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은 다시 살아날수 있다
가곡은 다시 살아날수 있다
엊그제 김기덕 감독의 신작 영화 '시간'의 시사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에서 다시는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시간'의 한국 개봉은 수출국 30 개 중의 하나라는 말로 그의 한국영화 현실에 대한 편치 않은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영화 '빈집'이 프랑스 미국 등에서 20-30 만명이 보고 있는 등 외국에서의 반응에 비하면 한국 영화 관객의 흥행몰이가 수준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풀이 된다.
신작 '활(2005)'는 고작 1,674명이 관람했을 뿐이다.
영화 '시간'은 권태를 느낀 여인을 위해 자신의 얼굴 까지 바꿔가며 관심을 끌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무튼 '마이너리티 없는 메이저는 없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활성화를 위해서는 그 저변의 확대가 중요하다.
결사적으로 스크린 쿼트 반대를 하는 입장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고 한국내의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서
라도 우리 내부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 되는 때이다.
이쯤에서 우리 가곡도 환경의 변화에 밀려 중심권 무대에서 밀려나고 그래서 위기감을 내 비췬지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화정책적 입장에서 우리가 스크린 쿼트 처럼 압박을 받는 것은 없다 , 물론 공중파 방송 등에서
제 기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만 그나름대로 대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TV만 켜면 '먹자 프로그램'이 방송 3사의 단골 메뉴가 된 현실이다. 하루 종일 어떻게 요리를 해 먹어야 맛있다는 내용을 연예인들을 앞세워 먹기 경쟁을 하고 있는 한심한 세태다.
웰빙 이후 사기가 양양해진 방송사들의 저예산 고효율로 선택한 프로그램이 먹자 음식 코너인지 모르지만 이런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안타깝다.
거리 거리마다 먹자 간판 밖에 볼 것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공중파 방송에서 까지 하루 종일 음식 선전을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있을까, 아마도 일본에서 배껴온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같은 음식도 요리를 잘 해 맛있게, 멋있게 먹는 그 자체를 문제시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문제는
방송의 기능이 어찌 '먹자 판'만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고 편성비율 문제다. 이 역시 영화에서 처럼 문화의 다양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TV에서 '음식 프로 쿼터제'를 실시해야 할 판이다.
우리 가곡 1구청 1동 가곡 교실을 펼친다면 배급망이 몇 천개가 될 것이다. 국민 1애창이 희망에 비해
구체성이 좀 아쉬웠는데 잘 발달된 구청문화 센터 등을 이용해 만든다면 가곡 활성화에 전기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로 인한 성악가, 반주자 등의 고용창출도 엄청나다.
지금껏 내마음의 노래가 회원들의 뜨거운 열성과 시와 가곡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에서 가꾸어져 가고 있다면 앞으로는 이런 정책적 추진으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MF 못지 않은 경제적 어려움이 오히려 가곡 교실을 키우는 반전의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지역의 가곡 부르는 모습에서 사람들이 황량한 모랫바람에 시달리고 있는 외로운 낙타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 하고 정이 넘치는 가슴의 노래를 부르는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뮤지컬 등 미국 식 문화의 거대한 태풍이 몰아치지만 우리는 그것으로만 채울 수 없는 한국인의 정서라는 것이 분명이 있다.
가곡은 그 정신을 담고 있고 작은 시냇물 처럼 우리의 가슴을 흘러갈 것이다. 홍수가 아닌 그러나 결코 마르지 않는 가슴의 샘물로 존재할 것이다.
가곡은 다시 살아 날 수 있다.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이 살아 있는 한. 갯펄이 살아야 바다가 사는 것 처럼 가곡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 나는 정말 그렇다고 믿는다.
엊그제 김기덕 감독의 신작 영화 '시간'의 시사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에서 다시는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시간'의 한국 개봉은 수출국 30 개 중의 하나라는 말로 그의 한국영화 현실에 대한 편치 않은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영화 '빈집'이 프랑스 미국 등에서 20-30 만명이 보고 있는 등 외국에서의 반응에 비하면 한국 영화 관객의 흥행몰이가 수준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풀이 된다.
신작 '활(2005)'는 고작 1,674명이 관람했을 뿐이다.
영화 '시간'은 권태를 느낀 여인을 위해 자신의 얼굴 까지 바꿔가며 관심을 끌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무튼 '마이너리티 없는 메이저는 없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활성화를 위해서는 그 저변의 확대가 중요하다.
결사적으로 스크린 쿼트 반대를 하는 입장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고 한국내의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서
라도 우리 내부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 되는 때이다.
이쯤에서 우리 가곡도 환경의 변화에 밀려 중심권 무대에서 밀려나고 그래서 위기감을 내 비췬지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화정책적 입장에서 우리가 스크린 쿼트 처럼 압박을 받는 것은 없다 , 물론 공중파 방송 등에서
제 기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만 그나름대로 대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TV만 켜면 '먹자 프로그램'이 방송 3사의 단골 메뉴가 된 현실이다. 하루 종일 어떻게 요리를 해 먹어야 맛있다는 내용을 연예인들을 앞세워 먹기 경쟁을 하고 있는 한심한 세태다.
웰빙 이후 사기가 양양해진 방송사들의 저예산 고효율로 선택한 프로그램이 먹자 음식 코너인지 모르지만 이런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안타깝다.
거리 거리마다 먹자 간판 밖에 볼 것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공중파 방송에서 까지 하루 종일 음식 선전을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있을까, 아마도 일본에서 배껴온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같은 음식도 요리를 잘 해 맛있게, 멋있게 먹는 그 자체를 문제시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문제는
방송의 기능이 어찌 '먹자 판'만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고 편성비율 문제다. 이 역시 영화에서 처럼 문화의 다양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TV에서 '음식 프로 쿼터제'를 실시해야 할 판이다.
우리 가곡 1구청 1동 가곡 교실을 펼친다면 배급망이 몇 천개가 될 것이다. 국민 1애창이 희망에 비해
구체성이 좀 아쉬웠는데 잘 발달된 구청문화 센터 등을 이용해 만든다면 가곡 활성화에 전기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로 인한 성악가, 반주자 등의 고용창출도 엄청나다.
지금껏 내마음의 노래가 회원들의 뜨거운 열성과 시와 가곡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에서 가꾸어져 가고 있다면 앞으로는 이런 정책적 추진으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MF 못지 않은 경제적 어려움이 오히려 가곡 교실을 키우는 반전의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지역의 가곡 부르는 모습에서 사람들이 황량한 모랫바람에 시달리고 있는 외로운 낙타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 하고 정이 넘치는 가슴의 노래를 부르는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뮤지컬 등 미국 식 문화의 거대한 태풍이 몰아치지만 우리는 그것으로만 채울 수 없는 한국인의 정서라는 것이 분명이 있다.
가곡은 그 정신을 담고 있고 작은 시냇물 처럼 우리의 가슴을 흘러갈 것이다. 홍수가 아닌 그러나 결코 마르지 않는 가슴의 샘물로 존재할 것이다.
가곡은 다시 살아 날 수 있다.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이 살아 있는 한. 갯펄이 살아야 바다가 사는 것 처럼 가곡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 나는 정말 그렇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