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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히 솟은 백제의 향(부소산)

이종균 4 1740
높이 솟은 백제의 향 (부소산)

  두 달간의 해외마을로 쌓인 피로가 체 풀리지 않아 큰 산을 오르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마침 부여 부소산(扶蘇山:106m)을 간다는 산악회가 있어 오랜만에 백제의 향취나 실컷 마시고 오려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버스에 오르고 보니 웬걸 금남정맥 12구간 중 11구간 종주를 모두 끝내고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하는 전문산악인 24명의 모임이었다.
  금남정맥(錦南正脈)이란 우리나라 13정맥 중의 하나로 백두대간 장안산(長安山:1,230m)에서 갈라져 나온 금남호남정맥이 끝나는 주줄산*(珠崒山:565
m)에서 북서로 뻗은 산줄기가 대둔산을 거쳐 계룡산에서 서쪽으로 달려 부소산 조룡대(釣龍臺)에서 이르는 장장 130킬로의 산줄기이다.
  오전10시 정각 우리는 마지막 구간의 시발점인 공주시 탄천면 광명리 입구 진 고개에 도착하여 오르기 시작했다.
  고개라기보다는 산줄기를 자르고 길을 내어 살벌하게 내달리는 비스듬한 언덕이라고나 할까.
  무성한 밤나무 단지와 감나무 골 고개를 자나 깜짝 급한 구배를 오르니  예가 해발 250미터로 이번 코스의 최고봉이라니 산이라 하기보다는 언덕이라 해야 할까보다.
  그러나 제멋대로 자라며 얽히고설킨 원생림(原生林)은 이따금 칡넝쿨이 발목을 걸고, 청미래 줄기가 무릎을 붙들며, 껄끄러운 산딸기줄기가 얼굴을 할퀼 뿐 아니라, 늘어진 나뭇가지가 눌러 쓴 모자챙 위로 머리를 후려치는데 는 그만 정신이 아찔하다.
  급하지는 않아도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꾸불꾸불 에돌림이 심한 뱀 길에  몸 따라 마음도 지친다.
  160봉을 넘어 신앙고개를 지나니 또 182봉이 가로 막는다.
  정간 길에 이골 난 산 꾼들은 그래도 달리듯 잘도 간다. 나 혼자만 처질 수도 없어 기를 쓰며 따라가는데 목이 마르고 시장기도 든다.
  에라 모르겠다. 옆에 있는 소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물 한 목음을 마시는 단5분 동안의 휴식이 그리도 가뿐할까. 그래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하고 단감 하나를 깎아들고 걸어가며 먹었다.
  이윽고 청마산성에 이르렀다. 이는 해발 118미터의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 안은 백제의 가장 큰 산성으로 둘레가 6.5킬로나 된다는데 우물이 많고 곡창으로 짐작되는 터가 세 군데나 있는 걸로 보아 사비성에 큰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하여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성이다.
  이를 확인하고 나니 부여에 가까워진 느낌이 드는데 이 언덕을 넘으면 저 언덕으로 이어지고 저 언덕을 넘으면 또 그 언덕이 기다리고 있다.
  해바라기는 여름 내내 뜨거운 해를 빤히 바라보며 어떻게 살았을까. 잇따라 하늬쪽으로만 달리는 길, 얼굴에 와 닿는 늦가을의 햇살에 얼굴이 화끈화끈 익어간다.
  이 구간중 산줄기가 네 번째 잘린 곳, 부여읍내로 달리는 큰 길을 주유소 앞에서 건너니 정간 길은 다시 산으로 이어진다.
  산줄기를 타는 사람의 입장에선 터널이나 대형 교량을 이용해서라도 산맥이 이어졌으면 하는데 내 짧은 생각일까.
  눈앞에 우람한 팔각정 하나가 들어온다. 금성산(121m) 통수 대(統帥臺)다. 이 산을 넘어 또 다른 봉우리를 감아 도니, 백제 고도의 전통인지 산자락을 깎아 만든 유난히 넓은 국궁 활터에서 연습이 한창이다. 과녁 뒤쪽으로 난 산길을 돌아가는데 화살 꽂히는 소리가 내 가슴을 뚫을 듯 겁이 난다.
  이곳을 지나 시내로 드니 「부여 부소산성」이란 안내판이 번쩍 눈안에 든다. 그러나 오늘 등산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금남정맥의 끄트머리가 낙화암 고란사를 거쳐 백마강 연안의 조룡대이니 앞으로도 3~4킬로는 더 가야한다.
  얕잡아 봤던 부소산, 현 북쪽 3리에 있는 진산, 동쪽 작은 봉에 비스듬히 올라간 곳을 영월대, 서쪽 봉을 송월대라 부른단다.
  오랜만에 찾은 낙화암, 그 머리에 백화정을 이고 쪽(藍)보다 더 푸른 백마강을 바라보고 있다.
  백제 31대 의자왕(660년)이 나당연합군을 물리치지 못해 함락되자 3천 궁녀가 치욕스런 삶보다 차라리 고결한 죽음을 택하여 강물 속으로 뛰어든 곳, 어찌 세계의 명소라는 로렐라이 언덕을 여기에 비기랴.
  서기 450년경에 세워졌다고도 하고, 고려 현종(1028년) 때, 3천 궁녀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창건했다고도 하는 고란사(皐蘭寺), 바로 뒤 바위벽에 무성하게 자라던, 어쩌면 궁녀들의 한과 넋이 배인 듯 가녀린 잎자루에 잎사귀 하나 뿐인 고란초가 아주 멸종상태다.
  의자왕이 이 절벽 밑에서 솟는 물에 고란초 한 잎을 띄워온 물을 늘 마셨다는 고란 샘 앞, 유리상자속에 돌 붙임 해둔 마지막 한 잎마저 병마에 걸려 있어 애처롭기 그지없다.
  나는 고란초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더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1996년 7월 경남 밀양시 정각산 기슭 암벽에서 고란사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란초를 발견하여 학계의 확인을 거쳐 신문과 방송에 보도된바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목적지 조룡대, 백제 7백년 사직이 무너지자 강 속의 용이 요동쳤다. 물결이 노도처럼 일고 광풍이 회오리쳐 당나라 군선들이 뒤집히자 그 장수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하여 용을 낚았다는 곳!
  금남 정맥이 머리 숙여 물 벼루를 이루고 물속에서 다소곳이 다시 솟구친 그 앞을, 나는 고란사 아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스쳐 돌아 버스가 기다리는 구드래 나루로 갔다.
  한낱 잔구에 불과한 부소산 위로 백제의 향이 하늘높이 피어오른다.
  오후 4시, 보행기는 4만보, 거리계는 27킬로를 나타내고 있었다.
  원로 산악인 한국등산연구소 김영도 소장의 저서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에 ‘낮은 산을 높은 산으로’란 글이 있다. 글머리에 이탈리아의 유명한 등산가 라인홀드 메스너(Reinhold Messner:1944~)의 ‘기술보조수단이 산을 작게 만든다’는 말을 예화로 들며, ‘세계 알피니즘은 고산과 거벽, 단독, 무산소, 연속에 속공 등 많은 과제를 차례로 해결하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제 남은 것은 산을 작게 하지 말 것과, 낮은 산을 높게 오를 것으로 요약된다.’던 말이 떠오른다.
  106미터의 언덕 하나를 오르기 위해 6시간동안 27킬로를 달렸으니 이만하면 작은 산을 높이 오른 것 아니랴······
4 Comments
갈물 2006.11.11 00:06  
  저도 얼마전에 고란사를 갔었는데 유리상자안에 있는 고란초잎이 너무 애처로울 정도 였습니다.  산길에서 들리는  백마강(가요)보다는  우리 가곡으로 나온 사비수가 들려오면  더욱 운치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김형준 2006.11.11 03:09  
  '칡넝쿨이 발목을 걸고, 청미래 줄기가 무릎을 붙들며...'

