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연주.감상후기, 등업요청, 질문, 제안, 유머, 창작 노랫말, 공연초대와 일상적 이야기 등 주제와 형식, 성격에 관계없이 쓸 수 있습니다.
단,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는 금지하며 무단 게재할 경우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회원문단은 자유게시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그 겨울의 기억

꽃구름언덕 5 1216
푸르던 강물이 그대로 푸른얼음이 되고
강가에 모닥불 타는 소리 웃음 속에 타다닥 경쾌하고
귀마개를 한 아이들은 썰매를 타고
더러는 강가에서 팽이를 치다
얇은 얼음장 깨어져 한바탕 소란이었지요.

소나무집 외아들 빠져 사고 나면 함께 놀았던 것만으로
공범일 것을 눈치 챈 아이들 볼이 새파란 것은
겨울바람이 춥기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모두의 염려로 소년은 다 젖은 바지가 얼음 옷이 되어서
구조되고 혼날까봐 친구들은 모닥불을 더 많이 피워
뜨거운 불앞에 앉은 소나무집 아이 겸연쩍어 얼굴 붉히고
그 아이 얼음 바지는 어느새 하얀 김을 내다 말라가고
그 제사 마음 놓인 아이들은 힘차게 팽이를 치고 썰매를 타고

산골의 겨울밤은 빨리도 와서
저녁을 먹은 아이들 초가집들 속에 함석지붕 집으로
모여 들어 할머니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옆방 삼촌의 엘피판에서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애절하게
산짐승 소리와 어울려 들리곤 했네요.

이야기 듣다 할머니는 마당가에 산처럼 쌓인 옥수수를
방 한가득 채우고 송곳으로 한 줄을 밀어내면
아이들은 옥수수를 한 알씩 까서 자루에 담지요.

한참 재미있게 옥수수를 까다 보면
화로에서 감자 굽는 냄새가 나고 지난 가을 주어둔
도토리로 만든 묵에 산나물 만두에 동치미국물에
소리 없이 눈이 내리는 줄도 모르고 밤참은  만찬이었지요.

밤 열시쯤 되었을까?
집에 들 가라고 하시는 말씀에 옥수수처럼 하얀 이빨 내놓고
깔깔 거리던 아이들은 한지 방문 열자마자
함박눈이 그 새 반자나 와서 달빛에 반짝이는 모양이 하늘에 은하수처럼
아름다웠지만 미끄러워 강 건너 언덕 넘어 갈일이 한 걱정인 적도 있지요. 

 나이들은 형들이 눈 위에 발자국을 내며 돌아 올 때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부르던 눈만 초롱초롱한 산골 아이들.......
부모님 허락이 여의치 않아 동네 아이들 밤마다의 일상에
며칠씩 졸라 몇 번의 특별한 야참을 먹고 무시무시한 옛날
이야기를 들었지만 긴 겨울 방학 동안 군불 지핀 그 큰 황토방
장면은 언제나 따뜻한 사진입니다.

산 노루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여운을 남기면
겨울밤도 깊어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이 조그만 마을이 잠시 숨었다 해 뜨면 나타 날 것 같던 그 풍경.
아침이면 청년들은 유행가를 부르며 나무하러 뒷산으로 가고
남자 아이들은 장작을 패거나 토끼 사냥에 산에서도
얼음바지를 만들고 천의 좋지 않던 시절
아이들은 겨우내 얼어 지냈지 싶네요.

도시에서 살던 나는 늘 그들이 너무 부럽고 놀라웠는데
나는 그들의 용기와 지혜를 따를 수가 없었어요.
그들은 애들같이 놀다가도 때가 되면
어른들이 하는 일도 곧 잘하고 나무도 하고
그러나 방학 숙제는 나만큼은 못했으니 어린 마음에 조금 위안이 되었겠지요.
연 날리는 풍경이 그려진 그림이나
별들이 그려진 눈 오는 밤에 지은 작문 숙제는 잘 해오지 못했어요.

일기장엔 그 긴 방학 내내 '오늘은 나무패고 썰매타고 팽이치고
불땠다 '고 써오는 남자 아이 땜에
선생님은 늘 웃으셨고 일곱이나 되는 동생들하고 싸운 애기며
얼음 깨고 빨래 한 8남매 맏딸인 내 짝 이야기는 나를 슬프게 했고.......

