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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석 선생님의 방송 내용을 간추렸습니다

이정유 7 811
  이 글은 서울사범 10회 졸업자 동기들의 홈페에지 '살곶이다리'에 실은 내용으로서 그 날 방송된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방송을 못 들은 분을 위해 썼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박찬석 은사님의 가곡의 세계 *

  우리들의 은사 박찬석 선생님이 지난 5월 2일 KBS 1FM '일요초대석'에 출연, 1시간 동안 자신의 가곡을 들려주며 자신의 가곡의 세계와 음악관에 대해 방송을 했다.
  이 기획물은 가곡계에 공헌이 많은 원로급 음악가들을 초청, 그들의 음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새로이 시도된 것인데 선생님이 첫 번째 손님으로 초대받으심으로서 작곡가로서 선생님의 위상을 가늠하게 한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방송 내용은 선생님의 가곡을 청취자와 함께 들으면서 음악교육에 대한 생각과 우리 가곡의 바람직한 방향, 음악을 하게 된 배경과 작곡에 얽힌 이야기 등으로 구성하였는데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선생님께서는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진안에서 소년시절을 보내신 후, 전주사범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훌륭한 음악선생님을 만나게 된 게 음악의 기초를 다지고 곧바로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작곡활동은 60년 전부터 시작, 지금까지 약 60여편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애창되는 곡으로는 20년 전에 LP판으로 발표된 곡을 이번에 CD로 재구성하여 새 그릇에 담은 20곡과 그 밖의 10곡 등 약 30여곡이 우리 가곡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첫 작품 '완춘'은 작곡공부를 시작하기 전인 60년 전에 만든 것으로서 여학교에서 열혈 청년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직접 작시까지 하여 만든 작품이다. 예술가로서의 천부적 재능이 '그 때부터 나타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연세가 80대 중반을 넘어, 음악계의 산증인이기도 한 선생님은 일정 하와 해방 직후 우리 음악계를 회고하면서 일정 치하 우리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한 그들의 음악교육정책에 대해서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외면했지만 해방 직후는 비록 음악교과서가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민요를 채보하고, 없는 동요를 즉석에서 작곡하여 가르치기도 한 정열과 희망이 넘치는 시기였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곡계는 전에 비해 놀라보게 환경이 좋아졌으나 작곡을 하는데 있어 지나치게 예술성을 강조하고 기교에 치중하는 경향에 흐르다 보니 성악가가 아니면 도저히 따라 부르기 어렵게 음정이 높거나, 음역이 넓고 멜로디의 음폭 또한 변화가 심한 작품을 양산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작곡환경이 이와 같이 바뀜으로서 우리 가곡이 날로 대중과 틈이 벌어져 지금은 교육현장에서마저 외면당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지적에서는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따라서 우리가곡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멜로디를 단순화하는 한편, 아주 높은 음 사용을 자제하는 등의 자성과 노력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곡은 '통천포 사랑', '마을', '바람', '위령가', '남촌', '낙엽' 등 6곡인데 곡마다 얽힌 일화가 이채롭다.
특히 전주여자중학교(당시 6년제) 재직 중에 작곡한 '위령가'는 국토 분단의 아픔을 여실히 대변하고 있다.  6·25가 발발하기 몇 년 전, 어느 날 밤 느닷없이 전북경찰악대장이 집에 찾아와서 '내일 낮 여순반란사건에 희생된 군경의 위령제를 지낼 예정인데 위령가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작곡과 함께 여학교 합창단 동원도 부탁한다' 라고 하면서 가더란다. 두고 간 노래가사에 따라 밤을 꼬박 새워 작곡을 마친 선생님은 숨 돌릴 틈도 없이 학생들에게 노래를 연습시켜 행사장에서 '위령가'를 합창했더니 구슬픈 '위령가'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려 온통 울음바다가 된 기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그 후부터 위령제 때마다 이 노래가 단골로 등장했다고 하는데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아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고 한다. 사연은 전시 적치 하에서도 전주에 머물고 있다가 정치보위부에서 '위령가' 작곡을 반동행위로 몰아 여러 번 불려 다녔는데 간신히 고향으로 피신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최근 CD로 재구성한 선생님의 작곡집 타이틀 '낙엽'은 주저 없이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선생님이 모교에 재직 중이면서 국내에서 미개척분야인 무용음악 창작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에 탄생한 곡이다. 처음에는 무용음악으로 작곡되었으나 피아노 연주를 들은 여학생(본과 9회)들이 이구동성으로 가곡으로 만드는 게 좋겠다고 성화를 대어 나중에 가곡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제자들의 열화와 같은 압력에 못 이겨 마음을 굳히기는 했으나 갑자기 알맞은 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고심하고 있었는데 마침 제자들이 3학년에 '정삼주' 라는 학생 시인을 추천하여 결실을 보게 된 작품이다. 제자 정삼주는 행당동 교실 창 밖 플라타너스에서 떨어지는 잎새를 보고 시상을 떠올려 선생님의 주문대로 명시로서 예쁜 옷을 만들어 입혔다.
  또 이 노래는 애절한 시에 아름다운 선율이 앙상블을 이룸으로서 가곡 '낙엽'은 입에서 입을 통해 감수성이 예민한 방방곡곡의 여학생들에게 널리 불리게 되었고 당시 여학생들의 첫 번째 애창곡으로 꼽혔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50대 이상의 여성들은 이 노래를 모르는 이가 없고 심지어는 당시 오사카 한국인학교에서 모교에 파견 나온 교포 교사가 귀국 후 이 노래를 일본에 전파, 현지에서도 대단한 선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우리 가곡으로 웬만해서는 노래방 노래목록에 감히 얼굴을 내밀지 못 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선생님의 가곡 가운데 유일하게 이 노래가 노년기의 가곡 애창가를 반기고 있다.
  다음으로 선생님의 작품 가운데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곡은 '남촌'이다.
대부분의 예술가가 그러하듯 선생님께서도 작품활동을 하면서 기존 작품에 대해 큰 만족을 얻지 못해 노심초사하다가 불후의 명작을 하나 남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김동환 선생의 시 '남촌'에 곡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악상을 구상하던 중 뜻밖에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 그것은 당시 가수 '박재란'이 부른 대중가요 '남촌'이 돌풍을 일으키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비록 가곡과 가요의 엄격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시기적으로 같은 제목과 내용의 시를 동시에 발표한다는 게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유행가 바람이 잔잔해지기를 3, 4년 기다렸다가 다시 악상을 정리한 끝에 10년만에 이 곡을 탄생시켰다고 하니 그 산고를 누가 알겠는가.
  그 밖의 작품 '마을'은 소년기의 섬과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바람'은 작년 작곡가단체의 창작가곡 발표회 행사를 앞두고 출품 압력에 못 이겨 최악의 건강상태에도 불구하고 죽을 힘을 다해 만든 곡이다. 그 후유증 때문에 입원까지 해야 했고 MRI 촬영기의 기계소음이 마치 현대음악으로 들릴 정도로 몸이 쇠잔한 가운데서도 혼신의 힘을 모두 쏟아 부은 잊지 못할 작품이다. 
  끝으로 선생님은 음악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스의 '음·수·체'의 교육원칙(「음악을 통한 전인격 도야, 수학을 통한 과학적 사고, 체육을 통한 튼튼한 몸」)과 같이 우리도 입시 위주 교육의 틀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 인성 교육을 중시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예술교육에 있어서도 지식 중심의 학문적 가르침도 필요하지만 그 보다는 감동을 주어 가슴속의 것을 토해내게 하는 감성적 사고를 계발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잊지 않았다.
  또 후배 작곡가에 대한 충언으로는 국적이 없는 외국가요가 음악계를 판치고 있고 우리 가곡의 입지가 없어지고 있는 마당에서 가곡을 살리기 위해서는 '가슴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노래를 젊음을 불태우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는 피끓는 말과  국민 1인 1 애창곡운동본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가곡살리기운동에 많은 성원이 있기를 부탁한다는 말을 강조하면서 끝을 맺었다.
 

