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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인과 '무명도'의 추억 이야기

김형준 8 912
이생진,
박희진...

이 두 시인의 이름이 내 심장에 깊이 꽂혔다. 아마 다시는 빠지지 않을 것
같다. 빠지기 보다는 오히려 심장 속에서 피에 녹아 내려 내 온 몸에 퍼져서
내가 살아가는 내내 강한 도전 의식을 심어 주고,  활력소가 되어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될 것이다.

이생진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올 해 11월11일이었다. '1111'은 무슨 날일까?
초등학교 학생들은 아마 잘 아는 날일 것이다. 맞추는 분은 내년 '11', '11'에
저와 단 둘이서 데이트를 하시지요. (^_^) 어느 행사에 참여했는데 그 분이
guest speaker로 오신 것이다. 연세가 지긋한 분이셨다. 나중에 약력을
찾아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연세가 드셨다. 처음 뵌 그분의 강의를 들으
면서 눈물을 참 많이도 흘렸다. 왜 눈물의 샘이 하필 그날 터졌을까.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께 한 공간에서 말이다. 나야 사실 남의 눈을 잘 의식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자꾸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기가 힘들어
애를 먹었다. 허나 카타르시스와 유사한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닮고 싶은 인물이 바로 내 앞에서 말씀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생진선생님은 섬(Island) 매니아 중에 왕 매니아이시다!'

아마 그분을 아는 분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직접 만나보지
못했더라도 그분이 쓴 시들을 읽어본 분들은 금방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분의 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진솔하고 열정적인 자그마한 체격의 연로한 시인,
그 시인의 말씀을 들으며 오랜만에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동을 느꼈다.
너무도 어린 아이같이 순수하시고, 맑고, 따스할 것만 같은 그분에게 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간첩'이 아니라 '목석'일 것이다. 행사가 다 끝났을 때
나는 초청 가수에게 가서 말을 걸지 않고, 행사 진행자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이생진선생님께 바로 갔다. 잠시 내 소개를 하고 이선생님께서 인도하시는
시낭송회에 대해 물어보았다. '말씀 들으면서 많이 울었어요!'하고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챙피할 수도 있는 고백의 말도 드렸다. 그저 웃기만
하시면서 본인이 참여하시는 시낭송회에 대해 안내를 잘 해주셨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실 스승을 한 분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배울 것이 있는 법이지만 스승들도 레벨이 다
다르다. 큰 스승도 계시고 작은 스승도 계시며, 긍정적인 것을 배울 수 있는
스승, 부정적인 것을 가르쳐 주는 스승.. 스승도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물론 이생진선생님은 내게 옳바른 삶에 대해
가르쳐 주실 큰 스승으로 오신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실함, 겸손함, 열정'

이런 것들을 이분에게서 배우고 싶었다. 첫만남이 있은 그 달에 열린
모임에는 참석을 하지 못했다. 하필 내가 늘 빠지고 싶어하지 않는
'내 마음의 노래' '가곡 사랑 모임'이 열리는 날과 겹쳤기 때문이다.
어느 모임을 갈까 쉬이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과 망설임의 밤을 보내다가
'내마노' 모임에 가기로 했다. 12월, 이번 달에는 두 모임에 다 참석할 수
있었다. 하나는 월요일, 다른 하나는 화요일에 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시낭송회에 가기 전에 박희진선생님은 어떤 분인가 궁금해서 인터넷에
나온 관련 기사들과 그분이 쓴 시들을 일부 읽어 보았다. 알고 보니
박선생님의 시를 내가 이전에 시낭송모임에서 낭송하려고 공책에
손으로 써 놓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미리 인연의 끈이 그분과 나를
하나로 만들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 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인연이란 예측하지 못한 때와 장소를 선택하기도 한다.'

시낭송 모임은 일곱시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모임 장소인 어느 까페에
2,30분 정도 일찍 갔었던 것 같다. 깍쟁이 같이 모임 시작 시간에 딱
맞추어 가면 준비하는 모습을 공부하기는 불가능하다. 좀 일찍 가서
준비하는 분들이 어떻게 모임을 위해 수고하시는지 알고 싶었다. 이미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었는데 이생진선생님께서 모임이 있기 며칠 전에
내게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참석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보내신 것이다.
뭔가 미안한 마음이 있으셨다고 쓰셨는데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지를 않았기
때문에 별 마음의 상처는 없었다. 그렇게 세심하게 다른 이의 마음을
배려하는 그 따쓰한 성품을 그것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이생진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더니 '참 잘 왔어요!'하며 반갑게 맞아 주신다.
역시 얼굴에는 미소의 꽃이 최근 세상을 아름답게 수 놓았던 눈꽃보다
더 환하게 피어있었다. 처음 가는 모임이라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앉아 모임이 시작되는 순간까지 기다렸다. 단팥죽도 먹고,
떡도 먹고, 과자도 먹고, 물도 먹고, 순서지도 보고, 다른 이들이
뭐하나 슬쩍슬쩍 쳐다보기도 하고, 이선생님이 뭐하시나 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시작할 시간이 다 되었다. 아는 여자분이 한 사람 오길래
아는체를 했더니 몰상식하게 무례한 투로 '반말'을 툭 던진다.
'참 무안하고,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빴다!' 일단 그 순간은 잘 넘기고
낭송회의 멋진 분위기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박희진선생님이 행사 시작
바로 전에 모습을 나타내셨다. 한 마디로 '산타 할아버지' 분위기셨다.

