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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의 음악회: 백령작곡연구회의 신작가곡 발표회

동녘새벽 4 1444
자연 속에서의 음악회: 백령작곡연구회의 신작가곡 발표회


지난 5월 22일(목) 17:30-19:30에 춘천 고슴도치섬(위도) 예부룩에서 열린 백령작곡연구회의 신작가곡 발표회에 참석했다: 나를 초대해주신 백령작곡연구회의 회장이신 김현옥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 음악회의 이름은 ‘오월, 그 기다림의 축복’이었다. 의암호 속에 있는 위도라는 섬의 한 끝자락에 자리잡은 예부룩은 확트인 자연공간 안에 있다. 키가 높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서있고 특히 아카시아 나무들에서는 하얀 꽃송이들이 시원한 바람결에 한창 내뿜고있는 달크작하면서 은은한 향기가 나의 코를 간지럽게 하고 마침내 나를 몽롱하게 녹여주었다. 땅에는 자연스럽게 가꾸어진 풀밭이 발걸음을 부드럽게 해주었다. 저멀리 트인 호수 물가엔 온화한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이 춤을 추듯 끊임없이 넘실대곤했다. 그 전 날도 그랬고 그날도 기온이 무려 섭씨 28도로 올라가 춘천시내에선 무더운 여름처럼 느껴졌지만 물과 바람과 나무들 속에 있으니 덥지도 않고 아주 시원하고 상쾌했다.

백령작곡연구회는 1998년, 오동일 교수님께서 정년퇴임하신 그 해에 창설되었으니 지금 10년째를 맞고있다. 주로 강원대 음대에서 작곡을 가르쳤거나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들과 작곡을 전공한 학생들로써 이루어졌고 지금 회원수가 20여명 쯤 된다고 한다.

나는 강원대 문화예술대학 음악학과 김현옥 교수님께서 몸소 운전하시는 자신의 승용차로 임정은 작곡가님과 동승하여 소양교를 지나 그곳에 도착했다. 예전에 80년대에 한두 번 배를 타고 그 섬, 위도에 학생들과 함께 학교행사 겸 소풍을 갔던 일이 어렴풋이 회상되었다. 우리는 학생들 등과 함께 미리 그곳에 왔기에 한 시간 남짓되는 동안 그 섬의 풍광을 접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 전날에 나에게 전화로 이 음악회에 관해 얘기해주신 정우동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었고 오랫만에 오동일 교수님을 다시 뵙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오 선생님과 함께 오신 듯한 테너 김호성 선생님을 나는 처음으로 거기서 만나 뵈었는데 김 선생님께서는 서울대 음대 첫 졸업생 중 한 사람이었고 1968년에 오동일 선생님의 가곡 ‘강이 풀리면’을 처음으로 발표하는 등 주로 오 선생님의 가곡들을 많이 불렀다고 한다. 나는 연세대 음대를 졸업하신 임정은 선생님과도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나의 대학시절에 당시 연세대 학생이었던 박재열 교수님, 나인용 교수님 등과는 같은 기숙사(신우학사)에서 함께 지낸 적이 있어 더욱 반가웠다.

드디어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음악회가 시작했다. 사회는 민성숙(강원대 음대 졸업, 작곡가) 님이 맡았다. 야외의 트인 공간이어서 마이크시설이 필요했다. 먼저 한 작은 글의 발표가 있었다: ‘클래식음악에서의 크로스오버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김설향(역시 강원대 음대 졸업, 작곡가) 님이 미리 배포된 유인물(A4 3장)에 따라 발표했다. 음악회의 프로그램 가운데 김현옥 교수님이 작곡하신 두 곡이 크로스오버 양식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니 이 음악회는 재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서의 기능도 아울러 하는 셈이었다.

피아노 반주는 음악학과 학생인 두 분이 수고했다: 손혜원 님과 박자경 님. 처음 두 곡은 강원대 음악학과 3학년 학생들이 작곡한 것이다: ‘어머니의 손’(이해인 시, 안지영 곡), 그리고 ‘초혼’(김소월 시, 이수정 곡)을 테너 송재성 님과 소프라노 신남현 님이 각각 불렀는데 둘 다 아직 재학생이라고 한다. 학생들의 작품이지만 내 귀에는 아주 멋있게 들렸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선율들로써 구성되어있어 듣기에 이해하기 쉽고 아주 편안한 곡들이었다.