7 Comments
정우동 2004.05.08 15:58  
  거의 한 시간에 육박하는 방송을 듣다가 놓친 부분도 있었는데
이 선생님의 글이 확인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의 '音數體 교육원칙'과 '남 촌'이 태어나기까지의 엄청난
산고 이야기를 다시 읽고 확실히 압니다.
이명숙 2004.05.08 21:58  
  귀하신말씀  감사드립니다! 행복한오월 되세요!!!
톰돌이 2004.05.08 23:22  
  이명숙님께서 낙엽을 부르시면 참 좋겠네요
아직 노래를 못들어 톤에대한 개념은 없지만
뵈온 이미지가 딱일듯하와서 ^^
남촌은 우리가 준비중이지요 '섣부른중창단'이라구 ㅋㅋㅋ
바다 2004.05.09 11:21  
  이정유 선생님!
정말 좋은 자료를 올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홈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아까 2004.05.09 15:46  
  행사때마다 박찬석님을 모시고 나타나시는 선생님을 뵐 때마다
"박찬석님은 세상을 참 잘 사셨구나 .
저렇게 존경하는 스승을 두셨다는 것은 이정유 선생님의 복이기도 하지"하며
항상 스승과 제자를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평상시 신영조 교수의 음악을 자주 듣다보니 박찬석 작곡가님은 저에게 굉장히 익숙한 분으로 느껴왔었습니다.
오늘은 휴일인지라 신영조 교수가 부르지 못했던 바람, 낙엽을 하루 종일 듣고 있습니다.
좋은 자료 올려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이명숙 2004.05.12 01:24  
  감사합니다. 톰돌이님. 낙엽노래 너무 좋아요.

다음 가곡부르기 모임땐 배웠으면 좋겠네요.

좋은 저녁 되세요.
신귀복 2004.07.04 20:42  
  이정유 선생님! 박찬석 박사님의 좋은 자료를 올려주셔서 제가 몰랐던 부분도 알게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박찬석 박사님은 우리들의 스승이자 한국의 슈베르트이십니다.
박사님께서는 위대한 교육자이시고, 확고한 신념을 가지시고 생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저는 마음의 어버이로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83세의 연세로 청년같이 활동하시는 모습은 너무나도 보기에 좋습니다.
아직까지도 아름다운 멜로디와 반주는 우리 작곡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큰 대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피아노 치시는 모습에서 진정한 음악가임을 역역히 보여주신 참 음악가이십니다.
그러한분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러기에 이정유
선생님과 차주용 교장님께서는 복이 넝쿨째 들어 온 것입니다. 훈륭하신 박찬석 박사님을
평생토록 잘 모시기를 부탁드리며, 저 역시 마음의 어버이 그리고 스승님으로 모시려고
합니다.  다시한번 이정유선생님의 좋은 자료 주심에 감사드리면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귀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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