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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거리에서

별헤아림 4 1745
이별의 거리에서
권선옥(sun)

봄은 그냥 오는 게 아님을 그리고 쉬이 얻어지는 게 아님을 알려 주려 함인가. 어느 해보다도 더 혹독했던 그 꽃샘추위가 지나간 어제 오늘, 푸근해진 날씨 탓인가 그래도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느껴 본다.
지난 1월 중순 문경으로 4박 5일의 수행을 다녀 온 후, 글 쓸 여유도 없이 그냥 내달아 온 이삼 개월의 침묵을 걷고, 몇 분의 지인(知人)들과 통화도 해 보았다. 퇴근길에 새 학기에 처음 갖는 국어과 선생님과의 회식이 있었다. 베트남 쌈과 국수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참을 오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전날 서너 분에게 우편으로 CD를 보내 드렸는데, 박범철 선생님께도 반드시 보내 드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음반이 나오기도 전인 지난해부터 <팔공산>(이수인 곡) 합창 공연을 몇 차례 지휘를 하셨고, 또 대구에 사시니까 가능한 것이다. 마음이 여유로워진 탓일까 박범철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문화예술회관를 향해서 가고 있는데. 7시 반까지는 시간이 되신다는 말씀에 서대구공단을 지나던 방향을 되돌려 대구문화예술회관을 향했다. 7시 20분에야 도착하여 급히 차에서 내리는데, 바로 옆에 주차한 차에서 이동균 선생님께서 무거운 카메라가방을 메고 내리셨다.

급한 마음에 대공연장을 향하여 계단을 가로질러 내려가면서 멀리서 바라보아도 정문에 서 계신 박범철 선생님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가곡교실 수업 대신으로 박범철 선생님 제자분의 신년음악회 공연에들 오셨나 보다. 가쁜 숨을 고르면서 미리 준비하지 않고 온 탓에 재사용 일호봉투에 넣은 음반과 악보를 내밀었더니, 가식적이지 않은 선한 웃음을 띤 얼굴로
"저 방금 손 씻고 왔는데요."
하시면서 손을 내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핸드크림이라도 바르고 나놀 걸 하는 생각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체질상 고지대와 습지대의 온도차 습도차가 심한 나로서는 11월부터 4월까지 손끝과 발끝에는 그야말로 풍화현상이 일어난다. 발바닥이야 때로 바셀린을 바르고 양말을 신고 자면 그런대로 수습이 되지만, 손끝은 대책 없이 갈라진다. 활발한 20대에도 그랬는데, 지금이야 말해서 무삼하리오.

각설하고 악수를 했더니, 마른손에 물기가 전해져 왔다.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들어가 보세요' 했더니, '그럼 바빠서..... , 조만간.' 하시며 술 마시는 손짓언어를 하신다. 웃으며, '아~, 네.'하고 계단 하나를 내려서 뒷걸음을 내딛는데,
"저~."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힌 얼굴 표정에,
"네?'
하고 멈춰 서서 쳐다보니 방긋방긋 특유의 웃음으로,
"저~, 해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아이고~! 별말씀을.ㅎ.ㅎ."
뻔한 거짓말 시리즈에 웃으면서, 새로 다시 인사를 하고 진짜 돌아섰다.

박범철 선생님이야 워낙 공연상 무대 경험이 많으시니까 그렇지만, 나도 서서히 보여주기식 매너에 젖어드는구나 싶었다. 박범철 선생님과의 2분 50초 분량의 오페라 주역 같은 역할을 마치고, 대구문화예술회관의 광장을 가로질러 주차해 둔 곳을 향했다. 두류공원의 나무숲 사이를 머물다 온 바람일까. 제법 훈훈해진 봄바람과 밤공기를 맞으며 내 마음도 봄기운에 젖어든다.
어딘가에 품어졌다 봄이면 땅 속을 비집고 형형의 많은 빛깔로 돋아나는 봄의 생명처럼, 내 마음에 돋아나는 봄밤의 애상들.

운전대를 잡고 습관처럼 집으로 향하는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음악과 함께 나는 삶과 죽음을 생각했고,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를 재어 보았다.

지난 날 좀 더 죽음과 가까웠던 거리를 느껴 보고, 그때의 나를 느껴 보고 또 살아 있을 남은 자들을 생각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이별.
생각해 보면 그 거리는 그리 먼 거리도 아니고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닐 것이다.

지난 해 늦가을이었다. 대학 때 우리보다는 7-8세 위일 것 같은 복학생 형이 있었다. 결혼한 복학생 형 둘은 결혼을 한 상태였다. 같은 동년배의 남녀 예닐곱 명이 함께 어울려서 참 바람직한 관계로 대학 생활을 보냈다. 그후, 끊어졌다 이어졌다 유지되던 연락이 어느새 1년에 한두 번 학교로 오는 전화 목소리만 듣는 사이가 되었다. '요즘 어느 학교에 계십니까', '사립에서 공립으로 넘어왔습니다.' 뭐, 그런 얘기였다. 그러던 터에 그에게서 어느 날 큰딸 혼례 청첩장이 학교로 날아 왔다.
가서 모처럼 얼굴이나 보겠구나 했었는데, 그 날 11월 18일 토요일 식장인 알리앙스엘 갔었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묘하여 식사를 하고 싶는 생각이 없어져서 그냥 답례품을 받아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사발면과 과자로 점심을 대신하고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날 밤 10시 쯤에 전화로 '*** 선생님 조카입니다. 어젯밤에 갑자기 선생님께서 별세를 하셨습니다.'란 부음을 받았다. 아마 심장마비였나 보다.

