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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가곡 ‘떠나가는 배’의 주인공은...

우 리 0 1013
>양중해 시인의 '떠나가는 배'는  당시 여대생과의 6개월간에 걸친 사랑의 도피끝에 제주 부두에서
>의  이별하는 시인의 모습이라는 요지이다.
>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가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을 저배야
>야속해라
>날 바닷가에 홀로 버리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떠나가는 배-원시)
>
>가곡 ‘떠나가는 배’(작사 양중해 작곡 변훈)의 주인공은 1978년 타계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라는 것과, 50년대 중반의 그와 한 여대생의 ‘제주 잠행’ 생활에 대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증언이 나왔다.
>
>노랫말을 쓴 양중해(77·시인·전국문화원연합 제주도지회장) 시인은 목월이 50년대 중반 잠시 제주에 머물 때 시와 술을 나눈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양 시인은 “1953년 휴전 무렵 유부남이던 목월이 젊은 여자와 피란 겸 사랑의 도피를 위해 제주에 왔으나 끝내 이별하게 됐으며,제주부두에서 두 사람의 이별 장면을 시로 옮긴 게 바로 ‘떠나가는 배’”라고 말했다.양 시인은 지난해 7월 제주문화원에서 열린 한 문학강좌에서도 ‘떠나가는 배’에 대해 “목월의 아픈 이별을 담은 시”라고 거론한 적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목월이 당시 머물렀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제주시 관덕정 인근의 동화여관 가족들에 따르면 목월은 한국전쟁 막바지에 제주에 왔으며, 여대생(당시 홍익대 재학)과 함께 6∼7개월간 동화여관에 머물렀다.
>목월과 함께 온 여인의 성은 한씨이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주일마다 근처에 있던  서부교회에 나가 예배를 봤고,몸이 아플 때는 목월이 직접 부축하거나 업고 갔다한다. 이 여인은 아주 깔끔해서 빨래가 잦은 편이었고,식사도 여관에서 내주는 음식 대신에 직접 지어 목월에게 내왔다. 또한 아이들을 좋아해서 과자와 과일을 자주 나눠줬고 튀김 등을 직접 만들어 줬다고 한다.
>
>당시 그 여관에서도 시낭송회가 자주 열렸는데 여인은 그때마다 늘 목월 곁에 앉아 경청하곤 했다.
>여관집 아들 이창주(64·당시 중학교 2학년)씨는 “그 여자는 목월에게 꼭 ‘선생님’이라고 불러 선생님과 제자 사이 같았으며,지금의 여느 탤런트보다도 예뻤고 몸도 호리호리했으나 자주 아파 병원 출입이 잦았다.”고 기억했다.또 “목월에게 ‘이름이 왜 목월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어느날 밤 나무에 걸린달이 너무 고와 ‘영종’이라는 이름 대신 ‘목월(木月)’이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
>이씨는 “목월과 여자가 이별할 무렵,  여관에 있던 짐을 도둑맞아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는데 이 여인은 ‘다른 것은 필요 없고 사진첩만 찾아 달라.’고 애원했으나 범인이 이미 아궁이에 넣어 불태워 버린 후여서 몹시 상심해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짐 소동이 있고 얼마 후 목사인 이 여인의 아버지가 서울에서 내려왔고,  가지 않겠다는 딸을 이틀 밤낮에 걸쳐 설득한 끝에 사흘째 되는 날 서울로 가기 위해 부두로 갔다. 이씨도 양중해·박목월 선생과 함께 부두까지 배웅 나갔으며 여인과 목월 사이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어깨가 들썩이는 것으로 미뤄 우는 것 같기는 했는데,우리 쪽으로 전혀 고개를 돌리지 않더군요.아마도 정인(情人)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겠지요….”
>이씨는 “여관에 있는 동안 이런 정 저런 정 많이 들어 그때 무척 울었다.”며 당시 처연히 고개를 떨구며 돌아서던 목월 선생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
>당시 제주제일중학교 국어교사로 있던 양중해 시인은 집으로 돌아온 즉시 ‘두 정인의 부두에서의 이별’을 시로 옮겼고,같은 학교 음악교사이던 변훈에게 음을 붙이도록 해 가곡 ‘떠나가는 배’는 탄생했다.
>그동안 기록(잡지 ‘시인세계’ 등)에 따르면 목월과 이 여대생은 시인과 문학소녀로 만나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고,결국 제주도로 잠행했다.그때 두 사람은 겨울 한복을 지어 제주로 찾아간 부인의 인품에 목월이 반성하고 그가 서울로 돌아오면서 두 사람의 사랑도 끝이 나며, 이로써 목월에게 ‘이별의 노래’를 남겼다는 내용만 나와 있을 뿐이다.
>
>박목월의 ‘제주 잠행’에 대해 당시 지인들의 생생한 증언이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
>원문출처 [서울신문] 2004-04-21 '내마음의 노래' 편집
>
님 이시여...!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요...
허나- 어눌한 저 같이
初人 같은 님들 넘 많습니다 !!
언제나 처럼 ...
이런 베픔 가끔 내려 놓고 가세요...

그냥 ...
그래야 하는 것 처럼 ...
참 말이지 값 나가는 무거운 사랑 이시니...
임 맞이 가뜩이나 없는 날 들에
명약 같은 이야기 가곡 사랑 터출 귀한 모멘트 되리...

모두 ...
님 ! 가곡 사랑 절대 동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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