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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戀歌

靜 軒 10 909
1.

어느 새
꽃들이 다 피었어요.

명자나무 빨강꽃은 이미 다 져버렸고
라일락과 하얀 조팝나무꽃도 져가고 있고
철쭉만 흰색과 자홍색으로 화사하게 피어 있어요.

동산에 올라가 보아요.
자칫 풀꽃들이 피어있는 모습을
놓쳐 버리겠어요.

어쩌면 좋아.
누가 풀을 다 베어버렸어요.

하지만 이곳을 돌아
저쪽 풀밭은 괜찮을지 몰라요.

어머! 정말 그러네!
조개나물꽃과 할미꽃이 아직 피어있어요.

보라색의 작은 꽃들도 보여요.
반가운 제비꽃들이 꽃밭을 이뤘군요.

제비꽃밭이 내려다 보이게
이만치쯤 앉아요.

어쩌면 낮은 언덕을
하나 넘었을 뿐인데
참 조용해요. 그죠?

해마다 봄이면 찾아오는
이 제비꽃밭.

양지바르고 조용해서
아늑함이 느껴지는데다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에
풀잎과 꽃들이 살랑이는
이 제비꽃밭에 있으면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요. 

2.

어려서부터 저는 사과나무꽃만큼
풀꽃들을 좋아했는데
이 제비꽃도 참 좋아했어요.

저를 시집 보내시며
우리 어머닌
제가 이 꽃을 좋아한다고
이 꽃이 그려져 있는
그릇들로만 챙겨주셨어요.

그래서 제비꽃을 보면
어머니 생각도 함께 나요.

제비꽃은
여느 꽃들에 비해
작고 수줍어서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지만
제대로 볼 수가 있는 것이
꼭 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비꽃의 잎사귀는 더욱이나 평범해서
꽃이 지고나면
다른 잎새들에 묻혀 보이지가 않아요.
그래 실상은 이듬해 꽃이 필 때까지
잊혀진 채 살아가지요.

하지만
하얗게 눈이 내린 어느 날
산길을 걷고 있었는데
무언가 파릇한 것이 눈에 묻혀 있는 것을 보았어요.

눈을 헤치고 보니
그게 바로 알록제비꽃 잎새여서
얼마나 감탄했었는지 몰라요.


3.

이제
제비꽃을 바라보면
부끄러움이 느껴져요.

결코
제비꽃을 닮지않은
자신을 깨달으면서...

하지만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다
불평 한마디 없이
엄동설한, 그 혹한의 계절에조차
뜻을 굽히지 않는
제비꽃 초록 잎사귀를 닮았으면 좋겠어요.

또한
요란한 모양과 빛깔로
눈길 끄는 일 없이
가냘픈 듯 하면서도 위엄있게 피어나서
들여다 보는 이의 마음 속에
평생을 박여 사는
보라색 제비꽃을 닮았으면 좋겠어요.

제비꽃을 닮은 여인.
그게
바로 저였으면 좋겠어요.


                               
                          어느 해인가  5월에...

10 Comments
서들비 2005.04.18 15:37  
  ^^*
저도 제비꽃 좋아하는데요,
우리 동네에 몇군데 제비꽃 군락이 있는데,
저는 저 혼자만 아는 곳인양 행복해 진답니다.

달빛아래에서 만나는 조팝나무  하얀길도 참 행복했어요.
유랑인 2005.04.19 00:09  
  어릴 적 이 구석 저 언덕 그 들판을 다니던 회상이 여기 있네요...
제비꽃은 매 봄마다 항상 새로습니다.

제비꽃을 좋아하는 님.

제비 꽃이 님을 좋아할 그때까지  어여쁘세요~~~
오숙자.#.b. 2005.04.19 09:01  
  .

꿈을 가져다 주는
보라색 제비꽃

봄소식 전해 준다 하여
제비꽃이라 하였나

작고도 강인한
생명력의
제비꽃

올해에도 분명
봄은
가까이서 얼굴 내미네...
靜 軒 2005.04.19 09:16  
  서들비님. 안녕하세요?  적어주신 댓글때문에 이 글이 삭제가 되지 않았군요. 제가 올려 놓고도 쑥스러워 다른 분에게 삭제를 부탁했었거든요...  제비꽃, 제비꽃군락도 아실뿐더러 더욱이나 조팝나무 하얀길에 행복을 느끼셨다니 반가웠습니다.  조팝나무꽃 향기 참 좋지요?  저의 집 옆, 산에 그 꽃이 피면 저는 그 꽃가지 그늘 아래 앉아 있기도 좋아합니다.  즐거운 봄 되세요! ^^ 
유랑인님.  언제고.. 사진솜씨에 더해 친구를 돕는 의리있는 마음에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여기서 뵙는군요.  안녕하세요? 마지막에 하신 인사 좋은 얘기지요?  제가 오늘 좀 먼길을 떠납니다.  돌아와서 볼 수 있게 <봄맞이꽃> <참꽃마리> <노루귀> <조팝나무> <때죽나무> 등의 꽃사진을 기회가 닿는대로 좀 찍어주시겠습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靜 軒 2005.04.19 09:24  
  오숙자 교수님. 안녕하세요?  제가 다른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중에 오셨네요.  이렇듯 자상하시니 모두들 교수님을 좋아하지 않고는 베겨나질 못하나 봅니다.  이젠 저까지... ^^  건강하세요. ^^ 
유랑인 2005.04.19 10:43  
  서로 좋아하면 닮는다지요?  그래서 좋은 이야기 분명합니다. ^^

먼길..  목적하신 이상의 행복을 담아 오시길 바라구요... 
건강히 다녀 오십시오.
산처녀 2005.04.19 12:50  
  오늘 산에 오르니 제비꽃이 군락을 이루고 겸손하게 피여 있었읍니다 .
정헌님의 제비꽃 연서가 생각나더군요 .가녀린 잎파리 흔들며 서있는 제비꽃을 보며 겸손을 배우고 돌아 왔읍니다 .
장미숙 2005.04.19 13:01  
  조용히 들려오는 제비꽃 연가에 귀를 귀울입니다~
4.19.. 오늘 짝꿍이 저에게 준 결혼기념일 사랑 카드에
제비꽃 그림이 예쁘게 그려져 있어서 더욱 사랑스러웠는데..
윤교생 2005.04.19 14:17  
  정헌님..
잘 계시지요? 언제나 따뜻한 글 감사드립니다.^^
정우동 2005.04.19 18:07  
  靜軒님의 제비꽃연가는
어른들을 위하여 쓰여진 구연동화 같습니다.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내밀히 조용조용 나누는 
두 사람만의 비밀이고 연인간의 다짐 같습니다.

봄을 불러 오는 제비와 앞 서거니 뒤 따르는 이 꽃빛이야 말로
심오한 비밀이라도 간직한 양 침착하게 가라 앉은 진한 보라빛은
보통의 들풀에서 느낄 수 없는 품위가 있어 더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 보라색을 로이열-컬러라고 한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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