그리고 같은 어문계열에 입학하여 영문과엘 다닌 대학 동기가 있었다. 학교 때, 대구백화점 앞에서 전도한다고, 몇 사람이 찬송가를 부르던데, 그곳에 걔가 끼어있었다고 한 때 얘깃거리가 된 적도 있었다. 그 때도 깊은 신앙심이 있었나 보다. 포항에서 중학교 선생을 한다더니, 폐암에 걸렸다고 했다. 폐암 진단을 받고도 바로 병원에 입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믿음 아래 기도원에서 시간을 또 흘러 보내 버린 모양이다.
병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있으면서도, 좋아진다고 믿고 있었고, 남편인 동기생도 아이들도 집에 가 봐야 그러니까, 모두 병원에서 살다시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더니 한 달도 못 되는 얼마 전 생을 마감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지난 겨울 병원에 가기로 예약된 날이었다. PT(항응고 검사) 수치를 점검하고 약국에서 기다리다 무심코 밖을 보니, 지난 해 5월 병원에 며칠 입원할 당시에 옆 침상에서 늘 성경책을 읽던 아주머니가 보였다. 인사를 하고는 집이 안강이라고 해서 가는 길에 동부정류장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다.
대뜸 '그 때 병원에서 우리 아저씨 오셨을 때 봤죠?'하는 것이었다. '네.' 했더니. '얼굴 생각나요?'한다. '아이들과 같이 왔을 때, 보니까 피부가 조금 검었지만 키도 크고, 잘 생겼고, 성격 좋아 보이데요.' 했다. 약간의 불필요한 말까지 한 셈이다.
"나 병 간병한다고 애쓰고 그랬었는데...... , 먼저 가버렸어요. 한 6개월 쯤 되네요.' 한다.
자기의 죽은 남편을 내가 기억하거나 말거나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는 생각하고 따지지 않기로 했다. 살아남아 있는 자와 죽은 자와의 순서 없는 이별은 그저 물음표 없는 평서문으로의 마침이다.

어느 날 더 일찍 죽으리라 생각되었던 나는 이렇게 살아있건만...... .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살아있던 날들을 추억해 본다. 떠난 사람이 영원히 침묵하는 돌아올 수 없는 이별.

어느 날 더 일찍 죽으리라 생각되었던 나는 이렇게 살아있건만...... .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살아있던 날들을 추억해 본다. 떠난 사람이 영원히 침묵하므로 돌아올 수 없는. 이별.
그리하여 살아있는 나는 살아있는 날들을 위하여 수행도 하고, 침묵으로 무언으로 속을 끓이다 다시 죽었다 태어나도 글을 쓰는 국어 선생님이고 싶다는 생각에 정착했다. 더 알고 싶고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토요일이면 강의를 들으려 간다. 다섯 시간이 넘는 풀 코스. 반은 졸면서 듣는 강의이지만 나는 또 다른 무한대의 갈망으로 바다를 본다.

더 늦기 전에 억지도 부려 본다.
살아있는 너와 나의 이별의 거리에서.

<2007. 3. 14.>

* 미적으로 승화된 시 한 편을 접하며 산 자가 죽은 자를 추억하는 그리움을 배운다.*

봄바다에서
박재삼

1
화안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가.

2
우리가 소시(少時)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남평 문씨 부인(南平文氏夫人)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헤쳤더란다.

확실(確實)히 그 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훔쳐 주던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딿아 마음딿아 젖는단 것가.

3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 같네.

-「현대문학」(1957. 3.)

*해동갑하여: 해가 질 무렵.


■ 핵심 정리
·주제: 남평 문씨 부인의 죽음과 그 추억[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봄바다의 정경]
·특징: ① 산문체의 율격과 '것가'의 반복이 주는 인생 무상의 정서.
② 비극적 체험을 심미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킴.

■ 시상의 전개 방식
1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봄바다
2연: 남평 문씨 부인의 죽음과 그 추억
3연: 남평 문씨 부인의 환생
4 Comments
열린세상 2007.03.14 12:19  
  이 시를 나는, 한국전후문제시집에서 읽었지.
고등학교 때지 아마. 그 이후로 박재삼의 시에 푹 빠져
몇 개의 시들은 작은 수첩에 적에서 암송하기도 했지.
"현혹",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등...
별헤아림 2007.03.14 13:27  
  1957년 3월에 발표된 작품이니,
씌여지긴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군요.ㅎ.ㅎ.
2교시가 비어서 잠시 쓰다가 멈춘 상태입니다.
방금 점심으로 새삭 비빔밥을 먹고나니, 배가 불러서...... .^^*
6교시 비는 시간부터 이어서 마저 쓸 예정입니다.
단암 2007.05.09 13:34  
  저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너무 얇아서 보이지 않을 정도라 생각합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음이 아니라고. 다만 아직까지 죽어도 죽음이 아니라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최기섭 2007.06.03 18:00  
  죽은 뒤에 누가 나의 죽음을  알려 줄까요.
추억은 죽은자의 침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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