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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체육대회

이동균 4 1272
10여 년 전 어느 봄 날,

효성여고, 고3담임을 하면서, 방송반 지도교사에 이것저것,

대한민국교사 누구나처럼 격무에 시달리던 해였다.

그 날 3학년은 모의고사 시험을 치르고,

1,2학년은 체육대회를 하는 날 이었다.

3학년 담임입장에서 “누구는 시험 감독하는데, 너희들 잘도 노네.” 하는 기분으로

운동장을 내려다보는데 특유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운동장에 행사 진행하는 방송반원 몇 명을 제외하고, 방송반 학생들 모두 집합을 시켰다.

1열 횡대로 정렬시켜 놓고, 북한 공작을 떠나보내는 특공대처럼

“너희들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로 분장시키는데, 5m 떨어져,

나를 10분 동안 보고도, 알아볼 수 없도록 분장한다.

만약 10분 이내에 알아본다면 그대들의 앞날에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알았나!”

“네~! 알았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방송반의 나의 휘하 졸병들,

루즈로 입술을 화장하고, 무용선생님 검은 썬글라스에,

어디서 구했는지 한복 한 벌을 가져왔다. 입을 줄도 모르는 나에게, . . .

치마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윗저고리를 입는데,

벌어진 어깨 덕에, 꽉 끼워진 등 부분이 터져버려,

할 수 없이 저고리 대신, 가슴이 깊이 파인 검은 색의 몸에 쫙 붙는

섹시한 T셔츠에다, 가슴에는 작은 풍선을 탄력 있게 집어넣고,

응원 수술의 꼭지부분으로 젖가슴 꼭지까지 분장을 했다.

조금 있으니까 PD녀석이 어디서 구해왔는지

파마까지 된 멋진 가발을 가져와서 쓰니,

아주 섹시한 조금은 근육질의 매력 있는 미시 정도는 되어 보였다.

(사실 제 몸은 당시에 162에 70킬로 정도 되었으니 짐작하시라.)

그 기 에다 빨강 바탕의 꽃무늬 있는 파라솔까지 구해 썼다.

거울을 보니 내가 봐도 근육질의 팔뚝 외에는 지금의 개그 김신영 정도는 .....

그리고는 선배교사인 1학년 부장 선생님의 차를 현관에 대기 시켰다.

청색 엘란트라 대구 2거 6722,

나의 충실한 기사인 1학년 부장선생님에게

한창 체육대회가 벌어지고 있는 운동장으로 가자니까,

새까만 후배 교사의 황당한 행동을, 전에 한 번씩 경험하기는 했지만,

이번은 뭔가 너무 심하다는 몸짓의 머뭇거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한 게 아니냐? 이 선생, 좀 참지 . .”

“아니, 행님요, 모든 것은 내가 책임 질 테니,

차를 운전하되, 속도는 절대 시속 10km를 넘지 않게

품위 있게 몰아주십시오.” 신신 당부를 했다.

불쌍한 나의 기사, 겁 많은 1학년 부장 선생님께서는

나의 동키호테같은 행동에 불안 해 하면서,

서서히 운동장 쪽으로 운전을 해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품위 있게, 아주 품위 있게,

대통령이 의장대 도열을 하듯이 . . .

운동장 한 쪽에는 학생들 피구 시합, 교사들의 소포트볼 경기,

그리고 본부석 쪽에는 줄다리기가 준비되고 있었다.

응원석의 학생들의 응원 열기도 한 것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운동장 저쪽 구석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청색 엘란트라의 출현에

본부석에서는 난리가 났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체육대회를 하고 있는 운동장 중간에 차를 끌고 들어오는가,

응원하던 학생들, 교사들 모든 시선이 우리 차에 모였다.

내심은 불안하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 . . .

에라이 모르겠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앉아있는

각반 응원석을 도열하면서,

태연히 손가락의 검지와 중지로 V자를 그리며,

교황님께서 신도들에게 강복하는 폼으로, 그리고 자애로운 눈빛을 보내며,

한껏 폼을 내며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근데 너무 완벽한 분장 덕에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가발을 살짝 들어 나의 상징인 대머리를 보여주니,

학생들은 자지러진다. 학생들은 자지러지는데,

내용을 모르는 본부석에서는 큰일 났다고 난리였다.

드디어 교내 스피커에서는

“청색 엘란트라! 청색 엘란트라!

여기는 학생들의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는 교육의 장입니다.

빨리 나가 주세요! 빨리 나가요!”

하는 귀에 익은 학생부장 선생님의 단호한 말씀이

스피커를 통해 왕왕 울리고 있다.

그 소리에 굴 할 나라면 애초에 이렇게 나오지도 않았지.

(네, 부장님은 마이크로 떠드십시오. 저는 계속 가겠습니다.)

