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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정우동 7 1626
십년 넘게 책방업을 하다 빈털털이가 되어 그만두니 할일이 마땅치 않아
쉬면서 시와 노래를 찾아 온 곳이 이 사이트 내 마음의 노래였습니다.

관중과 포숙아의 교우관계는 아주 별난 데가 있습니다.
훗날 관중은 포숙아에게 감사해 하면서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라고 하며 지기지우를 칭찬했습니다.
나에게도 그런 친교를 맺고 가끔씩 생각나는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모니터의 창에서 맨처음으로
아는듯한 오숙자교수님의 이름을 보고
Fancy Meeting You !
What a coincidence !
하고 쪽지로 인사 드리니 고대 바로 동부 이촌동 신동아쇼핑센터에서
키 큰 안경 낀 책방 아저씨로 만난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후 우리는 미소교의 교주가 되고 조선시대의 여한량 어우동으로 짙게
놀다가 한동안은 우리가곡애창운동 캠페인에서 본부장과 사무국장으로
뜻을 모아 같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던 가고파의 고장 마산에서 사이트의 과천 전체모임에 올라온
현빈 임효식 시인은 셀로판으로 일일이 포장한 빨간 장미를 많이 사와서
모인 사람 모두에게 한 송이씩 바쳐준 것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너무도
감동적인 그림이었습니다.

늦은 밤 나를 차 태워 준 많은 사람들에게 다 고마워하지만
특히 윤교생 지휘자는 살고 있는 아파트안까지 태워주니 더 고마웠습니다.
언젠가는 그의 사무실에서 며칠동안 신세를 지며 머물기도 했더랬습니다.
데칸쇼와 더불어 우리 젊은 날의 대유행어였던 슈토팽으로 그를 부르며
그 애칭이 담은 슈베르트와 베토벤과 쇼팽을 떠올리면서 그를 좋아합니다.

나의 집 근처까지 온 사람은 많지만
우리집 방안까지 들어 온 사람은 (톰)돌이 장로 김관식님밖에 없습니다.
그는 아이디어가 많고 나와 같이 사이트 일로 운영자와 여러 차례 만나
의논하며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찬반을 분명히 하는 사람입니다.

아내가 일하는 가게에서 허접일을 거드는
나를 찾아 준 사람은 바위님과 자연님과 달마님과 권운님이십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또 한 사람 아마 가곡님도 오셨던 것 같습니다.

나는 반죽은 잘 못하는 성미라 가만히 있었는데
싸나이님 이용수선생은 나를 형님이라 불러주어서 고맙지만 형 노릇을
못해서 좀은 미안한 생각이 들고, 그는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성악가중의
한 사람인 바리톤 유승공교수를 소개해 지금까지 교우하고 있습니다.

정치학 박사 芝岩 홍양표 교수님은
흥감하고 과분하게도 나를 아우라고 부르셔서 형님이 되셨습니다.
서로 안지 그리 길지않은 기간에 두 차례나 대구 신암동 댁을 방문하고
숙박까지 하면서 자별하신 형수님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고 자부하며
우쭐해 하고 있습니다.

게시판에 올라 온 어떤 사람의 글이 나의 눈을 끌어 들입니다.
그 하나를 읽고 난뒤 뒤를 잇는 글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읽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은 바로 barokaki 심경보님 입니다.
그가 대학서 공부한 과목은 나와 같이 법률학입니다.
내가 읽은 책은 그도 읽었습니다. 상당부분의 취미도 공유합니다.
나를 명동으로 불러내어 술을 사고 밤이 늦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음에 그를 만나면 나는 그에게
한국의 빵세라는 평도 있는 신영복선생의 명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본이 된 <엽서>를 선물하고 비노바 바베, 암베드 카르등도 소개합니다.
그와의 첫 대면에서 부자같이 어색하게 나누던 대화체에 큰 부담을 가지다
가 만나는 회수를 거듭함에 따라 이제는 터울 많은 형제간처럼 만만하고
편안하게 느껴져서 우리사이가 참 좋습니다.
나는 결혼전에는 독신주의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결혼하지 않았어도 세상사람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로 부르는
그의 아들인것을 보라고 강변하면서 말입니다.
결혼을 하고서는 무자식상팔자 주의자였지만 딸자매만 셋을 둔 지금은
어느 누가 아들 되겠다하면 나도 예수님처럼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근래에 와서
현란한 문학과 박람강기한 역사와 심오한 철학이 들어 있는
본격적인 산행수필을 게재해 좋은 읽거리를 제공해 주신
이종균 회장님의 유럽여행기에 시답잖은 답글(리플라이)을 몇 차례에
걸쳐 쓴 적은 있지만

회원가입 첫해인 2003년 시월
한국예술가곡연합회가 개최하는 제1회 신작가곡의 향연이 발표되는
연주회장인 영산회관으로 안내하는 초댓 글에서
해아래 養芝軒 김필연 시인과 단 여섯마디의 댓글(코멘트)을 사흘에
걸쳐 교환한 다이아로그는 두고 두고 잊히지 않는 추억거리입니다.

