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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를 매일 먹어 치우는 괴인

김형준 0 906
그는 괴인입니다.
왜냐고요?
매일 '타임지'를 맛있게 먹기 때문입니다.

히히... 체하지 않느냐고요? 배탈이 나지 않느냐고요?
궁금하세요?

'타임지'도 이제 인터넷 상에 올려져 있습니다.
time.com에 가보세요. 거기에 재미있는 기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구 주워 먹습니다. 주제에 관계 없이요.
매일 먹습니다. 너무나도 맛 있게요.

인간이 일상적으로 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공기 마시고, 밥 먹고, 물 마시고, 잠 자고, 화장실 가는 것 등이지요.
우리 나라에 살면서 우리말을 매일 쓰지 않는 분들은 안 계실 겁니다.
영어는 이러한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겐 필수적인 일상 행위의 하나입니다.
그가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고, 취미이기도 하며,
사랑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었습니다.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들은 NEWSWEEK이나 TIME을 멋으로라도
끼고 다녔습니다.
캠퍼스에서는 늘 이 잡지들을 50% 할인하니까 구독하라고
세일즈 맨들이 테이블을 놓고 유혹 하곤 했었습니다.

그도 일부 학생들 처럼 겉멋도 들고, 도전도 해 보고 싶고 해서
마음이 혹해서 떡하니 1년치를 구독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아,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습니다.
매주 어김 없이 집으로 배달되어 오는 타임지...
기사 하나도 읽지 못하고 차곡 차곡 쌓이기만 하는 그 골칫덩어리...
'왜 읽지도 않을 비싼 것을 구독해서 이 모양으로... 쯧쯧쯧!'
하는 어머니의 원망 섞인 말씀과 더불어
맘 속의 열등감도 그 두께와 더불어 쌓여 나갔습니다.
낮게만 생각했던 타임지란 산의 기슭도 벗어나지 못해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지요.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은 그런대로 좀 했었지요.
카투사로 입대하여 미군들과 2년 동안 엉터리 영어로 2년동안
치고 받고 난타전을 벌이다 보니 좀 되었답니다.
근데 타임이란 이 조그마한 잡지가 그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했습니다.
토익도 공개 시험에서 1등을 하고, 토플도 아시아에서 1등을 했었는데도 말입니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좀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약 7년간 그곳에 있었지만 전공 공부를한다는 이유로
타임지에는 손을 대 보지 않았습니다.
그건  사실 핑계였을 겁니다. 겁을 먹었던 거죠.
대학 때 오십 몇 주간 매주 공포 속에서 받았던
그 타임지에 대해 여전히 겁이 났던 겁니다.

20여년이 지난간 지금...
그는 타임지를 매일 먹습니다.
맘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던 그 상처를 드디어 치료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 끝에 이제야 비로소 대학 때 하지 못했던 타임지와의 연애를 시작한 것입니다.

타임지가 자꾸 그와 친구를 하자고 합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안 돼! 저리가... 너를 싫어해...'하고 막 떠밀었는데도
한사코 맘에 안겨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흥분되는 마음을 추스리고 타임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기사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짐바브웨의 정치', '미국 안보', '자폐증 환자', '토요타의 미국 시장 전략',
'민물에 나타난 상어' 등에 대한 기사들을 읽었습니다.

'자식, 별 것도 아닌 것이 까불었네...  날 그동안 얼마나 괴롭혔니...
이걸 그냥 한 주먹에...' ㅎㅎ
그렇게 해서 타임지와 이제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매일 만나는 친구니 얼마나 친하게 된 것입니까.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기술, 과학, 예술 등 어떤 주제도 차별하지 않고 열심히 읽습니다.
지적으로도 풍성해지고 있고, 맘에 깊숙이 감춰져 있던
타임지에 대한 공포와 상처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는 매일 타임지를 맛있게 먹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모음과 자음을 꼭꼭 깨물어야 하듯이 말입니다.
그토록 무섭기만 하고, 힘들기만 하고, 싫기만 하던 타임이
이젠 제일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클래식음악과 더불어 말입니다.

타임도 그를 좋다고 합니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는데 싫다고 할 존재가 우주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물론 스토커(stalker)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하겠지만요.

TIME도 사랑합니다. NEWSWEEK도 좋아합니다. ECONOMIST도 환영합니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늘 맘 속으로 힘들어 하던 것 중에 하나가 TIME 읽기 였습니다.
이젠 그 어려움이 오히려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영어 시를 읽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이젠 영미시를 읽는 것이 그의 맘을 기쁘게 해 줍니다.

한 가지 더 도전해야 할 것이 남았습니다.
영미 고전 명작들을 영어로 읽는 것입니다.
영어로 된 대중 소설들은 충분히 많이 읽었습니다만,
고전 소설들은 여전히 그에게서 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열심히 손으로 만지작 거리고, 품에 껴 안고 다녀야겠습니다.
곧 친한 친구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 어렵기만 하고 생소하던 클래식 음악이
어찌 보면 밥 보다도 더 중요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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