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연주.감상후기, 등업요청, 질문, 제안, 유머, 창작 노랫말, 공연초대와 일상적 이야기 등 주제와 형식, 성격에 관계없이 쓸 수 있습니다.
단,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는 금지하며 무단 게재할 경우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회원문단은 자유게시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식목일에

가객 9 1375
초등학생시절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동네사람들이 울력으로 동네 뒷산에서 나무심기를 했다.
우리집에서는 큰아들인 내가
출타가 잦으셨던 아버지를 매번 대립(代立)했다.

그 때는 나무심기를 '사방공사'라고 불렀는데
그 것을 왜 식목이나 식수라 부르지 않고 그렇게 부르는지 의아했다.
그 말이 '산사태 방지 공사(山沙汰 防止 工事)'의 준말일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 것은 중학생때였다.

중학생 때 식목일에는 삽을 들고 등교를 하여
읍내 주변의 조금은 듬성듬성 바닥을 드러 낸 산에서 식목을 했는데
나무 심을 구덩이를 파 내려가다가
미처 녹지 않은 얼음덩이에 삽이 부딪혀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동네 주변의 산을 올라 가면서 두 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따스한 4월에 그 것도 남쪽지방인데 그랬겠느냐는 듯이
애들은 믿지 않으려는 기세이다.
하기야 자연이 무엇인지 모르는 도시애들이니 당연히 그렇겠지.

산에 오르면서 보니
푸른 잎새들의 경쾌한 빛살이 옅푸른 색깔이기에 더욱 정겹다.
줄기마다 기지개를 켜고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그 물기운들.
모두가 경이롭다.

푸른 능선이 갈기를 세우고 새생명의 약동을 노래하기 시작하자
자그마한 계곡에서는
풀꽃들이 망울을 터뜨리는 소리들로 화답을 하고 있다.
산등성이 여기저기에 진달래꽃들이 환히 웃고 있다.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는 곰살궂은 바람은
이미 엊그제의 바람과는 그 질감이 다르다.
새색시 손길처럼 보드랍고 솜사탕 처럼 달콤하다.
그래서일까 기분이 상쾌하고 걸음은 경쾌하기만 하다.

내가 나무가 된 것도 같고 산의 일부로 혼융된 것도 같다.
마음이 까탈스러움을 벗고 넉넉해짐을 입는듯 했다.
나는 인자(仁者)는 커녕 인자(忍者)도 못되는데도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이 가슴에 다가온다.

정상에 올라 얼굴에 맺힌 땀을 식히면서 산 아래를 굽어 보니
마치 현대들이 겪는 삶의 어두운 조각들이 운집한 것같은
잿빛 운무가 도시 상공에 을씨년스럽게 드리워져 있다.
내 가슴 속의 모든 울혈도 거기에 떠 있으리라.

내려오는 길의 발걸음도 새소리 만큼이나 경쾌하기만 하다.
상큼한 꽃향기가 뇌리에 까지 가득하여
청량한 공기에서 미역감은 듯하다.
도시 입구에 들어 와 뒤돌아 보니 산은 어머니처럼 웃고 있었다.

<김홍철-아름다운 베르네 산골>

9 Comments
음악친구 2003.04.06 12:42  
  어제 식목일엔 산은 커녕 옷정리한다고 집밖에도 나가질 않았는데
가객님 글을  읽으니 꽃 향기가 그리워 집니다.

얼른 점심먹고 애들 데리고 개나리길 산책이라도 해야 겠어요.

오랜만에 반가운 글을 보니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바다 2003.04.06 12:52  
  어떤 이가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 나라 좋은 나라’
에서 잠꾸러기를 장그럭이(장독)로 알고
장그럭이 없으면 잘 사는 나라인줄 알았다는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배꼽 빠지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 나는 사방공사를 사망공사로 알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제법 철이 들어서야 사방공사를 제대로 이해했던 거 같다

오늘 가객님의 글을 읽고 후회되는 일이 하나 있다
아이들이 나무는 심지 못할망정  노래라도 부르게 했어야 하는데 그걸 잊어버렸다

가객님이 두 아들과 함께 간 산은  사내 대장부들에게 큰 꿈을 안겨주는 그런 산
부자간에 정을 돈독히 해 주는 산인 거 같다.

저도 좋은 글 반가운 글 잘 읽었습니다

임승천 2003.04.06 18:40  
  가객님 좋은 4월입니다.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함께 합창을 하고 있습니다. 선영에 가서 할미꽃의 모습도 오랜 만에 보았습니다. 오고가는 고속도로 주변의 꽃들은 우리들 마음에 흠족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모처럼 좋은 하루를 보내신 가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오숙자 2003.04.06 23:14  
  봄이 가려 하니
내라 혼자 말릴손가
다 못핀 桃梨花 를
어찌하고 가려는고
아희야
덜괸술 걸러라
가는봄 전송 가리라.

