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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 선생님에 대한 추억

노을 4 1307
스물 세살 여름에 용유도 을왕리는 섬이었지요.
그때는 인천에 가려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친구들과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세 명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풀이 죽어서 기차에 올랐는데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점이 세 개면 평면을 이룬다는데 힘내자'
부두로 가서 용유도행 배를 타고도 여전히 시무룩하게 뱃전에 서 있었습니다.
부웅-  뱃고동 소리에 이어 천천히 뱃머리가 바다쪽으로 돌려질 무렵
갑자기 부두쪽이 시끄러워져 무심히 바라보니
서울역에 나타나지 않았던 두 친구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지요.
'태워주세요오,  타야 돼요오-'
배 안에서, 부두에서 아가씨 다섯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대자
건장한 아저씨 두 분이 한 사람씩 잡아서 아직 땅에 닿아 있는 선미 갑판으로
냅다 던졌어요. 극적으로 승선에 성공한 친구들과 합세하자 우리는 사기가
충천하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저절로 노래가 터져나왔다고 하는 게 맞을 듯 싶었지요
모두 노래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만큼 좋아하고 잘 부르는데다
파트를 나누어 화음을 이루니 수면을 미끄러지는 배의 속도감에
더하여 우리가 생각해도 참 멋있었습니다.
금방 배안의 승객들 시선을 붙잡을 수 밖에요. 
승객들 중에 섬으로 놀러가는 영등포 S고교 선생님들이 계셨어요.
노래를 잘 부른 덕분에 선생님들이 우리를 초대하셔서 같은 민박집에 들었고
백숙에 맛있는 음식도 잘 얻어먹었습니다.
그 선생님들 중에 이생진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이생진 선생님은 언제나 스케치 북을 들고 다니셨는데
바닷가 모래톱에 앉아 연필로 스케치하시는 선생님 뒤에 우리는 모여 앉아
감탄을 하곤 했지요. 
멀리 수평선을 지나가는 돛단배와 해안 모래톱에 비스듬히 얹혀 있는
빈 배를 주로 그리셨는데 참 쓸쓸한 풍경들이었습니다.
그리곤 한 장씩 나누어 주신 다음 또 그리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연필화를 나중까지 소중히 간직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그 그림이 눈에 선합니다.
화가인줄 알았더니 시인이셨어요. 친구 중 한 명이 오래도록 그분에게서
시 공부를 하기도 했지요.
그 선생님들과 나중에 서울에서 만나 차도 마시고 영화도 봤는데 인연이
그리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 후, 선생님의 '성산포에서'라는 시가 어두운 음악을 배경으로
라디오에서 들려왔습니다.
오랜동안 삶에 떠밀려 잊고 지내던 스물 세살 그 여름날이 생각나며
그리움이 그날의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가끔 선생님의 시를 지면을 통해 읽을 때마다 근황이 궁금했더랬습니다.
어딘가 문화인의 마을에 사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 같이 갔던 친구에게
우리 이생진 선생님 만나러 가자고 부질없는 소리도 해봤지요.
오늘 김형준님의 글을 읽고 섬을 사랑하는 그분이 이생진 선생님이시라는 걸
알고나니 반가운 마음에 가슴이 뜁니다.
그분은 아마 기억조차 못하실텐데....   
 
4 Comments
김형준 2007.01.05 22:18  
  노을님,
그런 추억이 있으셨군요.
몇 년 전쯤의 일인지 제가 추측을 못하겠습니다.
'그날'을 부르시는 바로 그 날 제가 참석을 못해서
노을님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송월당님과 유열자님은 그 뒤에 함께 시간을 할 기회가 있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만.....
김형준 2007.01.11 06:47  
  노을님께서 이생진선생님을 만난 것은 몇 년 전쯤이었나요?
노을 2007.01.17 12:27  
  몇 년 전인지 계산도 안될 만큼 옛날입니다. 방년(?) 23세 때지요 아마.
이생진 선생님은 중년쯤 되셨고... 그런데 김형준님은 그분을 언제 뵈었나요?
김형준 2007.01.18 01:49  
  노을님, 거기 계셨군요.
다음에 내 마음의 노래 모임에서 만나면 우리 상견례를 하실까요?
아직 어느 분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저를 아신다면 미안합니다. 저도 신경을 더 썼어야 하는데....

이생진선생님을 지난 달에 뵈었답니다.
제가 이전에 쓴 글 두 편에 그 만남들에 대해서
꽤 상세히 기록을 해 놓았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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