'하이얀 수염이 그분 얼굴의 삼면을 덮었다. 아니, 사면이었나?'

동서남북 모두 하얀 털이 있는 분이셨다. 신문 기사에서 느낀 것만큼의
'기인'스러움이 느껴졌다. 이생진선생님과 박희진선생님께서 나란히
앉아 계시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섬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이선생님은 몸도 작은 편이시고, 약간은 야윈 편이라고 보아야 겠고,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시들을 많이 쓰시는 박선생님은 우리나라 사람
치고는 상당히 거구이셨다. 이선생님은 매우 도시적인 세련된 면이
있으신 분이고, 어떤 점에서는 상당히 서구적인 느낌도 지니고 계셨다.
박선생님은 덩치가 크신 반면 상당히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시면서
서민적인 풍모도 느껴졌다. 이선생님은 섬을 사랑하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큰 배의 선장과 같은 당당함과 호젓함, 그리고 외로움이
느껴졌다. 바다와 하나로 오랜 생활을 한 그런 사나이의 풍모였다.

말씀을 하실 때나 낭송을 하실 때 이선생님은 자상하고, 합리적이고,
가능하면 짧막하게 이야기를 하셔서 행사가 빨리, 잘 진행이 되도록
노력을 하시는 편이었다. 박선생님의 낭송은 순서의 제일 마지막에
있었는데 세 편의 시를 책자에 올려 놓으셨다. 이선생님은 한 편,
박선생님은 세 편.. 길이가 상당히 긴 시들이었다. 박선생님은 낭송을
하시기 전에 시들을 쓰게 된 배경과 제목에 나와 있는 장소들에 관한
역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 등을 말씀해 주셨다. 내 개인적으로는 매우
유익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너무 길어지니까 지루해하기 시작했다.

'역시 기인(奇人)은 기인이다!'

라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박선생님께서 정말 장황할 정도로
오래 이야기하시는 동안 이선생님은 어떤 제스쳐와 표정을 지으실까
궁금해서 슬쩍 슬쩍 쳐다보았는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6년을 함께 동지로서 시낭송을 주관해 오면서 이미 익숙해져서
그러신 것일까.

1시간으로 예정되었던 시낭송회는 20분 정도 더 진행된 뒤에야 끝났다.
그리곤 뒷풀이 시간이 되었다. 인사동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점들을
찾다 보면 뒷골목에 숨어 있는 많은 한식집들을 대하게 된다. 이미 잘
아는 음식점이 없다면 꽤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해야할 정도로 좋은 곳들이
많이 있다. 이분들이 낭송회 끝나면 의례 가는 곳이 있으신 것 같았다.
한 3, 40명이 뒷풀이에 참석을 했다. 박희진선생님의 76번째 생신이셔서
그분의 고등학교 선생 시절 제자가 맛있는 케익을 준비해 오셔서 함께
생신 축하를 드렸다. 시조창을 강의하시는 박선생님의 고등학교 후배
분의 시조창도 듣고, 부산에서 오셨다는 60대 초반 남자 분의 가곡도
듣고, 나도 뮤지컬 'Cats'의 대표 아리아인 'Memory'와 우리 가곡
'애모'를 불렀다. 나는 한 곡만 하고 앉고 싶었는데 앵콜을 안 받으면
안 된다고 반 강제적으로 시켜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은 이생진
선생님께서 시를 쓰시고, 변규백선생님께서 곡을 붙이신 '무명도'를
부르고 싶었다. 헌데 가사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이생진선생님께서 언제인지 모르게 내가 있던 방으로 들어오셔서
내 노래를 듣고 계셨다. 이선생님은 한 때 보성고에서 영어 선생님을,
박선생님은 한 때 동성고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셨단다. 같은 시기에.
그리고 박선생님은 보성고를 졸업하셨단다. 나도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
전문가인데 그분들과 그렇게 '영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뒷풀이가 다 끝나고 헤어질 때 이선생님께서 또 '미안했다!'
하신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이렇게 다정한 분이시구나!'

'무명도'를 부르고 싶은 갈증이 이내 해소되었다. 끝날 때 이선생님과
변규백선생님이 '무명도'를 같이 부르신다고 했을 때 나는 전혀 주저
없이 그분들과 함께 일어나 무명도를 힘차게 따라 불렀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이선생님께 배웠던 나이가 지긋한 제자분들이 그분을 매우
가깝게 느끼고, 끝나고 나서도 그분과 시간을 함께 더 가지길 원하는
모습을 보고 그분이 진실로 훌륭한 인품을 소유하고 계심을 깨달았다.
유명한 원로시인이신데도 불구하고 겸손하시고, 자상하시고, 남을
배려 잘 하시고, 탈권위적이셨다. 옆에 앉았던 분이 일어서시는
이선생님의 외투를 입혀드리려 하자

'괜찮아요. 난 권위적이지 않으니까'

하시면서 본인이 직접 입으셨다. 웬만한 사람같으면 그냥 입혀주도록
놔두었을텐데 워낙 겸손함이 몸에 배인 분이신 듯 했다. 그 한 순간이
내게 큰 교훈을 주었다.