지금도 자주 찾는 내 유년의 산골에는 푸르고 투명하던
언강도 작아지고 그때처럼 썰매를 지치는 아이들도 보이지 않고
고만 고만한 자식들을 위해 철사를 자르고 나무를 맞추며
행복한 모습으로 썰매를 만들던 젊은 아버지도 보이지 않고
나무로 만든 팽이에 비둘기 표 크레용 칠을
멋지게 해서 돌리는 소년의 자랑스러운 얼굴도 뵈지 않는군요.

얼음바지를 말리던 소년은 필리핀서 태권도 사범을 한다하고
너른 고랭지 채소밭을 지키는 복자만이 아직도 물이 줄어들어
작아진 겨울 강을 보며 떠난 친구들 그리워하고 있어요.

 아스라한 세월을 지나 수십 번의 겨울이 하 많은 사연 속에
얼기도 하고 녹기도 하면서 지난 갔어도
자작나무가 귀족 같던 그 강원도의 겨울, 아버지께서
대구에 갔다 오실 때 사다 주신 동화나 박 목월님의 <동시의
세계>를 읽으면서 나도 언젠가
이 곳 풍경을 동시로 써야지 하던 소망을
지금은 없어진 학교 복도 정면에 어머니가 삽화를 그려주신
제목은 생각 안 나는데 앞부분만 생각나는
동시를 써서 상 받은 것으로 끝이 났네요.

별 총총 밤하늘 푸른 밤하늘 .......
그 말은 선명하게 기억나요. ㅎㅎ

이 겨울 밤 그렇게 옥수수 알 굴러 가듯 깔깔 대는
시절에 손 두부 해주시는 함석집으로 밤 마실 갈 곳이 없고 여우가
둔갑한다는 천년고개 이야기에 무서워 떨던 동심도 없어지고
그 때의 꿈도 이루지 못했네요.

그래도 이 예쁜 흑백 기억들로 행복해 하니 엽지기 말대로 아직도
열일곱 살을 못 넘기고 또 다시 해를 보내야하네요.
오늘은 그 오래전 겨울에 친구 삼던 은빛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비목'을 오랜만에 들으려고 해요.
눈 쌓인 그 산골 숲에 쏟아지던 달빛과 궁노루 산울림을 생각하면서요.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는 유년시절의 추억은 살아가면서
순수가 사라지고 삶이 메말라 갈때 가슴저 밑에 있는 이 푸른
회상들로 순수를 찾고 마음의 거울을 닦아내곤 하지요.
만년설도 자꾸만 녹아 가는데 그 겨울의 기억은 해동의
 기미가 없는 푸른별이 빛나는 겨울밤입니다.






5 Comments
이종균 2006.12.24 13:27  
  꽃구름 덮힌
아늑한 산골마을의 정경
거기 서린 향수가
이 시간
내가슴에도 피어오릅니다.
바 위 2006.12.25 11:20  
  늘
그리움은 꽃신 같더니

참 말로
외로움은 塔 같더니다

우라가
사랑하는것은 지혜 要

원老가
피워 내시는 큰사랑맞지요 !


고맙습니다 !!!


    권 韻 드림
꽃구름언덕 2006.12.25 11:44  
  그 마을 에는 혈육같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아늑한 풍경과 함께요.
이 종균 선생님 감사합니다.
권운 선생님 늘 격려해 주심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두 분께  건강과 은총이 함박눈 같이
내리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장미숙 2006.12.25 14:36  
  꽃구름언덕님!
간직해 두었던 소중한 기억을 세세하게도 잘 풀어주셨군요.
아름답던 유년을 떠오르게 하는 좋은 글 감사해요~
성탄절..행복하세요~~

꽃구름언덕 2006.12.25 16:02  
  <나비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하신 장미시인님도 행복하고
축복 가득한 날들 되세요.
얼마나 고운 시어들로 수 놓인 시집인지
지금도 제 앞에 온통 나비가 날고 있어요.
 
<소금>이란 시를 읽으며 소금같은 삶을 살지 못한 날들이
참 부끄러운 날이지만 구한 선물의 마음 잘 간직할께요.
 
앞산을 올라 봤어요.이른아침이 아니라서
새들이 잠을 깰까 조심하지 않았죠.
그 노래 우리 합창단이 너무 좋아해요.
 
내년 정기연주회나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때 꼭 부를거예요.
아름다운 장미님께 감사하며 우정과 사랑을 보냅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