다음으로 ‘고향에 오면’(노유섭 시, 임정은 곡)을 바리톤 심기복 님이 불렀다: 심기복 님은 나에겐 이미 구면이었다: 지난 3월 24일 신서중학교 목련관에서의 카페 ‘내 마음의 노래’가 주최하는 ‘우리가곡 부르기’에서 신귀복 선생님의 사회로 주로 김현옥 선생님의 음악예술의 세계가 소개되었고 김 선생님의 가곡이 연주되었을 때 심기복 님은 ‘봄날’(허형만 시, 김현옥 곡)과 ‘봄밤’(이공우 시, 김현옥 곡)을 불렀었는데 그 때에도 그의 두툼하고 힘찬 바리톤 목소리가 돋보였다. 이어서 ‘번짐’(장석남 시, 정남규 곡)을 소프라노 김현애 님이 불렀고 ‘그대는 아파요’(권준호 시, 민성숙 곡)와 ‘수선화에게’(정호승 시, 김설향 곡)를 메조 소프라노 이소라 님이 불렀다. ‘번짐’에서는 ‘봄이 번지면 여름이 온다’는 식으로 세월이 무르익고 절정에 이르면 다른 국면의 세상과 삶이 온다는 변화의 이치를 노래하였고 ‘그대는 아파요’에서는 인간의 삶이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차있다는 다소는 어두운 인생관을 표현한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다음은 크로스오버에 해당하는 두 곡으로 둘 다 김현옥 교수님의 작품이다: ‘왜 이리 당신이 내 맘 속에 담겨있나요’라는 노래(김현옥 시, 곡)는 마치 슈만의 ‘헌정’(Widmung)을 연상케 하는 아주 간절한 사랑의 고백을 가요풍의 노래로 표현한 것으로 나는 들었다. 그것을 오동일 선생님께서 나중에 얘기하셨듯이 훌륭한 대중가요로서도 손색이 없는 노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곡은 ‘그는’(이희자 시, 김현옥 곡)이었다. 연주자들은 피아노 반주 외에 포코 김현주 님, 기타 신선우 님, 바이올린 박지은 님인데 모두 아직 학생들이다.

다시 가곡으로서 ‘구름밭에서’(박목월 시, 김혜선 곡)와 ‘시냇물의 꿈’(장장식 시, 김현옥 곡)을 테너 최용석 님이 불렀는데 뒤엣 것은 그 노랫말이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의 장을 떠올리게 했다: ‘지리산 시루봉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으로 흐르고 싶다’는 내용의 노랫말에 어울리게 장중하면서도 유려하게 흐르는 선율로 짜여져있어 친근감을 느꼈다. 테너 최용석 님은 이태리 로마에 주로 거주하면서 산타 체실리아 음악학교에서 공부했고 2년 전에 귀국했는데 그 목소리가 맑고 강하면서도 포근한 인상을 주었다.

마지막 두 곡은 그날 거기에 참석하신 오동일 교수님께서 작곡하신 것인데 ‘청산리 벽계수야’(황진이 시조)를 소프라노 김현애 님이, ‘내 집이 어드메뇨’(작가 미상, 옛시조)를 바리톤 심기복 님이 불렀다. 둘 다 아주 멋있는 가곡이었다: 그 노랫말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어서 그런 분위기를 살려 곡을 말하듯이 자연스러운 흐름의 선율로 붙인 것이 정겨움을 느끼게 했다.

사회자인 민성숙 님의 곡목소개와 매번 재치있는 감상소감은 부드러운 윤활유의 역할을 잘 해내었다.
흐뭇함과 뿌듯함, 감사와 희망을 안겨준, 자연 속에서의 음악회였다. 이번 오월의 그 섬에서 자연과 음악과 사람이 하나되는 '축복'을 나는 누렸다.
음악회가 끝나고 뒷풀이로 간단한 다과회가 이어졌다.

새로운 음악을 창조한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그리고 창조된 아름다운 음악을 최대한의 정신집중과 열정으로써 재현하는 모습은 얼마나 거룩한가! 이 거룩한 시간을 함께 누릴 수 있게 해준 대자연과 사람들의 마음씨에 대해 나의 마음 속 깊이 '거룩한 감사의 노래'를 보낸다.

이런 좋은 음악회에 더 많은, 가곡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리를 함께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여운으로 남았다.
다음해의 오월이 기다려진다.

백령작곡연구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2008.05.25, 새벽 배동인
(위 글은 저의 블로그에 올려져있습니다)
4 Comments
송월당 2008.05.26 17:18  
동녘새벽님 음악회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치루어진 것이 머리속에 그려집니다.
제가 그 위도에 몇년 전에 촬영하러 가보았거던요?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였어요.
음악이 울려졌다면 더욱 환상적이였겠어요.
글 잘 읽으며 감사 드립니다.
동녘새벽 2008.05.27 09:44  
송월당님, 반가워요.
10여년 전에 그 섬에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그 느낌을 다 표현하지 못한 듯해서 위 글의 마지막 부분을 조금 보완했습니다.
'환상적'이라는 말씀이 정말 맞아요!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숲의 빛이 날로 짙어가고 온갖 들꽃의 향기가 천지를 진동하고있는 이 봄을 흠뻑 누리시기 바랍니다.
申 夭 2008.05.28 06:04  
원로와 중견의, 신출의 작곡가 시인 연주가들이 꾸민
백령작곡연구회(회장 : 김현옥)의 신작가곡 발표회가 좋았던 것은 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동녘새벽 배동인 교수님과
속마음 이야기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정의를 두터이 할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마산고 박성태선배님의 스승이셨던 테너 김호성 선생님과
무조건 사랑해 주시는 河童 오동일 교수님의 愛顧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동녘새벽 2008.05.28 11:58  
그렇습니다, 신요 정우동 선생님.
저에게도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신요 님께서는 '가곡의 고향'(이향숙 지음. 1975)이라는, 오래 전에 나온 책을 몸소 가방에서 꺼내 그 속에 소개된 오동일 선생님과 김호성 선생님에 관한 얘기를 직접 풀이해주셔서 아주 고마웠습니다. 신요 선생님은 역시 한문뿐만 아니라 역사와 음악 등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계심을 다시 확인하게 됐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참으로 흐뭇한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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