'거목이 될 수록, 대어가 될 수록,
열매가 더욱 크고 잘 익을 수록
고개를 숙여야 참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별 실력도, 훌륭한 인격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거들먹 거리며
권위적이고 오만하게 행동하는 것을 쉽게 보는 사회인지라 그분의
그러한 겸손한 모습이 일만 마디 말보다 내게 더욱 더 크게 다가왔다.

'겸손한 사람이 되자!
성공을 하면 할 수록,
대인이 되면 될 수록,
성숙해지면 질 수록 고개를 더 숙이자!'

아, 참 좋은 날이었다. 이생진선생님, 박희진선생님 두 분께 직접,
간접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내년에도 이분들을 만나 뵈면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또 다른 스승들이 나타나면 무릎 꿇고
열심히 배울 생각이다. 그러면서 나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땐 열심히 도와야 겠다. 좋은 학생이 좋은 스승이 되고,
좋은 스승이 또 좋은 학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겸손한 이선생님, 기인의 풍모를 지니신 박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8 Comments
김형준 2006.12.22 00:51  
  To honorable Mr. J.K. Lee
Remember that we talked last time at Kwicheon about the poem-reciting meeting led by two poets named Saengjin Lee and Hijin Park. I finally
attended the meeting this last Monday for the first time. It was a good
opportunity for me to learn about quite a few things. I guess, This is
not a good venue to get into the details of the meeting and my impression.
I will tell you about it if you are interested when we get together next
time, possible at the 'Return to Heaven' cafe. Until then.....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to you, your family and all your friends!
Shalom!

From a humble soul searching for truth and love
김형준 2006.12.23 21:18  
  Oh, also to honorable Mr. W.D. Jeong!
Hope you enjoyed the trip to Chungju and the concert!
I praise you for all your efforts to make the year-end
meeting of Art Song Singing Gathering go smooth.
It was a total success thanks to your devotion.
I also thank for your kind phone call. You are becoming quite
famous in the Naemano circle day by day. Good for you!

I extend Holiday Greetings to you and your family!
Peace!

A soul mate, waiting to be an explosive poet, someday!
김형준 2006.12.28 18:53  
  하루, 이틀 지나면 다시
이생진선생님을 만날 시간이 돌아온다.
아마 박희진선생님도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을까 싶다.

기회가 되면 두 분을 위해서
노래를 한, 두곡 불러 드리고 싶다.
이번에는 무엇을 부를까.

김소월시, 김동진곡 '진달래꽃'과
이수인시&곡 '내 맘의 강물'을 불러봐야 겠다.

기회가 되면 시도 한 편 낭송해보고 싶다.
시낭송회이니까.
김형준 2006.12.28 18:57  
  이번에 뵈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궁금하다.
어떤 모임에 가는 것은 그저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것이 늘 내게는 첫번째 목적이다.
학생이니까, 학자이니까 당연한 것이리라.

이선생님, 박선생님과 더불어
또 생전 처음 뵙는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귀하고
한 만남, 한 만남이 너무도 소중하다.
얼른 배움의 학교에 가고 싶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내겐 모두 평생 학교이다.
김형준 2006.12.28 20:00  
  이선생님의 시들 중에서 한 편을 영어로 번역해서 읽어볼까.
그럼 박선생님이 속상해하실까.

할려면 두 분이 쓰신 시를 공평하게 한 편씩 번역할까.
히히, 그건 사실 번역자인 내 맘인데....
김형준 2006.12.28 23:27  
  그리운 바다, 성산포
'Seongsanpo, the sea I miss'

역시 그 시를 해야할까 보다
노래도 하고, 시도 읽고, 사랑도 나누고...
김형준 2007.01.01 18:51  
  다시 이선생님과 박선생님을 만났다.
처음에 느꼈던 것과 거의 다르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이선생님과는 말을 하기가 쉬운데
박선생님과는 아직 말을 주고 받을 기회가 없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계기가 마련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빨리 가까워지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천천히 오래 사귀는 것이 보다 현명한 사귐의 방식 같이 보인다.
김형준 2007.01.02 13:34  
  여기서 저기서 배우고 있다.
두 시인에 대해서
한 시인이 섬에 미친 것을 보고,
다른 시인이 말했다.
'다음에 섬에 갈땐 나도 데려가시오.
섬에 관심이 많으니까.'
3년을 같이 다니려 했던 것이 9년, 10년이 되었다.
그렇게 그 둘은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보기가 좋다.
많이 다르게 보인다.
허나 결국은 매우 유사한 면들이 많은 것이 아닐까.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