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나서 자란 곳,
조상 때 부터 대대로 살아온 곳이 사전에 정의 된 고향의 개념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일정하나 이사를 다니면서 자라거나 살 수 있으니
이는 절대개념이 아닌 듯 합니다.
경주 김씨 광산 김씨하는 관향(貫鄕)은 곧 성씨의 고향이지요, 그런데
경상도에 광산 김씨가 많이 살 듯이, 전라도에도 경주 이씨가 많이 사는데
그들은 자기가 사는 곳을 고향이라 합니다.
수원에 살면 경기도 사람, 춘천에 살면 가웓도 사람,
뉴욕에 살면 미국사람이 될까요?
전북 금산군이 해정구역 변경에 따라 충남에 속하면서
전라도 사람인 금산 군민은 하루 아침에 충청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고 또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살던 곳, 미래의 꿈이 영글던 곳, 순수무구한 동심을 나누던 옛 친구들과 그 시절에 얽힌 추억이 그립고, 천방지축 뛰골던 정든 산천이 보고 싶으며,
그 땅에 묻히신 조상들의 유덕과 사랑을 흠모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내가 자라던 곳, 이른바 내 고향은
어린시절 아버지를 잃은 곳,
어머님의 눈물과 땀이 땅을 젃시던 곳,
주림과 번민으로 얼룩지던 곳이었으니
가슴이 찔레꽃에 찔리 듯 모질게 아픈 그리움일 뿐입니다.
아픔과 슬픔이 어린 시절에 많이 배어있으시군요.
사실 저도 그렇답니다.
외향적이지 못한 성격이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가정의 어려움들을 마음 속에다 꼭꼭 담아 두고 풀어내지 못해서
언제나 공개하지 못했던, 아니 알리고 싶지 않았던 그런 일들로 인해
어린 제 마음이 상처를 많이 입곤 했었습니다.
이선생님의 말씀대로, 즉 '자라던 곳'을 기준으로 보면
제게도 어딘가 고향 같은 곳이 있기는 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의 기간을 살았던
그러한 곳입니다. 출생지는 다르지만요.
또한 대학원 시절 7년 정도를 보냈던 로스앤젤레스도
제게는 제2의 고향과 같이 생각이 듭니다.
비록 20대와 30대 초반에 살았던 곳이지만
워낙 생소하고, 워낙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한 곳이라 그렇습니다.
이선생님과 이전에 대화를 할 때 어릴 적 매우 편하게
자라신 분일 거라고 느꼈습니다. 마음 깊이 아픔과 번민이
있으시군요.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좋은 글 많이 많이 쓰시고,
아름다운 산과 자연과 늘 벗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겠습니다.
구정을 지냅니다.
구정엔 스키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용평 콘도에서 차례를 지내고
나는 혼자서 산행을 합니다.
신정이라하여 산에 오르는 건 다름이 없습니다.
12월 31일 08;00 출발하여 역사적인 사연이 있는 사천 와룡산을 오르고
남해에서 일박한 뒤 1월1일 새벽 금산에 올라 해맞이를 할 계획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전혀 가본적도 없는 와룡산을 마음에 그려봅니다.
진주, 삼천포의 이웃에 있는 사천,
남해로 가는 다리, 남쪽 푸른 바다...
하루를 묵으시는 이선생님,
금산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요?
남해에 있는 산이라 여겨집니다.
해돋이를 보신다니 묵으시는 곳에 있는 산이라 느껴지네요.
이선생님 덕분에
저는 2007년 1월1일 해가 떠오르는 것을
마음 속에서 미리 그려보았습니다.
산 위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이선생님과 일행분들의 모습도요.
1990년도 8월 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전혀 산행할 준비도 하지 않고
일본의 후지산에 갔었습니다.
고고매(五丁目)까지는 버스로 올라갔습니다.
저녁 7시경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산에 오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당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된지 미국 달러를 엔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르다가 가끔 있을 가게에서 녹차라도 사 마시기 위해선
엔이 필요했었습니다.
이 가게, 저 가게에 가서 바꾸어 달라고 해 보았는데
어디에서도 바꾸어주질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는데 산에 오르려고 하는
스위스 청년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친절하게
바꾸어 주었습니다. 일본 여성을 사귀는 사람이었는데
참 착했습니다.
함께 말동무하며 오르기 시작해서
우여곡절 끝에 정상에 올랐더니 새벽 4시 20분 경이었습니다.
해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았는데 구름에 가려서
약간 맹숭맹숭한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정말로 죽을 맛이었습니다.
올라간 길은 그나마 잘 다져져 있었는데
하필 반대방향으로 내려가자니
화산재가 발목 이상까지 올라오는데
신은 신발은 테니스화였거든요.
그 스위스인은 등산화로 무장이 되어서 문제가 없었구요.
준비되지 않은 산행,
그것도 밤새워 해서 힘에 겨웠던 그 산행,
내려올 때 정말 죽을 둥 살 둥 했던 고생스러운 산행,
그 산행도 지금은 추억으로 남습니다.
그리운 추억으로요.
후지산 그림이나 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가 기억나곤 합니다.
비록 불면증으로 인해
이선생님께서 금산 정상에서 새로운 해를 맞이하실 때
깨어서 함께 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제 혼의 일부를 금산으로 보냈습니다.
혹시 해맞으시면서 제 생각 나시면
노래 하나 불러주세요.
산에 대한 노래이건, 바다에 대한 노래이건,
사랑 노래이건, 이별 노래이건
그저 이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노래이면 됩니다.
그 노래가 제 귀를 파고들면
새가 되어 이선생님께로 날아가렵니다.
야호, 야호, 야호!
2007년의 새로운 태양 탄생을 환영하는
산사람들의 환호와 탄성이 내 귀에서 소라 나팔 소리로 들린다.
금산 정상에 우뚝 서 계시는 이선생님,
환히 웃고 계시는 모습이 선하다.
노래를 부르셨을까, 내가 깊이 잠든 사이에
나의 영혼은 새가 되어 그곳에 다녀왔을까
이선생님은 다시 서울로 돌아오셨을까.
그랬을 것 같다.
조만간 이곳에 산행에 대한 글을 올리시지 않을까 싶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늘 마음이 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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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에 주는 선물
바닷물이 넘실 거리고 있다.
산은 그 위에 우뚝 서 있다.
변함이 없는 바다,
항상 그대로인 산,
나만 변하리, 다들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한 뭉치의 어둠이 몰려올 때
새 해 첫날 태양이 떠올랐음을 기억하라.
희망을 담아서, 꿈을 담아서 풍선을 날려보냈음을 생각하라.
기운을 내서 다시 도전해보자.
땀 흘리다가 가는 것이 더욱 아름답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