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절 (시/ 노유섭)
아름다운 시절
시/ 노유섭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배꽃도, 사과꽃도 지고
홀로 아득히 외로움에 젖던 날
유리창 밖 후미진 뒤란에서
새로이 눈뜨는 아름다움의 비밀을 보느니
꽃잎 흔들리던 날들의 오색등불을
서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비바람에 푸른 잎사귀 떨구며
피땀뿐, 이제는 아픔도 괴로움도 모르는 듯
다만 역기 든 팔다리엔 힘줄 솟아
이지러질까 철갑방주로 품어
제 몸을 갈라 띄워 올리는
저 달덩이를 보아라
아름다운 시절은 갔는데
다만 내가 죽어져야 한다고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린다