이 옛시조로 <봄이 가려하니>란 곡을 오래전에 작곡했습니다.
가객님의 글을 읽고 생각나서 1절 시를 옮겨 놓았습니다.

이봄이 가기전에 옆산에 피인 진달래와 개나리를 마음에 오래 담아두렵니다.
아침 저녁으로 봄 내음이 싱그럽습니다.
평화 2003.04.06 23:53  
  오늘 저는 세동서들과 함께 시부모님을 모시고
송정 바닷가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가는길에 보니까 산언저리에 올망졸망 핀 분홍빛
진달래와 길가에 늘어진 노오란 개나리 그리고 벗꽃들이
가는봄을 아쉬워하며 봄바람에 꽃비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 고마움에 한껏 도취되어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요...

가객님께서도 자제분들과 무척 아름다운 일상을 보내셨군요.

어둠이 낙화처럼 쌓이는 고즈녘한 밤에 가객님의 글을 읽으며
유년시절 식목일날 호미를 들고 꽃씨를 심던 추억을 그려봅니다.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가 참 소중하다는 생각과 함께...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나무는 못심더라도 베란다 화분의
화초에 맑은물을 듬뿍 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서툰 솜씨로 피아노를 치며 아름다운 노래 한곡
들려주며 너희들을 사랑하노라 가만히 속삭여주렵니다.
맑은눈동자 2003.04.07 09:49  
  _내가 나무가 된것같고 산의 일부로 혼용된것도 같다_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그림을 보는것같군요
가끔은 높은곳에서 삶을 생각하는것또한 가객님 다우시고요
저희도 아이들과 자전거 하이킹을 했습니다
자연이주는 행복을 실컷 맛보고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싸나이 2003.04.07 11:55  
  한때 나도 통기타걸치고 전국을 누비며 요들송을 했는데 제일 많이 했던 곡중에 하나가
바로 이곡인데 ......아!옛날이여....
가객은 아들과 거룩하게 인생을 논하는데...
나는 아들과 산에서 비둘기 잡아먹을 궁리만 했으니
참말로  교양의 차이가 나는 구먼....
소렌 2003.04.07 13:49  
  가객 님의 맑은  이야기와 경쾌한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 요들송을 들으니 먹구름 같던 기분이 금새 걷힙니다 . 에델바이스는 꼭 멀리 숨어 있는 게 아니라 때론 내마음속 가까이 있음을 얼핏 깨닫게도 합니다.

화답에 어울리는 시같아서 한 편 올려 봅니다.


오래된 수목원

오형석

뿌리의 생각들이 하늘을 이고 있다
이곳에선 오래된 바람이 나무를 키운다
누구나 마음 한구석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씩 갖고 있듯
나무는 잎사귀들을 떨어뜨려 그늘을 부풀게 한다
볕이 떠나기 전에 오래된 바람은 칭얼거리는 나무를 타이르고
흙이 부지런히 물질을 서두르는 동안 뿌리가 생각을 틔우는지
다람쥐들이 가지를 오른다, 햇볕의 경계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흘리는 소리를 줍는다
나무의 숨결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바람은 손끝이 저리도록 열매를 주무른다
그때마다 잎사귀들 웃음소리가
숲이 안고 있는 침묵의 당간지주를 흔들었다
나무가 발끝을 세워 마른 솔방울을 떨어뜨리는 사이
지나온 시절 앙다물고 뭉쳐있는 마음의 응어리를 가늠해본다
여물지 못한 생각을 방생해야겠구나
숲에 와서 가슴 한 켠에 나무 하나 심는다
열매가 익고 있는 소리들이 새들의 귀를 씻는 시간,
해가 지면 수목원은 고여있던 생각들을 태워
하늘로 오르는 길로 벌건 잉걸을 뿜어 올린다

별헤아림 2003.04.10 20:26  
  전 식목일엔 친정에 가서 놀고, 한식날엔 시아버님 산소 찾아보고 난 후, 쑥 뜯었습니다.
덕분에 빨래는 밀리고, 청소 상태가 매우 불량합니다.
아직도 전 출퇴근 길에 꽃길을 달립니다. 봄길을 달립니다.
 이젠 개나리도 연두와 노랑이 반반이네요.
김홍철 씨의 요들송> 정말 오랜만에 듣습니다.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 <김홍철 씨의 요들송>을 듣었던 기억이 납니다.
1977년..... 그리운 77학번.. !  어언 26년이란 흘렀군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