- 정우동 (2003/10/27)  님의 친절하신 안내에 감사합니다.
            김필언님이 좋은 사진으로 즐겁게 해주던 해아래님이셨군요.
            앞으로도 좋은 글 좋은 그림 많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해아래 (2003/10/28)  정우동 선생님, 반갑습니다. 요즘은 꽃이 지는
            시기라 한참동안은 꽃을 올려 드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군요.
            주변풍경이라도 좋으면 찍어서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우동 (2003/10/28)  어찌보면 雪花, 氷花도 있겠고, 그밖에도 좋기는
            解語花가 더 좋다던데요.

- 해아래 (2003/10/28)  ㅎㅎ 멋진 추임새이십니다. 해어화는 특히 선비
            들이 좋아하는 꽃이라 하더군요...

- 정우동 (2003/10/29)  님의 작품을 육성으로 못들어 아쉬웠지만 만나뵈서
            반가왔습니다. 마치 伯牙의 거문고가 鍾子期의 귀를 만난 것처럼
            정말 기쁜 하루로 오래 오래 소중히 기억하렵니다.

- 해아래 (2003/10/29)  감사합니다. 부디 伯牙絶絃의 고사가 현실이 되지
            아니하기를 바랍니다.



.

 
7 Comments
이종균 2006.12.27 17:51  
  獨 작가 Hans Karosas는 Life is encounter.라 했습니다.
遭遇라 하기도 하고, 邂逅라 하기도 한 우연한 만남,
싸이트면 어떻고 꼬리글에서면 어떠리까?
마음과 마음이 닿았다는 점에서 우리 만남은
소중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장미숙 2006.12.28 11:47  
  아름다운 만남의 과정 또한 아름답습니다~
모든 일에 계기가 있게 마련이어서 이 곳에서 저의 행복 동기는
가일예술관 음악회 때 박원자 시인님께서 제 홈피에까지 방문하시어
초대를 해 주신 일이 좋은 분들과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지니
두구두고 감사하답니다.
정우동 2006.12.28 11:59  
  한스 카롯사교수의 임종장면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어떤 학생이 무엇을 말하려고 지나가는 카롯사를 부르니 고개를 돌려
얼굴을 학생에게 향한 그 자리가 곧 임종의 자리가 되었다고 들었으니
그의 학생사랑이 얼마나 컸기에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교육현장에
나왔다가 그런 변고를 당했을까 싶어서 깊이 사숙하는 마음입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저자 레오 버스카글리어 교수에게서도
 많이 배우며 그를 사숙하고 좋아합니다.
.
바다 2006.12.28 12:22  
  정우동 선생님과의 만남은 오숙자교수님의 어느 글에
댓글을 다신 글을 읽고 제가 답글을 달아 만나되었습니다.
2003년도 여름의 일이었지요.
저는 처음 선생님의 지성 깊은 글 속에서 대학교 교수님이냐고 물었었고
선생님은 한자를 많이 쓰셔서 제게 쪽지를 주곤 하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동호회모임이 있던 날
60을 넘으신 분이 마치 청년같은 동안과 차림으로 수줍게 나타나셨을 때
글속의 선생님의 모습과 너무 달라 얼마나 놀랬던지요.
너무 젊으셔서 말입니다.

그 이후로 내마노의 한가족으로 가일미술관 음악회 준비를 위해
물적으로 참여하시고 궂은 일이나 기쁜 일이나 열정적으로 함께 하시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좋은 인연입니다.
앞으로도 모든 분들과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삭제 
旼映오숙자 2006.12.28 14:54  
  정우동 선생님과 이 싸이트에서의 만남은 정말로 우연한 만남이였지요,
세상은 넓고도 좁은가 봅니다.
이 내마노 싸이트 쪽지함이라는 작은 박스에서 우리의 재회가 시작되었으니..
에공,,, 신동아 책방을 가끔 드나들면서 책값 외상을 해놓고 못갚은 돈 있었더라면
우린 바로
"빗진자와의 외나무 다리 쪽지에서 만난다"는 말이 생길법도 했건만...ㅎㅎㅎ
우수개 소리입니다.
책을 워낙 좋아하시고 박학 다식하신 탓에 책방을 경영하게 되신것 같았는데
10년을 경영하시고 문을 닫으셨군요.
지금은 가곡을 사랑하시는 매니아로서 또한 작곡을 하는 저와는
한결같은 우정이 이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건승하소서...
바 위 2006.12.31 14:41  
  한 江山 책방열어 愚인에게 베픔이니

궁굼증 풀렸어라 왜 그리 주름 없는

선비 顔 이었냐고 따져 더 봐봐도 믿더니


그래도 연이듯이 민영귀인 벗한 세월

가곡이 불러 들여 여러분에 희망주셔

그도야 삭 팔자임이 틀림없다 하더라


우연이 기연이듯
追言 하셨습니다 !
흘러가는 물이둣 귀감은 존중돼야하는
가곡 중심으로 마음 저며져 웅비하는 새해요...
참 여기는 귀하지 않으니 아무도 없는곳 맞지요 !

고맙습니다 @@@
유랑인 2007.01.09 19:11  
  항상 든든한 버팀목으로, 깊이를 알수 없는 박학과 포용으로, 온유하고 천진한(^^) 삶을 보여주시는 큰 형님,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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