계속 돌았다. 가는 곳 마다 난리 법석이었다.

교사들의 소포트볼 경기장 옆으로 지나, 학생들의 피구 경기장 옆을 지나가니까,

아뿔사, 나의 의장 사열 차량을 따라오며, 호위하는 후배 선생들까지 생겨,

본부석에서는 더 이상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드디어 차가 본부석에 도착하여, 천천히 파라솔을 펴고,

섹시한 동작으로 작고 작달막하지만

그래도 매력적인 글래머 어우동이 내리는 것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의 교장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동키호테같은 놈이 학교 선생을 하는가 하는 표정의 교감 선생님,

본부석의 교목신부님, 불어를 가르치시는 수녀님까지,

모두들 놀라하는 표정이 은근히 재미있었다.

섹시한 여자가 수녀님을 안으려하자, 십리 밖으로 도망가는 수녀님,

3학년이 시험 친다고 조용하게 행사를 진행하려는 운동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사물놀이 반 지도교사와 싸인 하여 운동장에서

예정에 없는 청소년 어울 마당이 벌어져버렸다.

후배 교사 하나가 나를 무등 태우고, 사물놀이 중간으로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휘장 사이로 휘젓고 다니자,

붉은 휘장을 보고 흥분한 투우처럼 모두들 한껏 흥분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체육대회 스케줄에는 막대한 지장이 있었지만

운동장 분위기가 완전히 후끈 달아,

성공적이 체육대회분위기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시계를 보니 시험 종료 시간 10분전이다.

모의고사 시험감독 중 저지른 행동에 3학년 담임선생님들은 아무도 알 리가 없었다.

세면장에 가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뒷머리 샤방 샤방 얼굴피부 톡 톡 틀며, 말끔한 차림으로 교실로 가서,

교대해 주신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답지를 거두어 교무실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들어오니

3학년 교무실은 교무실대로 난리였다.

“운동장에 어떤 미친### 때문에 시끄러워 학생들 시험 다 족쳤다. 에이 제기럴”

어떤 미친 ###이야 본부에서는 뭣들하고 있는 거야?”

온갖 욕설과 한 풀이 원망이 운동장으로 쏟아졌다.

분위기상, 범인이 난줄 알면, 살아남기 힘들 분위기다.

(에라이, 이럴 때는 같이 욕이나 하자.)

“아이씨, 이 번 성적 잘 못 나오면 체육대회의 어떤 미친### 때문이다.

도대체 본부석 선생들은 뭣 하는 사람들이야!

아이 내 참 더러워, 선생 못해 먹겠네.”

누구 들어라 할 것 없이 내가 더 큰 소리로 불평과 욕을 하니,

아무도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입장 곤란하게도 3학년부장선생님께서

“이 선생님, 운동장에 내려가 누군지 알아봐요.”

(헐, 그 미친###이 바로 난데 내가 내려가서 어떻게 확인해서 우짜겠다 말인고?)

그래도 부장선생님의 명령에, 확인하러 내려갔지만,

생명 부지를 위해 바로 집으로 도망 가버렸다.

그 다음 날 교장실에 불려가 주의를 들었지만,

까짓거 뭐가 뭐 따고 들어가나.

그 사건이후 우리 선생님들의 2차 술집 한 달 정도의 술안주는

체육대회의 예기치 않은 미친###의 이벤트였다.

술집에서 교장선생님 왈

“그래 내년에는 또 뭐 할끼고?”

“아니 교장 선생님 전에는 뭐라고 혼냈잖아요?”

“야, 아무리 재미있었지만 교장입장에서 칭찬해야 되겠나?

원래 앞에서 야단하고 뒤에서 이 소리하고 그런 거다. 니 그래가지고 교장 하겠나?”

그 사건 이후로 나는 깊이 반성하며 절대 장난도 안치고,

항상 점잖게 생활하며,

지금도 참 과묵하다는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

난 참 말이 없다(?)




다음 사진은 그 날의 사진과는 관계없지만

남학교로 이동하여 어느 체육대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신종플루위험군의 환자와 도덕적으로 너무 경직된 사고를 가진 분은

보시지 않기를 권합니다.

참고로 문공윤리강령은 통과한 게시물이니 고발하셔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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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림을 아래로 내릴려 해도 안되네요

그냥 짐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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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해야로비 2009.11.21 11:35  
ㅎㅎㅎㅎㅎㅎ
도라몽몽 2009.11.22 01:06  
저런;;ㅋㅋ
고광덕 2009.11.22 19:16  
에이...
그림이 위에 있어도 재미있는데요.....^^
동키호테 리...
rmaskfo 2009.11.24 11:31  
ㅋㅋ......
교장선생님 멘트도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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