 그의 길을 곰곰히 생각해 보고,
그와 같이 내게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가고 싶다.

그는 아름다운 삶을 산 멋진 사람이었다.
별헤아림 2007.06.08 23:35  
  사전에서 <장인(匠人)>이라면 [명사]로서, '목공이나 도공(陶工) 등과 같이, 손으로 물건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 윤치호 성악가를 떠올리면'<장인(匠人)>'이란 말보다는 '예술혼을 지킨 분'이란 말이 더 가깝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올려 주신 글에서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느낍니다.
저 또한 '언덕에서'를 오랫동안 애청하고 있습니다.
김형준 2007.06.09 10:47  
  별헤아림님,
잘 지내고 계신지요. 언제 서울에 오시는 지요.
'장인'의 사전적 의미는 별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입니다.
허나 '장인 정신'은 한 분야에 철두철미하게 헌신해서
평생을 고집스러울 정도로 몰두해서 일가(一家)를
이룰 정도의 knowhow를 가지는 것을 일컫는 것 같습니다.
물론 윤치호님의 경우에는 예술가이니까 '예술혼'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습니다.

김형준 2007.06.10 02:08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더 찾아 뵐 걸 하는 마음이 든다.
암이 이미 많이 악화되었을 때였을까. 내가 그분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차라리 그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 더 나은 걸까.
더욱 더 힘든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것 보다.

직접 피아노를 치시며 가르치는 모습이 맘에 가득 차 온다.
늘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사시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드님이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 입단해서
매우 기뻐하셨었는데.....
김형준 2007.06.11 01:21  
  요즘에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multi-talented)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옛날에는 '한 우물만 파라!'고 강조했지만
이젠 자신의 기회를 찾아 직장도 자주 옮기고, 또한 기업들도
평생 직장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래도 대가가 되기 위해선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한 길로 가야 하는 듯 하다. 완전히 빠져서 미친 듯한
열정을 발휘할 때에만 보다 깊은 곳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준 2007.06.12 10:43  
  한 분야에서 한 우물 파고 평생을 그곳에 머물면
과연 얼만큼의 깊이, 높이, 넓이를 얻을 수 있을까.
물론 신이 주신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이 방울 방울 오랫동안 떨어져서 바위에 구멍을 내듯이
자만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수련하여 하나의
촛점을 맞추면 아무리 못하던 사람도 어느 정도까지의
경지에 어르게 된다는 것은 내 주변에서 이미 여러 사람들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목소리가 정말 너무 형편 없는데도 불구하고
성악이 좋아서 직장 은퇴 후 거의 매일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우리 가곡, 이태리 가곡 오페라 아리아를
배우는 몇몇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발성도, 호흡도, 소리도, 표현도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었다. 타고난 소리가 너무나도 쉰 소리여서
과연 저런 소리도 발성이 된 소리로 바뀔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었는데 몇 년이 지나자 너무나도 아름다운
소리들이 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대단한 노력가들이다!'
하고 감탄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최선을 다 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이며 승리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김형준 2007.06.12 21:10  
  어느 것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면 정신 이상이 되거나
대단히 이기적인 행동을 하게 되어 다른 이들에게
큰 실례를 할 수도 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가.
갑자기 나타나서 갑자기 이상한 횡설수설을 늘어 놓고,
늘 누구보다도 더 많이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은
사회에서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만을 너무 내세우는
사람은 길게 가는 무대에서는 절대로 칭찬을 듣기가 어렵다.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훈련이 아마도 덜 된 듯 싶다.
NOBLIS OBLIGE (고위 계층의 의무)라는 말을
깊이 되씹어 볼 필요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김형준 2007.06.14 03:11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떠한 결정을 해서 실행에 옮길 때 그것을 다른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지 또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 심사숙고 해야 할 때들이 있다.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냥 무턱대고 받아들이라고 강요를
했다간 매우 강한 후폭풍이 몰아 닥칠 수 있고, 그런 경우
감당을 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예외를 적용하는 경우 다른 이들에게
'너희들은 안 돼!'라고 쉬이 암시를 하려다간 크게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김형준 2007.06.15 10:53  
  하늘에서 주신 소명을 이루기 위해 애를 써 본다.
피곤한 몸과 마음, 영혼을 다 실어 노래를 부른다.
언젠가 내가 부르는 노래들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내가 믿는 하나님을 알고, 찾고, 돌아오게 하기 위해
나는 부르고 또 부른다. 다시 하늘 나라에 돌아가면
그곳에서 보다 순수하고 맑은 소리로 영원토록
찬양을 하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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