참 멋진 문학적 표현들을 자유로이 구사하시는
좋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보행기는 4만보....
6시간동안 27킬로를 달렸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나마
이선생님과 6시간을 함께 등산하다보니
소록소록 정이 솟아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종균 2006.11.11 06:05  
  갈물 선생님! 정말 그렇군요,
그 때 못들었던 '사비수'
바리톤 황병덕님의 중후한 목소리로
이 아침에 들어봅니다. 감사합니다.

김형준 선생님!
문학은 표현보다 감정이 더 중요할 듯 한데
이제 메말라가는 감정에 좋은 표현이 나오지 않는군요...
멀고 지루한 길, 함께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정우동 2006.11.12 15:00  
  정우동
  낮은 산을 높으게, 높은 산을 낮게 오르는 지혜를 배웁니다.

작은 것을 크게, 큰 것을 작게
어린이를 어른같이, 어른은 아이스럽게
나중을 먼저 되게, 먼저를 나중 되게
추한것을 아름답게, 아름다운것을 추하게
악한 것을 선하게, 선한 것을 악하게
age before beauty, beauty before age
세상만사를 역지사지하고, 반대로 바꾸어서 보고
조각인이 鼻大目小로 용의주도하게 깎듯이
사고하고, 행동하고, 대접하는 지혜와 덕목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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