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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솔방의 산책로에서

노을 6 1022
숲 사이에 그런대로 폭이 있는 小路가 어디론지 뻗어 있습니다.
길 한쪽은 산등성이로 치솟아 오르는 오르막 경사지에 수풀이 우거져있고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가며 청정한 소나무들이 제법 가지런한 모습으로
빽빽하게 서있습니다.
길 다른 쪽은 내리막으로 골짜기를 향하여 경사를 이루며
잡목과 덩굴식물, 그리고 온갖 종류의 수풀이 우거져 있어 길이 좁아질 때는
길에 드리워진 작은 나뭇가지를 손으로 들어올리며 걸어가야 합니다.
아침 안개를 뚫고 햇빛이 비치면 길 이편과 저편으로 잇대어 자아놓은 거미줄에
맺힌 미세한 이슬방울들이 하얗게 빛나고 고추잠자리들이 방향도 없이 바로 눈앞에서
저공비행을 하는 바람에 간간이 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인적이 드물어서 길 가운데엔 잡초가 무성합니다. 밤새 잔뜩 내려앉은 이슬이 발목을 적십니다.
하얀 개망초꽃, 노란 달맞이꽃, 그리고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잡목에 핀 분홍빛 솜털 같은 꽃들도
또한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풀벌레 소리, 매미울음소리가 서로 다투어 요란합니다. 
나무들은 조용히 서있는데 어디서 문득 서늘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속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무성히 우거진 덤불숲들이 일제히 흔들립니다.
길가에 핀 개망초도 달맞이꽃도 그리고 이름모를 들꽃들도 따라서 하늘거리기 시작합니다.
나비 한 마리 날아들더니 한동안 내 앞에서 나풀거리며 길라잡이 노릇을 하다
문득 덤불 숲 사이로 가버립니다.
햇빛은 수풀 사이로 비껴들어 아직 걷히지 않은 안개와 어우러져 프리즘을 통해 보듯
눈이 부셔 꿈처럼 몽환적입니다.
이 길에서 사람은 아무래도 침입자 아닌가 싶습니다.
풀과 나무와 덤불, 그리고 나비와 꽃, 풀벌레와 매미, 햇빛과 안개와 바람...
그것들의 세상인데 아무래도 나는 속절없는 방해꾼 같기만 합니다.
언제 한 번 꼭 걸어보고 싶던 숲으로 난 길을 나는 그렇게 걸었습니다.
방해꾼 같은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그러나 그 아름다운 정경에 황홀해하며,
벌레소리에 결코 조용하지 않지만 어딘지 마음을 비우게 만드는 寂寥를 깊숙이 맛보며,
놀라운 생명력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 가운데 나 또한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그들과 잠시라도 하나 될 수 있었다는 느낌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숲길을 걸을 때 나는 어쩐지 그 숲의 보이지 않는 생명들에게 받아들여진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안개처럼 물방울이 서린 거미줄을 건드릴 때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좁은 길에서 뚫고 나가듯 덤불숲을 헤칠 때도 가지 하나라도 다칠 새라 조심했습니다.
잡초도 밟기 미안해 흙을 골라 걸었습니다.
숲에서는 아마 많이 겸허해지는 모양입니다.
문득 언제까지나 이렇게 가볍고 맑은 심경으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6 Comments
고광덕 2006.08.13 20:36  
  하늘을 찌를듯 솟아오르고 있는 소나무들을 보니
내목소리도 그들을 따라갈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생기면 등산화나 운동화를
가져 가렵니다.
맘껏 놓인 길을 따라 끝까지 가보고 싶어서요.
오래 오래 머물고 싶은 수가솔방였습니다.
규방아씨(민수욱) 2006.08.13 23:34  
  깊은 산중에들어가면 누구라도 도를 닦은 사람이 되다가
깊은산중을 지나 속세로 들어오면 바로 도는 어디로 날아가버리고 없다더니 자연은 그렇게 말없이 우리를 겸허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가 봅니다
분명 님께서는 숲의 방해꾼이 아니라 초대받은 손님이셨을것입니다..
예쁜 마음으로 보고 듣고 걷고 느끼고 말하셨으니까요...ㅎㅎ
세라피나 2006.08.14 03:20  
  '숲 속 정경'을  나지막하게 아름답게도  채색 해 주시는
 노을님~!  멋져요.^^
사뿐사뿐 정겨운 이야기 나누면서 그  숲 속 걷고 싶어지네요.^^

'숲속을 걸어요. 산새들~이 지저귀는 곳~' 동요도 흥얼거려가면서요?^^

노을님같은  훼방꾼^^이라면 숲 속  모든 생명체들에겐
어서오시라고  손짓 할 반가운 손님이겠는걸요?^^

그럼, 노을님도  합창단과 동행 하신건가요?^^
김영생 2006.08.14 10:34  
  글을 읽노라니 마치 제가 산길을 걷는 착각을 느끼게합니다.
사색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무척 가보고 싶은 곳이군요...
감사합니다...잠시나마 산길을 걷게해줘서요...그 풍경을 상상하며
걸어보았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분 같습니다.^^
노을 2006.08.14 11:19  
  고광덕님 수가솔방의 소나무는 유난히 싱싱하지 않으시던가요?
한 이틀 머무르며 등산로 따라 등산도 해보시면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정말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규방아씨님, 이번에 수가솔방에 가서 참외밭에 가서 규방아씨도 만나고잡고 목도강가 산처녀님도 만나고 싶은디... 생각만 했습니다.
세라피나님,  합창단은 밤 11시 넘어 온다는데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요.
거기서 그렇게 만나면 참 반가울 것 같았지만  토요일에 출근해야 해서 저는 저녁에 떠났답니다.
김영생님 한 번 가보세요. 저는 그 길을 혼자서 세 번 걸었어요. 언제 한 번 가보세요. 참 좋아요.
정우동 2006.08.16 07:25  
  미국의 자연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걸어 보지 못한 길' 도 생각납니다.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 때문에 걷는 길이지만 여기에서도 선택은
필수입니다. 나중에 딴길도 마저 걸어 보리란 희망을 가지면서
사람이 덜 밟은 길로 들어섰고 그것이 인생을 결정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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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우며 이야기 하겠지요
<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라고


40 여명이나 되는 대가족 내 마음의 노래 합창단들의 나들이에
우리 수가솔방 사장님 내외분 이리뛰고 저리뛰고 수고 하셨습니다.
가서 더운 여름 시원히 보내고 와서 즐거운 원망들을 하는걸 보면
김광우 김메리 두분 사장님이 칙사대접을 하셨나 봅니다.
함께 하진 못했지만 좋은 추억거리 선물 주신데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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